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문학동네 2015년 봄호에 처음 발표한 소설인데, K 시리즈의 단행본으로 영역본과 함께 나온 이후, 한승원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상작품인 <한정희와 나>와 함께 실렸고, 이후 이기호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비로소 이기호의 단편들이 한꺼번에 묶여 나왔다. 나는 한승원문학상수상작품집 <한정희와 나>에 실린 작품을 읽었고, 이기호의 작품들이 모두 그렇지만, 이 단편이 특히 인상적이어서 기록을 남긴다. 


집 바로 앞에서 허름한 텐트를 치고 거기서 먹고 자면서  1인 시위를 하는 권순찬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여름에 시작한 일이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도 해결될 기미가 없고, 춥고 불편한 권순찬을 걱정하는 ‘착한’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일을 해결해주기 위해 십시일반한다. 알고 보니 권순찬의 사연은 이렇다. 얼마전 죽은 양어머니가 사채를 갚아달라며 주고 간 계좌로 뒤늦게 700만원을 넣고 나니, 이미 어머니가 입금을 한 상태여서 중복 입금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채업자는 연락 두절이고, 수소문한 끝에 주민등록상의 주소로 찾아온 곳이 사채업자 대신 그 사람의 어머니가 살고있는 지방 소도시의 아파트로, 화자 역시 이곳에 살고 있다.


사채업자의 행방을 모르는 권순찬은 사채업자의 어머니가 사는 그 아파트 앞에서 텐트를 치고, 잘못입금된 돈 700만원을 돌려달라며 시위를 시작한다. 7월에 시작하여 8월이 지나고 찬바람에 보일러를 때야 하는 계절이 되도록 권순찬이 찾고 있는 사채업자는 나타나지 않고, 영문도 모른 채 근근히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채업자의 어머니는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오며 가며 딱한 사정을 듣고 전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스티로폼이랑 박스 같이 도시 야영에 필요한 것들을 주워다 주고, 혼자 사는 분의 빈 방에 거처를 마련해 주기도 하고, 또 파트타임 청소 일자리까지 주선해주는 등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지만, 사채업자는 나타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권순찬이  추운 겨울에 어떻게 될까봐 걱정이 가득한 마을 사람들은 올해의 불우이웃돕기 성금 대신 돈을 걷어 그에게 건네며, 사채업자의 어머니가 주는 돈이라 생각하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남의 돈을 두번이나 받고 연락 두절된 사채업자와 그의 어머니에게는 큰 잘못은 없어보인다. 사채업자로서는 통장에 돈이 두 번 들어왔으니까, 이게 웬 떡이냐 했을 텐데,  권순찬의 어머니가 이미 죽은 마당에 연락처를 찾기 어려워 되돌려 주기 어려웠을 거라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또 그건 그쪽 사정이고 확인도 않고 송금한 권순찬 잘못 역시 없어 보이지는 않지만, 이중 입금된 돈을 되돌려 받으려고 몇달간 노숙을 하는 신세는 처량하다. 


건강 때문에 사채를 쓰고, 그걸 못갚아 오랫동안 만나지 않던 양아들을 찾아가 부탁했다가 결국 자기 손으로 갚고 자신은 자살한 권순찬의 양어머니도 참으로 시대가 감추고 싶은, 암울한 뒷골목 풍경아닌가. 사채업자 어머니의 이름으로 건네는 마을 사람들의 돈을 눈물 겨운 친절로 받아들이고 감사를 드리고 떠났다면 모두에게 행복한, 오래도록 기억될 훈훈한 일화가 되었을 사건이다. 하지만, 착하고 순박한 권순찬이, 착한 마을 사람들의 호의로 잃어버린 돈을 쥐어주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 그런 훈훈 장면은 연출되지 않는다. 


애시당초, 그들의 그 착한 모금 운동의 모티브가, 사채업자를 만나 직접 해결하고자 했던 권순찬의 목적과는 달랐었다는 걸, 그 글이 안써져서 애꿎은 사람에게 화를 내고, 애꿎은 술에게 화풀이를 했던 (화자인) 교수 양반도, 권순찬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려고 했던 착한 마을 사람들도 알지 못했다. 


선함, 착함 이런 것은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불편함을 씻어버리고픈 행위일 수 있다. 교수가 권순찬의 멱살을 움켜쥔 이유는 그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아파트 근처에서 노숙하는 일을 겨울이 될 때까지 봐야 하며, 이렇게 훈훈(하다고 생각했던)한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겨우 술을 끊고 글을 쓸만한 상태가 되었다가 다시 그 막막했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원인이, 이 먼지같은 남자가 내 인생 내 삶의 언저리에서 눈에 보이게 알짱거리는 채로 추운 겨울을 맞게 될 것에 대한 불편함인 것이다.  그는 애초에 청소 안한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먼지처럼 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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