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길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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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푸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며 인스턴트 식품은 도시인들의 고독을 드러낸다’는 13세 모로는 주머니 속의 동전으로 그것 외의 다른 선택이 그럼 뭐가 있냐는 6인의 친구 패거리들에게 내가 있자나 하며 나선다. 여섯 친구들은 토요일마다 거리의 패스트 푸드점에서 정크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배회하는 대신 모로의 집에 모여든다. 쩡그렁거리는 깡통에 십시일반으로 식재료 값을 모으기도 전 모로는 기꺼이 시장과 대형마트들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먹일 음식 재료들을 사들인다. 이런 일을 의무감으로 한다면 얼마나 고되고 힘겨운 일이었을까만은 모로는 더 어렸을 때부터 이탈리아 혈통의 어머니, 전설의 요리법들을 꿰고 있는 외할머니의 영향 아래 ‘매 끼니를 식구 모두가 준수하는 일상적 제의’로 만드는 다 같이 식사하는 집안 분위기, 요리에 대한 개인적 열정과 관심 덕에 즐거운 일상이 된다.  소박한 염가의 생산품들과 같은 식재료에서 창조되는 무한 변주, 그리고 외식은 일절 금지 라는 이 분위기 속에서 귀가 후 홀로 집에 남겨진 10세의 소년이 컴퓨터 게임 대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요리다. 그에게 주방은 놀이터다. 마법같은 요리의 화학적 물리적 변화를 즐기며 급고 지지고 졸이는 과정을 익히고  바삭함과 파삭함의 차이를 경험하고 분량과 온도와 시간과 관련된 감각을 벼린다. 그렇게 더 어릴 때부터 갈고 닦은 모로의 요리 기술은 이들 6인의 패거리들에게 진짜 수제 피자와 카보나라 파스타와 버터 감자 구이와 쇼콜라와 크레프 쉬젤라와 같은 주머니 속의 동전으로는 꿈도 못꿀 음식과 매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13세 소년들의 그룹에게는 흔치 않은 값지고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철부지 친구들은 훗날 프랑스  전역에 그의 레스토랑과 세프로서의 명성을 날리게 될 이 친구의 이런 요리와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를 아직 모른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연코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읽은 저자의 집요하고 화려하고 열정적인 문체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고 나서 시간이 지난 후 서사의 디테일이 희미해졌을 때, 마지막 몇가지 인상으로 남기 마련인데, 물론 전혀 아무것도 남지 않고 표지만 생각나는 책들도 많지만, 이 저자의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은 첫 챕터, 첫 문장의 느낌이 아직까지도 팔딱 팔딱 생동하는 느낌으로 남아있다. 물론 내러티브도 훌륭했지만, 사물과 현상과 행위 그 이면에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할 듯한 느낌과 본질을 그토록 정교하고 집요한 문체로 담아내는 그의 고유한 문체는 혀를 두를 지경이다. 


 

한 청년이 사회학과 경영을 공부하고 대학원을 나와 박사학위 과정까지 수료한 청년이, 요리사가 되는 과정, 잡지책에 소개되고 파워블로거들에게 이슈가 되고, 멀리서 식도락가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그런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명 요리사가 되어서도 계속되는 삶의, 실존의 고뇌와 현실적 고충들이 어떤 식으로 다가오고 어떤 다른 길로, 어쩌면 어릴 때부터 그런 분위기 속에 말없이 고용하게 내재하게 되었던 어떤 가치 철학 같은 것들을 실현시킬 색다른 길을 모색하게 되는 과정을 바로 그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보여준 케랑겔의 생생한 언어로 보여준다. 


 

다큐와 소설의 중간 쯤 될까. 한 개인의 삶에서 박사 학위 취득과 관계된 삶과는 대조적인 다른 레벨의 삶, 최저 임금에 12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시간, 그리고 도제 같은 주방 문화 뾰족하고 날카로운 주방 기기들이 얼굴로 날아다니는 폭력으로 요약되는 요리사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인생을 결정하는 큰 전환점이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보여준 것만큼, 건강했던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의 충격 만으로도 버티기 어려운 시간에 장기 기여라는 또다른 심리적 압박을 받아들이는 부모의 심정만큼, 드라마틱하고 격정적이고 감정이지는 않지만 한 개인의 인생을 결정하는 주요한 결단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아주 담담하고 간결하게 다루어진다. 마치 운명을 따라가듯, 그토록 요리에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한 번도 커서 요리사가 될 생각을 하면서 성장하지 않았던 한 인생이 이미 남의 밑에서 주방칼의 위협을 받으며 시작하기에 늦깍이 나이로 그 일을 처음에는 1달 알바로, 그 다음에는 자신의 인생 이력에 좀 더 색다른 경험을 넣기 위해 무보수 인턴으로 일하고, 그러고 나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렇게 서서히 요리사의 길로 접어드는 모로의 인생 묘사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한 청년의 인생 다큐에 가깝다.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의 그런 다큐성 짙음의 영문을 이해했다. 쇠유출판사에서 ‘나날이 파편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그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개별적 존재들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 창출(P154)’을 의도로 한 <삶을 이야기하다> 총서를 위해 집필을 의뢰한 기획도서였던것이다.

 

그 작은  아파트가, 대중 교통에 허비하는 시간을 벌게 해줬던 편의가, ..일과 생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경로를 박탈해 버리고,  균열을 일으켜 단단하게 굳어 버린 대낮의 시간 속에 꿈이 웅크릴 우묵한 공간을 열어 줄 수 있는 그 틈새들, 두 흐름 사이의 중간 지대들을 앗아가 버리고 만 것이었다. (130)

 

그런 식으로 라 벨 세종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경제적 논리이자 기업의 논리이며, 대양 바닥의 한류처럼 구불구불 뻗어 나가 소멸되지 않으려면 성장하기를 요구하는 가차 없는 논리, 이 음험한 논리가 드디어 깨지고 말았다. 그의 젊음에 부딪혀 산산 조각 나고 말았다.(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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