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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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단에서 빼기>는 여성독자들이 사랑했지만 남성들 또한 좋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레싱이 직접 밝힌 소설인데, 나 역사 이마를 딱 치며 아 이거다 싶게 유쾌했다. 이 소설집 중에서 가장 좋아했다고 볼 수 있다. 남자 또한 좋아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건 이 남자가 홍상수 영화에나 나옴직한 전형적인 찌질남이고, 유명 여성과의 섹스를 통해 정복력과 성취감을 금메달처럼 전시하는 남성의 심리를 통쾌하게 조롱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법적 규제나 안전 장치가 부족했던 시대에, 남녀의 섹스라는 행위가 남성에게는 정복, 여성에게는 굴복이라는 프레임 속에 위치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만일 이 소설을 100년 쯤 후에 읽는다면 이게 무슨 뜻인지, 무슨 맥락에서 이런 소설이 나왔는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세상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물리적으로 보나 행위적으로 보나 두 사람이 서로 같이 몸을 만지고 뒹굴고 그러다보니 생기는 자연스레 욕정을 해소하는 행위를 남성은 갖는 것으로, 여성은 주는 것으로 느끼고 표현하던 이상한 관습적 사고를 예측 불가능한 방법으로 파괴한다. 쉽게 섹스하는 여성을 헤프다며 질타하던 시기에 쓰여졌다는 걸 감안할 때 다욱 파격적이다.


요즘도 성범죄의 책임을 여성들의 지나친 노출로 몰고가는 몰상식한 여론을 접할 때가 가끔 있다. 여자들이 치마를 짧게 입는게 성범죄를 조장한다는 논리는 여성에게 부르카를 씌워 아예 여성의 실존 마저 지우고자 하는 이슬람 세계의 논리와 오십보백보다.  <옥상 위에 여자>는 어떤 문화적 변화 속에서도 집요하고도 끈덕지게 여성에게 집중되게 덧씌워지고 강요되는 성윤리에 대한 웃지 못할 풍자극으로 읽힌다. 무더운 날씨에 옥상에서 작업하는 세 노동자들은 반대편 건물에서 반나로 일광욕 중인 여성에게 각기 다른 마음을 품는데, 한 명(스탠리)은 휘파람을 불고 조롱하고, 한 명은 그런 그녀를 동료로부터 지켜줘야겠다는 망상과 그녀와 다정한 관계가 되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결국 남자들이 도달한 감정은 그녀를 향한 분노다. 조롱과 욕설 혐오 등 그녀를 향한 온갖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랑곳없이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음에 더더욱 혐오와 분노를 표출하는 이 가엾은 남성들은 길거리의 모든 여성들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잘보이려고, 섹스하려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일베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자기를 지켜보는 새 남자에게 무심하기 짝이 없는 (발가벗은) 여자 때문에 세 사람 모두 화가났다 68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에 대해 도리스 레싱은,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이 어떻게 비쳤는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작가가 좋아한 이유를 독자인 내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서사에만 관심을 두고 읽다보니 여성의 심리에 대한 문제 의식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서사는 고골의 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피가 뚝뚝 흐르는 심장이 몸 속에서 밖으로 빠져나와 손에 달라붙어 다니는 모습은 코가 달린 부분이 평평하게 변한 우스꽝스런 모습에 비해 다소 괴기스럽다. 레싱의 작품으로는 처음 접했던 <다섯번째 아이>부터 일관되게 레싱의 작품 속에는 이런 그로테스크함이 있다. 순수하게 심리적인 소설 속에서도 이해 불가능해 보이는 괴기한 심리와 미친듯한 행동이 드러난다. 하지만 코보다는 심장이 의미하는 게 보다 명확해 보인다. 


일생을 통해 두 번의 ‘진지한’ 사랑 A, B를 했지만 두 번 다 뼈아픈 실패로 끝났고, 그 진지한 사랑 A와 B 사이에 셀수없는 십 수번의 진지하지 않은 교제가 있었지만 부푼 기대를 품고 다시 진지한 사랑의 후보 C와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여자는 그 두 번의 진지한 사랑이 끝났을 때마다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심장을 기억하며, 다시 핑크빛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손으로 꺼내 버렸으면 하고 소망한다. 그런데 그런 말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C의 만남을 앞두고 전화 통화를 하다가 자신의 심장이 자신의 손에 걸려져 있는 거다.  원하던 일이었지만 그 선홍색 심장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신체의 일부처럼 붙어 있다.  이렇게 떨어지지 않고 있던 심장을 알미늄에 감싸고 외출을 하는데, 지하철에서 허름한 차림을 한 미친듯한 여자를 만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미친여자는 자신의 드라마에 빠져서 비난, 사랑의 배신, 혹은 부정 같은 개인적 비극을 연기하는 사람처럼 영혼없이 계속 혼자서 떠들고 있다. 모두에게 당혹감과 수치를 느끼게 하던 미친 여자를 보던 주인공은 손가락에서 자신의 그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심장을 그녀 앞에 갖다 놓고, 문제의 미친 여성은 그것을 품에 안고 좋아한다.


지하철의 미친 여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소설집에는 글자 그대로 읽는다면 미치거나 조금 정상이 아니거나,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한 남자와 두 여자>에서 도로시 브래드퍼드는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남편의 외도 그 자체보다는 남편의 외도에 대한 자신의 상관않는 심리에 대해 더 의아해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도로시는 자신의 부부를 방문한 스텔라에게 자고 가라 권하면서 자기 남편과 관계를 맺을 것을 은근히 암시하여 실제로 그렇게 될 뻔하게 만든다.


<영국 대 영국>에서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인 찰리는 옥스포드 대학을 다니던 중 자신을 위해 가족 모두가 희생하고 있는 광산촌의 집을 방문하고, 정신 분열적인 증상을 경험하고, <두 도공>에서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서, 꿈을 통해 타인의 현실을 제어하며, <목격자>에서 부룩은 외로운 알콜중독자이고, <20년>은 20년 전 어긋난 사랑 때문에 헤어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으며, <19호실을 가다> 역시 우울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중 <20년>은 서로 만나기로 한 곳에서 서로가 기다리다가 어긋난 지나간 사랑을 20년만에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상황을 묘사한다. 안타까운 영화같은 설정이지만, 독자도 화자도 두 사람의 기억 중 어느 기억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서로는 약속된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서로를 애타게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결국 서로에게 나타나지 않아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인데, 평행우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한 사람이 날짜를 헷갈렸을 수도 있고, 같은 장소가 두군데 있었을 수도 있고, 수많은 가능성이 있으므로, 누구 한 사람이 반드시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헤어졌어야만 했을까. 오늘날처럼 휴대폰과 인터넷 이런 게 불가능하니 서로의 연락처를 알 수 없었을 수도 있으므로 이런 안타까운 뜻하지 않은 어긋남과 이별은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휴대폰 시대에서 우연과 착각에 의한 비극적 요소는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같다.


<남자와 남자 사이>는 <최종면단에서 빼기>만큼 유머러스하게 읽힌다. 새삼 시대적으로 여성에게 경제적 독립이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따져볼 기회이기도 했다. 남자의 정부로서 이남자 저남자 등에 빨대를 꽂아 몸을 가꾸고 먹고 사는 꽃뱀들의 이야기이도 하다. 말 나온 김에 여담 하나, 친구가 목욕탕에 갔다가 거기 출퇴근하는 유한마담들과 안면을 텄는데, 그 중 꽃뱀으로 알려진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뭐 예를 들어 배찌(?)를 한다든지 하며 티를 낸다고 한다. 그 여성과 나름 진솔한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는데, 기억나는 건 일단 한 남자랑 친해지면 초기에 가방이며 보석이며 마구 선물하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선물이 왜소해진단다. 그러면 그게 이별의 징조이므로 꽃뱀은 새로운 물주를 물기 위해 동분서주 해야한다고. 길게 가봐야 몇년 안가므로 끊임없이 정부를 탐색해야 하고, 그래서 몸치장에도 돈이 많이 든다고. 정확하지도 않고 뭐 막 섞이기도 했지만 대략 그런 내용이었는데, 나는 그 목욕탕 뱃찌녀가 자신의 삶의 패턴을 서비스 노동의 가치로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 소설속 여성들이 크게 다름없다. 


단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요령이 대가의 손에 의해 과장적으로 설정되었음을 주목한다. 잭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의 꽃뱀 이 붙었는데 그 중 한사람은 정식 부인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정부가 되었다. 정식부인이 되면 계약 상태가 되어, 이혼후에도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데 대신 남편과의 정사는 주로 정부와 이루어진 듯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결혼했던 여성이 이혼했던걸 바로 알아차리는데, 그 이유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혼을 했으니 다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가꾸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둘은 술을 마시고 대화(인지 술주정인지)를 하면서 둘이서 남자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낸다. 만일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회라면, 정부이든 정식부인이든 꽃뱀이든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이 궁극적으로는 남자를 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라고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구석구석 층층히 존재하는 성차별이 특히 성적으로 여성을 취약하게 하는 이유다.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는 외로움과 자유 그 둘은 붙어다녀야 하는 건지, 성공한 가정이라는 따뜻하고 푸근한 울타리의 허위와 그것을 위해 포기된 자유와 속박,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불안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제는 전체 작품에서 계속 반복된다. 가정이 없이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움 때문에 그토록 심장을 찔렸으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는 여성(<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처럼, 우리 모두는 한편으로는 자유를 원하면서도 누군가와 꾸준히 사랑을 하고 함께 살기를 원한다. 깨질까 다칠까 조심조심 보살피고 가꾸어온 완벽한 가정 속에서 허위와 불안을 느끼고(<19호실로 가다>, <한남자와 두 여자>), 애정과 결혼 제도에 속박되지 않는 정사를 갈망한다 (<최종명단에서 빼기>, <남자와 남자 사이>). 하지만 <19호실로 가다>의 수전은 그녀의 정신 분열적 최종 선택과 관계없이 누구나 느끼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녹여내었다.


전에 읽은 중장편들(다섯번째 아이, 그랜드마더스)에 비해 압축적이라, 맥락 파악이 잘 안되는 부분이 다소 있어서 읽는 데 시간도 걸렸고 다시 읽어야 한 것도 많았지만, 다 읽고 나서 보니 대가의 작품다운 품위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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