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순간에도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 참 살아내느라 애썼다"라는 오골오골한 광고카피 때문에, 망설였는데, 최근 박준의 산문집을 읽고, 이런 류의 산문도 읽을만 하겠다 싶어 읽게 되었다. 신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2010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의 개정판이라고, 꽤나 스테디셀러에 속하는 책이었다. 개정판 서문에 저자가 우연히 어떤 독자가 책이 너덜너덜할 때까지 읽은 흔적을 읽고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는 말이 쓰여져 있어, 더욱 궁금해졌다. 내 기준에서 어떤 책을 읽고 또 읽고 하려면 첫째 정보가 많거나 깊은 정보가 있어 한 번 읽고는 흡수가 다 안되어 보고 또 보고 배울 게 있거나,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이거나, 문장이 너무 좋아서 머리 속에 베껴두고 싶은 책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많이 읽을 때나 안읽던 시절이나 늘 읽을 책을 머리맡에 쌓아두는 나로서는 한 권의 책을 너덜너덜할 때까지 많이 읽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고로 내 종이책들은 대개 햇빛에 바래는 경우는 많아도 너덜거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왜 이 책을 그토록 너덜거릴만큼 많이 읽었을까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일이 이 책의 장점을 찾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부터 하고 싶다. 우선 저자가 하는 이야기들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모두의 이야기 같은, 진솔한 저자 자신의 이야기여서 공감을 준다. 달리 이야기하면 새롭고 가슴뛰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흔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같기도 하면서 내 얘기 같기도 한 이야기들이 짧은 단편처럼 점점이 흩어져 있고, 그 이야기의 주변에 저자의 사색과 감정의 색채가 입혀진다. 느리게 지나가는 한 편의 무성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인터넷에 가끔 돌아다니는 어머니 혹은 엄마라는 단골 주제를 이용한 '고귀한' 희생 정신,  값싼 감성팔이에 신물이 나 있던 차에, 바로 엄마 얘기가 그동안 받아먹은 택배상자 이야기와 함께 시작돼서, 실망스러울 찰라, 그 엄마가 사실은 자신의 친엄마가 아니라, 친구인지 선배인지 하는 사람의 엄마라는 사실에 급흥미를 느낀다. 타향 살이 자식들을 위해 바리바리 몇보따리를 싸서 이고 지고 먼길을 올라오다가, 택배 천국이 되자, 먹을 거 떨어질까 시골에서 나는 먹거리들을 보내주시던, 그 '이상적인 엄마상'이 어느날 약주를 드시고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나무껍질처럼 꺼칠한 손바닥으로' 그녀의 두 볼을 감싸며, "늬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더 잘해 줬을 텐데, 불쌍한 우리 딸..." 이 장면에서 나는 울컥함을 느꼈다.  첫번째는, 엄마라는 따스함 뒤에 여성에 대한 당연한 착취가 도사리고 있음을 그 누구도 문제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한국적 정서를 내가 그토록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저자)에게 엄마의 부재가 한없이 가엽게 느껴졌을 그 선배의 엄마인 그녀가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의 감정에 동감하였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자식의 친구일 뿐인 그녀에게 그토록 넘치는 사랑을 주면서도 친엄마에게 미치지 못함을 알고, 또 그 때문에 생기는 연민이, 험한 노동의 세월과 시간이 시골 여인의 손을 그토록 거칠게 했음에도 여리디 여린 마음을 거칠게 하지는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두번째로 인상적인 이야기는 말레이지아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한국인 쳥년의 이야기였다. 말하자면 길지만, 수백군데의 인터뷰를 하고도 직장을 잡지 못하다가, 말레이지아의 어느 사업가가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열고자 그를 불러들여, 저자가 여행중 맥주 한 잔 한 인연으로 알게 된 이야기인데, 어렵사리 얻게 된 그 취업에 부딪친 엄청난 노력이 눈물 겹다. 경험도 없는 청년이 오래된 낡은 게스트하우스를 내장재를 다 뜯어내고 새단장을 하는 일에서부터 스스로 벽에 박힌 못 하나까지 모두 스스로 박을 만큼, 화장실 바닥을 구석구석 눈물이 나도록 빈틈없이 반짝반짝 닦는 이야기이다. 후에 그 게스트하우스 사업가는 이 청년을 눈여겨 보았다가 대규모 리조트로 데려가기로 결정하는 훈훈한 스토리로 마무리되건만, 정체된 채 몇년이고 실업자로 살아가고 있는 한국 청년의 삶이 이렇게가 아니라면 희망이 없는건가라는 생각도 함께 들어서 씁쓸했다. 


"나는 다만 한 사람이 뭔가에 몰두한 끝에 흘리는 눈물에 대해서, 그 맑고 투명한 힘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초라한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눈물 나도록 힘이 솟게 하는 뭔가를 찾는 사람들ㄹ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었을 뿐이다.(일에 대한 지극히 소박한 진실 중"


저자가 제시한 동네 여행도 실행할만한 가치가 있을 거 같다. 먼 곳에 비행기며 기차며 타고 가는 대신 옆동네, 혹은 그 옆옆 동네 같은 데 슬슬 걸어가서 골목길을 돌다가 오래되어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혼밥을 하고 나오면 어떨까. 밥시간이 지나서 들어간 '가정식 백반' 식당에 아주머니들이 일을 끝내고 막 진짜 가정식을 먹고 있다가, 한 그릇의 밥을 차려주기 위해 그걸 멈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만일 뻔뻔하고 용기있는 사람이었다면 저 돈은 그대로 드릴테니, 그 테이블에 밥만 한 그릇 얹어서 같이 먹으면 안될까요? 김치가 워낙 맛있어보여서 너무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을텐데.


이 책은 싱글이며, 시골에 고향이 있고, 그래서 값싼 월세방을 찾아 전전 긍긍하고, 가끔은 혼밥을 먹으며, 또 가끔은 멀리 여행을 떠나며, 살아가는 자신의 자기고백이기도 하면서, 그러한 환경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위로의 글이기도 하다. 특히 서울이 집이 아닌 경우이거나 혹은 부모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집세를 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우, 시간이 갈 수록 더욱 집걱정이 없는 사람들과의 격차는 심해지고 자괴감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에 대한 공감서이기도 하다. 때로 투덜투덜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돈없는 젊은이들이 흔히 선택할 수 있는 곳은 기온을 이길 수 없는 꼭대기 옥탑방이거나 비가 들이치거나 곰팡이와 싸우고 햇빝 한조각 볼 수 없는 지하 반지하 방에 지친 몸을 맡겨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임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지옥같은 도시로 선정되었다는 서울의 치열한 삶을 겨우 서른, 혹은 많아야 마흔일 젊은이들이 이만큼이나마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 애썼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개정판의 제목이 위로와 감성적 제목이 유행하는 시기적 기류를 타고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로 바뀌었는데, 원래 제목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가 훨씬 더 전체적인 내용을 말해준다. 이렇게 지옥같은 서울에서 무엇을 포기하지 못해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문화적 충족, 가능성, 별조차 사라지게 만드는 어지러운 조명 아래 날이면 날마다 기울이는 술잔과 친구들.... 취업 때문에, 혹은 고향 생각 때문에, 빽빽한 2호선 전철 때문에, 지하실에 들이찬 물 때문에, 날 차버린 개 x같은 x연인 때문에,  날이면 날마다 감정의 폭풍 변화를 겪지만, ... 여전히 아직은 그래도 (좋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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