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 기상천외한 공생의 세계로 떠나는 그랜드 투어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8월
평점 :
우리는 세계를 자주 선과 악으로 양분한다. 그게 편리하고 익숙하다. 인간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해선 유난히 나쁜놈과 좋은놈으로 나눈다. 미생물도 그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 양분법은 유행을 탄다. 장기적 유행을 타기도 하고 초급속 유행을 타기도 한다. 온갖 성인병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고지방 식품과 동물성 식품이 최근 몇년간 저탄고지 다이어트 열풍을 타면서, 수십년간 받아왔던 건강에 해롭다는 오명은 지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은 탄수화물 식품이 적폐가 되었다. 언제 단백질이 타겟이 될 지 모른다. 미생물은 조금 더 복잡하다. 인류가 미생물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레이우엔훅이 정교한 현미경을 만들어 관찰한, 최근 몇백년 사이의 일이고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들은 병원균으로 통해왔다.
세균과의 전쟁은 일상이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들과 싸우기 위해 하루의 많은 시간과 노동을 할애한다. 손에 묻어있을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 손을 씻고, 이빨 사이에 상주하고 있을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 이빨을 닦고, 식탁과 그릇을 거품 세정기로 박박 닦아내고, 바닥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침구를 세탁하고… 세균을 몰아내기 위해 쓰는 씻기 작업의 총량은 반복적 일상의 노고를 증가시킨다. 산업화 이전, 세균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 기계가 전혀 인간의 노동을 돕지 못해 모든 걸 손으로 해야 했던 일상의 노동량보다도 청소기며, 세탁기며 모든 걸 기계에 맡기는 현대인들의 일상이 오히려 더 바쁠 것이다.
세균이 가장 많은 곳이 가장 ‘더러운 곳’으로 여겨지기도 하다. TV에 단골 정보 중 하나로, ‘OOO 화장실 변기보다 수백배 많은 세균’ 따위의 정보를 많이 접한다. 항균제 칫솔, 화장지, 행주 등등 이들의 청결이 중요한 것은 ‘세균 = 병원균’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먹고 아플까봐 씻고 닦고 빨고 삶는다. 이로 인해 우리 생활에 등장한 또다른 상업용 제품은 온갖 종류의 항균제품들이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살균이니 항균이니 하는 제품들은 핵심성분의 안전을 담보하지 않은채 수많은 굳이 항균이 필요해보이지도 않은 제품에 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미생물에 대한 학계의 새로운 정보는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한쪽에서는 미생물총이 인간의 건강을 좌우한다면서, 똥을 이식하여 병을 고치는 사례가 수도 없이 보고되기도 한다.
쏟아지는 미생물총과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들 역시 건강식품으로 포장되기 위해 선악의 논리로 왜곡되고 단순화된다. 항생제로 장내 미생물들을 쏴~아악 청소하고 나면, 건강한(?) 미생물총은 사라진다. 대홍수와 같은 생태적 재앙을 맞고 핵전쟁과 같은 종말적 단계에서 살아남아 너른 대지와 식량을 차지하는 것은 살아남은 노아는 다름 아닌 지닌 기회감염 세균들이다. ‘중독과 장티푸스를 일으키는 살모넬라균과 심한 설사를 유발하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Clostridium difficile(C. difficile)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미생물은 좋은 놈과 나쁜놈이 있는 것이 아니다.(병원균은 별개), 살아남는 놈과 도태되는 놈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명체와 공생관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소와 말 염소 등의 채식동물의 소화계에 상주하며 질겨 빠진 셀롤로우스를 소화시키는 미생물들의 예는 아주 극히 일부일 뿐이다. 어떤 환경에서건, 어떤 방식에서건 살아남은 놈들은 후대를 이어갔고, 그것들과의 공생을 승인한 숙주는 그것들과 의존 관계를 맺으면서 수평적 혹은 수직적으로 몸 속 미생물을 퍼뜨리며 수만년동안 살아왔다. 하지만 미생물에 대한 최근 학계의 새로운 보고들은 이번엔 반대로 미생물 만병통치설을 퍼뜨리기도 한다. 나쁜놈에서 갑자기 좋은놈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수많은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지구라는 거대 환경에서, 어느 작은 마을에서 자라는 풀과 동물들 몇 점을 수집해서, 그것의 변화와 지구 온난화, 혹은 폭풍의 영향 등을 극적으로 밝혔다고 하자. 그것은 우연적 차이에 근거한 어처우니 없는 결론일 뿐고 단지 일화일 뿐이다.우리 몸의 미생물총은 하나의 생태계로 파악해야 하지 단일 미생물이 몸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비만과 같은 주제는 연구에 조금만 진전이 있어도 그 상업화를 통한 엄청난 돈벌기가 가능하기에 업계에서는 비만과 관련된 미생물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지만, 비만과 관련한 단일 미생물을 찾는데는 조금도 진전이 없다. 이것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한 가지 들꽃에서 찾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만한 쥐와 날씬한 쥐와 멸균쥐를 이용해 미생물을 여기 저기 주입해서 알아낸 결과는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가 비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 뿐이다.
우리가, 아주 악독한 놈으로 알고 있는, 그래서 TV 광고에도 등장한 헬리코 박터 파일로리 균에 대한 팩트를 보자. 최근 천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 균의 유무는 사망률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오히려 파일로리가 위산역류, 식도암, 그리고 아마도 천식의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점은 무시되어왔다. 파일로리를 연구한 블레이저는 진화와 공생의 과정중 중 최소 5만 8천년 동안 인간을 감염시켜온 파일로리는 장에 정착한 ‘오랜 친구들’ 중 하나로 본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좋은놈과 나쁜놈을 가려내고, 인간의 건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미생물에 대한 이해다. 미생물이 건강에 좋고 안좋고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미생물이 어떻게 생물체와 공생관계를 맺으면서 어떻게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가에 대한 과학적 정보는 새롭고, 놀랍고, 신기하면서, 무지를 퍼뜨리며 스스로의 환경을 해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