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물레 환상문학전집 33
어슐러 K. 르귄 지음,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한 남자가 심연의 해파리가 되어 바닷속을 떠다니는 몽환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은 실제로 남자가 약에 취해 해롱거리며 보는 환상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전체 내용인 꿈과 현실 사이의 모호한 구분을 상징하기도 한다. 실제 어슐러 르 귄은 장자의 사상에 심취하여 번역을 하기까지 했다고 전해지는데, 아이러닉하게도 환타지를 연상시키는 하늘의 물레 라는 이 제목 역시 르 귄이 장자의  ‘경상초편에서 언급된 천균(天均)’을 오역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장자가 언급한 천균이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아울러 한 가지로 본다는 뜻으로 만물이 고른 상태를 말하고 또한 이 말이 쓰였을 당시 물레라는 것은 있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이 사실은 영국의 한 과학사학자 조셉 니던이 르귄에게 편지로 알려주었으며, 심각한 오역이었다고 르귄 스스로 밝혔다. 편지에는 ‘멋진 번역이지만, 틀렸소’라고 쓰여있었다고 한다.


이 멋진 오류는 이렇게 쓰여졌다. 전체가 소제목 없이 1장부터  11장까지 나뉘어져 있는데 매 장 시작에는 장자가 인용된다. 3장 서두에 인용된 내용은 이렇다.


하늘이 돕는 자를 우리는 천자(天子)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려 한다. 행할 수 없는 것을 행하려 한다. 사리를 따질 수 없는 것을 따지려 한다. 이해될 수 없는 것에서 이해를 멈추는 것이 지극한 앎이다.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하늘의 물레 위에서 파괴될 것이다.      — 「장자」, 23편


오래전부터 꿈의 신비함을 믿어 온 인간은 간밤에 꾼 꿈으로 어떤 일의 징조를 찾곤 했다. 어릴 때 할머니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차조심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또한 안좋은 일을 겪을 때마다 어쩐지 어제 밤에 꿈자리가 사납더니 라고도 했다. 이렇게, 꿈이 현실을 반영하는 이유는 무의식 속에 내재된 현실 속의 불안이 꿈으로 표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적 설명은 거기까지다. 꿈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들을 추측하거나 꿰어 맞춰 꿈을 해몽할 뿐이다. 이 소설은 여기서 출발하지만 크게 더 나아간다.


불길한 꿈을 꾸어 미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를 바꾸는 것이다. 현재 상태란 과거를 통해 만들어지므로 다시 말하면 과거 자체를 바꾼다.


오르는 청소년기에 자신의 집에 얹혀 사는 이모가 가슴을 드러낸 잠옷을 입고 자신을 유혹하는 느낌을 받고 분개하는데, 이후에도 이모가 자신의 침실에서 어슬렁거려 어렵게 쫓아 내고 잠든 후 이모가 차사고로 죽는 꿈을 꾼다. 꿈에서 이모가 죽은 후 일어나 보니 이모가 6년 전에 차사고로 죽은 걸 알게 된다. 이후 자신의 꿈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꿈을 꾸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의료 카드를 이용하여 마약을 복용하게 되고, 당국에 적발되어 강제 상담 치료를 받게 된다.


이 분야의 권위자인 하버 박사는, 그의 꿈이 현실을 바꾼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의 꿈을 조정하여 세계를 바꾸려고 한다. 오르가 꿈을 거부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꿈의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바라는 것과 달리 하버 박사는 그의 꿈을 조정하면 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세계를 이상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행한다. 그의 꿈을 통해 세계는 바뀌어가고 하버 박사는 점점 더 과학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히하지만, 오르는 자신이 하버의 치료를 거부하면 범죄자 신세가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버 박사의 치료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르는 변호사 르라샤에게 치료 과정 상의 개인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지를 참관할 것을 요청한다.


이렇게 해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비밀을 세 사람이 공유하게 되고 세계는 겉으로는 더 나아지는 듯이 보이지만,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상상도 못할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높은 인구밀도로 도시 빈민으로 득실거렸던 도시는 한 번의 꿈으로 백만의 회색빛 방사능 도시에서 십만의 전원적 도시로 바뀐다. 꿈 이전의 세계와 꿈 이후의 세계가 중첩되며 눈녹듯 스르륵 변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다. 도시 인구가 쾌적한 상태로 바뀐 이면에는 대부분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거대한 역병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오르에게 이제 더는 부모마저 없다. 치료가 계속될 수록 점점 더 세계는 변화해간다. 아랍과 아프리카의 학살과 전쟁은 끝이났지만, 그 이유는 외계인의 침공이라는 더 큰 공공의 적들이 내려와 있기 때문이었고,  인종 문제가 사라진 이유는 모든 사람의 살색이 회색으로 변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꿈의 조작은 세계와 개인을 어디까지 변화시킬까, 오래 전에 부모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던 오르는 변호사 일을 통해 사랑하게 된 르라쉬의 갈색 피부가 회색이 되었음을 슬퍼하는데, 후에 그녀의 존재 혹은 그 자신의 존재마저도 위협받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장자의 호접지몽이 말할 수 없이 지적인 방식으로 환상적인 문학으로 승화되었다는 생각이다. 매 번 세계가 변화될 때마다 분명 고질적이고 몰락적 문제들은 점점 사라져가는데, 뭔가 아주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것들을 잃어간다. 하버 박사의 욕망과 오르의 거부 사이에는 어딘가 중간지점이 없다. 변화는 과거의 부정을 뜻하고, 자아의 해체를 의미하기도 하지 않나. 그런데 그 새로운 '나'에게 변화한 세계의 새로운 기억이 생겼다면 그것 역시 또다른 자아가 아닌가. 이렇게 여러 경로를 거쳐온 멀티 자아가 이 모든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오르이고, 그것을 새로운 세상의 창조로 여기는 사람은 하버 박사이다. 결국 하버 박사는 노력 끝에 오르의 꿈이 더이상 효력을 내지 않는 대신, 오르의 꿈이 작동하는 원리를 밝혀, 스스로 자신의 꿈과 바람으로 세계를 바꾸는 기술을 발견하는데, 그 때문에 오르는 또 어떻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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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슐러 K 르 귄, 하늘의 물레, 황금가지,  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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