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와 건자두
박요셉 지음 / 김영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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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의 자발적 일상 표류기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는 터라 글을 쓰는 작가의 에세이와 더불어 그림을 그리는 이들의 이야기는 꼭 읽어본다. 문장에 있어서 만큼은 작가의 이야기가 더 내밀하고, 풍성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나 화가,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는 묶여있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다. 박요셉 일러스트레이터의 에세이 역시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제목만큼이나 이전에 보지 못했던 그림이 날큼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고, 색지를 더해 책은 마치 수박을 베어 물듯한 디자인에 그의 내밀한 일상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요즘에는 무거운 이야기 보다는 가벼운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보니 책의 물성이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겨드랑이와 건자두>는 자발적으로 집에서 작업을 하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를 일상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위트있게 그려냈다. 엽편처럼 짧게 짧게 그려진 이야기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이 그려낸 결과물에 대해 자신감과 클라이언트들과의 약속을 중요시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에 대해 침범을 당하면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일을 중단하는 지도. 많은 이들과의 일이 손쉽지 않지만 누구보다 열정을 다해 일을 하는 그의 모습들이 멋있게 느껴졌다.

그의 이름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작업했던 브랜드들이 낯이 많이 익을 만큼 화려하다. 아모레퍼시픽을 시작으로 미샤, 오설록, 설화수, 해피바스, 현대카드, 아디다스등 브랜드들이 그의 작품들과 콜라보한 작품들이 많았다. 독특한 그림체의 일러스트와 그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다른 색감을 나타내는 글이어서 더 특색있게 느껴졌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글이 좋았고, 많은 글을 쓰지 않아도 그가 그러내고자 하는 색깔과 약속,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읽다가 싱긋 웃기도 하고, 유난히 뜨거운 것을 못 먹는 것에 대해서는 '고양이 혀'라는 이름을 명명해 주어서 고맙기도 했다. 남들은 뜨거운 것도 잘 먹는 반면 나도 뜨거운 것을 잘 못먹다 보니 음식이 나오면 조금 식힌 후에 먹게 된다. 물론 뜨거운 국물을 목에 넘기면 오~시원하다고 느끼지만 남들보다는 빨리 느끼지는 못하는 편이다.

금도끼와 은도끼처럼 매체에서 수저론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다보니 이제 식상하게 느껴졌지만 '멘탈 금수저'라는 그의 이야기가 건강하게 들린다. 멘탈이 강한 이의 이야기라 더 건강한 느낌이 들었고, 쾌활하면서도 긍정적인 마인드의 이야기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느낌표 가득한 글이나 감성적인 이야기가 아닌 그가 보내온 시간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좋았던 책이다. 다음에는 짧은 엽편의 이야기가 아닌 조금은 긴 이야기로 그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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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무늬


여행은 돌아온 시점부터가 시작이다. 시작이 지날수록 불필요한 기억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좋았던 , 혹은 인상적이던 기억들이 서로를 끌어당겨 결국엔 완벽한 하나의 아름답고 단단한 여행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 기억의 무늬를 하나하나 더듬으며 마음껏 탐하다 지루해질 즈음에 다시 떠남으로써 비로소 여행은 마무리된다. 어쩌면 여행은 떠난다는 행위 자체는 거대한 여행과 여행 사이에서 잠시 쉬어 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p.32


나는 내게 시작이 많으면 대단한 작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타성에 젖어 꼼짝도 못 하는 나를 볼줄은 몰랐다. 당분간은 근본적인 질문에 집착한 예정이다. 우선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어떤 식으로 사물을 인식하는지까지도. 그리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좋은 이야기를 쌓아가고 싶다. 남의 이야기를 돌보느라 미처 살펴보지 못한 나의 이야기들을.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간다. - p.66


# 네코지타


유난히 뜨거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데, 오늘 책을 읽다가 우연히 '고양이 혀'라는 일본식 표현을 발견하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네코지타'라고 하던가. 그동안 바보 같은 혀라고만 생각했는데 엄현히 그것을 지칭하는 이름이 있다니! 남들처럼 얼큰하고 뜨뜻한 짬뽕을 한입에 들이켜진 못해도 '나는 고양이 혀니까 괜찮아'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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