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단편집에 있는 단편 모두가 짜릿하고 충격적인 결말로 이어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자극적이고도 믿을 수 없는 단편이 <어둠 속의 두 사람>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단편들을 엮은 책이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몇년도 개별 작품이 각각 몇 년도에 쓰여졌는지는 알 수 없었고, 작품집의 copyright이 1990, 1994로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그 이전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것은 알겠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수도 없이 많은 작품을 쓰고 번역되고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어 엄청난 수의 작품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신 장편을 몇몇 개 읽다보면 다작을 하는 작가들 특유의 안이함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작품집의 단편들은 머리 속에서 펼쳐지는 그 많은 이야기의 향연들을 아낌없이 짧은 소설에 압축하여 넣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 그의 장편에서는 쓸데없이 장황하고 복잡한 서사로 논점을 흐리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서사에 사회적 메시지를 부각시키로 허술함을 메우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하는데, 여기 실린 작품들은 그야말로 아 이 짧은 소설에도 이토록 강력한 미스터리를 표현할 수 있는 거란 걸 실력으로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중학교 교사가 학생의 전화를 받는다. 3개월된 자기 동생이 살해되어 학교에 결석한다는 소식이다. 일본에선 1990년대 쯤이면 학생이 결석하면 교사가 방문도 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교사는 이 일로 결석하는 아이를 세 번 이나 방문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아이의 가정 환경과 심리를 더욱 친밀하게 관찰하는 화자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다. 일본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로서는 굉장히 이질적으로 보이는 사회와 문화적 코드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추행의 일상화'라고 명명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아닐까 싶다. 


일본 문화에서 느껴지는 추행의 일상화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읽었을 때에서도 드러난다. 잘 모르는 아저씨가 밤에 젊은 여성의 가슴을 주물럭 거리고 그것 때문에 몸싸움이 한동안 벌어지는 데도 이 재치 발랄한 아가씨는 별 문제 삼지 않으며, 후에 그 런 성추행범과 오히려 친구가 되고 감싼다. 여기서도 그런 장면이 비슷하다. 아이의 집에 방문 중, 아이는 난데없이 <야간비행>이라는 향수를 한 번 발라보라고 부탁한다. 여선생이 마지못해 바르고 나니, 또 냄새 맡아봐도 되냐고 묻고, 그러고 나서는 덮친다. 이게 그냥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지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그러니까 강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성폭력의 시작 단계에서 가까스로 헤어나온 것인데, 선생은 이 일을 문제삼지 않을 뿐더러, 아이에 대한 교사로서의 관심, 보살핌 이런 심정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아동범죄법 같은 게 있기는 하지만, 중학생도 이미 체력적으로는 성인과 맞먹을 정도의 체력을 가진 아이들도 많고, 그런 상태에서 (힘이 약한) 어른을 성폭력했다면, 법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는 어떤 책임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그런 것도 궁금하다. 어쨌든, 사건 초반에 드러나는 것은 학생의 엄마가 계모라는 사실이고, 그 계모를 학생은 엄마로서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람'으로 칭하며 내내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인데, 이후 그 계모에게는 친부가 출장 중일 때마다 방문하는 아버지 회사의 부하 직원인 정부가 있었고, 그날 3개월된 아기가 목졸려 살해되던 밤에도 그 사람이 방문했던 것이 밝혀진다. 게다가 부하직원이 계모를 방문하는 통로는 아기가 있는 방의 유리창을 통해서인데, 그 날 유리창이 잠겨져 있지 않았다. 거기에 출장가기로 했던 아버지가 마침 출장이 취소되어 집에 있었던 사실까지 밝혀진다.


이쯤되면, 답은 거의 나온 듯하다. 계모와 불륜 관계에 있던 부하직원이 아기방 유리창을 통해 들어왔다가, 남편이 있는 사실을 알게 되고, 때마침 아기가 울어 남편을 깨우게 될까봐 죽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렇게 예상대로 흘러가면 미스터리가 아니지. 불륜 사실이 밝혀지고 자취를 감추었던 계모는 당시 상황을 곰곰히 생각하다 어떤 충격적인 결론을 도출하고는 그 불륜남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언해주러 돌아온다. 이 단계에서 계모는 사건의 전모를 확신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계모는 다시 아이를 방문한 선생에게 '오늘은 할 일 이 있다'며 내보낸다. 이 때 소름끼치는 느낌으로 선생은 휘청하고, 잠복 혹은 뒤따라 방문하던 형사들은 다같이 뛰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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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 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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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국으로서의 일본의 면모를 이토록 점잖고 우아한 미스터리로 승화시킨 히가시노 게이고의 천재성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하면 야동, 야동 하면 일본이 생각나지만 그것은 서버 컬쳐일 뿐이고, 내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일본의 문화는 얌전하고 드러내지 않고, 내성적인 느낌이 나는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점잖은 작가의 작품에서 야동의 하나의 쟝르일 수도 있는 패륜적 성행위는 그 자체로서 대단한 충격이고 자극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성행위에 대한 묘사는 단 한줄도 없다. 하지만, 성행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욕망에서 비롯되고, 욕망은 가지지 못함 혹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에서 더욱 커져간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가장 비윤리적이고 가장 파렴치한 사람은 계모다. 하지만 계모의 불륜은, 형사들마저도, 그 왕성한 나이에 한 사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을 테지 하며 이해하는 분위기다. 이것도 일본적 정서로 이해할 만하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그렇다고 나오지는 않지만 그럴 듯)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전처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매사에 반항적이고, 한 가정에서 엄마로서의 자기의 지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아이야 말로 생리적으로는 가장 왕성하고 가장 호기심 강한 성적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성적 매력으로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계모가 그 매력을 이용하여 단 한번의 유혹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천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천재성은 거기까지였다. 처음 발견한 아이의 성적 세계에서 생성된 욕망의 방정식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으며, 인류가 섹스의 즐거움에 빠져서 종종 까먹곤 하는 원초적 목적, 새생명과 DNA의 전달이라는 그 엄청난 재앙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성적 판단은 욕망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으며, 생명의 무작위성은 가장 불필요한 인연을 야기하기에, 비극이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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