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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사랑한다, 행복할 자유를! - 대한민국 보통 아줌마 이보경 기자가 들여다본 프랑스의 속살
이보경 지음 / 창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파리를 동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문화와 예술의 고장 파리를 누비고 다니는 내 모습을 종종 상상하며 그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고 있다. 프랑스에 발을 디디면 가장 먼저 달려가고 싶은 곳이 세느강과 몽마르뜨 언덕이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 에펠탑, 베르샤유궁전은 그 다음이다. 여행 순서까지 정한 나는 파리가 마음에 들어온 아주 오래 전부터 파리 관련 여행 서적들을 꾸준히 읽고 있다. 관련 여행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파리 여행이 더욱 확고해지고 구체적으로 변해가니 머잖아 파리를 밟을 수 있을 것도 같다.
[파리는 사랑한다, 행복할 자유를!] 이 책은 여느 여행서와 다르다. 여행에 관한 정보와 안내를 실은 여행기가 아니다. 프랑스의 정치, 역사, 교육, 철학, 다양한 사회문제를 골고루 다룬 여행에세이다. 여행자의 시각에 잡힌 외형적인 모습이 아닌 프랑스를 이루고 있는 내면을 기자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파헤친 책이다. 이보경 저자가 1년 반동안 체류하며 만난 사람들과 보고 느낀 파리의 속살은 파리에 대한 환상을 일부 깨뜨리기도 하고, 그네들을 다시 바라보게도 한다.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파리, 지조 있는 파리, 독특한 파리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프랑스가 농업국이라는 것. 그것도 국민들이 자긍심을 가진 농업국이라니 놀랍다. 또 한번 적잖이 나를 놀래킨 건(나의 무지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프랑스의 남성 우월주의다. 여자는 바지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판탈롱법'이 아직도 폐지되지 않았다. 200여 년 전 나폴레옹 집권 초기에 제정된 법이 아직 폐지되지 않았다는 것은 남녀 차별 전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닌가. 바지를 입으려는 모든 여성은 경찰청에 출두해 허가를 받아야 하고, 보건 담당관의 사유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요즘 프랑스에서 여자들이 바지를 입든 치마를 입든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법대로 하자면 경찰청의 허락을 받지 않은 바지 착용은 불법이다. 자유롭고 수용적인 프랑스에 이런 법이 잔재할 줄이야.
그런가 하면 지조있는 쇠고집 행정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면은 배울만 하다. 도시 미관을 헤칠 것을 우려해 고도 제한을 40년째 고수하고 있는 파리시의 뚝심행정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파리시는 많은 정치인, 경제인, 건축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3층이 넘는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원칙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상가 빌딩이든 아파트든 그 어떤 신, 증축 건물도 37미터, 최대 13층을 넘어선 안 된다. 고도 제한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설명회, 토론회, 포럼 등을 열어 고도 제한을 풀려고 하고, 가상 빌딩숲을 멋지게 컴퓨터그래픽으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시민 여론은 요지부동이다. 유럽에서 3 번째로 크고 우리나라보다 여섯 배나 큰 면적을 가진 나라여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환경친화 행정을 무섭게 고집하는 파리와 파리 시민이 멋지다.
[파리는 사랑한다, 행복할 자유를!]은 이 외에도 무너지는 공교육, 인종문제, 노사문제, 여성문제 등을 조목조목 파헤친다. MBC 현직 기자인 이보경 저자는 프랑스의 다양한 문제와 현상을 기자다운 날카로움과 분석적인 안목으로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의 문제점도 함께 짚고 넘어간다. 파리의 고도 제한 문제에선 서울시 공무원 비리를, 그랑제콜에 입학하려는 학생과 부모를 보며 한국의 사람 잡는 사교육 열풍을, 프랑스 사영 방송을 말하며 우리나라의 언론법을 이야기한다.
파리를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파리가 그리 환상적인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숨은 파리, 진짜 파리를 안내하는 에세이라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진짜 파리를 만나며 사람 사는 곳은 여기나 거기나 비슷비슷하고 고만고만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을 읽고 파리로 떠난다면 참다운 파리를 여행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