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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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로 인간이 상처를 입는지 타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편히 못 잔다는 옛말은 틀릴 때가 많다. 때린 사람이 자기가 때렸는 지도 모르고 쿨쿨 자고 있는 동안 어쩌다 잘못해서 맞은 사람은 시퍼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 수도 있다. 고객에게 최선의 결정이 모두에게 최선의 결정일 수도 없다. 호텔리어의 정성어린 서비스는 체크인 순간부터 체크아웃 까지만이다. 호텔리어 입장에서는 돈을 낸 사람이 고객이기에 고객이 원하는대로 해야지 가족이라고 해서 혹은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어 투숙객의 의사와 무관한 행동을 하는 경우 제지한다. 수상한 사람이 얼쩡거리다가 엘리베이터를 따라 타려 해서 제지시키는 것, 여자 친구라며 서프라이즈 헤주고 싶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 등등이 그런 것이다. 예전에 불륜 현장을 목격해서 빵에 넣었다는 말들을 하곤 했는데 경찰을 대동하면 섹스하는 남녀의 침실을 열어볼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호텔에선 다르다. 설사 명백하게 외도임이 드러나더라도, 호텔에서는 윤리적 잣대는 필요없다. 고객의 요구에 따르는 게 윤리다. 호텔의 하루라는 집에는 없는 환경을 거액을 들여 단 하루 산 건데 당연히 돈을 내고 서비스를 산 고객의 요구에 우선하는 게 호텔의 존재 이유다.  그 과정에서 호텔리어는 고객의 편안함만을 생각해야지 그 고객의 뒷사정, 그를 ‘스토킹’하는 비고객의 요구는 그게 아무리 정당한 것일지라 해도 알 필요도 알아서도 안되는 남의 사정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쉬운 직업은 없구나라는 생각에 더하여 세상에 갑질의 창의력 은 참으로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에 묵던 부산의 한 호텔에서 고층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툴툴거리다가 결국 방 교체를 요구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이즈가 훨씬 작았다. 똑같이 트윈은 맞는데 욕실도 작고 생활공간도 작은데 호텔리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는 걸 보고 그냥 참았는데, 호텔 가서 무슨 집 보러 온 사람들처럼 이방 저방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으며 없는 트집을 만들어 업그레이드를 요구하는 얌체족이 있다는 것도 첨 알았다. 그리고 세상 편한 직업이 호텔리어인줄 알았는데 그쪽 세계 나름대로 최고급 호텔이라 하더라도 혹은 최고급 호텔이기 때문에 치르는 댓가가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술술 잘읽히고, 호텔리어라는 직업적 묘사가 흥미롭다 단점은 인물의 성격이 별반 특징이 없이 직업 정신 투철한 모범적 스테레오 타입이어서 평이하다는 점이다. 사건의 진행도 느슨하고 범행동기와 진행도 억지스럽다. 세 건의 살인 사건에서 동일범임을 암시하는 듯한 숫자가 남겨진다. 숫자의 형식은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추측할 수 있는 위도와 경도이며 해당 위치의 살해 지점과 날짜와 조합한 것이다. 다음 사건 발생을 예고하는 장소는 코르테시아도쿄 호텔. 형사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호텔의 여러 포지션 으로 가장하고 동태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이 호텔은 도쿄 최고의 일류 호텔이고 호텔리어 나오미는 투철한 서비스 정신으로, 고객의 온갖 종류의 갑질과 생트집들을 ‘고객은 언제나 옳다’주의로 무장, 고객의 무리한 요구도 최선을 다해 제공하지만, 사건을 위해 호텔리어로 위장한 닛타 형사를 담당하게 되자 고객을 응대하는 형사의 태도를 고치기 위해 한동안 티격태격. 그도 그럴것이 닛타 형사 역시 형사로서의 직업정신이 투철하고 프라우드가 강해서 공손한 태도로 고객 응대 하지 못하고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 발끈하곤 하면서도 자신은 호텔리어로서의 이 일이 수사를 위한 일시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대충 해도 된다는 마인드 와 그렇게 되면 호텔의 소중한 고객이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정식 호텔리어와 똑같이 교육 받아야 한다는 나오미와 시시콜콜 부딪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소설이지만 실제로 피가 튀기거나 잔혹한 장면이 등장하지는 않고 터프 한 형사가 공손한 호텔리어가 되는 과정에서 인간적 성찰을 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만나면서 호텔리어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는데, 개인적으로 조금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던 점이, 호텔리어로서의 직업적 모습이 부유한 고객에 대한 무한 만족 서비스 제공을 지향한다는 점이 그랬다. 예를 들어 고객들은 일부러 담배를 피운 후 담배 냄새가 난다며 방교체를 요구해서 결국은 스위트룸으로 바꾸거나, 전망이 홈페이지 사진과 다르다거나 안좋은 영이 씌웠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방 교체를 요구하며 트집을 잡거나, 새치기를 하며 자신이 VIP 고객이니 먼저 처리해달라고 하는 등의 부당한 요구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의 응대를 존중하도록 요구된다. 

나오미는 특히 그런 부당함에 대해서도 고객의 입장에서 만족할 때까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직업윤리로 아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감정 노동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고 그러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권익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된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직업적 윤리관이 일본답다고 느꼈는데 그런 진상 고객을 만나 온갖 인격적 모욕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참아내는 것을 마치 성장이라도 한듯하게 그려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진상 고객은 오래 전 닛타 형사가 고등학생 시절 교생 실습으로 왔다가 닛타와 친구들의 못된 행동으로 실습을 포기하고 교사가 되는 일마저 포기한 채 이직업 저직업 전전긍긍하고 살다가 웬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대신 호텔 프론트에서 만나 알아보고 고객과 호텔리어라는 갑을 관계로 만났으니 단단히 복수하려던 거였는데,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낸 덕에 “왜냐고, 왜 화를 내지 않는 거야 왜 치고 덤비지 안 내면 말이야” 라는 오골거리는 멘트를 날려주시며 포기하게 만들고, 결국 나오미의 멘토링이 성공하여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훌륭한’ 호텔리어로 성장하게 되었으나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프로페셔널한 호텔 프란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 수사 팀 내에서 형사로서의 입지는 줄어들고 수훈을 세울 기회도 줄어들고 있었으니 이를 깨달았을 때는 방방 뛰어봤자 소용이 없다. 사건의 동기와 해결 과정은 좀 설득력이 떨어지고 얼버무린 듯한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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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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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0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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