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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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 흩어지고 사라지고 변하는 생각을 언어로 바꿀 때 이리저리 흩어져 가던 생각들은 잠시 자리를 잡고 고정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혹은 자주 생각을 언어로 한다. 선택하고 표현하는 언어 속에 생각이 스밀 때, 모양도 형체도 없이 자유자재로 흩어지던 생각의 한 자락은 언어 속에 잠시 고정된다. 그 언어가 글씨가 되면 생각은 남겨진다.


글쓰기는 그 남겨지는 생각의 한 자락이다. 남겨지기 때문에, 우리는 글을 잘 쓰고 싶어진다. 학창 시절  일기가 방학 숙제의 피날레였을 적, 일기 조차 일기는 (때로? 언제나?) 선생님이라는 독자를 고려하고 작성했다. 책에서도 언급되는 부분인데, 일기장의 끝에는 결말이 필요했다.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앞으로 착한일을 많이 하겠다고 생각했다 등등 마음에 없는 말이지만 글쓰기의 한  형식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생각을 만들어냈다. 전혀 즐겁지 않았던 어린이날의 긴 줄서기와 만원버스의 시달림의 시간이 끝나고 일기장에 그 즐거운 하루였다는 말을 쓰는 동안, 생각과 기억은 하루 중 잠시 머물렀던 즐거움의 조각을 붙들어 글씨 속에 붙여 놓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분리시키는 일이고, ‘나’와 ‘나를 바라보는 나’가 대화하는 일이므로 ‘나를 바라보는 나’가 존재하는 순간, 누군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




멀티 미디어의 시대에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대고 움직이고 말하고 동영상과 사진과 음성 파일이 대세인 오늘날이지만, 텍스트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하는 오늘날이지만, 오히려 직접 보고 말하는 커뮤니케이션보다는 더 많이 글자에 의존하게 되었다. 오늘날 간단한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 신호음을 기다리거나 집중하고 있던 일을 잠시 멈추는 일은 드물다. 개인과 친교 집단간에는 문자와 카톡이, 취미집단간에는 카페와 SNS 등으로 얼굴을 보지 않고도 말을 하지 않고도 글을 매개로 의사전달이 이루어진다. 




의사소통에 미괄식과 두괄식 타입 중 하나를 선호하는 사람들 얘기가 나온다. 학교 때를 돌이켜 보면, 요란하게 교실문을 들어오면서 대단한 소식을 전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어떤 아이는 애들아 대박 옆반 선생님이 결혼한대 이렇게 빵 하고 터뜨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아침에 집을 나와 길을 건너는데 저 앞에 자전거가 한대 오는 거야. 로 아주 평범하게 시작하면서 점점 긴장을 끌어오다가 끝에가서 빵 터뜨리는 아이가 있다. (김중혁 작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풍성할 수록 글쓰기에 뜯어먹을 풀밭이 풍요로와진다는 얘기를 하는데, 나도 진짜 많이 뜯어먹고 산다. 어린 시절 얘기가 나오니 갑자기 또 아빠와 할머니가 생각나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작가가 한 얘기를 조금 바꾼건데, 소설에서도 그렇고, 모든 글에서 미괄식과 두괄식의 경우로 나누어볼 수 있을텐데, 그걸 누가 갈켜 줘서 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내 경우, 생각이 산만하다 보니 결론을 먼저 내버리고 그것을 서포트하는 글을 써나가기가 어렵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언어로 바꿔나가다보면 조금씩 정리가 되어 결론을 향해 가기도 하고, 그냥 두서없이 생각만 적다가 끝나기도 하고 하는데, 작가는 반드시 결론이 있어야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마음에 든다. 생각없이 생각을 글로 적다보면 한참 길어지고, 그러다보면, 아 너무 길다. 끝내자. 하고 중간에 끝내는 경우도 많다. 예전엔 TV 쇼가 끝날 때 구구절절 안녕히 계시라 시청해 줘서 감사하다 이런 뻔한 인사의 말이 길었는데, 요즘은 막 말하다가 시간되면 중간에 네 마치겠습니다. 하고 끝내는 경우도 많다. 




김중혁 작가가 신뢰하지 못하는 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건  교훈이나 반성으로 끝나는 글이다.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반복하거나 한 문장에 똑같은 단어가 서너개 있을 때에도 신뢰하지 못한다고(이말은 백번쯤 들은듯). 화가 폴 가드너의 “그림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흥미로운 곳에서 멈출 뿐이다.”를 인용하며 원고지 14매 정도의 산문을 잘쓰는 방법은 “글을 쓰기 시작하여 원고지 14매가 되면 멈춘다.”라고 자신의 버전을 만들 만큼 글쓰기에 있어서 형식을 중시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의 말에는 어느정도 공감하지만 한 권의 책을 묶는 것과 짧은 글 한 편을 쓰는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이 책은 좀 두서없다. 시집도 아닌데 책의 텍스트 자체가 빈곤한 것은 출판시장의 전략인듯 싶지만, 기존에 발표한 글들을 대충 엮은 듯하게 일관성이 없다. 앞부분은 문구류 소개 중간은 글쓰기에 대한 생각과 경험, 뒷부분은 인용문 빈칸 퀴즈맞추기 이런 식인데, 따로따로 놓고 보면 괜찮은데, 한 권 묶이기에는 좀 따로 논다는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잘 살아보세’라는 간단한 문장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대학 가서 미팅 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 ‘10분만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같은 고등학교 교실의 급훈은 세상 그 어느 문장보다도 폭력적이다. 어떤 문장은 칼이나 총보다 폭력적이다.”




책을 읽는 이유는 무얼까. 작가는 두 가지 중 하나로 본다.    ①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문장을 만났을 때    ② 내가 원하는 문장을 찾았을 때.  전자는 새로운 것과 신비한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고 후자는 익숙함과 공감, 위안을 준다. 하지만 ① 은 쉽게 지칠 수 있으며 ② 만으로 점철된 책은 민망하다. 




“종이 위의 문장들은, 일종의 평행 우주다. 종이 위의 문장들은 실재하는 현실과 무척 닮아 있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글을 쓰는 사람은 종이 위에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고, 가보지 못한 길을 상상할 수 있다. 픽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글이 그렇다. 우리는 글 속에다 새로운 우리를 창조할 수 있다. 우리는 글을 통해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인 척할 수 있다. 더 현명하거나 더 세련된 사람인 척할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나 그럴 수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더 나은 사람인 척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다. 글쓰기는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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