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얼굴 -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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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평화롭지 않다. 평화는 전쟁중이다."

적어도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평화"라는 단어는 아무 분쟁도 없고 오직 사랑으로 가득찬, 모든 정치적 이념에서 벗어난 피안의 세계에나 어울릴 법한 느낌을 준다. 평화라는 단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단어가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평화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누구나 존중하고 찬양하는 그런 깨끗한 단어인줄만 알았다. 아는것은 상처받는 것이라는 말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것일지도. 정적인 이미지로서의 "평화"라면 모를까, "평화로움"를 추구하는 일은 여느 전쟁 못지않게 수많은 상처를 내포한다. 부시 대통령처럼 자신의 이익 추구에 스리슬쩍 "평화"를 끼워넣는 경우라면 더욱더.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병역의 의무도 지지 않는 여성이기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선 -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선 쉽게 납득되지 않는 - '수혈거부'라는 교리가 깊이 각인되어 "이상한 집단" 혹은 "사이비 종교"라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좋을걸 뭘 그렇게 힘들게 사는걸까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박경철 의사의 에세이에서, 여호와의 증인 교인인 어느 인턴에 관한 에피소드를 보고, 아주 잠시 생각했던적이 있다.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인데 이 사람들의 주장에도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게 아닐까. '수혈거부'를 비난할 게 아니라 같이 다른 해결책 - 인공혈액 등 - 을 찾아봐야 하는게 아닐까. 등등. 사람은 '객관적'인 사실을 두곤 관대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관련된 일에 관해선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예를들어, 자신이 누구보다 수학을 못한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디워'를 둘러싼 논쟁에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것과 타인이 옳다고 믿는것이 왜 꼭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떤 주제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은 글을 쉽게 쓸 수 있다. 이 책은 기독교나 병역거부자에 대해 거의 아는게 없는 독자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부드럽고 겸손한 구어체와 적절한 예시들. 소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책은 공격적 어투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관심이 없던 독자들도 귀 기울이게끔 자분자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들이 자신이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평화로움"을 위해 인생을 두고 고민했을 때 나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나 자신도 내가 믿는 어떤 이념을 위해 용기있게 소수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몇십년, 길게는 몇천년 전 부터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위해 집총을 거부한 사람들과 온갖 이유를 내세워 전쟁을 정당시 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모순을 보고 있노라면 "평화"의 의미는 뭘까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분명 사회적으로 소수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옹호하지만 그들이 옳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르다는 이분법으로 결론짓지는 않는다. 분명 모두가 행복한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스스로 어떤 길을 택하느냐는 자신의 신념에 달린 것이기에. 오히려 이 책은 독자 개개인이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이끌고 더 나아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역설"의 경지로 이끈다. 모순과 역설의 차이는, 전자가 대립되는 상태에 그친것이라면 후자는 상반되는것이 공존하며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것 - 이것이 모순되는것이 통합된 '만돌라'의 치유능력이란다 -  이다.

책을 읽다 문득 겹쳐지는 풍경 하나. '일해공원' 이름을 바꾸려는 사람들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간에 작은 충돌이 있었댄다. 그 시대를 살지 않은 나에겐 이해되지 않지만 적어도 '전사모'들에겐 그 시절이 자신이 지켜내야 할 '이상향'이자 '종교'인가 보다. "광주에서 일어난 것은 폭동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광주 사람들은 적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는데 합천사람들은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소리쳤다는 어떤 노인이 떠오른다. 사실 유무를 떠나서, 실제 광주가 "폭동"이었으면, 그렇게 마구 죽이고 유린해도 좋다는 말인가. 아무리 전쟁의 '정당성'을 역설한 들, 전쟁터에서 자행되는 민간인 학살과, '소모품'처럼 죽어가는 군인들의 생명까지 덮어줄 수 있는 '정당함'이란 것이 있을까.

책의 대부분은 종교적 신념에 의해 병역을 거부한 특정 교인들의 사례에 집중되어 있지만, 곳곳에 종교와 상관없이 "생명의 존엄성"이란 신념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또 '정당한 전쟁'을 주장하는 사람들에도 '진짜 정당한 전쟁론'을 펴는 사람들 - 대부분의 전쟁은 정당하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평화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의 주장도 곳곳에 배치되어 '평화'와 '전쟁', 더 나아가 생명 전반에 대한 첨예한 대립각 속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도록 이끌어낸다. 기독교인이 아닌 내겐 생소한 성경구절과 '예수님'을 찬양하는 문구들이 약간 껄끄럽긴 하지만 "생명"에 초점을 둔다면 무난히 읽을 수 있고, 반대로 다른 시각으로 기독교인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때문에 비기독교인에게 더욱 추천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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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25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 인생의 책에 등장하는 책들이 주루룩 나오는걸 보고, 너무 기뻐하고 있어요. ^______^

Jade 2007-08-25 13:45   좋아요 0 | URL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ㅎㅎ 다음 리뷰가 "서로주체성의 이념"이라면 좋아서 기절하시겠어요 ㅋㅋ

마늘빵 2007-08-25 23:26   좋아요 0 | URL
이야. 내가 완전 사랑하는 책들만 줄줄이. ㅠ-ㅠ (<-이거 오랫만에 써보는데)

Jade 2007-08-26 08:11   좋아요 0 | URL
ㅎㅎ 하지만 사실 "서로주체성의 이념"은 도저히 엄두가 안난다는 거 -_-;;

프레이야 2007-08-25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이드님, 정말 뜻깊은 독서를 하셨군요. 저도 담아두겠어요^^

Jade 2007-08-26 08:12   좋아요 0 | URL
^^ 제가 아는 식견이란게 좁고 얕다 보니 새로운 관점을 던져주는 책들이 너무 많아요~~ ㅎㅎㅎ 혜경님도 의미있는 독서 되시길 ^^

웽스북스 2007-08-26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너무 좋아요 ^^ 김두식 교수님의 글쓰기, 생각 모두모두 좋아하는 아가씨랍니다 제가 ㅋㅋ

Jade 2007-08-26 08:10   좋아요 0 | URL
ㅎㅎ 사실 웬디양 님 리뷰읽고 봐야겠다 생각해서 지른거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