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작가란 무언가를 뒤적이고 끼적이는 자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뒤적뒤적 끼적끼적]은 김탁환 작가의 영혼을 뜨겁게 달군 100권의 책을 소개한다.
누군가의, 특히 작가의 책읽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고 유익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궁금해하던 김탁환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리길 희망하며 책을 펼쳤다.

그리고 소설 중독자로 불리는 저자를 감동시킨 작품도 궁금했고,

책을 통해 책을 소개받으며 내 도서목록 채우겠다는 다부진 계획도 있었다.
수년 전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통해서 여러권을 소개받았고 결과는 흡족했기에
이번에도 내심 그런 책을 만나길 기대하며 읽었다.

 

 

저자는 자신의 영혼을 뜨겁게 만들고 꿈에 가까이 다가서도록 만든 100권의 책을 소개면서 줄거리 소개 없이 책을 이야기한다.
한 권의 책을 뒤적일 때마다  한 권의 책에 대해 끼적일 때마다 나는 숨바꼭질의 술래처럼
대체 무슨 내용이 저자에게 감동을 주었을까,
어느 구절에서 저자는 멈칫했을까,
무슨 책에서 그의 영혼이 달구어졌을까에 집중하며 읽다가 읽는 재미를 놓치고 말았다.
술래를 오래하면 지치는 법,
해서 편하게 읽기로 마음을 고쳐 먹으니 그렇게 눈에 불켜고 찾던 게 자연스레 보였다.

 

그는 선물하기 좋은 책 하나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마다 [빵굽는 타자기]의 폴 오스티의 책을 권하고,

김사인의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읽는 순간만큼은 '가만히' 삶의 기미들을 들여다보고 만져 보고 냄새 맡아 보라고 하며,

인생을 조각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릴케의 [릴케의 로댕]을 들여다 보라고 권한다.

 

그의 책읽기는 그의 다양한 경력만큼이나 다양하다.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넓게 뒤적거리고 깊게 끼적인다.

그의 단상엔

작가다운 시선이,

작가다운 글맛이,

작가다운 사유가 돋보인다.

이것은 어쩌면 한 권의 책을 너무 쉽게 읽고 가볍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책과 진중하게 만나는 방법을,

작품과 제대로 만나는 방법을 전달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에게 작품은 산고를 치르고 태어난 소중한 생명과도 같으니까.

더군다나 그는 작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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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 '오래 일하며 사는' 희망의 인생설계
마크 프리드먼 지음, 김경숙 옮김 / 프런티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의학 발달과 경제적인 풍요로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세계는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

노인용 보행보조기가 유머차보다 많아지고 양로원이 늘어나고 폐교되는 학교가 허다하다는 것은

노인인구 증가와 저출산으로 인해 장, 노년층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고령화로 가는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출산율이 세계에서 제일 낮은데다 80세를 육박하는 평균수명으로 사회는 장,노년층으로 넘실대고 있다.

10년 후에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는 보도는 길어지는 노년을 의미있는 시기로 준비해야 됨을 시사하는 것 아닐까.

 

[앙코르]는 은퇴 이후의 삶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보통 은퇴하는 나이를 곧 인생에서 은퇴하는 시기로 여겨왔다.

평생 몸담았던 일에서 물러나 그동안 저축해둔 돈이나 연금 등으로 노년을 한가로이 보내는 게 일반적인 은퇴 이후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캥거루족과 이태백, 사오정과 오륙도로 불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통상적인 60세 정년을 맞기 전에, 또는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백수로 살아가고 있다.

은퇴할 직장도 구하지 못했는데, 너무 젊은 나이에 명퇴를 당했는데

은퇴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앙코르 커리어의 개척자들에게서 자신의 인생을 '일'로 보람있게 일궈나가는 자세와 '개척정신'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중, 장년은 두말 할 나위 없이 필독서로 권한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쇼 네너 주버프는

"인생의 전반부가 강요받은 것이었다면 인생의 후반부는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며,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사는 것이다.

전반부 인생에서 운 좋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했다면 후반부 인생에서는 그 커리어를 가지고 후진을 양성하거나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전반전이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했다면

은퇴 이후 후반전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 책은 은퇴 이후에는 자신이 원하고 일을 하자고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관심을 갖는 일은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 일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 할 수도 있고,

꼭꼭 닫힌 문을 쾅쾅 두드릴 수도 있고,

용기와 훈련과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책에서는 45살에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를 시작한 전업주부가 성공회 사제가 된 이야기와

60살이 넘은 나이에 공부를 해서 64살에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는 할머니,

병원 임원으로 근무하다가 노숙자의 대변자로 나선 사례 등이 소개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중년을 넘긴 적지 않은나이에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또한 보수에 얽매이지 않는 점과

일을 통해 행복해 하는 것,

비영리 단체와 공공단체에서 일하는 점,

새로운 커리어를 갖음으로 빛나는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자.

물론 미국이기에 가능한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쉽고 편하게 앙코르 커리어를 완성한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난관은 있었다.

그들은 장애를 뛰어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노력했다.

새로운 커리어를 갖기 위해 공부하고 용기있게 문을 두드렸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 게 아니라는 말이다.

중년기를 살고 있거나 이미 넘어선 사람들,

일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빛나는 노후를 꿈꾸는 사람들,

계속 진화하기를 바라는 사람들,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앙코르]는 좋은 지침을 준다.

 

나이가 많다고, 너무 늦었다고 머뭇거리는 것은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봉사이든, 공부이든 그 무엇이든

한 평생 살면서 하고 싶은 일 해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면 알마나 억울한가.

적당한 시기에 이 책을 읽은 나는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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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혼 2 - 오랜 잠에서 깨어날 것인가
김상대.성낙희 지음 / 청울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딱 1년 전 이맘때쯤 [논어]를 읽고 1년 만에 다시 [논어의 혼 2]를 읽었다.

[논어]는 동양의 고전 중 가장 많이 읽혀 온 책이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책이다.

지금까지 [논어]와 관련된 책이 3천여 권이나 발간되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세상사는 이치나, 교육, 정치 등에 관해 논의한 이야기를 모은 책이며,

동양 고전 중 글이 간략하고 함축적이며 공자에 대해 가장 많이 알 수 있는 책이다.

그 안에는 공자의 혼잣말이나, 제자와의 질의응답이나, 제자들만의 대화 등이 기록되어 있다.

 

[논어의 혼 2]는 이전의 [논어] 번역본들과 많이 다르다.

[논어]의 제 2권 위정편의 중요한 몇 구절을 가지고 인생을 진지하게 이야기 한다는 점이 그렇다.

김상대, 성낙희 부부 저자가 논어를 통해 들려주는 인생이야기를 고요히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나는 몇 군데의 여울을 만났고, 거기서 잠시 숨을 고르며 읽고 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을 거듭해서 읽었으나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어 조심스럽게 몇 가지 이의를 제기한다.

 

첫째,

"공자는 15살이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다.

공자가 말하는 학문이란 내면을 경작하고, 내면의 정원을 가꾸고, 내면을 농사짓는 기술이나 자세를 터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리다면 어린 열다섯 나이에 진리를 탐구하고 삶의 본질적인 것을 행하려 노력하며 내면의 성장을 위한 삶을 다짐하는

것은 놀라운 통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 주위에 있는 정보와 학교교육의 성취를 '쓰레기 같은' 것으로 매도하며

오늘날의 배움을 폄하하는 듯한 자세는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한다.

내면의 성장과 성숙이 '정보'와 '제도권 교육'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들을 무시하고 쓰레기 취급하는 듯한 인상은 교육자다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 정보의 시대를 지나 지식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은 지혜의 시대이며 앞으로 도래할 시대는 유비쿼터스 시대이다.

지혜와 유비쿼터스는 정보와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유비쿼터스는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소견인지 모르겠으나 내면에 치중하여 정보와 지식을 쓰레기 취급하는 사람은 사람은 좋은데 실력이 없는 사람이거나,

진리나 종교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구도자의 삶을 살 수는 있으나 비현실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둘째,

공자는 마흔이 되어서는 미혹되지 않았다.

저자는 공자가 마흔에 불혹하였다는 것을 인류 최초의 유혹인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과 관련하여 소개한다.

저자는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것이 아니라

아담이 지식의 나무 과실(선악과)을 따 먹음으로 해서 스스로 에덴에서 떠나버렸다고 한다.

때문에 신도 아담을 추방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아담이 스스로 에덴을 떠난 것은

"우리가 우리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순간, 삶이 우리에게 부어주는 아름다움으로부터, 축복과 즐거움과 행복으로부터

우리는 추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먼저 먹었다면 추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유는 지식이 삶을 통해 얻어지고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다면 추방은 없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그러나 아담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지 않았기에, 불로소득으로 얻은 지식은 불완전한 것으로 가짜라고 주장한다.

빌려온 것이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질 때 진짜이며 즐거움을 더해주는데, 아담은 순서를 바꾸어 먹어서 추방되었다는 것이다.

 

 

위 내용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

선악과 사건은 신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과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이야기이지 지식이나 앎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신은 인간을 말 잘 듣는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을 뿐더러 명령에 따라 생각이나 감정 없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도 원치 않는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고, 인간이 설령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신의 명령에 불순종 하더라도 우리의 선택을 존중한다.

다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우리에게 물으신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을 자백하고 돌이키면 자비로움으로 용서하신다.

 

성경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기록하고 있다.

금단의 열매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으로 마땅히 죽어야 할 목숨이다.

그러나 신은 이들을 추방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매듭짓는다.

죽어야 할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에덴에서 쫓아내는 것이지 결코 아담 스스로 떠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둘.

저자는 아담이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먼저 먹고 금단의 열매를 나중에 먹었다면 추방되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먼저 먹으나 나중에 먹으나 범죄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선악과를 먹었다는 사실, 즉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나중에 먹었더라도 추방당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신학자는 아니지만 이쯤에서 나는 내 상식을 동원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그들이 생명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은 상태에서 선악과를 먹었을까?

내 대답은 NO,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먼저 먹었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뱀이 와서 유혹하기까지 아담과 하와에겐 따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생명 나무의 실과는 언제든지 마음대로 따 먹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뱀이 와서 유혹할 때까지 그것을 먹지 않았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셋.

저자가 말한대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이 진짜 지식이고 책이나 사람들, 사회로부터 얻은 지식은

불로소득으로 얻은 지식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며 가짜라는 의견은 납득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 논리를 내세워 아담이 자신의 경험으로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먼저 먹고

나중에 선악과를 먹었다면 추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뱀, 즉 사회로부터 얻은 지식은 자신이 경험해서 얻은 지식이 아니므로 불로소득이며 불완전하며 가짜이기 때문에

추방당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 논리라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식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지혜'라면 몰라도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은 경험에 의한 것보다는 학교나 책, 사람들에 의한 지식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불완전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유한한 인생이 어찌 그 많은 것을 언제 다 경험해서 자신의 온전한 지식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앎만큼 값지고 귀한 것은 없을 게다.

하지만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도 앎을 얻을 수 있고,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쌓으며 지식을 축적할 수도 있고,

선생님이나 부모님, 심지어 어린 아이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와 다른 내 생각이 주제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오해를 한 것 일 수도 있고 저자의 견해를 잘못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해를 줄이기 위해 거듭 읽었다.

그래도 잘못 해석한 거라면 반대 의견을 수용할 각오로 이 글을 썼다.

무례한 내용이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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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고전 - 압축된 천년의 지혜, 고사성어의 재발견
이창일 지음 / 살림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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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아는 사람 중 대화를 할 때 고사성어를 많이 쓰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을 고리타분하게 여기며  괜히 잘난 척하는 것 같아 마음이 별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한 해 두 해가 갈수록 그사람에게 많은 걸 배우게 되면서 그 사람을 마음 속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고사성어는 상대를 간명하게 감동시키는 힘이 있고

화제의 핵심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적시에 고사성어를 인용하여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것과

말이 지나간 뒤에 여운을 남기는 화법에 고사성어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그 사람을 통해 터득했다.

이후 내가 하는 공부와 관련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사성어 책을 자진해서 구입해 읽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전에 읽은 책은 고사성어의 뜻풀이에 그치고 있어서 고사성어에 대한 내 목마름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고사성어는 압축된 고전'이며,

고전의 웅장한 규모를 압축시켜서 그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고사성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책은 우리시대 우리 감각에 맞게 쓴 고사성어 20개를 강의식 필체로 꼼꼼하게 다루며

고사성어의 뿌리와 배경을 깊고 넓게 소개하며 고사성어의 탄생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짚어준다.

이 책의 저작 동기는 단순히 고사성어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을 우리 삶에 연결하여 활용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줄의 고전]은 고사성어에 압축된 고전의 내용을 맛깔나고 구수하게 풀어주는 책이다.

네 음절 혹은 두 음절로 이루어진 고사성어의 압축을 풀면 무수히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지만

저자는 단지 정보 전달자의 역할은 사양한다.

그 안에 담긴 지혜, 지혜를 삶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기를 원하며

이를 위해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변하는 데 더 힘을 쏟았다고 밝힌다.

부정적인 고사성어가 실은 매우 긍정적이며 명랑한 의미라는 것이다.

일테면 "너는 자린고비야"라는 말을 "경제 마인드를 갖춘 사란이야"로 받아들이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을 뜻하는 기우(杞憂)는

3200년 전 중국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을 걱정하며 던진 심오한 질문,

"이 세상이 영원할까?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종말이 있는 것일까?"에서 출발 했다고 한다.

그 심각한 질문이 한낱 쓸데없는 걱정으로 둔갑하기까지의 과정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놓치지 마시라.

이판사판(理判事判)은 맥락이 온전히 다를 뿐 아니라, 쓰임도 완전히 다른 경우다.

이판과 사판이 생긴 곳은 절이다.

경전을 읽고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는 승려를 이판승,

절의 경제활동을 책임지는 승려를 사판승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사판승보다는 이판승이 진짜 승려처럼 생각하는데,

이판사판은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건국되는 왕조 교체와 연관이 있다.

이판사판이 처음 쓰임과 완전히 다른 모양세를 갖추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 역시 흥미로운 여행이었다.

 

게다가 고사성어의 배경이 된 인물과 시대를 읽는 재미는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무릉도원(武陵桃原)을 읽으면서 만난 도연명과 그가 쓴 [도화원기]와 [귀거래사]를 훑고

이태백과 백거이를 짧게나마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청수무어(淸水無魚)를 읽으면서 만난 반초와 굴원이라든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고사성어인 자린고비에서는 충북 충주에 사는 고비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고,

압권(壓券)이 과거제도와 관련있는 고사성어라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고사성어 속에는 여러 모습들이 숨 쉬고 있다.

고사성어는 박제된 글이 아니라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말이다.

이 말을 우리 삶으로 끌어와 그 안에 담긴 지헤를 활용한다면 우리는 농축된 정보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읽는 재미와 알아가는 재미를 동시에 선사해 준 [한 줄의 고잔]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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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판타지
김별아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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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처럼 허물 없고 편한 관계는 아마 없을 것 같다.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 부시시한 얼굴과 제멋대로 뻗친 머리를 보여줘도 아무렇지 않고,

무릎 나온 추리닝을 입고 있어도 부끄럽지 않고,

굳이 예의를 갖춰 대하지 않아도 괜찮고,

신경질이 났을 때도 일부러 고상한 척 하지 않고 버럭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관계가 가족이다.

 

적당히 신비로운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비로움을 유지하려면 가릴 것도 많고 차릴 것도 많아서 귀차니스트인 나는 신비로움 대신 편안함을 택했다.

외출을 하지 않는 날에는 양치질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랑할 만한  백색 피부를 가진 자연미인도 아닐뿐더러 미인형의 외모도 아니면서 세수 안한 맨얼굴로

무릎 나온추리닝을 입고 당차게 활보한다.

그래도 예의 없다고 나무라거나 불결하다고 흉보는 이 없다.

 

이렇듯 편하고 익숙한 관계가 가족이나 때론 이런 편함이나 익숙함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예의를 갖추어 대하지 않아도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편해서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대한다.

하지만 그건 무례이며 독선이다.

가족간에도 적당한 예의는 필요하고 표현되지 않은 마음은 본인 이외에는 그 누구도 본인만큼 모른다.

알아주겠지하는 기대가 무너지면 실망하고 상처받는다.

사람이 안고 있는 상처 중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제일 많고 깊다는 점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것도 떳떳하게, 가끔은 위협적으로, 때론 권위를 내세우면서 그리고 함부로.

 

 

[가족 판타지]는 가족에 대한 신선하고 산뜻한 시선이다.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그녀만의 독특한 시선과 신선한 감각으로 당차게 허물고 있다.

그녀가 희망하는 가족 판타지는 "내일에 저당 잡히지 않은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

혼자서도 행복하고, 헤어져도 행복하고, 다시 만나서도 행복하고,

상처와 장애와 실패와 절망 속에서마저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저자 김별아 씨는 매서움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닌 작가가 아니가싶다.

가족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은 부드럽고 섬세하나 

가족 구성원에 대한 하나하나의 입장은 단호하며 날카롭다.

그리고 솔직하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은 듯한 필체에 힘이 실려있고 당당함이 느껴진다.

그녀의 이런 자신감이 좋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나

세상의 모든 아내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싶다는 소신엔  동참하고 싶었고,

가정은 부모의 뜻에 맞는 '좋은 아이'를 제조하는 곳이 아니라는 조언과

결혼 10년 후  자연스레 변해버린 부부관계를 엿보면서는 나와 닮은 구석을 발견하고  반기기까지 했다.

아이와 좌충우돌하는 모습이나 젊은날 유난했던 방황은 거울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올 정도였다.

방황의 원인은 다르지만, 반항의 강도는 그녀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나도 지독한 열병을 앓았다.

 

[가족 판타지]에는 가족에 대한 저자의 확고하고 분명한 신념을 만날 수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족에 대한 개념도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조건 희생과 헌신을 하는 어머니는 더이상 현모양처가 아니며,

희생과 헌신을 '무기'로 가족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남편과 아이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어질고 현명한 어머니와 아내는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나

그 의미와 표현의 양식은 분명히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전통적 가족의 가치를 넘어 가족 모두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판타지를 그녀와 함께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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