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파이크는 터키의 작가로 서구의 어느 영향도 받지 않은 독보적인 자신의 스타일로 많은 단편을 썼고 현대 터키 문학에 큰 영향을 준 작가라고 한다. 처음 두 단편은 상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충격적인 내용이어서 계속해서 읽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그 이후의 소설들은 재미있어서 한개씩 야금 야금 읽다가 한 20여개의 단편을 읽었다. 도시 빈민들의 일상을 소재로한 짦막한 스토리들로, 20세기 초중반의 터키라는 생소한 환경에서 하찮고 보잘것 것 없고 가난한 민초들의 순박한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읽은 곳까지 20여개 단편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다수의 소설이 매우 짧은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충분한 이야기 삶의 변곡점들이 담겨있고, 짐꾼이나 농부 공장노동자 웨이터에서 실업자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점, 사건이 발생하고 서사가 만들어지는 와중에도 딱히 악인은 등장하지도 맡은 역할도 없으며 대개 좀도둑마저도 선량하고 어리숙하게 다루어지는 점을 떠올릴 수 있다. 

첫 소설 <해변의 거울>은 읽은 소설 중 조금 예외적이다. 가난하고 위악적인 소년과 아들 앞에서 매춘을 하며 돈울 뜯어내던 소년의 엄마가 악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설이 다른 소설과 달리 읽기에 불편했던 건 어쩔 수 없었든 싶다. 알고 보면 소설이 불편 그러한 삶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불편한 거겠지만. 이 첫 소설 <해변의 거울>은 중기에 해당하는 소설이어서 실험적인 작품이었을 수도 있고, 나머지는 초기작이어서 보다 이야기거리가 풍성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짦막한 소설 두 개만 소개해 본다. 전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이고 조금 더 따뜻한 것도 조금 더 슬픈 것도 있다. 그 분윅기와 정서라는 것이 흔히 읽을 수 있는 서구의 것이 아니라 터키 고유의 것이라 할 수 있을 정겹고 푸근하다. 20세기 초중반이라 전쟁과 세계 대공항의 여파로 모두들 힘겹게 살아가고 있르므로 지금의 정서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

‘나의 침대는 전차를 기다렸던 순간들의 그 익숙한 상태를 이제는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침대였다. 그 안에 잠잘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아침에 문을 여는 카페를 강제로 닫기 전에 밤을 보낼 수 있는 몇 개의 집이 간절하게 필요한 이스탄불의 겨울이 때로 얼마나 길고, 끝없는 재앙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위의 인용에서 마지막 문장은 흠..해당 단편을 읽으면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찰떡같이 입에 붙는 번역이 아니라서 아쉽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려면 내용을 조금 알아야 한다. 소설은 자정이 지난 얼음장같은 한파 속에서 시간 전차를 기다리는 풍경으로 시작된다. 전철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너무 추워 발을 동동 구르며 각자를 기다리고 있는 따스한 집과 아늑한 침대 생각이 간절하다. 그 때 어떤 사람이 다가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 무리가 지나가는 걸 혹시 못봤느냐고 묻는다. 그같은 사람들이란 무엇일까? 잠시 의아하지만, 그것이 행색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전차 속에서 밖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비슷한 사람을 보고서야 알아차린다. 그와 비슷한 사람은 추운 겨울 외투도 모자도 부츠도 없이 허름한 옷을 걸친 궁핍해 보이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짐꾼이나 하인 같은 일을 하는 값싼 일용직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사람들로, 숙소 비용을 절약하려고 여러 카페 구석에서 약간의 돈을 내고 잠을 자는데 경찰이 불법이라며 쫓아냈다는 것이다. 쫓겨난 사람들은 연합을 해서 주지사라도 만나 딱한 사정을 얘기하려고 찾아가는 길이었는데 딴전을 팔다가 그 일행을 놓쳤다는 것이다. 말을 마치고 그는 사라졌고 전철을 탄 화자는 전차 밖으로 걸어가는 그들을 묵도한다. 

방금 만난 사람과 비슷한 사람들의 무리들 말이다. 추운 겨울 돌아갈 침대가 있지 않은 사람들. 하찮은 일을 하며 겨우 먹고 살만큼의 푼돈만 손에 쥐지만 어렵게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힘겼게 일하지만 살을 에는 추위에 변변한 외투도 없이 부츠도 방한 모자도 장갑도 없이 문닫은 카페의 한쪽 구석에서 쪽잠을 자다가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부드럽고 달콤한 아나톨리아 말투를 쓰던 사람처럼 시골에서 올라온 순박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 그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주지사를 찾아가서 사정 얘기를 하면 다시 푼돈을 내고 카페 한구석에서 한파 속위 하루밤를 지낼 수 있을 걸 기대하는 순박하고 헐벗은 한무리가 주지사의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질투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이 소설은 한편의 긴 시다. '닭장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골의 한 가난한 선생은 이웃 사람들에게 떠밀려 마을의 또 다른 가난한 여인인 파디메와 결혼을 한다. 아내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하지만 그는 아내가 동반자로 여겨지지 않고 자신에게는 아내 대신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내에게는 아내의 염소를 먹이는 목동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날 어스름 무렵 그림 같은 목가적 풍경 속 나뭇잎 사이로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아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잎사귀들을 헤치며 다가갔다. 휘스레브는 파디메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를 보고도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철학자처럼 ‘열일곱 살의 남자아이가 열일곱 살의 여자아이의 손을 손을 잡는다면 서른다섯 살 먹은, 여자아이의 남편이라도 놀랄 일은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

아내의 나이가 남편 나이의 거의 두 배라는 사실은 이 대목에서야 알려준다. 그가 아내에게 나쁘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입맞춤도 하는 사이임에도 뭐 아이를 가져야될 이유가 굳이 있느냐는 둥 동반자로 생각되지 않았다는 하는 말을 전하는 화자의 심리가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 자신이 너무 늙은 거다. 열일곱의 소녀에게 서른 일곱살의 남자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손을 잡고 있음에도 화자는 화조차 내지 못하고 철학자처럼 놀랄 일은 아니라 생각하고 더욱이 목동과 아내에게 잘 있었냐고 말을 걸고 숫양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하지만 ‘웬일인지 가슴에 멍이 든 느낌’이고 ‘속도 거북’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파람을 불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아내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 방 안으로 들어와 헤나로 물들인 손을 비비며 “저녁밥 준비되었어요”라고 말한다. 그의 소심한 질투는 자신은 입맛이 전혀 없으니 너 먼저 먹으라고 하는 말이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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