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의 <젊은 작가 수상집>은 신간이 오히려 싸게 나오는 정책 때문에 매년 사서 보게 된다. 올해의 작품집에서는 어찌 하다보니 맨 뒤에 실린 작품을 먼저 읽게 되었다. 박상영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다. 중간까지는 그냥 무난무난 큰 스토리도 없고 자기 얘기 길게 하는 그렇고 그런 단편인데, 소재가 퀴어라 나름 덕을 봤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퀴어가 아니었다면 별로 크게 감동적이거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데 퀴어라는 소재의 자극성 때문에 특별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했다 중간 정도 읽을 때까지는. 


소설은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작품은 퀴어라는 소재를 쓰면서도 역설적이게도 퀴어가 소비되는 방식을 비판한다.  그런 역설은 홍상수 영화를 까면서 동시에 홍상수 영화와 퀴어인 점만 다르지 홍상수 영화와 다를 바 없는 이 책의 주인공이 만든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찌질한 남자들의 찌질한 일상과 실패를 다룬다는 점에서 다시 홍상수 영화의 이미지들을 소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역시 역설적이다. 


퀴어가 특별한 이유는 게이인 사람이 드물기 때문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소수자의 사랑은 소수이기 때문에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을 차지하고라도, 우연히 감이 와서 그도 나와 같은 부류임을 알고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데  아 이 사람이 혹시나 양성애자라면 어쩌나, 양성애자에서 더더욱 게이혐오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어쩌나 이런 두려움은 사랑을 시작하기조차 어렵고 꺼려지게 만든다. 게이는 게이를 알아본다는데, 게이들이 가진 특별한 행동이나 습관 이런 것이 서로를 알아보게 할 수도, 어떤 신호가 그들 사이를 통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예전에 한쪽에만 귀거리를 하고 다니면 서로를 알아본다고 하는 말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양성애자들이 게이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거 자체가 소수자의 인권 때문이 아니며, 호기심과 궁금증, 그리고 흥미와 같은 소비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애초에 이 소설에 대해 의심했던 것처럼, 그 의심을 실제로 실행하는 경우가 생긴다. 한 마디로 퀴어가 잘 나가니까, 모 아이돌과의 염문설을 일부러 뿌려서 자신이 마치 게이인 것처럼 소문을 내고, 그걸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주인공 화자가 보기에 신파에 혹은 소수자 인권 플래그를 건 구토유발 억지감동에서 한술 더 떠, 절망하고 상처받고 힘겹게 살아가는 나약한 스테레오타입의 허구의 게이들을 양산한다는 데 있다. 자기야말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진짜 게이인데, 자기가 만든 영화는 이게 무슨 홍상수 영화냐, 진짜 게이의 삶을 모르는 일반인이 만든 거라 감동이 없고, 치열함이 없고 깊이가 없댄다. 그러면서 가짜로 진짜 게이가 된 감독이 만든 영화가 눈물을 쥐어 짜기에 그게 잘 만든 영화란다. 술 퍼마시기고 패악질을 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뒤질 위인이 못되는 주인공과 그의 애인은 왕샤는 니들이 게이를 아냐고 따지는데, 그 가짜 진짜 게이 영화 감독은 자기가 몇달간 게이클럽과 게이들을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취재했다고 한다. 


둘은 돈을 모아 각자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자이툰 부대에서 만나 불꽃같은 사랑을 하지만, 각자의 꿈을 향해 각자의 실패를 완성한 후에 재회한다. 우연한 재회지만, 그들은 자신의 젊음이 막바지에 달한 이 나이에 무엇을 이루었느냐 실패를 이루었음을 선언한다. 술마시고 개판치며 여자 후배를 집에 안보내려고 난리를 치다가 노래방 가서 여자도 안부르고 노래부른다고 차별당했다고 판단하여, 무선 마이크 두 개를 훔쳐 달아났다가, 들키는 등 온갖 찌질한 짓을 하고 다니는 게 그러니까 이 스토리의 메인 흐름이고, 이들 각자의 과거와 과거의 상처, 과거의 작은 영광들, 그리고 과거의 사랑, 그것들이 짬짬이 이야기 중간에 끼어드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두사람의 가장 젊은 시간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서사 자체는 많지만, 결국은 우리는 이모양 이꼴인거다 하는 모양새가 딱 홍상수 영화다.


실패란 무엇일까. 누군가 성공했다면, 그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실패가 필요하다. 결국 그토록 수많은 개인의 실패도 어떤 한 사람 혹은 한 사건의 성공을 빛나게 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실패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면 우리의 삶은 억지 영화처럼 신파와 비약과 오해와 절망으로만 가득찬 무엇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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