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들에 비해, 전승으로 기록된 버전이 몇 안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 에다 이야기는 12세기 중세 아이슬랜드의 음유시인 스노리 스툴루손이 쓴 것으로 근대 이전까지 유일한 에다 이야기여서 에다(Edda)로 불렸었는데, 1600년대에 운문으로 기록된 고대 게르만 신화집들이 아이슬랜드의 교회에서 발견된 이후 스노리의 에다는 산문 에다로 불리우고, 새로 발견된 고대 운문 신화집을 운문 에다라고 부른다고 한다. 국내에는 북유럽 신화의 1차 사료로, 산문 에다를 번역한 이 책 <에다 이야기>와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운문 에다를 번역한 <에다> 두 권 뿐이다. 이 밖에도, <베어울프>, <덴마크인의 역사적 이야기>  <니벨룽엔의 노래> 및 북유럽 영웅 서사시들이 있는데, 역자 설명에 의하면, 이 책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의 입장서 가공되어 있거나 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영웅의 이야기(지그프리드와 베어울프)를 중심으로 하기에,   온전하게 게르만 신화 를 전달하는 신화적 가치를 가진 책은 두 개의 에다에 집중된다고 한다.  





고대의 세계관 속에서, 하늘과 대지와 지하 세계가 똑같이 중력의 법칙을 받은 것처럼 성을 짓고, 공간을 창조하여 인간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증오하며 살아간다. 하늘 높이 올라가면 그 꼭대기에 천정이 있고, 그 위에 어떤 세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같다. 그 이름도 멋진 아스가르드는 아스 신들이 사는 성의 이름이다. 신들도 두 개의 종족이 있는데 하나는 바나헤임에 살고 있는 반(Vanr) 신족이고 또 하나는 아스(Ass)신 족으로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토르는 아스신족 출신이다. 또한 하늘에는 신보다 한 계급 낮은 엘프들이 엘프하임에 살아간다. 반면 지상에는 인간과, 거인, 난쟁이들이 각각 미드가르드, 요툰하임 니다벨리르에서 살아가는데, 신, 인간, 거인들은 자기들끼리 살아가기는 하지만 서로 교류(주로 싸움질)한다. 지하세계는 죽은자들의 세계로 헬, 니플헬, 니플헤임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인들이 죽으면 지하세계로 가지 않고 최고신인 오딘의 궁성 발할로 가서 낮에는 전쟁 연습을, 밤에는 먹고 마시며 파티를 하며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이 죽은자들의 군대는 이름이 에인헤레르로 불린다. 태초부터 전투에서 죽은 자들이 발할로 가면, 그곳에는 그 군사들의 수는 엄청나게 많으며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진다. 이렇게 그 공포스런 ‘죽은자들의 군대‘는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에서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요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데, 신화는 그들의 식생활까지 묘사한다. 수퇘지를 솥에 삶아 먹이면 저녁이면 그 수퇘지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반면 오딘의 주식은 포도주로 음식을 먹지 않고 포도주만 마신다.) 


당시 먹는 일은 생존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터여서 먹는 일에 관련된 일화가 많고, 토르에게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토르가 로키와 함께 염소들이 끄는 전차를 타고 길을 떠나, 어느 농부 집에서 하루 묵었을때 전차를 끌던 염소를 잡아 먹고는 망치 묄니르로 그 염소를 다시 살리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염소는 낮에는 썰매를 끌고 밤에는 살신성인 잡아먹혀 식량을 대주고 아침이면 다소 살아나 똑같은 노동과 희생을 반복한다. 아마도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런데 이 일화의 포인트는 토르가 농부에게 뼈를 발라 먹고 불 위에 던지라고 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뼈를 골수까지 파먹어서 생기는 결과에 있다. 당연호 자기 말을 잘 들었을 줄알고 담날 주문으로 염소를 살려내자, 염소 중 한마리가 다리를 절게되는 게 토르에데 발각되기 때문이다. 골수를 파먹은 사실이 들통나자 농부와 가족은 죽음의 위협울 받는다.


유일신을 믿는 가치관이 2천년간이나 지배하고 있던 서유럽 문화가 마치 유일신 만큼이나 유일한 진실인양 세계화된 이래로, 다양한 층위의 세분화된 세계관 속에서 다원적인 종족들의 탄생과 삶,  종말, 그리그 그 이후의 세계까지 이야기되고 있는 북유럽신화는 매력적인 판타지 소설의 모티브가 되기에 충분히 신선하게 느껴진다. 하늘과 땅 사이 아스가르드와 미드가르드 사이의 다리는 영화 <토르>에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멋지게 해석되었는데, 신화 속에서는 무지개 다리이며 무스펠의 아들들이 진군해올 때 무너진다. 다리가 무너지는 것은 세계의 종말을 뜻한다. 


에다 이야기에서 종말은 끊임없이 환기되는 테마이기도 하다. 라그나뢰크라 불리는 이 사건은 <왕좌의 게임>의 모티브를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데, ‘먼저 무시무시한 겨울이 닥치‘면서 시작된다. 그 후 ‘눈이 하늘 사방에서 내리고 강력한 서리와 매서운 바람이 지배‘하고 ‘태양은 더 이상 세상을 비추지 않는다‘. ‘온 세상에서 살육이 난무하는 참상이 뒤따르는‘ 세 번의 겨울에 탐욕에 눈이 멀어 친인척과 부모 자식을 서로 죽인다. 늑대와 뱀의 시대가 와서 태양과 달을 삼키고, 하늘이 굉음을 내며 쪼개지고 무스펠의 아들들이 몰려오면 비프뢰스트 다리가 붕괴되고 세계수 위드그라실이 진동하면 에인헤례르들도 무기를 들고 싸우나 결국 오딘도, 토르도, 로키도 늑대도 적도 아군도 모두 서로 싸우다가 전멸하고 불탄다는 예언이 도처에 등장한다. 하지만 그 종말 이후에 바다에서 육지가 솟아오르고 비다르와 발리라는 듣보잡신이 살아있을 것이며, 토르의 아들들이 살아 돌아와 토르의 망치를 소유하고 숲에 숨어있던 두 명의 남녀가 살아남아 종족을 번식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 예언된다. 현재는 파괴로 향해 가고 있고, 그 파괴와 종말 뒤에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는 것은 우주 역시 끊임없는 순환 속의 한 부분임을 상기시킨다. 



크게 1부 궐피의 홀림과 2부 스칼드의 시 창작법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궐피의 홀림은 스페인의 왕인 궐피가 아스족에 대해 알고 싶어 아스가르드로 여행을 떠나 세 신들을 만나 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고, 문답식으로 되어 있다. 2부 스칼드의 시 창작법은 말 그대로 음유시인들이 시를 짓는 방법에 대해 기술하는 신화로서는 굉장히 낯선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내 생각에 스칼드들이 노래하는 내용이 신화들이고, 그 노래 가사들을 어떻게 창작해야 하는지를 가르키는 교과서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신화랑 무슨 관계냐 하면, 음유시인들이 노래하는 것이 신화를 단순하게 읊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서사시의 형태로 노래하는 것이므로, 이 노래 가사를 어떻게 창작해야 하는지를 알려면 신화의 내용을 알아야 하고, 신화에서 말해지는 각종 은유에 대해 알아야 된다. 


시문학의 본질은 (비유적) 언어와 운율이고, 표현하는 방식에는 사물의 이름을 그대로 부른 방식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방식, 그리고 케닝이라고 하는 이름의 앞에 형용사를 붙이는 방식이 있다고 전한다. 예를 들어 토르는 오딘의 아들, 시프의 남편 같은 사실적인 표현 외에도, 아스가르드의 수호자, 거인의 적 등으로 불린다.  스칼드의 시 창작법에는 이렇게 어떤 사물이 왜 어떤 (관용적)표현으로 불리게 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금이 에기르(바다)의 불, 시프의 머리카락, 글라시르의 나뭇잎,  풀라의 머리띠, 수달의 배상금 등으로 불리는 이야기들이 차례차례 소개되다가, <반지의 제왕>을 떠올리게 하는 안드바리 저주의 실현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로키가 아스신들이랑 세상 구경을 가서 놀다가 수달로 변한 한 농부의 아들을 돌팔매질로 죽여서는, 한 농부의 집에 가서 요리해달라고 맡겼는데 알고보니 죽은 수달이 그 농부의 아들이었다. 이 신들이 자신들의 필사기 무기로 무장을 하지 않으면 힘이 없는데, 농부는 화가나서 그들을 급습하여 붙잡았고, 목숨을 구걸하자, 수달 가죽을 다 덮을수 있을만큼의 금을 요구했다. 오딘은 로키를 검은 엘프들의 땅으로 보내 난쟁이 안드바리에게서 금을 탈취하고 마지막 남은 반지마저 빼앗자, 안드바리는 그 반지를 소유한자에게 저주를 내렸다. 이후 농부의 아들들은 농부를 죽이고 형제들마저 자기들끼리 싸워 죽이는 등 반지를 탐내는 자들에게는 계속 불운이 겹친다. 


이 저주의 반지 이야기는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가 생각나는 시구르드의 반지 이야기로 이어진다. 농부를 죽인 아들 형제 중 한 명인 레긴은 형 파프니르에게 밀려 도망가 대장장이가 되어 뵐승왕의 아들 시구문드(지그문트)의 아들 시구르드(지그프리트) 를 맡아 길렀고, 자기 형의 금을 차지하기 위해 그람이라는 강력한 칼을 만들어 주고 부추겼다. 파프니르의 심장을 구워먹고 새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생긴 시구르드는 레긴이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를 죽여버린다. 이후 시구르드가 마법에 빠져 잠든 부른휠드를 깨워주었는데, 이 책에는 둘 사이의 러브라인이 보이지 않지만, 결국은 시구르드와 시구르드의 부인, 부른휠드와 부른휠드의 남편 이들의 관계가 복잡한 러브라인과 탐욕 속에서 소용돌이 치며 서로 죽고 죽이는 불행한 스토리로 이어진다.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배반하고 상처받고 싸우고 공멸하는 이야기들이다. 결국은 그 모든 번영과 영광과 행복을 뒤로 하고, 궁극의 시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란 걸 춥고 긴 겨울을 보내며 만들어 나가던 북유럽인들은 알고 있었다.  스칼드의 시 창작법을 읽으면 운문 에다는 훨씬 읽기가 어려울 것 같다. 여러 시들의 예시를 보면, 은유와 비유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해석을 읽을 수 있게 해놨을테니 다음 번엔 <운문 에다>를 읽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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