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산보
플로랑 샤부에 지음, 최유정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여행을 가거나, 혹은 가지 않더라도 강한 인상으로 남는 시각적 이미지들을 기억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댄다. 물론 구글이 알아서 클라우드에 저장도 해주고, 분류도 해주고, 비디오랑 파노라마 사진 뿐만 아니라 필터까지 끼워서 테마별로 멋진 앨범을 만들어주고 몇년 전의 오늘을 상기해 보라며 퀘퀘묵은 사진을 꺼내다가 보여주기까지 하지만, 확실히 카메라는 너무 많은 사진을 찍고, 가끔은 그 속에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간직하고 싶었던 건지 그런 것들이 묻혀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을 보고 나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이동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기록하기를 원한다. 한 번에 몽땅 보여주는 패키지 여행을 떠나 여행 대부분의 시간을 차창밖을 바라보며 보내고, 자유 여행을 하더라도 여행 책자에 나와있는 건 다 봐야 하고, 백종원이 추천한 맛집도 다 먹어봐야 하고, 보이는 건 다 찍어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다닌다는 건 아주아주 천천히 내게 보이는 이 낯섬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로 그려서 간직하겠다는 거다. 


프랑스에 돌아오니 중국 여행이 어땠냐고 물어봤다. 어쨌든 거기 일본인들은 정말 친절했다고 대답해줬다. 


프랑스인들은 도쿄를 '못생긴' 도시라고 애기하는 모양이다. 중세풍 돌길이나 두오모와 뾰족 성당 같은 데 익숙한 유럽인들이 도쿄에서 어쩌다 만나는 유적이 눈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저자는 유적은 아니지만 도쿄에는 두 눈에 가득 담아올 볼거리가 엄청 많다고 했다. 책의 성격은 일본 여행 책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지만 평범한 여행서는 아니고, 작가가 여러 도시를 돌면서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말 대신 글 대신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6개월간 머물 기회가 있었고, 자전거를 타고 방방곡곡 다니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 이방인의 눈에 낯설게 비친 것들, 예쁜 것들을 그림에 담았다. 


그림은 나리타 신도쿄 국제 공항에서부터 시작한다. 간단한 스케치 수준은 훨씬 뛰어넘는다.



그리고 (아마도) 첫발을 딛고 아파트를 찾아 헤매면서 만난 편의점 음료와 간식들의 스케치와 느낌. 일기처럼. 작은 기록



지도도 있고, 집도 있고, 거리도 있고, 사람도 있고 여행정보 비슷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스토리가 있다. 여친과 함께다. 


어렵게 구한 집의 묘사는 깨알같다. 방 2개짜리 다다미집을 구했는데, '할머니들이 살 것 같은' 집이고, 둘은 요를 깔고 잔다.



이렇게 시작한 도쿄 생활,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이 한장 한장 모두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그림 속 신사지기가 그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여러번 확인하고 갔다는 설명이 재밌다. 그림을 그리려면 확실히 모든 걸 주의깊게 보게 되고, 게다가 설명까지 넣게 되면 정지된 순간은 이렇게 포착되어 영원히 기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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