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니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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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안부를 건네는 인사

 

 톤 텔레헨의 소설 <잘 지내니>를 품에 안았다. 전작 <고슴도치의 소원>(2017,arte)을 감동적으로 읽었던 터라 그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예전에는 서신을 통해서만 마음을 주고 받았던 일이 요즘에는 편지 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통해 이메일을 보내도 되고, 핸드폰에 통화나 문자, 카톡 심지어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안부를 건넬 수 있는 채널을 많고도 많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진심을 꾸욱 눌러 담아 그이에게 안부를 전할까. 많은 채널을 두고도 우리는 점점 시베리아 바람이 부는 듯 영글어진 마음 보다는 가벼운 인사말만 핑퐁처럼 주고 받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그들의 인사가, 이야기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깊이 느끼기가 어렵다. 나 또한 언젠가부터 꾹꾹 눌러쓴 편지 보다는 이메일이나 문자로 가볍게 그들의 안부를 건네곤 한다. 아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월이 흘러 바뀐 변화에 맞춰 서로의 이야기를 건낸다.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이지만 그의 책은 언제 읽어도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무엇이든 쨍하고 선명한 느낌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건네는 인사만큼은 섬세한 빛의 파스텔톤 같은 연한 빛깔이 좋다. 강렬하게 사로잡는 이야기도 좋지만 우리가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되돌아보는 것도 좋고, 누군가를 생각해 마음이 한없이 툭하고 떨어졌다가 그가 건네오는 안부에 환하게 빛나는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혼자와 함께.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우리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이 기분좋게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다람쥐가 고슴도치, 하마, 등점박이 말파리, 흰개미, 카멜레온등 저마다의 고민으로 점철된 이야기를 누군가의 다정한 손짓으로 그들의 고민을 무장해제 시켜 버린다. 자신의 정체성을, 누군가에 대한 동경을, 고독감을, 자신의 생일 날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쓸쓸함을 각각의 동물들을 통해 느껴지는 변화의 면면이 느껴진다.


 


삶의 순간순간 들어서는 우울감이나 고독,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마치 나의 이야기 같았다. 순간의 절망감에 자신의 몸에 있던 가시를 빼 버리고 절망감에 젖어있던 고슴도치를 안심시키고, 고슴고치의 가시를 하나하나 심어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일러스트가 너무 귀여워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톤 텔레헨이 그리는 동화의 이야기는 더운 여름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마음의 청량함이 느껴진다. 겨울이라면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이라 그의 글을 읽을 때면, 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 같다. 각각의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가 물밀듯 넘실거리며 복잡한 내면의 이야기를 동화와 철학적으로 따스하게 녹아낸 작품이다.


다람쥐는 생각했다. 이 밤에 하늘을 마주하고 창가에서 있는 건 바로 지금, 그러니까 나는 그저 현재에 있는 거라고. 어쩌면 개미가 맞을지도 몰라. 나중은 아무것도 아니지도. 그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의 반대는 뭐지. 무엇인가? 아니면 아무것인가? 예전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했을까, 아니면 존재하지도 않았나?  -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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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진실 - 우리는 어떻게 팩트를 편집하고 소비하는가
헥터 맥도널드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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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진실을 찾아서


 TV속에 TV를 보는 기분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 TV나 신문만이 있었던 시절에는 진실을 기반으로 기자들이 취재한 것들을 모든 이들이 사실처럼 믿곤 했다. 시대가 지나면서 매체는 확장되고, SNS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다. 무엇을 보고, 진실에 기반하는지 모를만큼 모든 것이 확장된 시대이기도 하지만, 많은 정보들이 모두 팩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우리는 뉴스나 신문의 기사를 볼 때도 그들이 말한 의도에 대해, 배경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무엇을 노리고 그 발언을 했는가에 대해서.


비단 뉴스만이 아니라 우리가 배웠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역사책' 마저도 승자의 기록을 담았을 뿐 패자의 시선은 배제되었다. 시간이 지나 학교에서 배웠던 이야기들이 몇 번이나 시선을 뒤집으며 역사적 배경이 바뀌고, 관점이 바뀌어 버렸는지 지난 경험을 통해  알게되었다. 헥터 맥도널드의 <만들어진 진실>은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진 진실의 시대를 살고 있고, 어떻게 편집된 진실을 속성을 느끼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일전에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에서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이들의 모습을 마치 르포르타주처럼 그려 놓았다.이 책을 읽을 때 까지만 해도 가짜뉴스에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몇 달 전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앞의 아주머니가 카톡 알람소리를 듣고 핸드폰을 보더니 주변에서 보내온 유튜브의 영상을 보고 계셨다. 신변잡기의 내용이 아닌 정치적인 뉴스였고, 이내 그것을 보며 같이 온 일행에게 마치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영상 속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자신의 느낌을 덧붙여서.


편집이란 그런 것이다. 진실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고,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 생략과 관계없는 뉴스로 자꾸 말을 만들어 내거나 이전에 부분적인 이야기를 관련시키며 이야기 하는 것이다. 헥터 맥도널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들을 예시로 들어 쉽게 우리가 목도하고, 선택하는 팩트들 사이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조장하고, 늘려가지를 세밀하게 꼬집고 있다. 장님이 코끼리의 어디를 만지느냐에 따라 코끼리의 모습은 각각 다르게 표현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서의 철수와 영국의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왜 다른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이처럼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하고, 편집하느냐에 다라 시선이 달라진다. 알고 있었음에도 <만들어진 진실>을 읽고 있으니 우리가 읽고 있는 모든 이야기 조차도 의심하게 된다.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은 이야기만을 청취하고, 느끼고, 보며 진실의 면면을 오독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자 현재 사회의 한계점으로 느껴질지 모르나 부분적인 진실로, 유리한 기준의 설명으로, 집단적 특수성으로, 통계를 내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들을 더 크게(혹은 더 작게) 그려내는 일을 통해 자신이 믿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책은 그런 것에 현혹되지 말고 스스로가 오도자가 되지 않으며, 조심해야 할 사람들에 대해 일갈도 잊지 않는다. 많은 사건의 진실 속에서 우리가 진짜 이야기를 찾고 적확하게 판단하는 법을 명확하게 일러준다. 각종 사례를 읽는 재미와 때때로 우리가 믿었던 진실 사이에서 색깔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견고하게 보여주는 책이었다. 마치 세상을 보는 렌즈를 다시 세척하고 바라보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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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자세히 보겠지만 노련한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현실을 재구성하기 위해 온갖 분야에서 편집된 진실이나 숫자, 스토리, 맥락, 바람직함, 도덕성 등을 적극 활용한다. - p.20


확증편향이란 새로운 진실이 기존의 사고방식과 일치하면 잘 받아들이고, 기존의 확립된 시각과 배치되면 저항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 p.25


우리는 다들 서로 다른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렌즈는 대개 우리가 듣거나 읽는 서로 다른 진실에 의해 형성된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사람들은 계속해서 진실의 어느 한 측면 내지는 어느 한 해석 쪽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 p.26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사람도, 조직도, 국가도 자신이 채택한 정체성에 의거해 행동한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우리는 역사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오세아니아 관료들이 역사를 새로 쓰려고 기를 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과거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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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
오키타 밧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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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


 만화가인 오키타 밧카의 자전적 코믹 에세이이자 이 만화는 초등학교 때 학습장애 (LD)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받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발달장애'라는 개념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시절이라 그 누구도 그녀의 행동이 병에 의해 행동을 하는 거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자랐다. 남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 부모 조차도 그렇게 살아왔기에 당연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하기를 바랬던 '어른'들은 저마다 아이를 그렇게 다루었다. 남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행동하라고. 그러나 아이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지 못했다.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아이를 다그쳐 댈뿐 그 누구도 아이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이는 선생님과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아이에게 놀림과 폭력이 자행되어 맞는 일이 더 많아졌다. 이리 퍽~ 저리 퍽! 동네북이 되어 선생님에게 맞는 횟수가 늘어 날수록 아이는 선생님이 미워졌고, 급기야 성폭력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남자 선생님이 아이의 가슴을 만지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아이의 울분과 상태를 알아주지 않았다. 만화는 쉼없이 재미있게 읽히지만 아이가 당했던 수많은 폭력들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만큼 빠르게 다가왔다.

자신을 제일 잘 알아줄 것 같은 엄마 역시도 그녀를 다그쳐 댈뿐 왜 그녀의 행동이 남들과 다른지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만화 속에서는 그녀의 주변에 많은 아이들과 부모, 선생님이 등장하지만 단 한명만이 그녀를 다그치치 않고, 긍정적으로 그녀를 보아준다. 다행이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녀에게 글감이 되기도 하지만 그녀가 겪은 억압과 폭력들이 얼마나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해하지도, 이해받지도 못한 한 소녀의 모습. 어느 곳에서도 그녀의 행동과 말, 사회성이 결여된다는 이유로 많은 오해를 받지만 그럼에도 후에 산부인과 간호사가 되었고,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단지 지나가는 나날이 아니라 지금도 발달장애를 앓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만화가의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까지의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잘 못했으면 그녀를 막다른 길로 사그러질뻔 했으나 다행히 동전의 양면을 뒤집듯 살고자 하는 의지로 다시 생을 이어 나간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는 이보다 더 나은 시간들을 보내며 지냈다고 어른 니트로가 소녀 니트로에게 말해준다. 정말 다행이다,싶은 이야기였지만 사람들의 몰이해가 얼마나 큰 폭력인지를 오키타 밧카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평범한 것이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어려운 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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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제니 로슨 지음, 이주혜 옮김 / 김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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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하게 행복하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위로 올라갔다가 점점 수면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내려가는 제니 로슨의 이야기는 세상 밖으로 던져졌다가 다시 툭하고 제자리로 찾아 돌아온다.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야기가 강하게 밀려들듯 하다가 어느 순간 그녀의 마음과 몸속으로 침투한다. 최고와 최하의 공간 속에만 있다보니 중간의 지점에서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글 속에서 튕겨져 나가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갖고 있는 병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릴적 나는 아직 진단받지 않은 불안이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빈 장난감 상자에 들어가 숨는 것으로 불안을 고쳤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를 고립시켜 고쳤다. 대학에 다닐 때는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마다 먹는 것으로 보상하는 섭식 장애를 고쳤다. 어른이 된 지금은 약말과 정신과 상담 그리고 행동요법으로 고친다. 내가 얼마나 미쳤는지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해지는 것으로 통제한다. 그리고 가끔은 다른 선택안이 없어서 그냥 병이 나를 통제하게 놔두는 식으로 통제한다. - p.29


뉴스를 보다보면 많은 질병에 대해서 한쪽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가 있다. 계속 반복되어 사건들이 일어나다보니 사람들은 범인이 갖고 있는 병에 대해서 주목하게 된다. 더불어 그가 갖고 질병이 감경의 조건이 되다보니 많은 공분을 사다보니 사건과 관계없는 투병을 하는 이에게도 절로 화살이 돌아온다. 개인의 질병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갖는 문제점에 대해 관리나 해결방안 없이 홀로 그 병을 앓고 있는 이에게만 주홍글씨가 씌어진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어떤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절로 마음에 상처가 있다고 하면 절로 그들을 제대로 보기 보다는 스스로 피하게 된다.


제니 로슨은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꿰뚫어보이듯 자신이 갖고 있는 병에 대해 여과없이 보여준다. 마치 매일 밥 먹었어? 하는 어투로 그녀는 그녀가 처방받은 약이나 검사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녀의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들도 거리낌없이 가족들에게 안부인사처럼 주고 받는다. 남편 빅터는 그녀의 모습에 놀라거나 혹은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며 타박대신 농담으로 일축한다. 그녀의 엄마 역시 그녀를 미친사람이라며 욕하는 대신 차라리 미친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하며 쿨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가족들의 반응이야말로 그녀가 평온하게 삶을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수면장애, 정신병, 우울증, 자해, 피부 긁기 등 그야말로 잦은 사고들이 따른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항우울제 치료제를 받거나 각종 약을 먹으면서도 그녀는 약에 대한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을 빗대어 말하기도 하고, 약이 주는 반응이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해 유머러스있게 말한다. 우리라면 이런 상황을 여러번 마주 한다면 그녀와 같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낙인이 찍히고, 정신이 아픔에도 정신과에 조차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 속에서 당당하게 책을 출간하고,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을까.


그런 점에 있어서 그녀의 글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좋은 쪽과 좋지 않는 쪽의 저울 에서 우리는 나쁜 쪽만을 계속해서 바라본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 받은 이들만 과연 정신이 안 좋은 환자에 속하는 것일까. 때로는 정신과에 가지 않아도 약을 먹지 않아도 기분이 롤러코스터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색안경을 끼고, 그들이 행하는 일들을 보면서 서서히 피해가는 모습들이 오버랩 되는 가운데서도 그녀는 자신만의 생각을 강렬하게 끼워 넣는다. 자신 또한 격하게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그래서 더욱더 그녀의 롤러코스터 같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체념과 많은 상황을 바라만 봐야하는 상황처럼 주변의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대한다면, 칼럼리스트이자 파워블로거인 제니 로슨처럼 사회의 안전망 속에서 오롯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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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드랑이와 건자두
박요셉 지음 / 김영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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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의 자발적 일상 표류기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는 터라 글을 쓰는 작가의 에세이와 더불어 그림을 그리는 이들의 이야기는 꼭 읽어본다. 문장에 있어서 만큼은 작가의 이야기가 더 내밀하고, 풍성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나 화가,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는 묶여있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다. 박요셉 일러스트레이터의 에세이 역시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제목만큼이나 이전에 보지 못했던 그림이 날큼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고, 색지를 더해 책은 마치 수박을 베어 물듯한 디자인에 그의 내밀한 일상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요즘에는 무거운 이야기 보다는 가벼운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보니 책의 물성이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겨드랑이와 건자두>는 자발적으로 집에서 작업을 하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를 일상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위트있게 그려냈다. 엽편처럼 짧게 짧게 그려진 이야기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이 그려낸 결과물에 대해 자신감과 클라이언트들과의 약속을 중요시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에 대해 침범을 당하면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일을 중단하는 지도. 많은 이들과의 일이 손쉽지 않지만 누구보다 열정을 다해 일을 하는 그의 모습들이 멋있게 느껴졌다.

그의 이름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작업했던 브랜드들이 낯이 많이 익을 만큼 화려하다. 아모레퍼시픽을 시작으로 미샤, 오설록, 설화수, 해피바스, 현대카드, 아디다스등 브랜드들이 그의 작품들과 콜라보한 작품들이 많았다. 독특한 그림체의 일러스트와 그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다른 색감을 나타내는 글이어서 더 특색있게 느껴졌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글이 좋았고, 많은 글을 쓰지 않아도 그가 그러내고자 하는 색깔과 약속,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읽다가 싱긋 웃기도 하고, 유난히 뜨거운 것을 못 먹는 것에 대해서는 '고양이 혀'라는 이름을 명명해 주어서 고맙기도 했다. 남들은 뜨거운 것도 잘 먹는 반면 나도 뜨거운 것을 잘 못먹다 보니 음식이 나오면 조금 식힌 후에 먹게 된다. 물론 뜨거운 국물을 목에 넘기면 오~시원하다고 느끼지만 남들보다는 빨리 느끼지는 못하는 편이다.

금도끼와 은도끼처럼 매체에서 수저론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다보니 이제 식상하게 느껴졌지만 '멘탈 금수저'라는 그의 이야기가 건강하게 들린다. 멘탈이 강한 이의 이야기라 더 건강한 느낌이 들었고, 쾌활하면서도 긍정적인 마인드의 이야기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느낌표 가득한 글이나 감성적인 이야기가 아닌 그가 보내온 시간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좋았던 책이다. 다음에는 짧은 엽편의 이야기가 아닌 조금은 긴 이야기로 그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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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무늬


여행은 돌아온 시점부터가 시작이다. 시작이 지날수록 불필요한 기억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좋았던 , 혹은 인상적이던 기억들이 서로를 끌어당겨 결국엔 완벽한 하나의 아름답고 단단한 여행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 기억의 무늬를 하나하나 더듬으며 마음껏 탐하다 지루해질 즈음에 다시 떠남으로써 비로소 여행은 마무리된다. 어쩌면 여행은 떠난다는 행위 자체는 거대한 여행과 여행 사이에서 잠시 쉬어 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p.32


나는 내게 시작이 많으면 대단한 작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타성에 젖어 꼼짝도 못 하는 나를 볼줄은 몰랐다. 당분간은 근본적인 질문에 집착한 예정이다. 우선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어떤 식으로 사물을 인식하는지까지도. 그리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좋은 이야기를 쌓아가고 싶다. 남의 이야기를 돌보느라 미처 살펴보지 못한 나의 이야기들을.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간다. - p.66


# 네코지타


유난히 뜨거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데, 오늘 책을 읽다가 우연히 '고양이 혀'라는 일본식 표현을 발견하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네코지타'라고 하던가. 그동안 바보 같은 혀라고만 생각했는데 엄현히 그것을 지칭하는 이름이 있다니! 남들처럼 얼큰하고 뜨뜻한 짬뽕을 한입에 들이켜진 못해도 '나는 고양이 혀니까 괜찮아'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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