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이야기 - 음식에 숨겨진 맛있는 과학
최낙언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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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동물 중에서 인간처럼 다양한 재료를 먹는 동물은 없다고 한다. 대개 동물들은 초식이거나 육식이고 매우 편식을 하며, 잡식동물이라 하더라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잡식하는데 비해 인간은 육해공 모든 곳에서 나는 모든 생물들을 에너지원으로 취한다. 왜일까. 다른 동물들에 비해 맛을 느끼는 감각이 발달해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엄청난 종류의 음식이 있고, 인간은 그 많은 음식의 맛을 다르게 느낀다. 혀에는 1천만 개의 미각세포가 있지만, 그 종류는 겨우 5가지일 뿐이다. 전에 우리가 배운 단,신,짠,쓴맛에서 감칠맛이 추가된 것 정도다. 감칠맛 성분은 글루탐산이다. 일본에서 발견했고 공식 학술 용어도 우마미(Umami)라고 한다. 대부분 알다시피 그 많은 다른 맛은 대부분 향이다.


딸기에는 딸기맛 성분이 있는 게 아니라, 딸기 향 성분만 있습니다. 사과에는 사과 맛 성분이 있는 게 아니라 사과 향 성분이 있습니다.


이 과일들의 맛 성분은 단맛과 신맛이 대부분이지만, 나머지 아주 지극히 적은 양의 향기 물질에 의해 과일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음식을 먹을 때 입 뒤로 코와 연결된 작은 통로를 통해 냄새 물질이 휘발해 느껴지는 향이 수만 가지 맛의 실체인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아주 적은 양의 향기 물질이 얼마나 적으냐 하면, 예를 들어 강력한 향기를 내뿜는 꽃에서 꽃향기를 좌우하는 향기 성분은 0.01퍼센트 이하이고, 이 중에서도 실제 향에 기여하는 성분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떤 식품이라도 식품 이전에는 생명이었고, 그 생명의 대부분(98%)은 무색 무미 무취의 고분자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으로 이루어지며 2퍼센트 이하를 차지하는 나머지 저분자를 통해 맛과 향 색 등을 통해 음식을 느끼고 사는 것이다.


특정한 맛에 민감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유전자의 차이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7번염색체의 TAS2R38은 쓴맛에 민감한 타입과 둔감한 타입을 결정하는데, 오이가 쓰다고 못먹는 사람들은 이 쓴맛 수용체 민감도가 큰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지 가정교육이 잘못되거나 유별떠는 걸 좋아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특히 미각과 후각은 신생아 시절 가장 예민해서 맛없는 밍숭맹숭한 우유와 엄마젖 유아식 같은 것에 들어있는 아주 약간의 단맛을 민감하고 달달하게 느낀다고 한다. 신생아 시절 가득 혀 가득 솟아있던 맛봉오리들은 10세를 전후해 사라지기 시작한다. 남아있는 미뢰의 수가 제곱센티미터당 몇 개냐에 따라 맛이 결정되는데, 많이 남아있다고 좋은 게 아니라 쓴맛봉우리가 얼마나 유독 쓴맛에 민감하게 된다고 한다. 이걸로 아이들이 왜 야채를 싫어하는지, 설명이 된다.


책을 읽으면, 쓴맛 말고도,  단맛, 짠맛, 매운맛 등에 관한 재미있는 과학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소금이 아주 귀해서, 김치를 담글 때 고추, 마늘, 파, 젓갈 등의 양념을 김치에 많이 쓰라고, 즉 소금 대체물을 권장했다고 한다. 지금의 매콤하고 강력한 김치 맛에는 그런 역사적 애로사항이 숨겨져 있었던 것. 저자는 MSG를 비롯하여 좋지 않다고 알려진 백설탕, 정제염 등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다. MSG라는 게 글루탐산 나트륨인데, 글루탐산은 우리몸에서 사용하는 아미노산이고 나트륨은 소금에 있는 그 나트륨으로 둘이 결합되어 있는 상태다. 독성도 소금의 1/7, 사용량도 1/6에 불과하며 안전성도 소금에 비해 40배 안전한 물질이라는 것. 글루탐산과 나트륨이 따로따로 해롭지 않다고 해서 글루탐산 나트륨이 해롭지 않다는 건 어차피 그들이 체내에서 다시 글루탐산과 나트륨으로 분해되기 때문이라는 소리같은데. 그렇게 간단히 설명가능한 걸 이제껏 모르고 해롭다고 여겼던건가. 어쨌든 여기까지는 알겠고, MSG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원재료의 (신선하지 않는) 맛을 속일 수 있다는 편견이 있는데, 맛을 내기 위해 소금과 설탕을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MSG를 사용하면서 그렇게 사용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비논리라는 저자의 입장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다고 다시다를 사러 가게 될 거 같지는 않다.


오래 전 유럽에 살 때가 있었는데, 삼겹살이 먹고 싶었었는데, 일반 대형마트에서는 삼겹살을 구할 수 없었다. 한인이나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마트에서 구할 수는 있었지만, 나중에 귀국해서 그곳 마트에서는 잘 포장해 비싼 가격에 팔리던 돼지 안심 부위가 그토록 저렴한 걸 알고 기절할 뻔했다. 그들이 그 부위를 안먹는 이유는 안그래도 점점 뚱뚱해지는 추세에 있는 국민건강상, 동물성 지방이 건강에 안좋다고 마르고 닳도록 교육시켜서가 아닐까 생각해봤는데, 소고기 양고기에 비해 돼지 고기 자체를 별로 안좋아하다보니 돼지고기의 참맛을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고기에는 기름이 좌르르 흘러야 맛있으니까.


그러면 그토록 귀가 닳도록 안좋다는 기름이 겹겹이 쌓여진 바로 그 부위 삼겹살, 그리고 층층이 지방이 마블링된 쇠고기의 부위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향기 성분이 기름에 잘 녹기 때문에 기름은 향을 유지하는 능력이 크고, 그래서 가열중에 발생한 향이 기름에 포집되어 풍부한 향을 즐길 수 있단다. 비오는 날이면 가끔 파전을 붙여먹는데 어느날 내가 부침개를 정말 맛있게 붙이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친구들한테 떠벌였다. 비결은 기름을 아주 아주 많이 튀기듯이 많이 두르고 부침재료는 얇게 해서 부치는 거라고 했더니, 한 친구가, 튀기면 뭐든 맛있어진다고, 신발을 튀겨도 맛있어진다 했다. 그 이후로 부침개를 부칠때마다 신발을 튀기는 장면, 신발 이 튀김 옷에 입혀져 바삭바삭 튀겨진 모습이 상상되곤 한다. 튀김이 맛있는 건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마이야르 반응은 160도에서 왕성하게 일어나는데, 그건 100도에서 국물요리에서 불가능한 맛이며, 이 마이야르 반응에서 일어나는 향을, 다시 향을 유지하는 능력이 큰 기름에 튀길 때 속속 스며들어 튀김은 맛있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튀길 때 식물성 기름 대신 우지와 돈지를 쓰면 더욱 맛있어지는 이유는 어떤 식재료에든 들어있는 당과 시스테인황 함유 아미노산이 소기름과 만나면 소고기향이 돼지고기 기름과 만나면 돼지고기 향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하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래 전에 있었던 삼양 쇠고기라면의 우지 파동은 실소를 금치 못할 사건이다. 어떤 기자가 쇠기름 우지에 ‘공업용’이라는 말을 (프레임인가) 붙여, 사람이 못먹을 기름에 라면을 튀겨냈다고 보도했기 때문에, 이후 삼양 라면은 폭망하고 농심이 승승장구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후로 삼양이 라면의 1인자를 농심에게 빼앗긴건 맞지만 농심이 승승장구한 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어쨌든 거기에 어떤 정치적 음모가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애초 삼양이 우지에 라면을 튀긴 건 맛있으라고 그랬던 거고, 지금은 그 맛을 잃은 게 사실이다.


때로 전자렌지에 요리를 하면 맛이 없어지는 음식들이 있는데, 고구마가 그 예다. 고구마에 아밀라제라는 당화효소는 50도 전후에서 활발하게 작용해 고구마 전분을 달콤한 당으로 바꾸는데, 전자렌지는 순식간에 이 온도 범위를 지나버려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로스팅 향을 내는 마일라드 반응 역시 160도 올라가야 가능한데, 속부터 가열시키기 때문에 수분이 존재하는 한 100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전자렌지는 겉면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야 하는 요리에도 적합하지 않고, 결국 밥이나 물렁한 음식 데우는 거에 최적화된 거지, 만능 기계는 아니라는 것이 요리 과학이 말해주고 있다.


이 책 참 좋다. 저자의 가치 철학이 잘 드러나 있고, 깔끔하다. 책에서 드러난 저자의 식품에 대한 고민, 가치관 이런 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근거없이 믿고 있는 잘못된 정보들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류의 생활밀착형 과학책이 미국작가가 쓰면 산만하고 장황해지고, 일본 작가가 쓰면 허접해지고, 한국 작가가 쓰면 복불복이 된다는 내 나름의 편견이 존재하는데, 이 작가를 잘 기억해뒀다가 식품 과학에 관한 다른 책들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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