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 : 바로크 미술의 거장 마로니에북스 Art Book 10
다니엘라 타라브라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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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는 예상을 뒤엎고 나를 곧추세워 똑바로 앉힌 책이다.

가장 편한 자세로 루베스의 생애와 작품을 그긋하게 감상하려던 애초의 생각이 빗나갔다.

작고 얇은 책은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1577-1640)의 생애와 작품을 알차게 담고 있다.

크기와 두께, 가격에 비해 실속있고 야무진 책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당대의 문화, 사회, 정치적 맥락에서 조명한 마로니에북스의 ’Art Book’ 시리즈 중 하나다.

 

[루벤스]는 먼저 그의 생애를 대략적으로 짚어준다.

그는 아버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독일의 지겐에 유배되어 있을 때 그곳에서 태어난다.

유배 기간이 끝나고 쾰른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3년 후 마르그리트 드 리뉴 시종이 되어 귀족사회의 습속을 익히며 화가의 꿈을 품는다.

이후 여러 스승에게 그림을 배우며 매우 젊은 나이에 자신의 작품을 팔 수 있는 공방의 주인이 된다.

이탈리아에 체류하는 동안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 영향을 받아 화가로서 명성을 얻으며 자신의 회화적 양식을 발전시켜 완성한다. 이 시기에 루벤스는 외교관 일을 시작한다.

잘 생긴 외모에다 유쾌한 대화를 주도했던 그는 군주와 귀족의 신뢰를 얻으며 평탄하고 부유하게 생활한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루벤스는 명암 표현과 관능적 표현에 능한 화가로 꼽힌다.

루벤스 그림은 섬세한 의상과 풍만한 육체, 생기 넘치는 인물 묘사와 대담한 화면 구도가 특징이다.

제노바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그린 <마리아 세라 팔라비치노>와 <난장이와 함께 있는 귀부인>, <브리지다 스피놀라 도리아>

같은 작품을 보면 비단과 벨벳 천의 질감을 정확하게 담고 있어 눈으로도 천의 표면이 만져질 정도로 섬세하다.

손을 뻗어 여인의 부드러운 옷자락을 만지고 싶은 충동이 이는 작품이다.

<유모와 아르스고>, <미의 세 여신>, <거울을 보고 있는 비너스><디아나와 칼리스토>등 많은 작품에서는

풍만하고 관능적인 여체를 감상 할 수 있다.

 

루벤스의 자신감 넘치는 붓 터치와 열정은 '신들린 붓놀림'이라는 미술 비평가의 극찬을 듣는다.

그의 작품은 수사학적이고 극적인 동세, 빛을 묘사하는 방법, 뛰어난 대상의 양감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라이벌이 없을 정도로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인정받고 명성을 날린 그는 자기관리도 철저한 것으로 알려진다.

새벽에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오후 5시까지 붓을 놓치 않으며 새로운 그림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고 한다.

일생을 순적하게 살았던 그는 잘 생긴 외모덕분이지는 모르겠으나 사랑에 있어서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부인과 사별 후 16세의 어린 아내를 맞아 자신의 여러 작품 속에 여주인공으로 아내를 등장시킨다.

 

후대엔 바로크 미술의 거장으로, 당대엔 화가들의 군주이자 군주들의 화가로 알려진 루벤스는 

화려한 붓놀림과 풍부한 색채를 구사하는 렘브란의 시기와 존경을 받은 예술가이고,

죽음이 임박한 순간까지 명성을 드날리며 주가를 올린 화가이며,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띤 자신의 작품 만큼이나 최고의 화가로 대접받으며 화려하고 풍성하게 살다갔다.

 

단순히 루벤스의 작품 세계를 엿보려 했던 마음으로 선택한 책이었으나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의 생애와 수많은 작품을 동시에 만날 수 있어서 유익했다.

미술 상식이 풍부해진 것 같아 괜스레 우쭐해지게 만드는 기분 좋은 책이다.

루벤스 작품 전시회에 가면 최소한 아이들에게 아는 척은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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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경험하는 삶 -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
멜빈 블랙커비. 헨리 블랙커비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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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요깃거리를 들고 가식해놓은 나무를 옮겨 심는 밭에 나갔더니 남편은 먼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하다 잠시 쉬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다.

제작년에 심은 과일나무 중 가장 많이 자란 나무 몇 그루가 누군가에 의해 톱으로 잘려 있었다.

올해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거라며 기대하고 있던 나무만 골라서 죽인 것이다.

남편이 얼마나 지극한 정성과 애정으로 나무를 가꾸었는지 나는 안다.

우리에겐 물증은 없지만 심증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의 교복을 다림질 하다가 두 아이의 교복 바지가 찢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교복 바지는 누가 봐도 해어져서 찢어진 게 아니라 고의적으로 찢었다는 걸 알 수 있게 찢겨져 있었다.

전날 교복을 빨아 널고 두어시간 가량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건 분명 같은 사람의 소행이야.

생명 있는 나무를 잔인하게 죽인 것도 모자라서 아이들 교복까지 찢다니,

이럴 수는 없어.

 

다음 날 분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펼쳤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으나 멈추지 않고 읽어내려 갔다.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은 부활의 의미와 부활의 능력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헨리 블랙커비는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을 체험할 때 비로소 참된 믿음을 갖게 된다고,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은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전한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감지 할 수 있는 신령한 감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정확히 모른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도무지 모른다.

 

혼란스런 나에게 [예수님을 경험하는 삶]은 말한다.

그분의 구원 활동에 동참하기 위해 삶의 방향과 내용을 조정해야 한다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고.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고요?

나를 해코지하는 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라고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니, 싫다.

텃새하는 저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더러

우리를 이방인 취급하는 저들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할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다.

 

잘못한 것 없이 당하는 게 억울하다는 나에게 하나님은 한 사건을 상기시켰다.

그랄 땅에서 우물을 팔 때마다 블레셋 사람에게 순순히 우물을 배앗긴 이삭을 기억하게 했다.

원주민들은 백배 결실을 맺은 이방인을 질투하여 해코지 했지만, 이삭은 그들과 대응하거나 분을 내지 않았다. 

분을 참지 못하고 이장에게 달려갔던 나는 책을 덮고 엎드려 부끄러움에 몸을 떨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됐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마13:11)

 

헨리 블랙커비는 하늘나라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는 '부활'이고, 부활의 열쇠는 갖는 방법은 '변화'라고 설파한다.

변화는 말씀을 아는 것에서 출발해서, 나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는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

나의 추하고 악하고 더러운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내 아집과 자아를 죽여야 한다.

그러할 때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고, 부활의 복이 임하고, 증인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헨리 블랙커비의 통찰은 우리를 부활 신앙으로 이끈다.

처음 책을 들었을 때 분노로 가득했던 마음이 책을 덮을 즈음엔 기쁨으로 충만했다.

감사 수준에 있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이제는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으로 끌어올리고 싶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능력이 나에게 임해 저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장기전이 되더라도 한걸음씩, 내가 먼저 저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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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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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장으로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 권남희 옮김
시공사 2009.04.01
펑점


대문과 담장이 없는 우리집은 키 작은 앵두나무가 대문과 담장 역할을 한다.

집 주변을 삥 둘러 에워싸고 앞마당에 나란히 줄지어 있는 앵두나무는 우리집의 예쁜 울타리이다. 

봄햇살을 담뿍 받은 앞마당 앵두나무에 지금 앵두꽃이 만발하다.

뒤란의 앵두나무는 연초록의 몽우리를 맺고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앵두꽃은 멀리서 보면 분홍색이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신기하게도 흰색이다.

앵두꽃은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향기 없이 잔잔하게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나는 [채굴장으로]를 앵두꽃 같은 소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파격적인 주제를 섬세하고 잔잔한 아름다움으로 그린 소설이다.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흠모하는 '불륜'이 이 책의 외피다.

작가 이노우에 아레노는 불륜하면 떠오르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들은 걷어내고 싱겁고 덤덤하게,

그러나 애틋하고 감미롭게 작품을 채워 나간다. 

강한 냄새 진동할 것 같았으나 아무 냄새도 풍기지 않는 무취의 소설이다.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고 있는 유부녀의 마음이 분홍과 흰색을 오갈 뿐 이렇다할 사건 하나 없는 밋밋한 소설이지만,

심리묘사가 뛰어나고 감정의 결이 부드러워 그 맛에 취하게 된다.

 

외딴섬 초등학교 양호교사인 주인공은 음악 교사로 부임해온 이사와에게 한없이 끌린다.

주인공 세이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다른 남자에게 자꾸 시선이 가고 끌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저자는 흔들리는 주인공의 여린 마음을 포착해 한 결 한 결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 느낌이 맑다.

그 감정이 안타깝도록 치밀해서 애절하고, 선정적이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긴장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랑, 자기 힘으로도 어쩔 수 없이 증폭되는 감정을 절제하고 누르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머리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끝간데 없이 가는 게 사랑의 마음이다.

가까이 하면 안 되는 사랑,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 사랑이라서 어쩌면 더 애틋한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결혼한 사람의 가슴에도 다른 사랑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

심장이 멎지 않는 한 누구나 예외일 수 없다.

다만 그것을 절제하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채굴장으로]는 남자를 향한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 단정짓지 않고 말을 아낀다.

남자도 여자에 대해 같은 감정을 품고 있는지,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행간을 통해 추측할 따름이다.

주인공의 감정을 불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뜨거운 포옹은 커녕 손 한번 잡지 않았으니 도리질할 사람도 있을테고,

이미 마음을 빼앗겼으니 불륜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게다.

나는? 나도 단정짓기 어려워 말을 아끼련다.


[채굴장으로]의 채굴장(切羽)은 본래 갱도의 맨 끝을 가리키는 말로 그 이상 앞으로는 나아갈 수 없는 장소를 뜻한다.

채굴장으로’라는 제목을 액면 그대로만 해석하면 뭔가 ‘막장’으로 치닫는 분위기를 연상 할 수 있다.

그러나 채굴장은 ‘날개를 자르다’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끌림과 그것을 접는 마음의 애절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제목이다.

언제나 절박한 채굴장에 선 마음,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모든 사랑의 현장일 것이다.

 

작가는 젊은 시절에 소설가인 아버지의 글을 옮겨 적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응축되어 온,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이 책을 탄생하게 했다고 한다.

[채굴장으로]는 '탄탄한 구성과, 프로의 문체, 어른의 소설, 고급스런 작품' 이라는 평을 받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나에겐 일본 연애 소설에 가졌던 편협한 시각을 새롭게 만들어준 책, 일본 연애 소설도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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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 인물로 읽는 한국사 (김영사) 9
이이화 지음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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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을 대표하는 지성인 괴테와 한국(동양)을 대표하는 지성인 다산 정약용을 비교한 책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괴테와 다산, 따로 떼어놓고 보면 너무 익숙한 이름이지만, 둘을 붙여놓으면 낯설 뿐 아니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동시대인인 두 사람의 역동적인 삶과 방대한 사유체계, 학문, 철학 등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다른 것 같던

두 인물이 동서양의 지리적 조건을 뛰어넘고 시간을 초월하여 닮아 있음을 보게 된다.

두 사람은 살아서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만약 둘이 만났더라면  사상과 학문이 잘 통하는 동지적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거나 대결을 벌여야하는 라이벌, 혹은 상대를 중상모략하는

정적 관계의 인물들을 각기 2명씩 대비시켜놓고 있다. 일전에 읽었던 다산과 괴테를 다룬 책 만큼 흥미롭고 신선하다.

70명의 인물을 소개하는 이 책에는 조선 시대 인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미 다른 책에서 다룬 인물이 대부분이나 예전의 맹목적인 기준이나 판단을 버리고

저자 나름의 가치판단에 따라 인물을 재조명하고 있는 점이 다른책과 구별된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평가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대정신에 따라 충신이 간신이 되기도 하고, 역적이 충신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충신으로 추앙받았던 성삼문이나 역적으로 몰려 죽은 허균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충신이고 역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만고의 충신으로 알려진 정몽주와  변절자로 알려져 있는 정도전에 대한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선후배로 같은 길을 걷다가 끝내 정적이 되어 갈라선 정몽주와 정도전을 심도 있게  다루며

임금 한 사람이나 한 왕조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은 그 왕조에서 기릴 수 있으나 역사에서는 다시 새겨보아야 한다는 말한다.

누가 진정 백성을 위하고 봉사했느냐를 가지고 충신이지 아닌지를 판가름해야 하는데

우리의 평가 방식은 왕조 중심으로 이루어진 게 사실이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에 의하면 권력의 암투라는 사실을 감춘 채 정몽주의 충절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고,

정도전에 대한 지나친 헐뜯음은 개혁의지마저 낮게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정몽주와 정도전 외에 조선의 대표적 충신과 변절자를 찾으라면 아마 다수의 사람들이 성삼문과 신숙주를 말할 것이다.

출신 배경과 입신 과정, 실력까지 비슷했던 두 사람은 두터운 친구 지간이었으나 세조의 왕위 찬탈로 갈림길에 서고 맞수가 된다.

역사는 성삼문을 청사에 빛나는 충신의 표본으로, 신숙주는 변절자의 표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와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성삼문을 좋아하는 나도 수긍이 가는 견해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일리 있으나 성삼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처음이라 그런지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성삼문과 신숙주와는 정반대로 평생지기로 남은 김인후와 유희춘,

임진왜란 속에서 남다른 우정으로 서로를 격려한 유성룡과 김성일의 향기로운 우정도 이야기 한다.

삼당시인의 한 사람인 손곡 이달과 개화파의 선구자 강위는

술을 매개로 신세를 한탄하면서 시로 승화시켰다는 공통분모를 지닌 인물로 소개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으로 꼽히는 신사임당과 황진이를 남존여비 사회의 두 희생양이자,

우리의 판단을 복잡하게 하는 맞수로 대비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신사임당과 황진이가 왜 우리의 판단을 복잡하게 하는가?

두 여인의 판이하게 다른 삶을 현대의 시각에 의해 재조명한 부분은 진정한 여자의 행복을 묻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이름 뒤에 한과 불행을 감추고 산 여인이다.

영원한 어머니 상으로 추앙되는 여인도 평가의 잣대에 따라 얼마든지 애처롭고 불행한 여인이 될 수 있고,

서녀 출신의 기생 황진이는 개성과 정열을 불태우며 여성 해방, 인간 해방을 구가한 여인이 될 수 있다.

두 여인은 자신들의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이이화 선생님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의 아홉 번째인 이 책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이 만나고 갈라서고,

적이 되고 동지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유기적 연관성이 있는 사람들이 웃고 울었던 이야기는 현대인들의 삶을 오래된 거울로 들여다 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람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없을 듯싶다.

강산이 바뀌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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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밥상 이야기 - 거친 밥과 슴슴한 나물이 주는 행복
윤혜신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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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착한 밥상 이야기]를 받고 표지를 한참 들여다 보다 바구니를 들고 텃밭으로 나갔다.

작년에 친정 어머니가 캐다 먹기 좋으라고 텃밭 한 귀퉁이에 심은 달래가 언제 올라왔는지 무더기로 올라와 있었다.

무심도 하지, 이렇게 자랄 동안 텃밭에 한번도 와보지 않다니.

달래를 캐고 들판에 널브러져 있는 냉이를 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씀바귀도 많았지만 먹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두었다.

민들레는 어느새 꽃을 필 채비를 하는 것과 막 올라오는 것들이 섞여 있었고, 취나물은 뾰족이 얼굴만 내민 상태고,

쑥은 부지런히 올라오는 중이다.

 

[착한 밥상 이야기]의 윤헤신 님은 마흔까지 살던 서울을 떠나 6년 전 시골에 내려와 지금은 시골 똑순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계절의 변화를 모르는 도시, 빠른 속도로 살아가는 도시는 작가의 삶에 만족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저자는 시골로 내려와 자연의 속도에 맞춰 텃밭에 농사를 짓고 들나물을 캐고 꽃밭을 가꾸며,

'미당'이라는 한정식집을 경영하며 이웃과 정을 나누는 밥집 아줌마로 신나게 살고 있다.

시골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그녀가 부럽다.

마흔까지 살던 도시를 떠나 2년 전 어쩔 수 없이 시골로 내려온 나에게,

가끔씩 도지의 북적거림과 빠른 속도를 그리워하는 나에게 그녀의 글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착한 밥상 이야기]는 자연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자연 밥상 요리법 73가지를 알려준다.

그녀가 소개하는 자연 밥상은 건강 밥상이고, 건강 밥상은 생명 밥상이다.

그녀는 생명이 가득한 제철 재료를 정갈하게 손질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맛과 영양을 그대로 살린다.

조미료는 절대 사용하지 않고 양념은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그것이 ‘진정한 맛’이라고 생각한다.그녀는 양념과 소스가 더해질수록 재료의 맛은 사라지고 알맹이도 사라진다고 귀뜸해준다.

조미료 없이 음식 맛을 낼 수 없는 나에겐 불가능한 이야기, 아득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욕심나는 요리법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야한 사람과 야한 음식을 좋아한다.

그녀가 말하는 야한 음식이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며 달콤한 맛이 아니라

질기고 거칠고 투실투실하며 거무튀튀하고 씁쓰레한 먹을거리다.

먹을면 먹을수록,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음식이다. 흰쌀밥에 고깃국이 아니라 시커먼 잡곡밥에 구수한 된장찌게,

거친 밥에 슴슴한 나물이다.

거칠고 질긴 음식, 거무튀튀하고 울퉁불퉁한 음식, 벌레 먹고, 꼬부라지고, 자잘하고,

쇠한 것들이 진정한 생명이 있는 야한 먹을거리고, 야한 음식에 진정한 생명의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거친 껍질은 벗기고, 씨는 빼내고, 때깔이 안 좋고 윤기가 없으면 안 먹고,

모나고 삐뚤고 울퉁불퉁하고 벌레 먹은 건 죄다 버린다.

반듯하고 맛있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만 찾는다.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뜨끔하다.

농약 핑계로 과일 껍질을 두껍게 벗기고 반듯한 것만,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만 골라서 먹는 이제껏 불량 식품만 먹은 셈이다.

 

[착한 밥상 이야기]는 예전부터 먹어온, 할머니와 어머니가 차려주던 그대로의 밥상이 가장 좋다고 한다.

시커먼 보리밥에 배춧잎 넣은 슴슴한 된장국, 신 김치를 숭숭 썰어낳은 비지찌개, 남은 반찬 두어 가지 넣은 비빔밥,

이런 음식들이 가장 안전하고 자연스러우며 영양이 듬뿍 담겨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골고루 먹는다고 건강한 게 아니므로 일주일 중에 엿새는 채식하고 하루만 고기를 먹으라고 새로운 식단을 제시한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영양이 결핍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매일 먹는 된장 같은 콩발효 음식에 단백질이 충분히 들어있기  때문이란다.

 

[착한 밥상 이야기]가 전하는 음식 이야기는 맛깔스럽고 소박하고 정겹다.

짜게 해야 변하지 않고 오래 먹을 수 있다는 할머니의 음식 철학 때문에 밥 투정 했던 어린시절과

지금껏 할머니의 맛을 찾아다니며 그 맛을 내려고 끙끙거리는 이야기는

당진과 가까운 서산에 사시는 내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사는 것이 힘들어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  "매일 두 시간씩 기도하고 있다." 는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나를 울렸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몸을 아끼지 않고 밭일과 식당일을 도와주시는 연로하신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를 울렸다 웃겼다 한다.

단순히 요리법만 소개하지 앟고 있어서 이 책이 좋다.

삶과 자연과 음식을 더불어 말하고 있어 좋다.

 

내가 사는 마을은 요즘

소를 몰아 밭을 가는 풍경과 이랑을 따라 감자 씨를 심는 농부들로 부산하다.

봄의 생기와 활기로 가득한 봄날 나 혼자만 집안에 들어박혀 있다.

나도 농부들처럼, 저자처럼, 작년에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돌아오는 장날에는 오이와, 가지, 토마토와  수박, 고추와 호박, 상추 모종을 사와 텃밭에 심을 참이다.

텃밭을 가꾸며 자연을 재료로 착한 밥상을 차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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