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 몸의 감각을 되찾고 천천히 움직이고 필요 없는 것은 내려놓고
히로세 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차 한잔의 여유 


​ 날이 덥다는 이유로, 때로는 날이 춥다는 이유로 차를 타고 가다보니 걸어다니는 횟수가 훅 줄어 버렸다. 빨리 가는 대신 잔잔하게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 줄어 버렸다. 조용히 앉아 차 한잔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조용한 공원에 발걸음을 조붓이 내딛으며 자연의 풍광을 느끼며 산책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지나간 일, 앞으로 해야 할 일, 읽었던 책들의 장면들이 하나 둘 생각의 편린 속에 자리 잡을 때 마다 생각을 하게 되고, 다시 장면의 장면을 해석하게 된다. 때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자리 만을 고수하는 일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히로세 유코의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는 전작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의 작가의 신작이다. 붉고 뜨거웠던 기온이 어느새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날씨를 맞다보니 훈김이 나는 책이 그리워진다. 뾰족뾰족했던 마음이 다시 편편하게 다스릴 수 있게 하는 책인 동시에 빠르게 지내온 우리들에게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 빠르게 속도를 내면 목적지에 빨리 갈 수는 있지만 지나간 풍경은 눈에 담을 수 없다. 히로세 유코는 빠른 걸은 대신 몸을 스치는 바람과, 소리를 내며 우는 새, 소슬치는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잎의 풍경, 긴장을 해소 시킬 수 있는 훈김이 도는 차 한잔의 여유를 느끼며 나는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으라고 그녀는 잔잔한 목소리로 조곤조곤하게 이야기를 풀어 넣는다.


일본인 특유의 섬세함과 그녀의 경험이 녹아든 이야기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교훈'처럼 이야기 한다. 살아보니 쉬엄쉬엄 살아도 괜찮고, 자신이 걸어온 시간만이 오롯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나이테였다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움켜 쥘 것이 아니라 욕심을 내려 놓고, 나이에 불문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삶이야 말로 나를 더 풍요롭게 한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다 살았다고 하며 먹는 것, 입는 것을 풍족히 하기 보다는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배움의 길을 걸어가는 노년의 모습이 내가 살고 싶은 훗날의 모습이다.


어떤 것이 '힐링'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음 속에 작은 평화를 느끼는 일 또한 소소한 움직이나 인사말을 통해 충족될 수 있다. 저자는 마음이 심란 할 때 천천히 움직여주고, 심호흡이 필요하다고 했다. 삶에 있어서 슬픈 일이 있는 것도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훗날 그 일이 단단한 지렛대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인정하는 삶이 느껴지는 책이기도 했다. 요즘은 수요하는 삶 보다는 나의 기본 권리가 침해되면 너나 할 것없이 마음들을 뾰족이며 사람들을 상처내곤 하는데, 이 책은 모든 일에 있어 긍적적이며 수용적인 삶을 살라고 권하는 것 같다. 나의 나이테가 세월이 지나 서서히 그어지는 것처럼 섬세하고 느긋하고, 가벼운 몸짓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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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의 생활이 쌓여서 그 사람이 만들어진다. - p.14


"꿀벌이 한 스푼의 벌꿀을 모으는 데에는 평생이 걸립니다. 벌은 우리를 위해 꿀을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벌에게서 꿀을 나눠 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p.25


바라는 것이 모두 이루어진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서 필요한 일이고, 간절하게 원하면 그 바람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알고 있으면 삶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해 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희망사항을 써야겠지요. - p.37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것이 긍정적인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갈등하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섰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 조차도 알 수 없을 만큼 길을 잃었을 때, 하고 싶지 않은 일의 목록을 만드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됩니다. - p.41


기공수업은 두 시간 정도로, 처음 30분은 선생님이 교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 이야기가 무척 좋습니다. 마음속에 바람이 스쳐가는 느낌입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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