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중국사 1 : 선조 이중톈 중국사 1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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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하늘에 서광이 비칠 때 아침별은 아직 남아 있고 달빛도 어슴푸레했다. 자신의 과업을 마치고 물러나면서 이브는 쏜살같이 날아가는 여와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동양의 그 위대한 여신이 구름에 휩싸인 황토 언덕 위에 서서 사방에 빛을 뿌리며 포효하는 것을 확인했다.”


역사책이라고는 하지만, 눈에 잡히지 않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 이전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중국사에서는 맨 앞의 약 반쪽에 해당되는 내용이고, 사기에서는 단 몇줄, 혹은 몇 단어에 해당되는 내용을 가지고 한 권의 책을 엮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신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갑골과 금문 문자 이야기이다. 유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국 역사가 아니라, 성경을 포함한 전세계의 역사가 총동원되어, 중국인들의 창조신화 여와와 복희의 신화를 세계라는 전체 속에서 본다.


여와는 중국의 창조신으로 진흑으로 사람을 빚다가 빚다가 지쳐 나중에는 나뭇가지에 진흙을 묻혀 마구 흩뿌려 사람들을 창조해낸다. 평균 수명이 스무살도 되지 않던 네안데르탈인의 서른살도 넘지 못했던 베이징원인을 생각해보면, 오래 전 인간(혹은 인간 이전 단계의 어떤 생명체)의 수명은 매우 짧았으며, 따라서 생식능력은 신비한 힘이었고 여성 생식기가 숭배되었는데, 그것이 개구리와 물고기에 대한 토템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최초의 여와의 신화는 개구리라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 최초의 모계적인 씨족사회를 다음과 같이 상상했다.


“남녀가 뒤섞여 놀고 중매나 약혼도 없었으며 어머니가 누구인지만 알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섹스도 자유로웠고 선택권은 주로 여성에게 있었다. 여성은 심지어 원하기만 하면 동시에 여러 남자친구를 가질 수도 있었다. 여성의 유일한 ‘횡포’는 더 나은 섹스 상대의 선택이었지만 어쨌든 그것도 종족 보존이 목적이었으므로 탈락자에 대한 냉대나 소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물며 선택은 자유롭고 쌍방향적이었다. 강간도, 매음도, 감정적인 갈등도 없었다. 재산 분규도 없었다”


그러나 권력이 일단 탄생하자 관리는 통치로, 소유는 점유로, 안배는 사주로, 배치는 노역으로 바뀌고 감옥, 군대, 정부, 국가가 연이어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계씨족으로 가는 과정에서, 그 모호한 의식 속에서 여성생식숭배만으로는 모자라고, 생명 창조에서 남성의 작용을 인정하고 긍정해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일치해서 탄생한 것이 남성생식숭배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의 상징으로서 뱀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여와의 시대가 가고 복희의 시대가 오는데, 흥미로운 점은 신화에 등장하는 여와와 복희는 모두 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기호라는 것이다.  여와가 상징하는 것은 모계씨족사회이고, 복희가 상징하는 것은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부계 씨족 사회다.


즉 이 책에서 설명하는 역사는 하나라 이전의 역사를 여와-복희-염제-황제-요순이라는 기호로 해석하고 각기 모계씨족, 부계씨족, 초기부락, 후기부락, 부락연맹을 대표하는 인물로 규정하고 그 변천사를 추정한다. 중국 역사와 신화를 제대로 잘 몰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겠지만, 베스트셀러 작가 답게 아무것도 몰라도 홀리듯 읽을 수 있게 흥미로운 문체를 유지한다.


선사시대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보잘것 없는 한 줌의 유물과 현대인의 가치에 갇힌 제한된 상상력의 결합이다. 길고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선조들의 삶에 대해 말해주는 유물과 전승은 공기 중의 물방울 만큼이나 작다. 결국 우리가 선사시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경험과 통찰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의 총합일 수밖에 없다. 신비로운 미지의 과거로 가는 빗장을 열어주는 열쇠 중 하나는 신화다. 신화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것처럼 역사를 재구성하는 관점도 무한대다.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과 신화가 기록되는 순간이 일치하지 않는다. 신화는 누구의 상상력에 의해서건, 혹은 어떤 사건에 의해서건, 그것이 발생한 순간의 이야기가 공간을 넓혀 말과 말로 세대와 세대를 넘어 시공을 퍼져 가며 더 그럴싸한 이야기로 변모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는 그것이 기록되던 어느 순간의 사진과 같은 것이다. 이중택은 신화를 “세계적 범위의 집단몽상”이라고 썼다. 민족끼리 자원을 공유하는 신화는 결국 이브라는 세계 최초의 여성에게 도달한다.


제목에서 풍기는 딱딱한 역사책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책을 이토록 흥미로운 추리와 가설로 된 확실하지 않은 시작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다. 여와는 뱀이 아니라 개구리였다라는 주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중국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던 중국 신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최초 공동체가 모계사회였다고 공언한다. 신화와 유물, 그리고 한글 만큼 훌륭한 그들의 문자들이 결합해서 뜻을 이룬 과정 등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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