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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기행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인도 여행의 뒷이야기와 다양한 경험을 담은 [황천의 개]를 통해 후지와라 신야를 처음 만났다. 만나기 전부터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책을 직접 읽은 건 [황천의 개]가 첫작품이다. 그 책이 삶과 죽음이 자연스레 공존하는 인도를 그린 작품이라면, 이 책 [아메리카 기행]은 80년대 미국인의 초상을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인이 본 20년 전 미국과 미국인의 초상이지만 격세지감 같은 건 없다. 오히려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가려진 것들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날카롭고 분석적인 작가의 시선에 여러번 놀라며, 화려하게 포장하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움찔하며 읽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모터홈(장거리용 캠핑카)으로 200일간 미국 대륙을 일주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 플로리다, 플로리다에서 다시 남부를 횡단해 로스앤젤레스까지 무려 2만 마일이나 달리며 기록하고 찍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경치좋고 그림좋은 곳을 찾아서 풍광을 감상하는 여행을 하지 않았다. 그가 주목한 건,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풍광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다. 후지와라는 이 책에서 미국인, 온갖 군상들이 망라된 미국이라는 거대 공간과 그 속에서 꽃핀 문화의 특징과 이중성에 대해 날카롭게 해부한다. 작가가 파헤친 미국이란 나라는 알면 알수록 놀랍다.
[아메리카 기행]은 단지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하는 멸시, 50여 매장을 둘러봐도 아시아계나 히스패닉계 종업원이 한사람도 없는 맥도널드 매장, 백인들만 가득찬 레스토랑에서 아시아인이 받은 따가운 눈총, 여유있는 국민임을 과시하려고 연설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유머, 이혼률이 높으면서도 패밀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 대중 스타가 갖는 의미, 유령도시와 흡사한 신흥주택단지, 화려함 뒤에 감춰진 황량함과 외로움,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 등 미국인과 미국의 실상을 보여준다. 작가가 만난 인간군상은 고독하고 외로우며 작가가 본 미국은 꿈의 나라가 아니다. 낯선 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친절한 민족이지만 따뜻함이 없고, 가족이라는 개념에 애완동물을 반드시 포함시키는 이유도 가족과 살지 못하기 때문이며, 미키마우스와 맥도널드는 쥐와 집오리의 모조품인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시선에 무조건 동조하기도, 반발하기도 무리인듯 싶다. 작가의 시선이 얼마만큼 객관적인지 모르고, 여행자가 보고 느끼고 만난 것에 의존해야 하는 여행서의 특징 때문에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눈에 비친 미국인들은 그리 행복해보이진 않는다.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인들은 어떨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