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삼체3부 번역이 출간되었다. 1부와 2부를 읽은 독자들은 3부를 애타게 기다려왔을 테지만, 1부와 2부를 사놓기만 하고 1부만 살짝 맛본 나같은 독자는 드디어 읽을 때가 되었구나. 문제는 전자책 출간이 몇달씩 늦어지기 때문에 3부까지 완전체를 손에 넣으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테드 창이나 켄 리우 같은 중국계 작가들이 이미 중국적인 이색적이고 새로운 분위기의 SF를 많이 알려서 중국 SF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점도  류츠신 작가는 삼체로 휴고상을 받았고, 최근 미국에서도 흥행에 꽤 성공한 편에 속한 유랑지구의 원작을 쓰기도 했다. 태양이 늙고 병들어 태양을 버리고 다른 항성계로 이주하는 황당한 내용인데, 막상 영화를 보면 그닥 황당하다는 생각은 안든다. 영화라 짧지만 지구를 옮기는 방법과 과정이 오 뭐야 그럴듯하잖아 하게 설명하고 있어서이다.




알고 보니 류츠신 작가의 단편집이 나와 있었다. 아직 류츠신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 관심이 덜 했던 것도 있지만, 영어덜트 분야에 묶여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다. 자음과모음에서 올초 2월부터 차근차근 4개까지, 그것도 전자책 출간과 거의 동시에 출간해온 것을 이제야 알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출간 리뷰 이벤트나 자모 평가단용으로 풀리지 않은 모양이어서 더욱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영 어덜트 책들로 일단 분류가 되고 나면 영 관심이 없어져서 몰랐던건데, 이 시리즈의 기획 자체가 원저자 류츠신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 중 청소년들에게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비교적 과학적 관심이 드러나는 작품을 엮거나 수정하거나 새로 쓴 작품들이라고 한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각각의 중단편, 단편들은 개별적 구매도 가능하다. 짧은건 1900원 긴 건 3900원. 게다가 《메시지》와 미래세계구출은 맛보기용으로 전자책을 무료로 구매할 수 있다.  

















읽기 전에는 책 한권에 꼴랑 단편 네 개 들어있는 게 마음에 걸려, 먼저 하나만 읽어보고자 고른 게 세번째로 출간된 아인슈타인 적도다. 제목도 표지도 묘하게 끌렸다.  소용돌이 치며 하늘로 치솟은 물결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표제 제목과 달리 표지 그림은 《바다산》의 주요 이미지다. 메시지는 이 책에 들어있는 작품 중 가장 짧은 단편으로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인슈타인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이 잔잔하고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수록 작품은 총 네 편으로 《바다산》, 《최초의 빛》,《마지막 비밀》 세 편은 내용적으로는 중단편에 해당되지만 서사적으로는 길게 늘여 쓰면 장편 혹은 시리즈도 쓸 수 있을 만큼 드라마틱하고 풍부한 컨텐츠를 담고 있다. 


미친듯 신선한 아이디어 면에서는 필립 K 딕의 재림을 보는 듯했고, 따뜻한 감수성과 어슐러 K 르귄을. 치밀한 구조와 지적인 사변을 바탕으로 차근 차근 이야기를 끌고가는 저력은 테드 창을 연상시키는 작품집이었다. 


《바다산

이 이야기는 무리한 에베레스트 등반으로 대원들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은 한 등반가가 참회하는 마음으로 산과 결별하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를 탔다가 바다산을 만나는 이야기다. 중단편에 속하는 짧은 소설이지만, 외계인과의 조우, 금속으로 진화한 생명체, 안과 밖에 뒤바뀐 세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라는 여러 층위의 주제들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등반을 너무 사랑해서 동료들을 모두 잃은 후, 산을 잊기 위해 배를 탔으나 그는 망망대해 바다에서 상상도 못한 바다산을 만난다. 이러한 설정은 너무나도 환상적이어서 훨쒈 날아 경계없이 자유로운 동심을 한껏 자극한다. 물이 소용돌이 치며 위로 솟구쳐 파도치는 산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달 크기만한 구체의 우주선이 지구 궤도 위에서 일으키는 인력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기층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고 짧은 시간 내에 지구는 대기를 잃어 종말에 이르게 되는 시나리오에서 산을 좋아하는 이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종말 전 꼭 해야할 일 하고싶은 일로 이 눈앞에 있는 바다 산에 오르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산 중턱에서 선장과 헤어진 후, 바다에 뛰어들어 바다산에 헤엄쳐 오른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설정이지만, 마치 말이 되는 것같은 과학적(?) 설명으로 산 꼭대기까지 도달한 남자는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체들과 해후한다. 거대한 우주선의 영향으로 올라갈 수록 중력이 약해져 쉽게 무중력 꼭대기까지 오른 그는 거대한 물방울 속에서 그들과 통신에 성공하고, 우주를 탐구하는 이 금속 생명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자신이 알던 좁고 편향된 세계에서 빠져나와 넓은 우주로 탐험하게 된 스토리들을 듣게 된다. 


이들이 살던 곳은 지구와 비슷한 크기의 행성이지만, 그들이 생명을 진화시키고 문명을 일으키고 우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곳은 그 행성 깊은 땅 곳에 감추어진 무중력 진공의 둥근 공간 속이다. 공기도 없고 빛도 없고 액체도 기체도 없는 그곳은 사방이 암석으로 가로 막혀져 있는 캄캄한 진공이다. 이 암석을 이루는 금속 분자들이 진화해 기계와 같은 몸과 문명을 만들어냈고, 허공에 지은 도시에 거주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세상의 끝은 암석일 뿐이다. 하지만 생명체가 문명을 만들어 낼만한 힘은 호기심에서 나온다. 우주를 이해하고 싶은 그들은 하늘의 끝을 파 나가면서 우주 개척의 첫 길을 나선다. 하지만, 암석을 파서 밖으로 향할 수록 파낸 암석은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쌓이게 되므로 삶의 실제 공간을 점령하게 되고, 이로 인해 탐험가는 공간도둑으로 지목받으며 우주는 암석으로 되어 있다는 기존 학계의 조롱과 멸시를 당하면서 수많은 전쟁과 희생의 대가로 결국은 바다와 만나고, 액체라는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되고, 또다시 지층과 만나 기체를 알게 된다. 이 과정의 서술이 얼마나 신선하고 흥미로운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최초의 빛》은 동양적 정서가 가득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이기도 하고, 별들과 그 별들이 만들어내는 빛의 이동에 대한 우주 과학의 신비로움을 보여주는 과학 소설이기도 하다. 서운산의 우주 관측소를 긴급 치료 보조로 방문한 의사는 그곳에서 우주 과학자와 대화를 하고 썸을 타지만, 아무 기약도 없이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헤어진다. 이 때 벽에 걸린 추상화에 관심을 가진 의사는 그것이 태양이 한 번 반짝일 때 관측한 복사 에너지의 파동 곡선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그림을 얻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 날 이후 남자는 서운산에 뭔가 두고온 느낌을 가지게 되고, 그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늘 바라본다. 10년 후 남자는 어느날 직장 봄소풍으로 서운산 천문대를 다시 방문하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녀를 거기서 만난다. 그녀 역시 여러 천문대를 다니며 관측과 연구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최근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연히 만난 그는 벽에서 예전과 같은 빛을 관측한 파등 그림들을 속에서 자신의 집에 매일 걸려 있던 10년전 바로 그 그림과 동일한 그림을 발견한다. 빛의 파동 곡선은 각각의 빛마다 길이와 높낮이들이 모두 다르다. 여기 걸린 그림이 10년전 태양에서 관찰한 그 빛을 다시 그렸냐고 묻자, 이 것은 센타우르스 자리 알파의 빛 A형 파동이라며, 집에 있는 것과는 다르고 작년 10월에 관측된 것이라고 말한다. 1년 전 결혼전까지 기숙사 벽에 늘 걸어놓았던 그는 그 그림의 색깔과 모양을 순서대로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10년전 관측한 그 태양빛의 데이터와 센타리우스 빛을 비교해보자고 제안한다. 구조가 같은 두 파형도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불가능하다.


이제 상황이 분명해졌다. 두 개의 같은 빛이 나타난 시간의 간격은 8년 6개월이었다. 이는 빛이 두 항성 사이를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일치했다. 태양 빛의 광선이 4.25년 후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로 왔을 때 센타우루스자리 알파에 같은 빛이 일어났고, 다시 같은 시간이 흘러 센타우루스자리 알파의 광선이 되돌아오면서 관측된 것이었다.


즉 지구에서 관측된 태양 빛이 센타우르스 자리 항성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걸 관측한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은 다시 시리우스에 닿았다가 7년후에 다시 지구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계산한다. 만일 시리우스가 7년후에 다시 반짝인다면, 그때 또 만나자고 약속하고 둘은 다시 헤어진다. 17년후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시리우스에서 같은 반짝였음을 확인하지만, 다음번에 관측이 가능한 항성은 독수리자리 알타이르로 17년 전 두 사람을 이어주던 그 태양빛이 이제 막 거기에 닿았고 또다시 17년을 기다려야 관측이 가능함을 알게 되고 막막해하면서 한 번 더 기회가 있음에 안도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후 두 사람은 각자 인생의 최고봉을 달리고 있는 시점이다. 이제 사운산 천문대는 폐쇠되고 그곳은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폐허에서 만났지만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는 별빛이 총총인다. 


최근 몇 년 동안 관측을 하면서 A형 빛의 전달은 항성 간의 일반적인 현상임을 발견했어요. 순간마다 수많은 항성에서 최초의 A형 빛이 일어나고 있어요. 주변의 항성들은 이 빛을 전달하고 있고요. 그러니 모든 항성은 최초의 빛을 일으킨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다른 항성의 빛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할 거예요. 모든 성간은 떨어지는 빗방울에 잔잔한 물결이 이는 연못과 같아요. 


그리고 지구에서는 멀지만 항성끼리는 가까운(5광년) 항성 짝의 별빛을 관찰하면 1만 광년 떨어진 항성의 별빛의 이동도 5광년 내에 관찰가능하다며, 수천억개의 항성을 가진은하계 내에는 그만큼의 항성의 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여자에게 줄 두뇌 신경망을 모델링한 반짝이는 점들로 이루어진 구체를 선물을 내놓는데 그것은 자신이 연구하는 신경망이 별빛으로 서로 연결된 세계와 비슷하다. 이로서 둘은 의식 역시 뉴런과 뉴런의 단순 연결의 거대한 조합이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광대한 우주 속의 불빛 속에서 서로를 이어주던 끈을 확인한다.

《마지막 비밀》은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과 바꿀 수 있는 순수한 과학자들의 세계와 과학적 탐구가 우주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지구 크기로 적도를 도는 가속입자충돌기를 파괴한 외계인들의 조우를 그렸다. 과학자의 순수한 탐구심이 주제인만큼 앞의 세 개보다는 서사적 재미는 덜했지만,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은 류츠신 특유의 사유를 잘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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