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알남의 영어의 진실 : 영단어
양승준 지음 / 길벗이지톡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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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한 번째 영단어를 공부하는 시간


​매주 한 주의 시간이 금방 흘러가네요. <영알남의 영어의 진실>을 공부한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 한 번째 시간을 마주 하게 되었네요. 영단어를 외울 때 두꺼운 단어책만 붙잡고 있었는데 진작 이런 책을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다싶을 정도로 재밌게 공부하고 있어요. 단편적인 단어의 의미만이 아니라 단어의 기본적인 그림을 그려주는 책이야 말로 진짜 영어의 재미를 무궁무진하게 넓힐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주는 37과부터 40과에 나오는 against, through, above, out의 의미를 알아봤어요.

 

against는 '~에 반하여'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영알남은 조금 더 입체적인 그림으로 against를 이해하라고 하고 있어요. 그림에서와 같이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모습을 연상시키면서 '등지는 그림'으로 생각하면서 이해하라고 하네요.

 

"I was standing against the door, but suddenly the door opened."


문에 기대어 서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는 뜻이죠. 지하철에서 이러지 말라고 방송을 하는데 외국인 친구가 깜박했나봐요.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네요.

 

through는 '~를 통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림에서 보듯 수비수를 뚫고 지나가는 공격수처럼 뚫고 들어가는 그림을 연상시키면 되요. 비슷한 말인데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 더 이해가 쏙쏙 들어오네요. 옆에 문장을 보면 총알이 곧장 그의 가슴에 뚫고 들어갔다고 하네요. 관통상인가봐요. 혹, 이런 사건 현장에서 리포터가 현장사건을 이렇게 말하고 있네요. 잘 외어두었다가 나중에 뉴스에서 이런 소식이 나오면 바로 뉴스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above는 '~위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영알남은abov의 고대영어의 어원의 예를 이야기하면서 현대에 쓰는 단어의 의미까지 설명하고 있어요. bi(by) + ufan(above)가 합쳐진 단어라고 하네요. 그래서 오늘 날에는 단어의 의미를 '근처 위의'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조금 까다로운 녀석이니까 이 단어는 통째로 외어야겠어요. 옆에 단어를 보면 의사가 머리 근처까지 팔을 올려달라는 말을 하고 있네요.
 

 

마지막으로 out은 우리가 많이 쓰는 단어죠. 바깥이라는 개념보다는 그림처럼 밖으로 벗어나는 그림을 연상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더불어 밖으로 나가면 사라지는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는 영알남의 조언을 보면서 영어문장을 해석하니 더 쉽게 영어단어가 눈에 들어오네요. 이해가 잘 안된다면 그림을 통해 바라보면서 영어단어를 외우면 더 머리에 콕하고 박히네요.


책이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다음주에는 드디어 책의 마무리를 하는 시점이 다가왔네요. 이번 공부를 하면서 정말 재밌게 공부를 했는데 다음주가 마지막이라니 벌써 부터 아쉬움이 한가득네요. 단어와 문장을 해석하면서 느끼는 재미를 못느낀다고 하니 허전할 거 같아요.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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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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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재밌는 밀도의 이야기.


 소설만큼은 편중을 두지 않고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우리나라 소설 보다 외국소설을 더 즐겨읽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선호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골라서 읽지 않다 보니 외국의 소설은 풍부한데 반해 우리나라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 한 명이 도진기 작가다.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를 시작으로 <정신자살> <카 트라비아타의 초상> <악마의 증명> <합리적 의심>까지 그가 그린 이야기에 매료되어 꾸준히 책을 읽어왔다. 추리 소설 속에서 만나지 못했던 인물의 사건과 특이한 이름들이 인상에 남아 한 권씩 그의 책을 독파하다 보니 어느새 그가 활발하게 써내려간 이야기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판결의 재구성>은 도진기 작가가 그동안 걸어왔던 판사라는 직무에서 겪었거나, 판결이 난 사건 중에서 '합리적 의심'을 해볼만한 사건들을 다시 해부해 보는 책이다. 이미 공소시효도 지났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진 이야기들을 '다시보기'로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판사에서 변호사로 된 후에 그가 오랫동안 다양한 매체에 연재했던 원고들을 한데 모아 놓은 책이 바로 <판결의 재구성>이다. 부제로는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을 걸까 하는 물음이 그의 존재한다. 판사로서 재직하는 동안 많은 사건의 판결을 내렸지만, 많은 이들은 판사의 오랜 결정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의 법감정이 다르다 보니 '갭' 차이가 많이 났고, 왜 그들은 그렇게 밖에 판결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하는 의문이 평소 들기도 했다.


도진기 작가는 그런 사람들의 의심과 법을 다루었던 판사로서의 고민과 생각을 깊이 고찰한 책이기도 하다. <판결의 재구성>에 나오는 사건은 하나같이 소설 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의 이야기다. 책을 읽다보니 너무나 소설 같아 그들의 이야기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사건을 다룬 판결의 이야기가 논리정연하게 나와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판결과는 달리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범인을 놓치고 만다. 이야기 끝에 나오는 추신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2004년 사라진 변호사 사건을 시작으로 사건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때때로 미궁속으로 빠진다. 판결도 1심과 2심이 서로 뒤바뀐다. 그러나 도진기 작가가 거론한 많은 사건들은 합리적 의심을 추구할 만큼 보이지만 강렬하게 잡을 수 없는 끈들이 꽁꽁 묶여지지 않았다. 어딘가 석연치 않는 재판의 결과들이 지난 날의 사건을 되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어려운 법의 이야기를 법을 하나도 모르는 독자로 하여금 순식간에 사건 현장과 판결을 내리는 현장 속으로 데려간다. 더불어 판결을 내리는 판사의 고뇌와 법의 허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판결을 내리는 판사도 신이 아니며, 인간으로서 법을 공부한 이의 판결이 어떻게 죄를 저지른 이에게 법을 적용하여 내리는 가에 대해 알려준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책보다 판사라는 직무를 하는 이의 마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깊은 이야기 너머 판사였던 그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글쓰기와 그가 오래 전에 즐겨 읽었던 책들을 맛깔나게 이야기한다. 살인사건, 사망사건등 많은 의혹이 많은 사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지만 정신적으로 그들의 판결을 보고 어지러울 때가 많은데 그때 그의 이야기가 단비처럼 느껴졌다. 판사의 역량과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어디로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소설을 읽을 때도 그의 팬이 되었지만 이 한 권의 책만으로도 더 깊은 팬심을 드러낼 것 같다. 그만큼 소설 보다 더 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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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애 무관심한 법률가들이 있다. 일생의 젊은 시절에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기에 이후로는 게을러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회는 특정 시기에 도달한 개인의 성취를 빛의 속도로 추월한다. 안도감은 발전을 막고, 뒤처지는 건 순간이다. - p.8


 정서적으로 2심 공격하기는 쉽지만, 이런 측면도 있다. 1심과 같은 결론이 1회성이라면 몰라도, 재판이란 그렇지 못하다. 법률 적용으로서의 판결은 유사한 사안에서도 이렇게 판단한다는 일관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는 강한 의심이 있을 때면, 기소가 되지 않았어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것을 일반으로 우리 재판 절차에서 채택할 수 있을까. 도무지 불가능하다. 일반의 오해와 달리, 재판이란 원래 최종적인 정의에 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 절차가 아니다. 솔로몬 같은 판관이 개별 사안에서 지혜를 발휘해 현명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판의 원형적 모습일 것 같다. 하지만 솔로몬이 늘 옳은가? 만일 그가 미친다면? 솔로몬도 감정이 있는데, 미운 놈 오면 괜히 없던 죄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믿을 만하다고 치자. 그런 판사가 수십, 수백, 수천 명으로 늘어난다면, 그래도 다 개인의 인격을 믿고 맡겨야 할까?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절차를 만들어놓았다. 형사소송법이라는 쇠사슬을 친친 감아 놓았다. - p.20


철학적, 뇌과학적으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달리 말할 수도 있고,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하지만 우리 형법은 단호하다. 그런 항변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의지가 있다. 충분히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행동했기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것이 형법의 태도다. - p.60


재판은 무죄추정, 마음은 유죄추정. 이것이 법관의 현실일지 모른다. 기소된 사건 대부분이 유죄이기에 객관적 통계에서 우러나는 그 선입견은 완전히 지울 수 없으리라. 그래서 증거 가뭄인 재판에서 공법자의 진술이 나오면 판사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어쩌면 인간으로서나 직업인으로서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증거의 빈자리를 채움으로써 유죄 판결서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는 안도감이라면 한 번 더 숙고해봐야 할 것 같다. 공범자의 마음은, 인간의 마음은 진정한 미궁이니까. - p.157


법은 '바람직한 인간'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을 가정해야 한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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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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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고 싶은 감정의 봉합.


 아니 에르노의 글은 송곳같다. 솔직하고 날카롭다. 침의 날카로운 부분을 만지듯 문장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따갑게 느껴진다. 그녀의 어떤 책을 읽어도 책이 가지고 있는 무게 보다 더 날카롭고, 무거움이 느껴져 책을 읽고 나면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무게감으로 침잠하게 만드는 작가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다보면 '아니 에르노 화법'으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마치 다른 이들이 레이먼드 카버와 같이 쓸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저 솔직하고 간결한 문장 만이 그녀의 글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녀의 연인인 필립 빌랭이 아니 에르노와 같은 글쓰기로 책을 펴냈지만 많은 이들로 하여금 혹평을 자아냈다.


놀랍도록 아니 에르노의 글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듯 걸리는 것 없이 글로 표현해낸다. 자신에 대한 글을 써도 써야 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자가검열을 아니 에르노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의 모든 기억들, 가리고 싶은 감정의 봉합을 마저도 글쓰기의 재료로 쓰고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는 기억들과 감정들, 상황들을 거르지 않고 간결하게 흑백티비를 보듯 전진하며 아니 에르노의 유년시절을 체감하게 된다. <부끄러움>은 아니 에르노의 각인된 기억들을 시작으로 마모되지 않는 소녀의 열망과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은 소녀의 날큼한 눈빛이 더해진 책이다.


부모님의 테두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때때로 포용적인 삶 속에서 폭력적인 부모의 두 얼굴을 마주 하는 소녀의 각인된 인상들이 강렬한 생채기를 남긴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균열을 어린 아니 에르노가 보았다. 시간의 영역은 때로는 기억을 미화시키지만 간결한 문장과 덧대지 않는 이야기로 시간의 간격을 메워나간다. 안전한 테두리의 양면성과 그 속에서 억눌리는 여자아이의 불온한 응시는 당시 아니 에르노가 어떤 생각을 하고 감정적인 체험을 했는가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감정적인 시각을 넘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고백은 흔들리지 않는 심지 같다. 어떤 수식어도 넣지 않는 담백하면서도 고독함이 느껴진다. 많은 수사여구 없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당당함 때문인지 자꾸 그녀의 글을 읽게 된다. 각각의 나이에 맞는 시간의 연속들. 당시의 나. 나를 만든 당신들의 시간들. 가깝지만 먼 뷰파인더 속에 나를 그리는 것처럼 아니 에르노의 시간은 아직도 식지 않는 감정들이 여전히 그 시간 속에 존재해 있었다. 누군가는 그런 껄끄러운 감정들을 잊고 살아야 한다지만 자신의 모든 시간이 그녀의 글이자 아니 에르노다. 아니 에르노의 세계는 그래서 명징하고, 간결하지만 우아하다. 콕하고 집어주는 감정의 결계가 콕 하고 박힌다. 만나고 싶지 않지만 그녀가 알려주는 상황적 감정의 이야기라면 시간을 돌려 나의 이야기들을 돌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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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버지가 미소를 짓거나 공범자 같은 폭소 또는 농담으로 서로에게 애정 표현을 할 때면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사건은 그저 '나쁜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그런 애정 표현은 오로지 그것이 표현되는 순간에만 의미가 있을 뿐 미래에 대해선 어떤 것도 보장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 p.29


내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나 주변 세계를 생각할 때 사용했던 단어들을 되찾은 일이다. 정상적인 것과 용납될 수 없는 것, 심지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1995년의 나라는 여자는, 조그만 자기 도시와 자기 가족 그리고 사립학교만 알고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제한되었던 1952년의 소녀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다. 그 소녀 앞에는 살아야 할 무한한 시간이 놓여 있었다. - p.46~47


(묘사를 하는 데에서 정확성 외에는 아무런 원칙도 세우지 않은 채 유년 시절 무심히 지나갔던 거리를 처음으로 묘사하다 보니. 그것은 그 거리들이 내포하고 있었던 사회적 계급을 보다 명백히 드러내는 일이 되었다.거의 종교적 금기에 가까운 것을 깼다는 느낌. 에들랭의 별장! 푸른 등나무 꽃! 샹드쿠르스의 뽕밭! 색깔이나 이미지로 내 마음에 깊이 악인된 사랑의 지도를 딱딱한 선이 그러진 지도로 바꿔치기하니, 환상은 깨졌지만 그 명백한 진실은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기억도 생생한데, 1952년에는 넓은 잔디밭과 자갈을 깐 오솔길이 있는 정원을 둘러싼 높은 담장을 바라보면 대번에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56~57


그리고 인생의 시간은 '무엇 무엇을 해야 하는 나이'로 구분된다. 영세를 받을 나이, 담배 피울 권리가 있는 나이, 음담패설이 오갈 때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는 나이. 직장에서 일하고 댄스파티에 가고 '데이트' 할 수 있는 나이. 군대 갈 나이. 오락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 결혼하고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나이. 검은 옷을 입는 나이. 더 이상 일하지 않는 아니. 죽는 나이. 이쯤되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모든 것이 완성된다. - p.66~67


('사립'이란 단어는 항상 결핍, 공포, 폐쇄와 연관되어 있다. 심지어 '사생활'이란 단어까지도. 글쓰기란 공개적인 것이다.) - p.94


변함없는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자연의 회귀성, 한 여름의 히트곡, 유행했던 벨트, 필히 소멸될 운명의 사물들에 추억이 고착된 나에게, 그리고 필경 내 세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억이란 나의 항구성 혹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어떤 증거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나의 분열, 나의 역사성을 느끼게 하고 확인시킬 뿐이다. - p.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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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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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소설가의 부엌 탐방기


 줄리언 반스의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를 읽고 한참을 웃었다. 책을 쓰는 것 같은 까칠하고, 정교한 그의 언어가 과연 나의 부엌 안에서도 통할 것인가? 부엌은 익숙한데 요리는 미숙하다 보니 무엇을 봐야할지 모를 때 우리의 소설가는 당연히 책을 참조한다. 더불어 그에게는 꽤 많은 요리책을 책장 여기저기에 소장하고 있다. 요리책을 보다보면 정말 군침이 흐를 정도로 멋드러진 화보 옆에 정교한 레시피가 세밀하게 적혀져 있다. 책을 촤르륵 넘겨보다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음식을 택해 레시피를 따라 해보려고 하지만, 가장 쉬운 레시피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된다. 눈으로 볼 때는 몰랐던 것이 직접 부엌에 들어가 보면 들통나기 쉬운 것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줄리언 반스처럼 요리책을 찾아 레시피를 따라 해보기도 하지만 보통 인터넷을 검색해 따라 할 때가 많다. 같은 음식이라도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하다 보니 나중에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지만 우선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의 설명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요리 재료도, 정량도 애매해서 눈대중으로 양념을 추가해 버린다. 양념을 추가하거나 집에 없는 양념들을 과감히 버리고, 계속해서 요리를 진행하다보면 어느새 내가 추구하는 맛이 영영 나오지 않거나, 비스무리하게 따라 갈 때가 있다. 그러나 결과물은 사진에 찍혀진 그대로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듯 똑같이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인 이 책이 더 재밌게 읽혔다. 정교한 언어를 쓰는 그가 부엌에서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쿡쿡 웃음을 머금고 책을 읽었다.


티비만 틀었다 하면 셰프들이 나오고, 전국을 넘어 세계의 먹방들이 즐비하다 보니 여기저기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집에 있는 재료는 한정되어 있고. 음식을 만드는 이는 유명한 셰프가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데 미숙한 주방장이다보니 그저 눈으로 보고 즐길 뿐이다. 한 분야의 대가도 이렇게 좌절과 억압을 당하며 무력감에 젖어있다니. 그의 한탄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고, 부엌에서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들의 수고로움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재밌는 이야기지만 어딘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가지 맛의 음식을 조금 많이 먹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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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보를 보고 책을 사지 말것. 요리책의 화보를 가리키며 "나도 이걸 만들어야지"라고 하지 말 것. 못 만든다.  - p.53


(4) 모든 요리책 화보는 그릇된 기대감만 심어준다. 의도가 정직한 책들도 그렇다. 왜 그런지 그 역설의 내용은 이렇다. 『진짜 요리』의 서문을 보니 나이절 슬레이터는 책의 화보가 모두 실물임을 밝힌다. "일반적인 요리 사진과 달리, 설정 사진이거나 억지로 꾸민 게 아리나 철저히 있는 그대로의 사진이다. "그는 그냥 계속 요리하고, 사진사는 그냥 계속 셔터만 눌러댔다는 얘기다. 곰곰생각보면 그런 설정 사진만도 못하다. 훨씬 더 못하다. 조작하지 않았다는 그 사진들이 보여주는 음식들은 평균치 호갱들이 따라 한 결과물에 비하면 화려함으로 곪아터질 정도이기 때문이다. - p.98~99


수플레는 납작하게 주저앉았고, 그 위에 얹은 소스는 상층부의 4분의 1이 되는 등 우라질 완전 실패작이다. 그래도 맛있기는 우라질 무진장 맛있다!" 내가 여러 실수를 저질렀겠지만, 그중 하나는 사바랭 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가지고 있기는커녕 그게 뭔지도 몰랐다. 그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올니가 이 도구를 언급하는데, 나는 그 부분에 밑줄을 긋고 이렇게 썼다. "이제 뭔지 이 빌어먹을 책 어딘가에 책 설명을 좀 해주면 좋잖아, 이 친구야."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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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몰락 1 블랙펜 클럽 34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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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서사시의 시작점


 켄 폴릿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족족 사고 있다. 전쟁문학에 관심이 많아 한 권씩 쟁기다보니 시리즈의 책들도 여러권 모였는데 책을 사는 것도, 읽는 것도 진도가 나지 않았다. 정말 재밌을까 싶어 시작하게된 20세기 3부작 시리즈 중 첫번째 책인 <거인들의 몰락> 1권을 펼쳐 들었다. 배경은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11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국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웨일스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마치 국가를 대변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처한 위치에 따라 그들이 하는 역할이 저울의 추처럼 묵직하게 다가왔다.


영국 국왕 조지 5세가 런던의 웨스트민트터 성당에서 성대하게 대관식을 거행하던 날 웨일스에 있는 빌리는 13번째 생일을 맞았다. 13살의 어린 나이인 소년은 학교가 아닌 처음으로 깊은 갱에 들어가 일을 하기도 한 날이기도 했다. 애설과 빌리의 아버지는 노조위원장으로 많은 광부들의 일을 대변해주고 있는 이였다. 가부장적이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권리를 내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이로 그려진다. 처음 갱에 들어간 어린 소년의 치기와 무서움, 호된 신고식은 '빌리'라는 인물을 부각시키며 이야기가 나아간다. 빌리의 눈으로 바라본 광부들의 모습은 얼굴만큼이나 각기 다른 성격의 이들을 훤히 비춰준다. 묵직한 이들도 있었고, 야비하면서도 누군가를 골려주는 이들의 천박함도 엿보였다. 무섭지만 누군가의 놀림감으로 평생을 그의 이름 앞에 닉네임으로 불리는 것이 싫어 꿋꿋하게 이겨낸 빌리.


빌리가 사우스 웨일스 애버로언의 일을 전한다면 빌리의 누나 애설은 피츠허버트 백작의 하녀로 일하며, 그들의 일상을 눈에 보이들 그려내고 있다. 아름다운 동시에 영민하고 재치가 있는 애설은 백작을 흠모한다. 이미 피츠에게는 러시아 공주인 아내 비가 옆에 있지만 아름다운 외모와 영특한 재주가 있는 애설을 마음에 들인다. 대외적으로 그는 오랜시간 축적해온 부와 왕실의 교류로 은밀한 정보까지 습득하며 이야기를 논한다. 각각의 인물들이 그려내는 삶들이 신분에 따라 다른 위치를 지정하고 있고, 상류층에 속하는 피츠허버트 백작을 비롯해 그들이 만나는 국왕과 울리히 가문의 발터의 모습은 노동현장에서 투쟁하는 이들과는 다른 격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이 만든 의식과 권위, 자존감, 명예, 평판만이 그들을 지탱하고 있기라도 한 듯 부를 축척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빌리가 몸담고 있는 광산에 사고가 났을 때 피츠에게 막대한 자본이 들어오는 창구 중 하나임에도 피츠 백작은 스스로 나서서 그들을 돕지 않았다. 상류층과 하류층의 삶의 대비와 그들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들이 판이하게 달랐다. 피츠가 백작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부인과 동생 모드, 험 고모를 데리고 가정과 밖에서의 일을 평온하게 잘 보는 듯 하지만 남자로서 피츠는 바람둥이에 불과하다. 마음에 맞는 여자들과의 하룻밤이 잦은 동시에 하녀인 애설과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그녀가 아이를 갖는 순간 그동안의 애정은 싹뚝 잘라버리는 나쁜남자다.


비정하기도 하고, 책임감이 적는 피츠와 비슷한 인물이라면 러시아의 그리고리와 레프 형제의 이야기를 거론할 수 밖에 없다. 형이 온화하고 책임감 강한 남자라면 레프는 그야말로 시정잡배다. 책임감도 일말의 양심도 없는 그의 행동 때문에 미국에 가서 잘 살아려던 형의 꿈을 짓밟아 버리고, 살인을 저지른 후 형이 모아온 돈과 배 티켓을 가지고 떠나 버린다. 모든 책임은 형에게 지어놓고서. 그들의 대척점에 선 이가 독일을 대표하는 인물 발터다. 피츠와 친구인 동시에 피츠의 여동생인 모드와 사랑하는 사이다.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으며 좋아하던 시기에 그들에게 닥친 먹구름으로 그들은 아슬아슬한 사랑을 한다.


1914년 6월 세르비아의 테러리스트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 지배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후발주자로 독일이 따라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영국와 독일이 서로 맞부딪히는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의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각 나라의 이익과 충돌되다 보니 서로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세르비아 곁에는 러시아가 있고, 오스트리아에게는 동맹국 독일이 한데 뭉쳐져 있었다. 독일이 나서자 영국과 프랑스가 연합군이 되어 일으킨 전쟁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일어나는 과정이 각 인물의 역할에 따라 세밀하게 그려낸다. 700페이지에 가까운 내용이라 1권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인생은 물론이고, 각 나라의 운명이 미친 폭풍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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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공동의 적에 맞서 온 나라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들끓는 사회적 불만을 잠재운다. 전시에는 파업도 일어나지 않을 테고 공화주의를 외치는 주장은 비애국적인 행동으로 보일 것이다. 심지어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자들의 목소리도 잠잠해질지 모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그는 이상하리만치 그 전망에 이끌렸다. 전쟁은 그가 쓸모 있고 용감하다는 걸 증명해줄 테고, 국가에 이바지함으로써 평생 누려온 지나친 부와 특권을 되갚을 수 있는 기회였다. - p.106


"우리가 그래도 된다고 용인할 때만, 노동자는 지배계급보다 수적으로 우세하고 힘이 있어. 지배계급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기대고 있지.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집을 짓고 옷을 만드는 건 우리야. 우리가 없으면 그들은 죽어버릴걸. 우리의 용인 없이 지배계급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항상 그걸 명심해라." - p.176


국제관계만큼 끌리는 분야도 없었다. 우호와 적대, 동맹과 전쟁. 십대 시절 그는 아버지가 위원으로 속해 있던 상원외교위원회의 회의를 여러 번 참관했다. 연극 관람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체험이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이제 바로 국가들이 평화와 번영을 이국하는 방식이야. 전쟁과 파괴, 기근일 수 있지.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외교야말로 네가 세상에 가장 큰 공헌을, 혹은 해악을 남길 수 있는 분야란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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