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이 지나고 냉혹한 역사와 무정한 시간 속에 무너져내린 고대 도시의 황폐기둥 벽에 새겨진 장면들과 깊은 골짜기에 숨겨진 파라오들의 무덤 속에 파묻혔던 유물들을 보는 데 그 공간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들을 예술로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유물과 함께 하는 역사서에 가깝다. 현재까지 4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책 1권은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을 다룬다. 난처한이라는 인물과 화자가 대화를 주고 받으며 강의식으로 쓰여있는데 난처한이라는 말은 세계 여행 다니며 곳곳의 문화 유산과 미술관을 다리아프게 열심히 다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난처한 독자를 위한 책이며 또한 <난생 처음 공부하는>이라는 소제목의 약자로도 쓰였다. 그만큼 대상 독자는 확실하다. 미술의 문외한,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깊이있는 해석보다는 이해되는 설명을 원하는 독자, 난해한 미학적 개념보다는 쉽고 재미있게 미술품을 관람하고 싶은 독자에게 선호되는 책이다. 540쪽으로 엄청 두꺼운데 사진이 많이 들어 있고 대화체라 쉽게 읽히며 밀도가 높지 않아 읽는 빠르게 읽힌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설명에 충실한 사진자료들이었다.자료의 출처를 뒤편에 인덱스로 나열한 것만 뺏빽하게 2페이지에 달하는데, 설명할 때 그림을 일일히 뒷장의 어디어디를 보라는 식으로 가리키며 하게 때문에 시각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럽다. (그림 없이 그림을 설명하는 책이 제일 싫다) 미술 하면 회화가 얼핏 떠오르는데, 고대 미술에서 현대에 우리가 미술 하면 떠올리는 종류의 캔바스화 같은 것을 그렸을 리도 남아 있을리도 없다. 그렇다고 해도 미술이 존재하지 않음 건 아니어서 오늘과는 다른 개념의 미술활동을 했고 그것을 남겼다. 예술 활동이란게 존재하지 않았을 법한 선사시대에는 수 천 년이 지나도록 생생하게 남겨져 당대의 정신활동과 생활을 추측할 수 있도록 동굴 벽화를 그렸고 그들이 사용했던 돌칼 돌도끼 등의 도구와 빗살무늬토기는 그것들의 생김새가 단순히 실용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정신적 흔적을 더듬게 한다. 거대 권력이 문명을 지배했던 고대 이집트인과 메소포타미아 인들은 벽면에 그린 회화 대신 그들의 문화와 생활 공간 그 자체에 거대 예술을 새겼다.
종교의 탄생은 인간이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기반이 되는 것 같다. 무언가를 바라고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갈구하는 행위를 구체화 시키는 과정 중 탄생한 산물이기도 하다. 왕권과 신권이 공존하면서 일부 예술의 형태는 정형화 당대의 사상에 부합하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진 규칙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 이집트 유물에 그려진 그림의 천편일률적인 파라오들의 모습, 옆얼굴에 몸은 앞면 발은 한발작 앞으로 나아간 모습 등 옆면 등의 표현은 그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한다.
까마득한 고대의 예술을 본다는 것은 충분치 않은 자료 속에서 당대의 사회 문화를 추측하고 상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고대 유물들을 모두 예술품의 범주에 넣는다. 그저 술과 곡식을 담았을 뿐이었던 항아리 와 그저 왕이 앉아 있었을 의자 하나 그저 그들의 생활 공간 속에서 공간의 용도를 나누었을 뿐이야 떤 벽과 벽에 새긴 부조를 이 모든 것들이 예술이다. 그러므로 지나간 삶, 돌이킬 수 없는 역사, 기록이 부재한 역사 속 상상이 지배하는 고대인의 삶의 흔적은 터럭 만한 것이라 해도 예술이 된다. 그 미지의 신비한 것들이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대화체가 조금 산만하게 느껴지긴 했는데, 교수님과 난처한 군 두 사람의 대화에서 난처한 군이 하는 역할이 딱히 없고 주제 전환 역할을 주로 하는데 이상하게 맥이 좀 끊기는 느낌이다. 전에 읽은 <유물로 읽는 이집트 문명-김문환저>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이집트 파트는 그 책과 성격이 비슷하므로 고대 이집트의 보다 상세한 역사와 유물을 읽고 싶다면 함께 읽기로 추천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그 흔적이 아쉽게도 분쟁지역에 남아 있어 우리가 여행을 통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초기 수메르 문명부터 도시국가의 시기를 거쳐 히타이트와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알렉산더 등의 역사 이야기를 생생한 사진 자료들과 함께 통우로 훑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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