어릴 때 책을 읽은 이유는, 책 속의 어떤 이상화된 가상의 인물과의 만남이 설레임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영원히 삶을 지배할 것 같은 학업이라는 억압과 굴레 속을 지나가고 있을 때, 문득 문득 불빛처럼 책 속의 인물들과 교감하고 있었다. 창조된 인간의 내면과 상상적 교감이 기성 세대가 기대하는 ‘꿈’과 ‘미래’에 어떤 부정적인 역할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른이 보기에는 달갑지 않은 책읽는 모습과 공부하는 모습이 겉으로는 거의 비슷해 보인다는 점 때문에, 공부하지 않으면서 압력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 외우지 않아 받은 불이익은 곧바로 성적표에 나타났지만, 읽는 대신 외웠다면 한없이 더 궁핍했을 가장 활발할 나이의 정신적 활동을 책이라는 매체가 풍요롭게 해준 건 분명했다.
최근에 책을 읽는 이유는 좀 다르다. 아마도 예전에 받았던 그런 느낌, 책 한 권을 끝내고 나서도 인물들은 계속해서 마음속에 살아서 나와 함께 밥을 먹고 돌아다니고, 말을 걸고 하던 무엇인가가 가슴을 가득 메우고 풍부했던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책 속의 인물이 너무나 생생해서 책을 덮고도 한동안 나를 떠나지 않는 인물이 만든 책. 모스크바의 신사 로스토브 백작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 한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이토록 서론이 길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을 뺀다면 내용은 크게 설명할 게 없다. 2천만명이라고 했던가 2백만명이라고 했던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 수의 목숨이 스탈린 치하에서 전쟁과 숙청으로 학살 되고 있을 때 구시대 인물(귀족)의 자택감금은, 그 이후 백작의 수십년간 감금 기간 백작의 지인들에게 일어난 일에 비하면 오히려 사치에 가까운 처벌이었다. 그의 대저택은 이미 인민의 이름으로 접수했을 테고, 4년째 스위트룸에 묶고 있던 백작의 거처는 종탑의 작은 다락방으로 옮겨진다. 다행인건가. 그가 묵던 메트로폴 호텔은 모스크바 최고의 호화 호텔로, 최고급 식당과 대중적 식당, 바, 세탁소 상점 등의 편의 시설들이 입점해 있어 남의 도움이 없어도 생활에 그닥 어려움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호텔 문을 한 발작만 나가도 그는 바로 총살된다.
소설의 제목에 신사라는 말이 쓰였는데, 신사와 영국신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신사라는 이미지가 속을 알 수 없는 이중적 모습이 연상되었지만 로스토프 백작의 신사다운 면모는 신사의 정의를 새롭게 원위치시킨다. (자신도 동의했던) 시대의 요구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러시아와 시대의 배반을 종신구금형이라는 결과로 받아들이는 태도만으로도 소설의 도입은 독자를 로스토프 백작의 정신세계로 깊이 이입시킨다.
니나와의 만남과 자연스런 이별, 우연히 돕게 된 여배우와의 하룻밤 정사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재회와 사랑, 최고급 식당의 웨이터로 일하게 되고, 식당 삼총사들과 맺는 작고 충직한 관계들, 재봉사를 비롯한 호텔 직원들과의 자잘한 관계들. 이런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일생 일대의 가장 큰 사건이 생긴다. 호텔 감금이 시작된 초창기에 열세살 소녀였던 니나가 청년당원을 만나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그 남편이 체포되어 행방을 찾기 위해, 6살 소피아를 잠시 맡기기 위해 찾아왔다는 점이다. 조용하고 착한 아이지만, 아이는 아이. 가뜩이나 좁은 방에 어린 아이 한 명이 차지하는 공간은 예상을 넘어서고, 그동안 만들었던 고요한 생활의 질서는 깨어지고, 아이를 다룰 줄 모르는 백작은 쩔쩔맨다. 한 달 후에 찾으러 온다던 니나의 행방은 묘연해지고, 감금 초기 그를 늘 찾아던 둘도 없는 친구 미시카는 시베리아 유형에서 돌아와 몰래 그를 만나러 오는데, 그가 하는 말이 가슴을 친다. 알고 보니 자네가 가장 운이 좋았다는 것.
잔잔하게 이어지지만 지루할 새 없이 자잘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와중에, 미시카의 죽음과 함께 밝혀지는 비밀이 있고, 백작에게 사실상 딸이 되어 훌륭히 자란 소피아가 피아니스트가 되는 과정, 오랜 시간 감금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듯했던 백작이 드디어, 딸의 장래를 위해 위험하고도 대담한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장면 등의 클라이맥스와 안도감으로 맺는 결말이 찾아온다.
몇몇 장면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혹은 현실에서 만난 것처럼 생생하고 또 몇몇 장면은 잊지 못할만큼 감동적이다. 니나가 마스터 키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던 장면, 백작이 처음으로 자신의 낡은 바지를 세탁소에 가져가 재봉사에게 바느질을 배우면서 둘이 주고받는 정겨운 대화들, 자살하려고 종탑 지붕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만난 직원과의 해프닝, 두 마리 개를 컨트롤 하지 못해 쩔쩔매는 여배우와를 돕던 첫 만남, 그렇지만 백작의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주는 사건은 니나가 아이를 데려와 맡기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러시아의 설원에서 러시아 혁명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여준 서구 영화, <닥터지바고>적 비애를 연상시킨다. 똑똑하고 철두철미한 공산당원으로 성장한 니나는, 당에 충성하고 열성적인 모습으로 비처지는데, 결과는 결국 남편의 숙청으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니시카의 말이 옳았다. 백작이 살아남은 것은 스탈린의 광기가 아닉 광범위한 처형과 학살을 낳기 전 단계에서 감금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감금이 처형이 아닌 감금으로 끝난 데에는 더욱 아이러니한 진실이 숨어져 있다. (이것은 스포라 여기까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최근 들어 읽은 소설 몇 개가 마음 속을 걸어다니고 있는데, 언제까지 머물지는 모르겠다. 지난 달쯤 알라딘에서 기획으로 열 몇 개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이라는 제목으로 소설 여러권을 골라서 세트에 묶어 전자책 3개월 대여로 판매했는데, 이미 구매한 책들과 많이 겹쳤지만, 벼르다 사지도 읽지도 못한 책들과, 내겐 생소한 책들이 섞여 있어서 대여했다. 지금 여러권 읽었는데 한 마디로 주옥같다.
무엇보다도, 기획세트 대여의 가장 큰 동기가 된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런 탐정들>은 마케팅도 많이 해서 잘 알려져있긴 하지만 끝까지 이토록 생소하고 낯선 먼 이국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을 독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느낌으로는 100명도 넘을만한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이 소설을 끝까지 정독할만한 독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내 경우 종이책으로 읽으라고 했다면 끝까지 못읽었을테지만, 없는 난독증도 일으킬 듯한 생소한 라틴어 이름들과 지명들을 읽어주는나 대신 이북의 읽어주기 기능 덕분에 끝까지 듣는 데는 성공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끝까지 읽으면 험난한 길을 끝내고 목표지점에 다달을 때같은 성취감을 주는 책이다. 쌍동이같이 똑같은 두 사람이 추구한 문학과 삶은 앞에 언급한 모스크바의 신사와 비교할 때 한 마디로 시궁창같지만, 무기력한 시대의 문학에 저항하고 끝없이 비루하고 구차한 삶을 헤치며 살아간 두 사람 역시 내 머리속에서 한동안 살아있을 듯하다. 로베르토 볼라뇨에게 반해버려, 그의 다른 소설 <칠레의 밤>을 읽었고 <2666>도 읽고 있는데, 사실 그의 소설이 캐릭터가 살아나올듯 생생하기 보다는 뭔가를 캐는 듯한 탐정적 문법을 따르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열어주지 않은 인물들의 마음 그 꽉닫힌 미지의 마음을 통하는 온갈래의 길에서 서성이게 된다. 이런 책들은 일단 번역에 감사함
개구지고 말썽꾸러기 소년이지만 수줍고 다정하게 다가와 머리속을 배회하는 착한 소년이 있다.
작가 심윤경을 겨우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해보았지만, 난독증에 걸린 소년의 일대기에 1979년과 1980년에 일어났던 역사적 비극과 개인적 비극을 통해 한 가족을 성장시키고, 스스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슬프고 아름답고 짠했다. 콩가루 같은 한 가정의 갈등과 문제는 시대가 안고 있던 시대의 표상과 다름없었고, 갈등과 아귀다툼만이 지배하던 가정에 희망을 비추고 서로를 이어주던 것(스포 때문에 ..)의 상실은 박정희의 죽음으로 군부의 종식과 더불어 잠시나마 살랑살랑 불어왔던 민주화에 대한 봄바람이 군부 구테타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지고 수천의 양민이 학살되었던 시대의 비극과 완전하게 일치한다. 희망이 사라진 후, 우리는 남겨진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비극의 끝에서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난독증 소년이 보여준 해법을 갈등의 시대에 어떻게 해석해야 각자의 몫이겠지만, 소년의 맑은 마음이 그리고 그가 떠나보내야 했던 그토록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오래도록 여운처럼 맴도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