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읽는 시
김남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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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어서 외롭지 않은 밤

<길 위에서 읽는 시>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방을 싸면서 이 책도 함께 넣었다. 나도 저자처럼 여행 중 여유가 생기거나 마음의 위로와 힘이 필요할 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약한 존재중 하나가 이다. 돈이 되지도 않고, 강한 목소리로 외치지도 못하며, 강한 힘을 발휘하지도 않는, 겨우 마음이나 다잡으려는 사람들이 한 편씩 읽어 내려가는 그렇게 나약한 존재 ’.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는 힘이 세다. 약하지만 시는 인간의 무감각해진 마음을 움직이고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은 약하지만 강하다.

 

  비행기 안에서 폴 엘뤼아르의 <자유>를 읽었다. 시인은,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27.p

라고 노래한다. 때로 일상이라는 시간을 구속 혹은 속박이라고 여길 때가 많다. 그리고 내 안에 주어지지 않은 자유에 대하여 무던히도 그리워하고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저자는 이 시를 태국 카오산 로드에서 읽었다고 했다. 그곳은 게으름이 죄악시 되지 않고, 유일하게 지닌 재산이 시간이다. 망고 주스 한 잔을 앞에 놓고 나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는 작가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가장 좋은 것을 누리고 있는 현재, 그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니 여행자로서의 자유로움과 외로움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읽는 내가 울컥했던 것도 나또한 그 시간만큼은 여행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자유가 내게도 절실했기에.

 

  다음 날, 무섭게 비가 내렸다. 제주도의 비는 강한 바람과 함께 섬 곳곳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비를 피해 본태 박물관으로 갔다. 그곳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방-영혼의 반짝임, 2080 >세계 속으로 들어갔을 때 황홀한 충격을 느꼈다. 내가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거울에 반사된 색색의 점들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하늘에 떠있는 별이 되었다가 세상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개개인의 소망이 되었다가 각자의 세상이 되곤 했다.

 

  天象列次分野之圖, 오래전 천체의 궤도는 이 돌의 거대한 둥근 원안에 굳어버렸다/ 해와 달과 천상의 모든 별자리들이/ 이 검은 대리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별자리를 이은 선들은 부적처럼 어둠의 수면에 빛나는 길들을 만들어 놓았다/ 입김을 불어넣어 검은 대리석 안의 별들을 조심조심 불러내면/ 밤하늘이 서서히 움직이는 소릴 들을 수 있다/ 은하수에서 흘러나오는 천상의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하늘은 글자도 없는 경전을 펼쳐 보인다/ 그걸 읽다 보면 주문처럼,/ 별들이 몸에 와 박힐 것이다/ 누구도 이 검은 대리석 경전을 다 읽을 수는 없다 - 조용미, <천상열차분야지도>,236.p

 

  빗발이 더욱 세졌기 때문에 더 이상 여행을 계속 할 수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이 시를 읽었다. 그리고 예술가가 만들어낸 거울에 비친 수많은 물방울들과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생각했다. 나는 왜 따뜻한 집을 남겨두고 섬으로 와서 스스로 작은 공간에 고립되어 있는 걸까. 세차게 내리는 비바람에 베란다 창문이 무섭게 흔들렸지만 시가 있어서 외롭지 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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