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치카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걸작선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박종소.최종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소설속에서, 스테레오 타입의 여성이 희생과 인내 잘해줘봐야 그 인내 속의 강인함 모성 같은 걸로 다루어지는 게 가끔 못마땅하다. 그런 게 요구되는 사회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고 선하지 못한 인간이 되어 버리는 사회에서 그거 말고 다른 이상적인 여성상을 원하느냐 라고 하면서, 그것이야 말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똑같이 비슷비슷한 좋게 말해 헌신적인 삶, 실제로는 착취되는 삶만이 퍼져있다면, 왜 그 똑같은 삶이 소설 속에서 반복되는 것이 왜 어떻게 소설이 되고, 좋은 소설이 되고, 상 받는 소설이 되고, 널리 읽히는 소설이 되는가.


안나 카레리나가, 마담 보봐리가 그토록 윤리적 지탄을 받는 여성이 주인공임에도 수백년동안 읽히는 이유는, 그녀들의 삶이 용감무쌍하고 본받을만 하고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녀들이, 비록 독자들에게조차도 지탄받을 인격을 드러내는 일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 여성들이 하나의 인간으로 다뤄지고, 그 불륜의 ‘악마적’ 욕망의 이면에 남녀 보편적인 그러니까 인간적인 진신들을 비추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체제가 배경이 되는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체제 내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무엇을 생각하였는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다. 북한을 여행하는 이유와 같다. 뭐 대단한 오락거리를 찾는 게 아니라, 그 체제 속의 사람들, 무늬만 공산주의의고 사유재산과 자유가 보장된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인권유린과 핵미사일과 같은 어두운 베일 속에 숨겨진 그 곳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확인하고 싶어서 서구 사람들이 북한에 여행을 가듯. 소비에트 연맹 시절의 러시아 소설을 읽었다.


스테레오 타입의 주체성 없는 여성의 대표는 미인이다. 미인에 대한 찬사가 빠진 자리에 추녀의 이미지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큰 키에 책만 읽는 소네치카는 도서관에서 만난 남편과의 삶 속에서, 자신이 그 남자에게 너무 너무, 그러니까 남자에게 부당하리만큼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세대만큼의 차이가 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인 남편이 당하는 체제적 억압과 그로 인한 가난마저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 행복은 하늘같은 남편과 함께하는 한, 어떤 역경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딸의 친구와의 관계를 확인한 후에도, 올 것이 왔다, 이 남자를 나혼자 오래 차지하는 것은 부당했다라고 생각할 정도다. 보통 막장 코드라 하면 부적절한 관계가 겹치기로 일어나거나 자극적이고도 부적절한 관계가 형성될 때 그렇다. 뭐 출생의 비밀과 불치병 같은 고전적 막장 말고 막장의 창의력은 무궁무진하다.


(늙은) 남편이 너무 멋있고 대단한 예술가여서 젊은 여자를 사랑해도 되고, 아니 그러는 게 당연하고, 자신은 그 젊은 여자애 마저도 품을 수 있다면, 막장 맞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진짜 막장이 아니다. 이 여자애가 딸의 친구인데, 딸이 사랑한다. 그러니까 이 고아애를 한 가족 세 사람이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 소재도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게 쓰느냐에 따라 막장 코드를 벗어나 ‘박경리 문학상’을 받는 대단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문학상은 재미없어야 되는 거냐고!!!! 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이 자극적 막장 소재를 얼마나 잔잔하고도 평이하게 그리고 있는지, 하마터면 눈치채지 못하고, 타샤를, 야사를, 소네치카를, 그리고 작품 속 늙고 잘난 그 러시아 예술가들에게 공감하며 이해할 뻔 했다는 것이다.


책소개를 하자면, 세 편의 중편이 들어있고, 그 중의 하나인데, 주로 가족 드라마인 것 같고. 작품 설명과 리뷰들을 읽어보면 세 편에 들어있는 소설들의 주제는 일관되게 가족과 여성의 인내로 다루어지는 듯하다. 소설 속 여성은 원작에 반말 존대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번역되면서 둘이 대화할 때 남자는 반말 여자는 존댓말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로저 젤라즈니의 작품에서 고양이 인간들이 우주어를 쓰면서 한국적 존대-하대 문화를 흡수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리 남성 중심의 어머니들에게서 태어났다고 해도, 21세기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셔서 번역자들은 이 점을 신경써서 번역해주었으면 좋겠다. 부졸드 소설 속 여성들은 비록 그 미래의 세계에서조차  고립된 채로 700년을 지내니 다시 원시적 남녀차등의 문화로 돌아가는 행성이 배경이지만, 그 속에서 여성의 활약은 눈부시다. 여성은 존중받고, 대상화되지 않음에도 여전히 우주 전체를 달굴 엄청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는 뜨거운 로맨스를 갖는다. 


여러 소설들을 배회하다가 소네치카 같은 여성들을 만나니, 이런 의문이 든다. 공산주의는 실패했다고 쳐도, 애초에 여성과 남성의 그 엄청난 간극을 메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면서 ‘공평’하다는 ‘공산’주의는 대체 왜 시작한거니. 이건 진보 인사들이 유독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는 시점에서도 돌이켜볼 만한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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