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 인물로 읽는 한국사 (김영사) 9
이이화 지음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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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을 대표하는 지성인 괴테와 한국(동양)을 대표하는 지성인 다산 정약용을 비교한 책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괴테와 다산, 따로 떼어놓고 보면 너무 익숙한 이름이지만, 둘을 붙여놓으면 낯설 뿐 아니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동시대인인 두 사람의 역동적인 삶과 방대한 사유체계, 학문, 철학 등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다른 것 같던

두 인물이 동서양의 지리적 조건을 뛰어넘고 시간을 초월하여 닮아 있음을 보게 된다.

두 사람은 살아서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만약 둘이 만났더라면  사상과 학문이 잘 통하는 동지적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거나 대결을 벌여야하는 라이벌, 혹은 상대를 중상모략하는

정적 관계의 인물들을 각기 2명씩 대비시켜놓고 있다. 일전에 읽었던 다산과 괴테를 다룬 책 만큼 흥미롭고 신선하다.

70명의 인물을 소개하는 이 책에는 조선 시대 인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미 다른 책에서 다룬 인물이 대부분이나 예전의 맹목적인 기준이나 판단을 버리고

저자 나름의 가치판단에 따라 인물을 재조명하고 있는 점이 다른책과 구별된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평가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대정신에 따라 충신이 간신이 되기도 하고, 역적이 충신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충신으로 추앙받았던 성삼문이나 역적으로 몰려 죽은 허균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충신이고 역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만고의 충신으로 알려진 정몽주와  변절자로 알려져 있는 정도전에 대한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선후배로 같은 길을 걷다가 끝내 정적이 되어 갈라선 정몽주와 정도전을 심도 있게  다루며

임금 한 사람이나 한 왕조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은 그 왕조에서 기릴 수 있으나 역사에서는 다시 새겨보아야 한다는 말한다.

누가 진정 백성을 위하고 봉사했느냐를 가지고 충신이지 아닌지를 판가름해야 하는데

우리의 평가 방식은 왕조 중심으로 이루어진 게 사실이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에 의하면 권력의 암투라는 사실을 감춘 채 정몽주의 충절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고,

정도전에 대한 지나친 헐뜯음은 개혁의지마저 낮게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정몽주와 정도전 외에 조선의 대표적 충신과 변절자를 찾으라면 아마 다수의 사람들이 성삼문과 신숙주를 말할 것이다.

출신 배경과 입신 과정, 실력까지 비슷했던 두 사람은 두터운 친구 지간이었으나 세조의 왕위 찬탈로 갈림길에 서고 맞수가 된다.

역사는 성삼문을 청사에 빛나는 충신의 표본으로, 신숙주는 변절자의 표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와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성삼문을 좋아하는 나도 수긍이 가는 견해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일리 있으나 성삼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처음이라 그런지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성삼문과 신숙주와는 정반대로 평생지기로 남은 김인후와 유희춘,

임진왜란 속에서 남다른 우정으로 서로를 격려한 유성룡과 김성일의 향기로운 우정도 이야기 한다.

삼당시인의 한 사람인 손곡 이달과 개화파의 선구자 강위는

술을 매개로 신세를 한탄하면서 시로 승화시켰다는 공통분모를 지닌 인물로 소개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으로 꼽히는 신사임당과 황진이를 남존여비 사회의 두 희생양이자,

우리의 판단을 복잡하게 하는 맞수로 대비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신사임당과 황진이가 왜 우리의 판단을 복잡하게 하는가?

두 여인의 판이하게 다른 삶을 현대의 시각에 의해 재조명한 부분은 진정한 여자의 행복을 묻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이름 뒤에 한과 불행을 감추고 산 여인이다.

영원한 어머니 상으로 추앙되는 여인도 평가의 잣대에 따라 얼마든지 애처롭고 불행한 여인이 될 수 있고,

서녀 출신의 기생 황진이는 개성과 정열을 불태우며 여성 해방, 인간 해방을 구가한 여인이 될 수 있다.

두 여인은 자신들의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이이화 선생님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의 아홉 번째인 이 책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이 만나고 갈라서고,

적이 되고 동지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유기적 연관성이 있는 사람들이 웃고 울었던 이야기는 현대인들의 삶을 오래된 거울로 들여다 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람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없을 듯싶다.

강산이 바뀌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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