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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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잠시 쉬어갈 섬이 있다면

<당신의 아주 먼 섬>

 

  처음 고() 정미경 작가의 사망소식을 접했을 때, 설마 내가 알고 있는 작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설마 아닐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어느 덧 사실이 되었고, 유일한 유고작이란 이름으로 나온 <당신의 아주 먼 섬>을 읽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정말 아주 먼 섬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은 후 다시는 그녀의 소설을 읽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지인들에게 정미경 작가의 사망원인을 물었지만 정확하게 답변해 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소금이 바닷물에 녹아버리듯 그렇게 그녀는 독자들 곁에서 사라졌다. 소설가 이승우씨는 소설은 사람과 세상에 대하여, 혹은 사람과 세상을 향하여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작품의 배경은 제목처럼 남도의 어느 섬이다. 이제 중년이 된 연수와 정모, 태원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판도와 이우가 상처를 치유해 가는 섬을 배경으로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개인의 아픔과 사연을 갖고 말이다. 바다를 붙잡고 섬과 섬 사이에 또 다른 섬들이 존재하듯 관계와 관계 사이에 새로운 인연이 엮이고 만들어지면서 소설은 천천히 흘러간다. 초고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인물들의 행동과 사연은 읽는 이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준다. 작가가 남긴 작품 안에 읽는 이들의 자리가 그대로 들어가 박혀 버린다.

 

할미, 나 돌아가면 보고 싶을 것 같아?”

말이라고. 들어온 자리는 없어도 나간 자리는 있는 겨.”

겨우?”

남의 마음에 자리 하나 만드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냐.”

                                                                                                                                193~194.p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삐 할미의 말처럼 타인의 마음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잊혀 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살아가는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태이의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은 이우나 시력을 잃어가는 정모가 바닷가 소금창고에 도서관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모두 어느 순간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존재를 남기기 위한 몸짓이자 삶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인간들이 붙잡은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섬과 섬 사이에 사람들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섬에 가고 싶어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섬에서 떠나기를 원한다. 뼛속까지 남아있는 소금기를 지우고 싶다던 연수가 자신의 딸 이우를 섬으로 돌아간 정모에게 맡기는 것은 무책임하고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떠나왔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그러기 위해선 으스러지고 녹아 없어질 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도.

 

  바다와 하늘, 바람과 비, 정모와 판도, 이삐 할미를 통해 점점 자신의 상처를 견디고 회복해 가는 이우를 보면서 누구에게나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섬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숨을 돌리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자기만의 섬 말이다. 그곳이 꼭 공간일 필요는 없다. 지나가는 봄바람일 수도 있고, 달콤한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음악이나 미술일 수도 혹은 사람일 수도 있는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자기만의 섬. 그곳에서 쉼을 갖고 기운을 차릴 수 있다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이우가 정모에게 들려 준 시처럼 앞만 향해 달려갔던 것들을 내려놓고 여기처럼.

 

여기서 함께 줄넘기를 하자 여기서

여기서 함께 주먹밥을 먹자

여기서 그대를 사랑하리

 

여기 있으면서 모든 먼 것을 꿈꾸자

                                                                                                                                                    209.p

 

 섬과 섬 사이에서 사람과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각자가 꿈꿔야 할 먼 곳이 알고 보면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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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읽는 시
김남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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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어서 외롭지 않은 밤

<길 위에서 읽는 시>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방을 싸면서 이 책도 함께 넣었다. 나도 저자처럼 여행 중 여유가 생기거나 마음의 위로와 힘이 필요할 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약한 존재중 하나가 이다. 돈이 되지도 않고, 강한 목소리로 외치지도 못하며, 강한 힘을 발휘하지도 않는, 겨우 마음이나 다잡으려는 사람들이 한 편씩 읽어 내려가는 그렇게 나약한 존재 ’.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는 힘이 세다. 약하지만 시는 인간의 무감각해진 마음을 움직이고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은 약하지만 강하다.

 

  비행기 안에서 폴 엘뤼아르의 <자유>를 읽었다. 시인은,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27.p

라고 노래한다. 때로 일상이라는 시간을 구속 혹은 속박이라고 여길 때가 많다. 그리고 내 안에 주어지지 않은 자유에 대하여 무던히도 그리워하고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저자는 이 시를 태국 카오산 로드에서 읽었다고 했다. 그곳은 게으름이 죄악시 되지 않고, 유일하게 지닌 재산이 시간이다. 망고 주스 한 잔을 앞에 놓고 나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는 작가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가장 좋은 것을 누리고 있는 현재, 그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니 여행자로서의 자유로움과 외로움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읽는 내가 울컥했던 것도 나또한 그 시간만큼은 여행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자유가 내게도 절실했기에.

 

  다음 날, 무섭게 비가 내렸다. 제주도의 비는 강한 바람과 함께 섬 곳곳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비를 피해 본태 박물관으로 갔다. 그곳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방-영혼의 반짝임, 2080 >세계 속으로 들어갔을 때 황홀한 충격을 느꼈다. 내가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거울에 반사된 색색의 점들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하늘에 떠있는 별이 되었다가 세상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개개인의 소망이 되었다가 각자의 세상이 되곤 했다.

 

  天象列次分野之圖, 오래전 천체의 궤도는 이 돌의 거대한 둥근 원안에 굳어버렸다/ 해와 달과 천상의 모든 별자리들이/ 이 검은 대리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별자리를 이은 선들은 부적처럼 어둠의 수면에 빛나는 길들을 만들어 놓았다/ 입김을 불어넣어 검은 대리석 안의 별들을 조심조심 불러내면/ 밤하늘이 서서히 움직이는 소릴 들을 수 있다/ 은하수에서 흘러나오는 천상의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하늘은 글자도 없는 경전을 펼쳐 보인다/ 그걸 읽다 보면 주문처럼,/ 별들이 몸에 와 박힐 것이다/ 누구도 이 검은 대리석 경전을 다 읽을 수는 없다 - 조용미, <천상열차분야지도>,236.p

 

  빗발이 더욱 세졌기 때문에 더 이상 여행을 계속 할 수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이 시를 읽었다. 그리고 예술가가 만들어낸 거울에 비친 수많은 물방울들과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생각했다. 나는 왜 따뜻한 집을 남겨두고 섬으로 와서 스스로 작은 공간에 고립되어 있는 걸까. 세차게 내리는 비바람에 베란다 창문이 무섭게 흔들렸지만 시가 있어서 외롭지 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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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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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새벽, 마지막 단편
<이름이 뭐길래>를 끝으로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다 읽었습니다. 긴긴 겨울밤 한 편 한 편 읽다보면 곧 봄이 올 것 같습니다. 지금도 뉴욕 워런 가 58번지 미스터리 서점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겠죠.^^
밤이 긴 겨울, 침대 위에 놓고 읽다보면 꿈속에서 미스터리 서점과 오토 펜즐러씨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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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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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겨울 매서운 한파가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간 친구는 집 밖을 나가기가 무섭다고 매일 밤 소식을 알려 왔다. 겨울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꽁꽁 얼게 만든다. 나는 겨울이란 단어를 들으면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고 실내에서도 한기를 느끼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언가 은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은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꽁꽁 얼어버린 차가운 바람에 맞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따뜻한 세상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사람들. 아일랜드 스토니브리지에 있는 스톤하우스를 호텔로 만든 치키, 리거, 올라 그리고 미스 퀴니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 작품의 목차는 모두 사람들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까 작품 속 인물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일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란 결국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신의 축복과 은총도 사람을 통해 오고, 불행과 시련도 사람을 통해서 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엮여진 사연들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 없다. 비극 같은 인생 속에도 순간순간 우리를 찾아온 천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치키, 리거, 올라는 각자 다른 이유로 고향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다가 또 각자의 사연을 안고 돌아와 스톤하우스를 호텔로 만드는 일에 합류한다. 그 중심에는 오하라 집안에 자신의 스톤하우스를 빼앗길 수 없다는 미스 퀴니의 의지가 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사람들의 재능과 능력을 알아보고 그것을 꿈꾸게 한 그녀의 혜안이 스톤하우스를 살리고 다른 사람의 삶에 생기와 아름다운 일상을 만들어내게 했다. 물론 최후의 결정은 개인의 몫이었지만.

 

 

너는 이곳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 거야. 너 같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로 말이지.”

저 같은 사람은 없어요. 저처럼 유별나고 사연 많은 사람은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걸. 치키. …… 그러니까 지금 결정해야 해. 그래야 우리가 스톤하우스를 다시 아름답게 만들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33~34.p 

      

  만약에 치키에게 캐시디 여사와 미스 퀴니가, 리거에게 외삼촌과 치키가, 올라에게 데일리 선생님이 없었다면 그들은 이 힘겨운 인생의 고비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각자의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가 만난 사람들 중에 분명히 천사가 숨어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의 작가 메이브 빈치의 마지막 작품이다. 내가 읽은 책은 티저북으로 치키, 리거, 올라의 이야기까지 나와 있다. 이제 그녀들이 개장한 호텔로 찾아온 손님들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문득 우리가 그 호텔로 찾아갈 손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쯤 그녀가 떠난 아일랜드는 매우 추운 겨울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남긴 작품을 읽으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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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
이승우 지음 / 복있는사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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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성경, 문학과 사유에 대한 좋은 에세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충분히 읽고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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