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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가 되기
존 가드너 지음, 임선근 옮김, 레이먼드 카버 서문 / 걷는책 / 2018년 8월
평점 :
소설가의 길
이야기를 좋아해서 늘 이야기를 찾고 다녔던 것 같다. 쓰는 재주는 없으니 읽는 것에 더 매달렸다. 단편과 장편 가릴 것 없이 소설이라면 다 좋아하는 편이라 경계없이 읽고 다녔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것에만 치우치기도 했는데 읽다보니 호흡이 짧은 글도, 호흡이 긴 문장도 다 좋았다. 책을 읽고 나면 책의 제목, 소설가의 이름, 주인공의 이름들, 줄거리를 하나하나 꿰어가며 이야기를 할 수 있던 시기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부터는 한 번 읽었던 책도 몇 년 후에 다시 볼 때면 안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기억이 휘발되기도 했다. 좋아하는 책에 한 해에서는 여러번 반복해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 여러번 읽기도 하지만 매년마다 세우는 장기적인 목표는 좋은 문장들이 담긴 작품을 찾아 읽는 것이다. 이왕이면 많은 이들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라 보니 '세계문학'을 읽는 것이 목표지만 계속해서 읽기한 쉽지 않다.
독자가 좋은 문장, 좋은 표현, 좋은 소설을 찾아 나서는 만큼 글을 쓰는 소설가에 대한 일이 궁금해진다. 소설은 어떻게 쓰는 것이며, 어떤 부분에 공을 들일까 하는 중요한 문제들이 궁금해질 때마다 젊은 소설가들이 읽을 법한 작법서를 마주 한다. 몇 권의 책을 읽다보니 정답이 쓰여 있기 보다는 자기계발서처럼 교과서 같은 답이 쓰여 있다. 많이 읽고, 꾸준히 앉아 매일 얼마만큼의 글을 써야 한다는 것. <장편소설가 되기>는 이보다 더 구체적인 동시에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는 편이다. 소설가 지망생이 아니므로 나에게 이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레이먼드 카버'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단편을 아주 찰지게 쓰는 소설가라 그가 말하는 작법이 궁금했으나 결론적으로는 레이먼드 카버의 수업이 아니라 그의 스승 존 가드너가 가리키는 작법 수업이다.
영문의 작법수업임으로 배울 것은 많지만 한글로 쓰는 작법 수업이 아니기에 아쉬운 점이 많다. 그럼에도 그는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이야기 만큼이나 소설가의 삶에 대해 경계 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명확히 그려내고 있다. 더불어 소설가 지망생이 막 소설을 시작했다면 좌절 보다는 응원의 메세지도 더한다.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문학을 전공한 적이 없음으로 한 수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펼쳐들게 되었지만, 무엇이든 깊이 들어가면 한층 더 깊은 철학을 요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그의 수업을 들으면서 그와 격렬하게 논쟁을 하고, 그가 조언하며 언급한 이야기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좋은 스승과 좋은 제자의 시너지가 작품 곳곳에 베어져 나오듯 소설가의 길은 좋은 낱말, 좋은 문장을 넘어 삶의 철학까지도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글을 쓰는 과정 뿐만 아니라 출판의 과정까지 꿰고 있다면 소설가로서 더 탄탄하게 입지를 다지며 갈 수 있는 팁도 제공한다. 글을 쓰는 삶에 대해 노하우에 대해 깊이 통찰 할 수 있는 글이었다. 존 가드너의 책은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펭귄클래식에서 출간된 <그렌텔>도 한 번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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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가 쓴 것이면 뭐든 닥치는 대로 읽어라. 그다음엔 헤밍웨이의 모든 작품을 읽어라. 네 머리에서 포크너를 깨끗이 씻어내기 위해." - p.21
토론 전에 그는 내 원고에서 불필요한 문장이나 어구나 낱말, 심지어 구두점까지 날려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절충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나는 받아들여야 했다. 어떤 문장이나 어구, 낱말은 괄호로 묶여 있었다. 우리는 그런 부분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절충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는 또 내 원고에 뭔가 첨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건 하나의 낱말일 수도, 몇 개의 낱말들일 수도, 문장일 수도 있었는데, 내가 말하려는 바가 그것들 덕분에 명료해졌다. 우리는 쉼표 몇 개를 놓고 그 순간만은 이 세상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는 것이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 p.22
진짜 잘 쓴 소설을 손에 쥐었을 때 우리는 첫 페이지 다섯단어만 읽고도 자신이 지면에 인쇄된 글자들을 읽어 내려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장면을 떠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개들, 알레스카 산악 지대 위를 선회하는 비행기를, 파티에서 슬그머니 자기 냅킨을 핥는 노파를. 내가 지금 어디에 앉아 있는지, 점심때가 되었는지 일할 시간이 되었는지 따위는 잊고 몽상의 세계로 미끄러져 간다. - p.4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