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은 가고 추억은 남았다 1930 년대에 그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도박과 밀주, 범죄를 터전삼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터프한 인간들은 나름대로 희로애략 속에서 자신의 삶을 열심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러니언의 단편들은 느슨한 연결고리로 엮여 독특한 러니언의 세계관을 이룬다.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데이먼 러니언 단편집은 꽤 많은 단편들을 싣고 있는데, 모든 소설에서 화자는 동일 인물로 여겨지며 캐릭터 역시 일치한다. 그는 그 가난한 시대에 브로드웨이에서 어떻게든 먹고 사는 방법을 깨친 한 젊은이에 불과하다. 자신의 이야기는 없지만 그가 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들 한명 한명이 곧 자신일 수도 있다.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뮤지컬은 비록 관람하지 않았다 해도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세계 최다 공연 뮤지컬이다. 그 뮤지컬의 원작이 데이먼 러니언이라고 해서 별도로 원작 소설이 장편으로 나왔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데이먼 러니언은 주로 단편소설 만 썼다 장편도 썼는지는 모르겠다 찾아봐야겠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주요 스토리는 이 책에도 실린 두 편의 단편 <세라 브라운 양의 이야기>와 <혈압>을 기반으로 플롯을 따라가고, 이 밖에도 여러 편의 단편에서 극중 캐릭터와 배경 등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 단편집을 읽으면 대표작이 있기 마련이고 독자로서도 특별히 더 인상 깊은 작품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 집에서는 개별 단편 하나하나가 모두 동일한 비중으로 재미있었다. 일련의 단편 소설들울 통해 러니언이 구축해낸 가상의 세계 속 인물들의 성격과 묘사 방법 그 자체를 일컫는 말 러니어니스크(Runyonesque)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독특한 문체와 서술 방법이 읽는 재미를 준다. 애써 설명하자면 심각한 상황을 가볍게 묘사하는 재미랄까. 어릴 때 읽던 만화책이 생각난 건 그 때문이었다. 



데이먼 러니언의 단편에 나오는 인물들은 실제로 만나면 눈도 못마주칠 무시무시한 범죄자들, 갱단 멤버와 두목, 도박과 사기를 업으로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 중 덜 공포스러운 일을 하는 인물들의 직업이 금주법 시행 당시 밀주를 팔거나 경마장에서 말을 경기에 내보내거나 연극 비평을 하는 신문 기자 정도다. 각각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른 소설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모든 소설들을 다 합치면 전체적인 1920년대 1930년대 뉴욕 브로드웨이와 부르클린 거리의 구석구석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면을 드러내는 세계관이 펼쳐지고, 눈 깜짝 않고 아무렇게나 총을 쏘댈 수 있는 그 거친 인간들의 숨은 순정도 함께 진행된다. 갱단 두목쯤 되는 듯한 멋쟁이 데이브는 자신이 사랑하는 빌리 페리 양이 자기 대신 윌도 윈체스터라는 얼간이 가난뱅이 신문 기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쏴죽이는 대신 깜짝 결혼 파티를 열어주고( 광란의 40번대 구역에 꽃핀 로맨스), 도박으로 먹고 사는 무일푼 피트 새뮤얼스는 백달러 빚을 갚기 위해 자기 시체를 의사에게 팔고 남은 돈으로 사랑하는 쇼걸 오르탕스에게 보석과 선물로 마음을 사고 도박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지만 시체를 제공하기로 한 약속이 다가오자 의사가 칼을 들고 쫓아다니며 몇 배의 돈으로 계약을 취소하자고 제안하지만 통하지 않는다(아주 정직한 사내 a very honorable guy).

“거리의 다른 많은 사내들이 그러하듯 피트 새뮤얼 수가 가장 잘 하는 일이 곧 그의 직업이다 경마장과 클래스 게임과 권투 장은 들락거리며 마권업자 대신 수금을 해서 몇 푼 벌고 여기저기 조금씩 걸고 삐끼 노릇도 하는데( 아주 정직한 사내 중)”

아가씨와 건달들에 영향을 준 <혈압>은 의사를 만나 혈압에 안좋은 일들을 만나지 말라는 충고를 듣고 조용히 살려 했지만 뜻대로 안되고 최고 악명높은 갱단 두목 러스티 찰리를 우연히 만나 하루 종일 코꿰어 돌아다니며 온갖 깡패짓을 보조하다가 밤에 집에까지 따라가게 되는데 거기서 찰리의 진면목을 목격하게 되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부치 아기를 보다>가 가장 따뜻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 내용이었는데, 금고털이범인 부치가 결혼하고 애낳고 맘잡고 살려 하지만 동료들이 들쑤셔대서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화자가 알기에 전과 4범의 터프한 금고털이범 부치가 손가락을 우유병에 넣어 온도를 맞춰 우유를 주고 조심조심 케어를 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이 유독 인상깊다. 또한 아내가 아기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화낼까좌 처음에 거절하는 등의 소박한 소시민으로서의 모습 역시 재미있다. 아기가 울음을 터뜨려 일이 엉망으로 되어 가지만 또한 아기 때문에 위기를 모면하는 것까지 짧은 단편이 가진 희극적 힘 뒤에는 뭉클한 감동이 함께 한다. 

<브로드웨이 컴플렉스> 역시 짧은 단편에 극적 요소를 충분히 배합한 잘 짜여진 한편의 드라마다. 앰브로즈는 연극 비평 기자고 퍼거스 애플턴은 <네버네버> 연극의 주연배우인데 앰브로즈가 네버네버 혹평을 기사를 싣는 걸 계기로 악연이 시작된다. 이들은 러니언 소설들의 주요 배경이 되는 민디네 레스토랑에서 세실 얼이라는 사내와 엮인다. 세실 얼의 직업은 골든 슬리퍼 나이트클럽 사회자로 다중인격 소유자로 하버드 출신의 엠브로즈는 그에 대해 이런저런 컴플렉스라는 말로 그의 의학적 소견을 설명하며, 그가 읽은 책이나 영화 연극에서 암시를 쉽게 받는다고 부연한다. 원래 성격은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나 주로 다른 사람이 되어 산다 나폴레옹도 되고 일주일 내내 무솔리니로 살기도 하고 조지 버나드 쇼도 되고 흉포한 고릴라가 되어 공격적이 되기도 하지만 세실 얼 자신으로 돌아올 때만큼은 수줍고 조용하다. 

“세실은 가끔씩 다른 일을 다른 역을 연기하는 배우인 셈이었다. 다만 세 실은 자기가 연기하는 역의 인생을 진짜로 살려는 살려고 한다는 것이 었다. “(브로드웨이 컴플렉스) 

플로렌트 페이엣이라는 부자 가문 출신의 여배우가 세실 얼과 애플턴 사이의 삼각관계를 형성하는데 촉이 좋은 기자 앰브로즈는 페이엣이 세실 얼의 약점을 이용하고 조정하여 살인을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알아낸다. 결국 음모가 밝혀지고 해피앤딩으로 끝을 맺는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어두운 뒷골목의 불법이 판치는 이야기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말랑말라한 감정이 불행마저도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방식으로 끝을 내기에 단편들이 많이 영화화한 듯하다. 데이먼 러니언 원작의 영화를 검색하면 수도 없이 많이 나온다. 다 옛날 영화이긴 하지만 러니언 시대에 그의 명성과 인기를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애매하고 상징적인 순문학의 난해함에 지쳤다면 기분 전환용으로 하나씩 아껴사며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이제껐 안읽었었다니, 반성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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