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하고 디스토피아적인 장면이 머리속에 맴돈다. 영화로도 나왔다고 해서 찾아서 대충 봤는데, 오래된 영화인데도 소설에서 풍기는 황폐한 분위기를 나름 잘 표현했고, 연기도 괜찮았다.

아랫동네 윗동네라는 말이 계속 나와서 업타운 다운타운 같은 걸 그렇게 번역한 건가 했다. 핵전쟁 같은 걸로 황폐화된 도시에 남자들이 사람이랑 텔레파시 형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개랑 어울려 살고 있고, 일부는 지하에 세계를 만들어 살고 있다. 소년은 글도 못읽고 역사도 전혀 알지 못하는 무식쟁이인데 반대로 개는 소년에게 글도 가르쳐줄 만큼  똑똑하고 지혜롭다.  소년은 모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활동을 개에게 의지하고, 소년은 개를 먹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윗동네에서는 전쟁때 여자들을 다 죽여버려서 여자가 거의 없고, 여자와 섹스하고 싶은 욕구는 간혹 눈에 띄는 여성을 강간하여 채운다.

종말론적 세계 속의 허구 속에서 여성은 성적 욕망의 분출구에서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한 존재다. ‘정치적으로 옳지 않‘게 다루기에 읽으면서 굉장히 읽을 때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포스트아포칼립스라고 하더라도, 생존자들은 나름대로 먹고살 궁리를 하기에 폐허 위에 남겨진 것들을 사고 팔며 상업적 이익을 받는 무리들이 있는데 주인공 소년은 혼자서 개랑 같이 지낸다. 어느 교활한 패거리들이 남아있는 포르노 필름들을 접수하고 이어 붙여 영화 상영을 하는데, 생존자들은 개랑 같이 와서 영화를 보며 자위를 하는게 일상이다. 어휴. 어두 컴컴한 곳에서 개와 남자들이 한꺼번에 그러고 있는 장면이란걸 상상하다니 그렇게 필름 속의 여성을 상대로 단체 자위를 하던 어느날 그 영화관에서 소년의 개가 ‘여자 냄새‘를 맡는다. 그들(개와 소년)은 아랫동네에서 올라온 호기심 많은 여자가 남장을 하고 성욕을 달래러 영화관에 온것으로 추측한다.

남자들만 있는 세계에서 여자가 한 명 나타나면 모두가 다같이 달려들기 때문에, 여자의 안위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쟁탈전 때문에 나머지들을 경계하며 개의 코를 이용하여 여자를 추적하는데, 여자가 예전에 학교였던 건물의 체육관의 일부 남아있는 건물에서 남장옷을 벗고 원래 옷으로 갈아입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소년은 이제껏 강간할 때 경험했던 종류의 느낌과는 다른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여성이라면 성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대상 이상의 존재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소년의 눈에 이 여성의 여성스러움이 이제껏 살아남기 위해 가지고 있던 폭력성과 방어성을 허무는 순간이다. 이 때 느끼는 낯선 감정에서 독자는 둘 사이의 관계가 러브 스토리로 발전하길 기대하지만, 그리고 조금은 그렇게 흘러가지만, 문명이 파괴된 현장에 사랑이 남아있을 리 있을까. 없을까. 여자 냄새를 자기 개만 맡으라는 법은 없고, 성욕에 환장한 짐승같은 무리들에게 포위되어 두 사람과 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험에 처하지만, 소년은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강간하려던 소녀와 강간이 아닌 섹스를 하는데, 알고 보니 소녀는 다른 목적이 있다.

개와의 교감, 소녀와의 사랑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소년, 지역사회의 역할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소녀. 자신의 주인의 잘못된(?) 선택을 주시하며 항상 살아남을 수 있도록 리드하며 충성을 바치는 개.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둘 사이를 가르는 게 있다. 소녀는 아랫동네에서 남자 사냥을 하러 올라온 미끼였고, 소녀를 따라 아랫동네로 내려간 그는 이제껏 자신이 저질렀던 성적 쾌락을 남자 자손을 생산하기 의무로서 봉사해야 한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자 아기를 낳지 못했던 것이다. 하고 싶은 섹스 맘껏 하고 여자랑 같이 자고 하면 안되나? 노예로 싫컷 섹스하느니, 섹스없는 자유를 선택할까. 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마지막 장면은 명시적으로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너무나도 끔찍하고 섬뜩한 결론을 암시한다. 폭력적이고 섬뜩한 장면을 연출하는 소년이 소년이기에 짠하기도 하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제프리는 다섯살>은 늙지 않고 계속 다섯살 상태로 있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고 <회개하라 할리퀸 째깍맨이 말했다>는 짧고 인상적인 소설이긴 했는데, 규칙적인 세상을 사는 인간에 대한 비약이 너무 심해 재미가 덜했는데, 영어로 가장 많이 읽히는 컨텐츠 10개 중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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