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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비현살적인 소설이든 현살적인 소설이든 하루키의 소설들은 몇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 줄거리와 인물만 바뀌었을 뿐 거의 다 같은 소설인 거 같다. 내가 읽은 그의 어느 소설도 상실을 겪고 상처입은 주인공이 현실속 밝은 연인과 섹스를 하고 비현실적 연인과 비현실적 섹스를 하며 왔다갔다 하는 내용으로 대략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점은 주로 1인칭이지만, 1인칭의 내가 무엇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 길이 없다. '나'의 고독은 '나'도 알수 없는 깊이의 우물이기 때문이다. 고독하고 괴로운 화자에게 늘 차고 넘치는 건 섹스 파트너 복이다. 일본의 문화가 우리랑은 좀 다르므고 욕망의 정도와 적극성의 표출 역시 남여 차이가 우리와는 다르겠지만 이 여자 저여자 지분거리지 않고도 쉽게 섹스파트너를 구하는 주인공의 능력은 이번 책에서도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섹스의 댓가가 따르는 것도 감정적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뭐 그리 잘 생긴 얼굴도 아니라는데 어딜 가든 무얼 하든 어여쁜 섹스파트너가 대기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판타지가 확실하다.
내용으로 말하자면 초상화를 그리며 먹고살던 주인공에게 어느날 느닷없이 이혼하자고 한다. 아닌밤중에 홍두께라고 이유도 묻지말고 이혼해달라는 말에 정말 이유도 묻지 않고 짐을 싸서 집을 나가 방황하며 비현실적인 세계를 경험한다. 이런 종류의 하루키식 쿨함은 어찌 해석해야 할지. 몇년을 함께 산 부부가 갑자기 이혼을 요구한다면 우선 싸우고 볼 일이지 넵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듯 바로 그 길로 나가 차를 몰고 정처없이 방황하는 인간이라면 바로 하루키 소설 속 인물의 전형적 캐릭터다. 그들은 대개 하라는 대로 따른다. 자신의 슬픔 상실의 아픔은 저 밑바닥에 여전히 간직한 채로. 고독을 짊어진 채로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아무 생각없이 들어주는 수동적 인물이다. 이 수동성은 아무래도 좋다는 상실의 아픔을 저 밑바닥 혼자만의 우물에 가두고 하루하루를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체념한 듯한 모습으로도 비친다. 그 동요되지 않는 고적한 인간적 본질은 관념의 세계에서 두드러지며 묘하게도 별 사건이 없이도 소설을 계속 읽게 하는 힘을 준다.
낡은 푸조 204가 뻗을때까지 방황하던 주인공은 초상화 그리던 일을 집어치우고 친구의 배려로 유명 화가였던 친구 아버지 아마다 도모히코가 쓰던 산속 시골집에 살면서 진짜 그림을 그리리라 결심한다. 아마다 도미히코는 빈 유학 시절 반나치 학생 지하조직에 몸담았다가 연인은 체포되고 본인은 일본 정부가 손을 써서 귀국한 인물로 지금은 치매로 완전히 정신을 잃고 요양원에 입원중이다. 하지만 순수회화는 뜻대로 되지 않고 연이어 기묘한 일들을 겪는다. 산 건너편 엄청난 저택에 살고있는 멘사키의 초상화 의뢰를 받고 그 집의 주인의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락방에서 발견해내는 일이다.
그림속의 기사단장은 돈조반니의 칼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리고있다. 살해현장에는 기사단장의 딸 돈나 안나가 현장을 목격하고 있고, 멘홀뚜껑을 열듯 땅속여서 뚜껑을 열고 올라와 얼굴만 내밀고 있는 정체불명의 긴얼굴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게다가 오밤중에는 집근처 돌무덤에서 방울 소리가나서 파보니 구덩이 속에 방울이 있다. 이후 멘시키가 그에게 접근한 의도가 드러나고 그의 목적이 이루어질무렵 그에게는 점점더 비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방울소리는 구덩이의 존재를 알리고 그곳에는 기사단장의 모습으로 실체화된 이데아가 나온다.그림속 인물이다. 이데아의 희생은 긴얼굴로 실체화된 메타포를 불러오고 주인공은 메타포의 세계로 들어간다. 메타포의 세계도 가상의 세계가 아닌 실제로 생생하게 손에 잡히는 실체화된 세계다. 그 가상과 실제 무와유의 틈새에서 그는 갈증을 느끼고 강물을 마신다. 강물은 무와유의 틈새를 흐른다. 강물을 마신 주인공 역시 무와 유의 틈새 메타포의 세계에서 분투한다· 소녀를 살리기 위해. ‘<기사단장 죽이기>는 최고의 메타포가 되어 이 세계에 또다른 현실을 만들어냈던 것이리라(415)’
“훌륭한 메타포는 모든 현상에 감춰진 가능성의 물줄기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415)
“자네가 행동하면 그에 맞는 연관성이 생겨나게 되지. 여기는 그런 장소야”( 400)
관념과 은유에 대한 실체화된 세계를 창조함으로씨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는 현실의 인물을 구하기 위해 가상의 세계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메타포의 세계다. 아카가와 마리에를 구하기 위해 이데아를 죽이고 메타포의 세계로 깊이 들어간다. 그 속에서 또다른 그림속 인물을 만난다.
동생 고미와 왔던 후지산. 동굴에 혼자 들어가서 한참동안 나오지 않아서 초조했던 그 동굴은 결국 메타포의 동굴이었던가. 이데아가 그림에서 나온 기사단장으로 실체화되었다면 메타포의 세계는 처음 기이한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 구덩이로 통하는 세계다. 돌고돌아 제자리로 왔지만 거 컴컴하고 깊은 구덩이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게 한 가지 소득이라면 소득. 결국 그 멀고 먼 길을 돌아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메타포가 인도한 길이라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연관성의 산물이지요. 여기있는 그림자는 빛의 비유입니다.” 412
전체를 따지면 매우 난해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하루키 특유의 과도한 플레이백이 사건과 정서적 맥락을 복습시키고 그러다보니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되어도 좋았을법한 부분의 속도감도 아쉽다. 플레이백의 내용복습 효과가 지속적으로 현재의 맥락을 읽고 과거와의 인과 관계를 확인시키는 한편 나레이션이 쉽게 짜여져 있어 독자가 할 일은 그 망할 이데아와 메타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건지를 결정하면 된다. 몇몇 회수되지 않은 떡밥과 상징적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아내 유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의 소중함을 현실속에서 다루는 결말의 성숙함에 조금 가슴이 뭉클했다.
사실 그는 구덩이에 갇히고 나서야 유즈를 만날 생각을 한다. 그녀가 왜 나를 떠났을까가 궁금해야 인간적이다. 화가 나야 적절하다. 그는 조용히 떠나 그저 생각만 곱씹을 뿐이다. 이 길고 위험하고 외로운 여정은 그걸 찾는 메타포였던걸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