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작품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몇달 전에 접하고 설레며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 본토에서도 5월 7일 출간된 따끈따끈한 작품집인데, 테드 창의 국내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속도의 빠른 번역이다. 번역은 이전 작품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번역한 김상훈이며, 출판사 역시 엘리로 동일하다. 작품집이 최근 십여년간 발표된 작품들을 엮은 것이어서 , 빠르게 번역출간될 수 있지 않았나 시파. 미발표작은 두 개에 불과하고, 그 중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같은 역자가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스 시리즈로 이미 출간되어 있다. 어쨌든, 미국의 테드 창 팬들은 이미 발표된 작품들을 엔솔로지나 발표지를 통해 거의 다 읽었을 테고, 새 작품 두 개를 읽기 위해, 그리고 테드 창의 작품만 모아져 있는 책을 갖기 위해 이 책을 사게 될 터인데, 미국 사이트에서는 목차(작품 목록)을 보기가 어려웠고, 알라딘 홈에도 목차가 빠져있고, 미리보기도 없다. 다행이도 국내 다른 서점에서 작품 목록(목차)가 올라와 있어서 긁어온다. 옮긴이의 말이 511쪽에서 시작되니, 꽤 두꺼운 책인데, 가격은 14000원 대로 합리적이지만, 이미 출간되어 있어서 이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대개 소유하고 있을 가장 긴 150쪽짜리 소프트웨어 객체 주기를 빼면 대략 350쪽 정도니,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 십여년 간 주기에 한 번씩 출간되는 테드 창의 작품집을 안살 이유가 없다.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9
2. 숨 / 59
3. 우리가 해야 할 일 / 89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97
5.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 249
6.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 267
7. 거대한 침묵 / 333
8. 옴팔로스 / 345
9.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395
창작 노트 / 493
감사의 말 / 509
옮긴이의 말 / 51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The Merchant and the Alchemist's Gate)은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그다드의 고대 도시에서 한 직물상인이 사업파트너에게 줄 선물을 찾다가 우연히 시장에서 새로운 가게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매우 흥미로운 여러 물건들을 만들어 파는 가게 주인은 그를 워크샵으로 데려가 연금술을 사용하여 만든 검은 돌 아치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미래로로 통하는 게이트이다. 상인이 흥미를 보이고, 가게 주인은 그에게 미래의 자신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인은 카이로에 과거로 통하는 또다른 게이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20년 전에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위키 영문판 참조함). 2007년에 subterranean에서 출간되었고, 같은 해에 Fantasy & Science 9월판에 실렸다. 구글링하면 전체 텍스트가 PDF로 링크되어 있는 사이트가 맨 앞에 뜨는데, 중국의 한 유명 대학 사이트여서, 합법판적지는 잘 모르겠다.
표제작인 숨(Exhalation)은 2008년 앤솔로지인 Eclipse 2에 실렸고, 단편 부분 로커스와 휴고상을 수상했다. 이 단편은 저자의 허락 하에, 전체 텍스트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고, nightshadebooks.com 에서 찾으면 된다. 위키 영문판에도 링크가 있다. 짧은데도, 위키에 나온 플롯은 뭔가 길고 복잡해서 뭔소린지 모르겠고, 아마존 리뷰어의 말을 빌리면, 로봇들만 사는 한 대체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로봇들은 자기들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를 못하는데, 한 로봇이 해부학을 탐구하며 자신과 자신의 종족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존 리뷰어 Bradley Bervers 리뷰 참조)
우리가 해야할 일(What's Expected of us)는 흥미롭게도 네이처 지에 실린 짧은 단편인데, (네이처에 단편소설도 실린다는 건 처음 알았음), 이 스토리를 Year's Best SF(2006)에 실은 편집인인 David Hartwell의 말을 빌리자면, 이 소설은 '인간의 성격과 행동의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또다른 소설적 탐험'이라고 한다. 10여 페이지 되는데 한 다섯장 정도 넘기면 다 읽을 것 같고, 워낙 짧아서인지 이 이상의 스토리 소개는 찾을 수 없지만, 기계로 자유의지를 탐구하는 한 미래의 모습을 담은 듯하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는 유일하게 내가 읽은 소설로, 삶의 구석구석 침투한 소프트웨어의 주기적 변화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이야기가 주는 감성적 울림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다. 작년인가 몇달 전쯤인가 시간 개념이 좀 없어졌는데, 아무튼 이 중편을 읽고 써서, 알라딘에게서 2만원을 받아 리뷰 쓰는 자신감까지 준 작품이다. 2010년 로커스, 휴고상 수상. 지난번 리뷰에 상세한 내용을 적어놓았으므로 플롯 소개는 생략.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Dacey's Patent Automatic Nanny)는 2011년 The Thackery T. Lambshead - Cabinet of Curiosities 이라는 잡지에 실렸던 짧은 소설로, 찾아보니 이 앤솔러지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고, 테드창의 이 소설은 Holy Devices and Infernal Duds: The Broadmore Exhibits 라는 파트에 묶여 있다. 개인적으로 이 앤솔로지에 흥미가 생긴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The Truth of Fact, the Truth of Feeling)은 2013년 subterranean에 발표된 작품으로 2014년 휴고상 중단편 후보에 올랐고, 넷플렉스 SF 드라마 블랙미러의 한 에피소드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블랙 미러 하면 주로 기억 장치가 많은 에피소드에서 주요 테마로 사용되었는데, 그 중 이야기 도중 누구 말이 맞은가를 확인하기 위해 기억을 화면에 재생하여 같이 돌려보는 에피소드가 있다. 물론 재생하는 사람의 시점에서 시각 영상이 펼쳐지고, 대화와 소음까지 모두 그대로 재생된다. 아내가 바람핀 사실을 눈치챈 남편이 아내의 기억을 불러내 이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의 섬뜩한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아무튼 그것 말고도 기억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이 소설 역시 같은 모티브를 사용하는 것 같다. 블랙미러 보다는 이 소설이 훨씬 먼저 나왔지만, 기억 재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으니, 테드 창의 시점에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거대한 침묵(The Great Silence)는 2015년 e-flux라는 인터넷 저널에 발표된 작품으로 The Best American Short Stories, 2016에 실렸고, 나머지 두 작품은 유일하게 미공개 작품이다. 따지고 보니, 거의 1년에 겨우 단편 하나씩 발표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다른 직업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작품에 공을 들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