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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 - 쉽게 재밌게 읽는 옛 그림 길라잡이
윤철규 지음 / 이다미디어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 옛 그림들은 우리 조상들의 삶을 더듬어 추측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인물화는 역사에 남겨진 유명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산수화는 당대인들의 이상향과 우리 강산의 모습을 그리고 민속화는 정말 얼마 없는 민중들의 실제 일상의 보습을 보여준다. 그밖에도 책과 문구를 그린 그림 개 고양이 같은 애완 동물이나 식물과 정물화는 선조들이 자연과 어울리던 모습의 일부로 귀중한 문화 유산이다. 이런 민속사적 가치를 떠나서도 나는 우리 옛 그림들이 참 좋다.
흔하고 화려하고 또 사실적으로 묘사된 서양화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잔잔하고 정적면서도 편안한 분위기그건 아마도 신비감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있었지만 갑자기 없어져 사라진 우리 것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의 정서는 잔잔하게 퍼져가는 먹물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동양의 그림은 ‘사의(뜻을 그리다)’ 라고 해서 복잡한 현실의 사실적 재현보다는 단순하고 생략된 묘사를 이용하여 사람의 심정, 생각 사상을 주로 그림에 표현하였기에, 알쏭달쏭한 그 뜻을 헤아리는 과정에서 무한의 세계가 탐구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채색화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옛 그림에서 단출한 붓과 먹 몇가지 화구로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한 재료로 다채로운 그림을 표현하기 위해 붓의 터치감과 먹의 농담 등을 자유자재로 조합하여 사용한다. 서양화가 밀려들기 전까지는 그토록 오랫동안, 그러니까 중국 대륙에서 수천년동안 사용하면서 발전해온 기술을 받아들이고 수정하여 전수한 기술이므로, 잘 알지 못했던 미술적 기교가 엄청 많다.
이 책의 구성은 이것만 알면 미술이 재밌다. 라고 하는 제목과는 달리, 백과사전적인 구성을 띠고 있으므로 재미와는 조금 거리가 멀다. 뭘 잘 모르면, 그림이 좋아서 월페이퍼로 화면 가득 채워놓고 들여다 본다고 한들, 그 그림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그렇다고 그림이라는 거, 그리고 예술이라는 게 뭘 알아듣고 말해야 감상할 줄 아는 건 아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지식이, 동양화에 관련된 모든 용어들을 나열 설명하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실제로 그것이 진짜로 뭘 뜻하는지 이해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또한 해당 용어들을 대표하는 그림이 옆에 나와 있는데, 그 그림과의 연관성도 적다.
그림을 깃들인 용어 설명집에 가까운 책이라, 읽은 후, 대부분은 잊었지만, 읽으면서 들은 느낌은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특히 그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림의 모든 기법들과 용어들이 송이니 당이니 하는 중국 나라들에서 기원을 찾고 있으며, 유명 화가의 영향권 내에 있다. 모르고 있던 사실 하나는 화본집이 유행했다는 거다.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굉장히 유명한 국내 작품들도 중국에서 건너온 <고씨화보>, <당시화보>, <개자원화전> 같은 유행처럼 휩쓸었던 화본집의 내용과 핵심 부분이 일치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이건 옛그림의 정취를 좋아하던 내게 약간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배신감인데, (특히 그 이름도 유명한 정선의 그림까지 그럴 줄이야)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은 중국에서 간행된 어느 화보보다 인기가 높았던 베스트셀러 화보입니다. 이 화보는 우선 전체가 다색판화로 돼 있습니다. 그 위에 해당 장르에 대한 화론의 소개는 물론 유명 화가의 기법을 부분으로 분해해 실어놓아 초심자라도 쉽게 따라 그릴 수 있게 했습니다.”
“《고씨화보(顧氏畵譜)》는 17세기 말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여러 화보 가운데 가장 먼저 전해졌습니다.명나라 때의 전당(錢塘) 사람 고병(顧炳, 미상)이 역대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목판으로 찍어 1603년에 펴낸 것으로..그림에 대한 교양서 역할은 물론 그림 그리는 화가들에게도 좋은 화본(畵本)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에서 이 책을 가장 먼저 활용한 화가는 윤두서로, 그의 그림 가운데 몇몇은 《고씨화보》에 실린 그림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그 외에 정선, 심사정, 최북, 김득신 등이 이 화보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분명한 그림을 남겼습니다.”
여러가지 기법들이 많이 설명되어 있지만, 메모할만한 수묵화의 붓사용법 몇가지 메모.
피마준(披麻皴)은 옅은 먹을 묻혀 얇고 가는 선을 평행하게 여러 번 중복해 긋는 기법, 부벽준은 약간 마른 먹을 묻힌 붓을 옆으로 뉘어 빠르게 내려 그으면 도끼로 내리친 것과 같은 느낌이 나는 거친 바위가 표현, 하협준은 연잎을 들고 아래로 내려뜨리면 잎맥 선이 아래를 향하면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표현한다.
또한 예황식(倪黃式) 산수는 19세기 후반 조선에서 유행한 산수화의 한 경향으로 예찬과 황공망의 기법을 합친 것이다. 앞쪽에 얕은 언덕이 있고, 그 뒤로 넓은 수면이 펼쳐져 있으며, 물가 끝에 다시 낮은 산이 이어진 구도를 말한다. 황공망의 필법은 그가 자주 구사한 피마준 기법을 말한다.
중국 그림 소개가 많아서 내겐 신선했다. 밑에 있는 마원의 그림 참 좋다 싶었더니, 유럽에서는 표준적인 중국 화풍으로 생각할 정도로 영향력이 높은 마하파의 화풍으로 산수화로 이름을 떨친 남송의 화원화가 마원과 하규의 화풍이라고 한다. 간결한 필치로 광활한 느낌을 주는 산수 묘사가 특징으로 그림 중심을 한쪽 아래에 두고 반대편의 넓고 빈 공간을 여백으로 남겨 시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특히 마원은 빈 공간에 정교하게 묘사된 나무를 자주 그렸고, 하규는 일부만 그려진 산세를 강조하기 위해 먹색이 강한 부벽준을 잘 구사했다고. 서양에까지 그렇게 알려질 정도이니.. 당연히 한국, 일본 모두에게 큰 영향을 끼친 화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