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스턴 휴스 - 내가 연주하는 블루스 외 4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0
랭스턴 휴스 지음, 오세원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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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중기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흑인들의 모습은 전형적이다. 당시 문학이 백인눈에 비친 흑인의 모습으로 주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흑인의 인권을 다루고 있는 <앵무새 죽이기>에 나오는 가정부 흑인들은 목소리가 없다. 내면이 잘 읽혀지지 않는다. 아이가 흑인 가정부를 굉장히 따르고 좋아하는데,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에게는 그 모습조차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 선의로,  그러니까 아주 좋은 사람으로 포장된 흑인조차도, 그들은 주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보조적이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 같은 존재, 좋게 봐줘봤자 엄마같은 존재로 등장하는 데 있다.  <앵무새죽이기>가 탄생할 당시의 남부에서 흑인의 무엇이 존재했었겠느냐라고 한다면 탄압과 억압과 차별 밖에 기억나지 않을테지만,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스스로 생각하고 즐거워할 문화적 코드와 그걸 향유할 권리가 있다. 블루스가 탄생하고 흑인 내부에서 부흥을 맞고 있을 무렵 흑인 문학의 정점에 있었던 랭스턴 휴스의 단편들은 이제껏 읽었던 그 어떤 소설보다도 소수자 고유의 생각과 문화들을 잘 나타낸다.


작가 자신이  흑인 혼혈이었던 랭스턴 휴스의 흑인에 대한 단편들에는, 흑인들이 스스로 향유했던 문화가 정치적 담론으로 훼손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담겨있다. 랭스턴 휴스는 할렘 르네상스를 이끈 흑인 문학의 거장이라 알려져 있는데, 할렘 르네상스는 그렇게 모여든 흑인들이 할렘가에서 모여살면서 공동체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고, 블루스와 재즈 같은 찬란한 문화가 꽃피고 백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문화적 확산 현상을 말하는 듯하다. 모두 특별했지만 두 편만 소개한다. 


내가 연주하는 블루스


어떤 (백인) 여자가 돈방석에서 헤엄을 처도 남아돌만큼 많은데, 남편이 죽었고, 자식은 없고, 예술적 안목은 대단히 커서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재미로 살고 있었는데, 할렘에 살고 있는 어떤 흑인 여자(오시올라)가 재능있다는 말을 듣고 후원을 하고 싶어한다. 오시올라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회 성가대를 지도하고, 매일밤 흑인 집에서 벌어지는 파티에서 연주를 하느라 바뻐, 부자백인이 저명한 음악 비평가를 통해 연주를 해달라는 청을 거절하는데, 이유가 멋지다. '일면식도 없는 늙은 백인 여인 앞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 시내로 나가는 일이 별로 탐탁잖'아서였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부모 자식과도 같은 사이가 되고, 재능있는 오시올라는 백인 여사의 후원으로 대가에게서 레슨도 받고 유럽으로도 콘서트도 떠나는 완전히 다른 생을 살게 된다. 여사는 다른 어떤 후원대상자들 보다도 그녀에게 애정을 쏟고, 재능있는 피아니스트도 세계적인 호평을 받으며 점점 더 자리를 굳건히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오시올라는 할렘의 파티장에서 치던 여사가 싫어하는 블루스를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하는 흑인남자와 결혼하고 할렘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어한다. 여사의 의견은 결혼은 재능있는 한 예술가의 앞날을 망칠거라며, 앞으로 결혼하고 애낳고, 살림하고 뭘 할 수 있겠냐며 극구 만류하지만, 자신은 결혼해서도 계속해서 예술을 할 거라고, 그렇게 갈등이 생기는데, 갈등의 최고조는 여사 앞에서 오시올라가 블루스를 연주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너는 네 음악으로 하늘의 별들도 움직일 수 있어, 오시올라. 경제가 불황이든 활황이든 나는 너를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너는 기껏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잖니? 예술은 사랑보다 훨씬 크단다.”


“아니에요.” 오시올라가 자르듯 말했다. “이건 제 거예요…… 들어 보세요! ……얼마나 슬프고도 쾌활한 소리인지. 우울하면서도 행복하고—웃으면서 눈물이 흐르고…… 얼마나 여사님처럼 희지만 나처럼 검은지…… 얼마나 남자 같으면서…… 얼마나 여성스러운지…… 피트의 입술처럼 따뜻한지…… 이게 지금 제가 연주하고 있는…… 블루스예요.”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에서는 흑인을 혹은 흑인 문화를 사랑하거나 호기심을 가진 백인들이 등장한다. 얼핏보면 굉장히 선한 사람들이고, 흑인의 인권 향상에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이지만, 누가 보면 예민하다고 할 수 있을만한 섬뜩한 느낌이 나는 부분이 있다. 나는 이 책의 핵심이 바로 그 섬뜩함에 있다고 본다. 흑인을 미화하고 후원하고 대접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은 흑인들을 자신과는 다른 어떤 대상으로 흠... 그러니까 내적으로는 인지하지 못할지언정 욕망의 대상으로 탐욕스럽게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오시올라는 재능이 있었고 생기가 넘쳤으며, 이제껐 그녀가 가까이했던 어떤 사람들과도 전혀 다르게 생겼다. 우단같은 윤기나는 검은 피부, 젊은 육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런 생기나고 반짝이도는 정체성의 근원인 흑인사회의 모든 것과는 그녀를 떼어놓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녀를 그 지저분한 할렘에서 구해내어 깨끗하고 예술적이고 위선적인 백인 사회에 융화시키고 싶어하는 것이다. 


경매 부쳐진 소년(Slave on the Block)

경매 부쳐진 소년(Slave on the Block)에서 더욱 노골적인 백인 예술가의 시선이 전해지는데, 마이클과 앤 캐러웨이 부부는 대놓고 흑인들을 좋아했다. 그들이 볼때 흑인은 매력적이고 순수하고 너무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흑인은 돕와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다. 예술을 간섭하지 않고, 그들이 그린 그림을 구매하고 찬양하고 따라한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그래서 흑인들을 자주 그 거대한 저택에 초대하여 파티도 열곤 하는데, 이상한 건 그 집을 반복해서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오갈 데 없는 어떤 흑인 아이가 일거리를 찾는 걸 알고 코딱지만한 정원을 가꾸는 일을 억지로 만들어 데려다 놓았는데, 그의 육체가 너무 아름다와 앤은 그 아이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쟤는 자체가 정글이에요' 


루서는 경매대로 사용될 상자 위로 올라갔고 앤은 스케치를 시작했다. 점심 전에 집에 돌아온 마이클은 이제 막 팔려 갈 노예로 웃통을 벗고 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루서를 보곤 입에 거품을 물며 칭찬을 했다. 그는 당장 그의 모습을 곡으로 남겨야겠다고 말했다.


마이클에겐 뮤즈이자 집안의 정원사이자 앤에게는 모델인 루스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밤새 집안의 다른 하녀(매티)랑 클럽에 가서 놀다 와서는 모델 설 때는 꾸벅꾸벅 졸아, 앤은 아얘 자는 모습을 스케치한다. 일거리가 없어 전전하던 때와 비하면 세상 편한 직업이다. 두 사람은 흑인 하인들에게 늘 친절했고 급여도 넉넉히 준다. 그러면서 부부는 점점 더 두 사람을 다루기 힘들어진다. 두 흑인은 서로 아예 부부처럼 행동하고 놀러 다니고 쇼핑다니고 하면서 집안일은 소홀히 한다. 그러다 어느날 마이클의 어머니가 부부를 찾아오자, 원래 있던 하녀 매티의 행동이 복종적으로 달라지지만, 사정을 모르는 루스는 까불다가(멋대로 안녕하시냐고 얼마나 계시게 될 것이냐라고 아는 척 한 것) 자기는 흑인들이 스스럼없이 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되자, "어쩌나, 나도 가난한 백인들은 딱 질색인데"하고 맞받아쳤다가 사단이 난다. 마이클의 어머니는 세상이 두 조각이라도 난듯 고래고래 난리 부르스를 치고, 마이클은 그 자리에서 루서를 내보내겠다고 아이에게 나가라 소리치는데, 앤은 그꼴을 모고, 자기는 그림<경매 부쳐진 소년>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며 징징거리고, 그러자 이제까지 복종적이었던 매티까지 가세해서 너님들의 멍충한 짓거리에 염증이 나있던 참이다 나가겠다고 큰소리친다. 


이에 두 부부는 벙 찐다. 그들은 두 사람에게 얼마나 친절히 대해주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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