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포핀스 하면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산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이미지다. 어릴 때 읽었던 책의 표지가 아마도 그랬었던 같기도 하지만, 이후 포핀스를 차용하거나 패러디한 수많은 연극이며 영화 포스터에서 유사한 이미지를 많이 사용해서 눈에 익었을 수도 있겠다. 최근 해리포터와 전개와 흐름이 묘하게 유사한 <네버무어>라는 책을 읽다가, 우산 쓰고 낙하하는 장면이 나와서, 메리 포핀스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우산쓰고 하늘을 난다는 설정이 있다는 건 그 책이 온갖 신기한 마법이 펼쳐지는 세계라는 뜻이다. 














콧대 높은 포핀스가 아이들을 데리고 무심한 듯 여기 저기 환상 여행을 시켜준 것처럼, 네버무어에서도 <이븐 타이드>라는 날 죽기로 되어 있는 저주받은 아이를 구조하여 마법이 현실인 환상적인 세상으로 데려가 신기한 것들을 보여준다. 아직 1편밖에 읽지 않았지만, 네버무어를 읽으면서 떠올린 책들은 <해리포터>와 <메리 포핀스> 뿐만 아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도 있다. 해리포터 네버무어 두 개가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장르적 성격을 가진다면, 메리 포핀스를 비롯한 나머지 셋은 순수하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다. 전자는 마법이 수단에 가깝다면 후자는 마법이 매혹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메리 포핀스는 워낙에 유명한 이야기라(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국내 판본도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몇권 되지 않았다. 첫편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이야기는 8편인가까지 시리즈로 나왔다는데 찾아보니 절판되지 않은 첫편 완역판은 허밍버드, 인디고, 시공사 세 곳 뿐이고, 이후 시공사에서는 2편과 3편을 건너뛰고 쩔둑발이처럼 4편만 있다. 어쨌든, 허밍버드와 인디고는 아동 소설의 완역본을 꾸준하게 내고 있는 출판사다. 번역을 살짝 보면, 허밍버드 판이 주석처리가 잘 되어 있고 원작의 일러스트를 실은 것 같고 , 인디고는 예쁘게 채색된, 누구나 동심을 업데이트해서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든다. 
















기억은 이런 저런 이미지와 섞여 왜곡되어 내 머리 속에는 <메리 포핀스>가 하늘에서 우산을 타고 내려왔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리 포핀스가 어떤 트랜스포트를 이용해서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 바 없고, 아이들 눈에 처음으로 띄었을 때는 이미 집 앞에 와 바람에 밀려 살짝 발이 지면에서 뜬 상태로 바람이 밀어주는 힘으로 왔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손잡이에 앵무새가 새겨진 우산은 메리 포핀스의 소중한 물건 중 하나다.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 그녀의 우산은 접혀져 있었으며, 카펫으로 만든 텅 빈, 커다란 가방 속에서 온갖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꺼내지만, 우산만큼은 한쪽 옆구리에 끼고 왔다.


매리 포핀스에서 포핀스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마법보다 더 매력적인 건 메리 포핀스의 츤데라 성격이다. 그녀의 쌀쌀맞고 콧대 높은 성격은 처음 아이들의 엄마와 면접을 보러 왔을 때 드러난다. 유모구함 광고를 내면 구직자들이 길을 메울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홀로 당당히 나타난 포핀스는 엄마에게 면접을 당하러 온건지 자기가 면접관인지 모를 정도로 오만하고 콧대 높아서 유모가 면접을 위해 자기 소개를 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우리 애들은 착하다며 애써 유모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형국이다. 소개서를 가져왔냐는 물음에, 그런 퀘퀘묵은 관습이라며 기선을 제압하고, 바로 아이들에게 가서는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도 하는 말마다 뭉개면서 쌀쌀맞게 군다. 하지만 아이들은 첫눈에 포핀스에게 반해버리고 포핀스와 함께 있는 동안 어떡하든 포핀스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아첨(특히 미모를 칭찬하면 잘 먹힌다는 걸 아이들은 일찌감치 눈치챘다)을 하고 찍소리 않고 말에 따르는 작전에 능하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포핀스와 함께 있으면 상상도 못할 신기한 일들이 눈앞에 무한히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런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매력은 디즈니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면서 빛을 많이 잃었는데 우리에게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알려진 줄리 앤드루스의 아이들을 향한 자애의 빛,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이었다. 메리 포핀스의 이같은 성격 수정은 제작사와 원작자 파멜라 린던 트래버스 사이에 큰 트러블을 낳았고, 이 제작 과정 자체가 다시 또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영화를 다시 찾아서 중간 정도까지 보았는데, 사운드 트랙의 모든 곡들이 정말로 너무나도 귀에 익은 술술 자동으로 따라하게 되는 것들이었다. 약간의 텀을 두고 7주와 13주씩 총 20주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다. 포핀스의 성격이 상냥해진 점 외에도 애니메이션의 삽입, 뮤지컬 반대 등으로 생긴 트래버스와 제작사 사이의 트러블은 제작과정은 어렵게 했지만, 메리 포핀스 역을 맡은 줄리 앤드루스는 승승장구하여 이듬해쯤 <사운드 오브 트랙>에서 또다른 유모 역을 맡게 된다. 세계적 규모의 영국 국민 유모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던 것. 


한편, 거의 반세기만에 포핀스가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가 크리스마스쯤에 개봉한다(미국 개봉일 2018년 12월 19일) . 극 중 시간은 20년이 흘러 전편의 주인공인 마이클과 제인은 성년이 되었는데, 이혼 후 남겨진 아이들이 있다.


https://youtu.be/cE9qhJNmgd4


영화와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마이클과 제인의 두 쌍둥이 동생들이다. 얘네들은 아직 젖먹이라 항상 거의 애들이랑 어디갈 때 유모차 속에서 동행하는 역할만 하는데,  이 아기들만 묘사한 기가막히게 감동적인 챕터 하나가 들어있다. 쌍둥이 아기들(존과 바버라)은 어른들과 대화하지 못하는 대신 사람이 대화하지 못하는 다른 모든 자연의 대상과 대화가 가능하다. 새와 벌레와 동물, 햇빛과 바람과 별들과 하루 종일 떠들고 논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하얀 벽들을 스쳐 지나 쌍둥이가 누워 있는 아기 침대 위로 춤추며 너울거렸다. 

"에잇 저리가! 눈부시단 말이야" 

존이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햇살이 말했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어쨌거나 나는 이 방을 가로질러 가야 하거든. 그게 자연의 법칙이야. 하루동안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여 가야 하는데, 그 길 한가운데 이 놀이방이 있는 걸 어떡해. 미안! 눈을 감으면 내가 안보일거야"


특히 찌르레기와는 쌍둥이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둘도 없는 친구이다. 아기들은 찌르레기에게 자기들이 왜 발가락을 입에 넣는지 설명한다.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정말 좋아하고 귀여운 것 똑똑한 것 이러며 마구 칭찬하기 때문에 연습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사람 말을 이해하게 되면 찌르레기의 말을 잊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엉엉 울어버리며, 자신은 나이가 들어도 절대 까먹지 않을거라고 한다. 하지만 아기들은 몇개월도 채 되지 않아 옹아리를 배우고, 어른의 말을 차차 이해하게 되어 어느날 찌르레기가 말을 걸었을 때, 아기들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알게 된다. 


포핀스와 즐거운 환상 여행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마이클과 제인이다. 제인이 누나고 조금 더 철들었지만 마이클 역시도 순종적이고 아주 착한 아이들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메리 포핀스를 너무나 좋아해서,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 안되 보이기도 하는데, 어느 화요일 아침에 일어난 마이클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못되진 것이다. 목욕물 틀으라는 하늘같은 메리의 말에도 대답도 않고, 싫어요, 싫다고요를 반복하며 번번히 부딪히고 못되게 군다. 계단 난간을 발로 차며 내려가고, 주전자를 쥔 앨런을 툭 쳐서 물을 쏟게 만들고, 요리사 브릴의 양푼 속에 손을 집어넣어 휘젓고, 부인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구두를 닦는, 자신이 좋아하는 잠자는 로버트씨를 들이받고는 화가난 로버트씨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고. 이렇게 끊임없이 솟아 오르는 못된 행동에 대한 아이디어는 하루 종일 아이를 흥분시키고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마술적 세계는 많은 환상 소설들의 모티브가 되었을 듯하다. 물론 그 이전에 또다른 소설과 신화들이 있었겠지만. 우산을 타는 것만큼, 아이들을 매혹시킬만한 많은 마법이 펼쳐진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 못된 화요일 길에서 주운 나침판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세계 여행을 하는 것, 웃음 가스가 몸을 빵빵하게 해 천정으로 붕 뜨게 되는 것,  빈 가방 속에서 필요한 물건이 척척 나오는 것, 사람과 동물이 바뀌어 사람이 우리에 갇히고, 동물이 사람을 구경하는 밤의 동물원(여기에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과 메시지가 스며 있다.). 하지만 독자를 매료시키는 것은 단순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마법이 펼쳐지는 현상보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개성들이다. 저자는 포핀스 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단역에까지 세심하게 캐릭터를 불어넣었다. 20년동안 디즈니를 까다가 겨우 영화 제작을 승낙하고는 그것도 마지못해 불발될 뻔했던 이야기의 탄생 비화에는, 그토록 정성껏 창조한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상업 영화를 통해 스테레오타입으로 밋밋하고 뻔한 주변 인물들로 변형되는 우려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당연히 못되고 허영있어 보이지만 그 속에 깊고 따뜻함이 숨어있는 포핀스를 창조주인 작가의 의도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최고였겠지만. 어휴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