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100배 즐기기 - 2014~2015년 최신판 100배 즐기기
홍연주.홍수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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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이십여 년 만에 3박4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그동안 몰라보게 변한 제주를 돌아보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했다. 여행자를 위해 준비된 섬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은 여행이었다. 제주는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 즐길거리, 쇼핑이 완벽하게 준비된 여행지다. 이국적인 멋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제주의 볼거리는 이미 세계7대 자연경관의 하나로 선정되며 입증되었다. 제주갈치를 비롯해 객주리 조림과 옥돔, 문어숙회, 보말국 등의 먹거리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먹거리이며, 승마와 감귤따기, 독특한 바다낚시 등은 제주가 자랑하는 가능한 체험거리다.

이러한 탓에 제주는 1년 내내 사람들로 북적이고 각종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 주변 섬의 아름다움과 사계절마다 빼어난 풍광을 보여주는 탓에 제주에 한번 다녀온 사람은 제주앓이를 하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제주의 봄을 보고 싶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너른 들판을 직접 보고, 시간이 없어 들르지 못한 우도와 더 늦기 전에 꼭 한 번 한라산에 오르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뿐이었다.

<제주 100배 즐기기>는 제주 전체 지역의 여행정보는 물론 주변 10개의 섬과 제주의 사람과 문화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제주시,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우도, 가파도, 비양도 등을 구석구석 소개한다. 볼거리와 먹거리 베스트를 선별해 소개하고, 날짜별과 지역별, 테마별로 즐기는 베스트, 가족과 즐기는 코스와 연인과 즐기는 코스를 소개한다. 교통, 숙소, 제주 전도와 지도, 월별축제, 제주 역사와 건축물 등 현지에서 필요한 정보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이 책 한 권이면 제주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제주 여행을 알차게 계획할 수 있다. 제주를 여러번 간 사람은 휴식여행, 음악여행, 체험여행 등 입맛에 맞는 여행을 고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여행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제주에 갈 때 반드시 챙겨야할 유용한 가이드북이다. 핵심 정보만 모아놓은 포켓북이 따로 있는 것도 여행자를 위한 배려로 느껴진다.

이 책을 보며 제주에 가고 싶은 마음이 후끈 달아올랐다. 오셜록뮤지엄을 비롯한 각종 박물관 여행은 어떨까 싶다가도, 한라산과 산방산을 등반하는 산행을 할까, 제주의 에메럴드빛 바다를 보며 천천히 올레길만 걷는 여행도 좋을 것 같고, 인근 섬을 투어하는 것도 좋겠다 싶다. 어떤 여행이 되는 이 책을 들고 다시 제주를 찾아 알짜배기 여행을 하고 싶다. 제주로 떠나는 여행자들의 가방 속에 꼭 들어가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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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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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겨울방학 때 <이방인>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소설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당시 나의 책읽기는 스토리를 쫓거나 흥미 위주였는데 <이방인>은 이러한 나의 구미에 잘 맞는 소설이었다. <이방인>에 매료된 나는 곧바로 카뮈의 <페스트>를 읽으며 고3 마지막 방학을 보냈다. 이후 카뮈의 작품을 읽은 기억이 없다. 날마다 쏟아져나오는 신간을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아무리 재미있어도 읽은 책을 다시 펼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다 얼마 전 내 눈을 의심할만한 문구를 보게 되었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그럼 예전에 읽은 <이방인>은 누구의 <이방인>이란 말인가. 말인즉 기존의 <이방인>은 번역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새움출판사에서 발행한 <이방인>의 이정서 역자는 기존 번역서는 등장인물을 왜곡했다고 지적한다. 등장인물을 평면적으로 그렸다는 지적이다. 등장인물의 왜곡은 줄거리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심리적 변화를 놓치기 마련이다. 작품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재미도 반감되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이방인>이 꾸준히 읽히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건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거대 타이틀 때문일 게다. 개연성이 떨어지고 이상하다 싶은 대목에서도 번역의 오류를 의심한 독자는 거의 없을 듯하다. 오히려 자신의 독해력을 문제삼지 않았을까 싶다. 10대 때 읽은 나는 개연성이나 긴밀성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낼만한 수준 있는 독자가 아니었다. 그저 스토리만 따라가는 초보 독자였으니 문제가 보일 리 없었다.

새롭게 번역된 <이방인>은 기존 번역서가 안고 있는 번역의 문제를 '역자노트'를 통해 하나하나 바로잡아준다. 양로원에 있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의 사형집행을 예고하는 것으로 끝난다. 중간에 뫼르소는 여자 친구와 함께 놀러간 여행지에서 아랍 남자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겨 살해한 후 확인사살을 한다. 그래서 <이방인>을 죽음에 관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이방인>은 뫼르소가 왜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는지, 뫼르소의 친구 레몽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아랍사람은 또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추측이 어렵다. 하지만 새롭게 번역된 <이방인>은 우연으로 치부되었던 사건에서 '우연'을 제거하고, 두리뭉실한 부분은 정교하게, 외피로만 이해했던 부분은 내면까지 접근이 용이하도록 번역해 독자의 가독성을 높여준다.

기존의 번역서와 새로운 번역서가 큰 줄기에선 별로 차이가 없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심리적 상태와 변화 체크가 가능해 공감대가 형성되고, 모호한 부분이 없어져 자연스럽고 입체적인 작품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어디 하나 막히지 않고 재미있게 술술 잘 읽혀서 좋다. 명품과 짝퉁은 한 끝 차이다. 이 한 끝이 어마무시한 차이를 만든다. 번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확성이라면 이정서 역자의 <이방인>은 명품 번역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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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괴테를 읽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류시건 옮김 / 오늘의책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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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어렵다는 등식 때문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벼르다가 끝내 읽지 못하는 고전이 수두룩하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필생의 역작 <파우스트>도 벼르기만 하다가 여지껏 읽지 못한 고전 중 하나다. 학창시절 괴테의 자전적 사랑이 녹아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밤잠을 설치기도 했으나 <파우스트>는 감히 도전할 엄두를 못 냈다. 그러다 이번에 <폰 괴테를 읽다>를 통해 <파우스트>를 읽게 되었는데, 역시 녹록치 않은 작품이다.

<폰 괴테를 읽다>는 괴테에 관한 책도 아니고, 괴테의 작품에 관한 책도 아니다. 이 책은 <파우스트>의 다른 이름이다. 이 책이 녹록치 않은 이유는, 600 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분량이 주는 중압감은 차치하고라도 등장인물이 많은 희곡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다. 게다가 아름답지만 시에 가까운 대화를 이해하기가 도무지 어렵다.

괴테는 1부와 2부로 구성된 <파우스트>를 60년에 걸쳐 완성했다. 그의 나이 82세에 완성했으니 괴테의 인생과 함께 한 작품이다. 괴테는 이 작품에서 파우스트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해, 구원에 대해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성경의 <욥기>가 생각났다. 파우스트의 영혼을 놓고 주님과 내기를 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과 <욥기> 1장에서 욥을 두고 하나님께 사단이 시험을 요청하는 장면이 너무 흡사해서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유혹해서 파멸시키려 하고, 사단은 욥에게 고난을 주어 그 영혼을 파멸시키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파우스트와 욥이 사단의 타겟이 된 것은 두 사람 모두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비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욥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재벌인데다 신을 향한 믿음이 깊은 사람이라면, 파우스트는 학식이 풍부한 지식인일 뿐 아니라 믿음까지 좋은 신앙인이다. 두 사람 모두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다. 신이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하나님 역시 사단의 제안을 수락한 까닭은 유혹이나 고난이 와도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선이 악을 이길 것이라고 믿어서다. 결과적으로 파우스트와 욥은 우여곡절 끝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고 구원받는다. 선함의 승리다. 두 작품의 도입부와 결말이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아 괴테가 <파우스트>를 집필할 당시 <욥기>에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을까다.

<폰 괴테를 읽다>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어려운 책"이다. 방대한 분량과 심오한 철학, 진도가 나갈수록 난해한 스토리 전개와 아름답지만 거리가 느껴지는 시적인 대화. 책을 소화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씁쓸했다. 이번 책읽기는 스토리를 파악한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훗날 다시 읽게 되면 제대로 소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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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의사 송태호의 진료일기 - 조선일보 Why 병원 이용 설명서
송태호 지음 / 신원문화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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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소통은 진료 행위의 시작이요, 끝이다

책을 다 읽고 표지에 실린 저자의 사진을 다시보자 얼굴 전체에 환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송태호 원장은 참 좋은 의사,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의사, 친절하고 따뜻한 의사, 진짜 의사다. 분명 우리가 원하는 의사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우리 동네에도 송내과의원 같은 병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하남시민을 부러워할 것이다. 환자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며 깊은 애정으로 대하는 의사를 만나는 것도 환자의 복다.

​동네 의사를 자처하는 그가 이렇게 좋은 의사가 된 계기가 있다. 레지던트 시절, 깜빡 졸다가 응급처치가 늦어졌다. 이때 지도 의사 선생님에게 혼줄이 난다. “네, 할머니였어도 잠이 오겠냐” 이후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환자를 치료하려면 그들의 질병은 물론 삶에도 관심 갖아야 하며,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환자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 환자를 대하니 환자가 느끼는 심리적인 안정감이나 치료 효과는 당연히 높을 것이다.

그의 진료소는 여느 진료소의 사무적인 풍경과 사뭇 다르다. 이런저런 문제로 환자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관심사를 공유하고, 환자 가족의 크고 작은 일을 상의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20대 여성 환자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다이어트 방법을 찾아보고, 진료실에서 다짜고짜 눈물부터 쏟아내는 난처한 환자의 하소연을 차근차근 들어주고, 환자 자녀의 취직 문제를 함께 의논하며 환자와 소통한다.

많은 환자들이 진료소를 사랑방처럼 이용하는 것은 그가 환자와 의사 간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환자와의 소통은 진료 행위에 있어서 시작이요, 끝이라고 단언한다. 송태호 원장은 좋은 의사의 1차적 조건은 환자와 소통을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시간 기다려서 1분 진료받고 나오는데 소통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의사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나 건강 상태를 메모해 두었다가 의사를 만났을 때 보여주면 짧은 시간에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결국 의사뿐 아니라 환자도 소통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진료는 의사만의 몫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가끔 단골 환자에게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우린 궁합이 잘 맞는 사이죠?" 라고. 환자가 '살'해도 '쌀'로 알아듣고 의사의 싫은 소리도 환자를 위한 고언으로 이해해주는 환자와 의사 간의 사이를 궁합에 빗대어 이야기한 것이다. 이런 경우를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과 궁합이 맞는 의사를 다시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p164)

동네에 말이 잘 통하는 의사가 있다면 복 받은 환자이다. 물론 말이 잘 통하는 환자를 보는 의사도 복 받은 의사이다. 환자와 소통하고 환자와 궁합을 맞추려 노력하는 송내과의원 진료실에는 감사의 꾸러미가 끊이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할머니가 들고 온 홍삼 드링크, 한 소쿰의 푸성귀, 떡과 꿀 등. 동네 병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고 마음으로 대한다는 반증이다. 게다가 의학박사 학위와 내과전문의 자격증을 소유했으니 실력은 말할 나위 없을 듯.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최선의 진료를 위한 시작이라고 말하는 송태호 원장에게서 깊은 신뢰감이 느껴진다. 참 좋은 의사 선생님을 알게 되어서 뿌듯하다. 하남시에 사는 지인에게 물어봐야겠다. "혹시 송내과의원 아세요?"

의사는 외로운 직업이다. 항상 환자를 대하고 살지만 오늘은 어떤 사람이 진료실에 들어올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모든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직은 모든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지 못하는 나를 되돌아보며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올바른 진료의 첫걸음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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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이별 영이별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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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20여 분 거리에 비운의 왕 단종이 묻힌 장릉이 있고 거기서 10분을 더 가면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가 있다. 청령포는 지세가 험하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깎아지른 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육지 속 섬이다. 배를 타지 않고서는 오갈 수 없는 천혜의 유배지이다. 단종은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불렀는데, 청령포엔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 부인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돌탑을 쌓아 놓은 망향탑, 단종이 오열하는 울음소리를 밤마다 들었다는 관음송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어린 임금이 그곳에서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정순왕후를 얼마나 그리워 했을까. 휘감아 도는 서강의 강물은 단종이 정순왕후를 그리며 불렀다는 ‘자규가’를 눈물로 들었을 것 같다. 강물도 단종과 정순왕후의 생이별을 함께 슬퍼했으리라. 죽어서도 함께 묻히지 못한 정순왕후의 무덤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다. 단종이 유배된 후 정순왕후는 사가로 내몰려 고기와 생선을 입에 대지 않은 채 평생 흰옷만 입고 살았다고 전한다.

<미실>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김별아 작가가 단종과 정순왕후의 안타깝고 슬픈 사랑을 쓴 장편소설 <영영이별 영이별>이 개정 출간 되었다. 정순왕후는 단종에 가려 그닥 조명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녀의 삶에 우리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간의 관심과 집중은 늘 단종을 향했다. 그래서 정순왕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힘겹고 외롭게 살았는지, 어디에 묻혔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 역시 그랬다.

왕후에 오른지 2년여 만에 단종과 이별한 정순왕후는 예순다섯 해를 홀로 살았다. 순진하고 어린 열다섯 살에 혼인해 짧게 사랑하고 길게 이별한 정순왕후는 평생 단종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참으로 질긴 인생이다. 당시 평균수명보다 두 배를 더 살았으니 단종을 그리워한 세월이 야속했을 듯하다. 그러나 그녀의 고백이 눈물짓게 한다.

"예순다섯 해는 긴 세월이었습니다. 홍장을 한 열다섯 살의 신부를 파파노인으로 만들고, 삼단 같던 머리를 백발로 만들고, 팽팽한 뺨에 주름으로 골을 파도록. 네 명의 왕이 죽고 다섯 명의 왕이 등극하고, 거듭된 사화와 살육전에 숱한 목숨이 초개처럼 버려지도록. 강산을 바꾸고, 사람들의 성정마저 바꿀 정도로. 그렇지만 예순다섯 해는 짧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잠시 잠깐 스친 듯 사랑하였던 당신 한 사람을 잊기에도, 너무 짧고 빠른 시간이었습니다."(p267-268)

작가는 정순왕후를 여리게만 그리지 않고 있다. 분노와 슬픔을 안으로 삭히며 기필코 살아내는 정신력, 따뜻하고 온화한 성품, 강한 의지의 여성으로 그리고 있다. 기필코 살아내라는 생의 명령에 복종하여 누추하고 비굴한 일상을 달게 받아들인 그녀가 진정 아름답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먹먹한 슬픔이 밀려온다. 분명 그녀가 원한 인생은 아니지만, 선택한 인생도 아니지만 그 질곡의 세월을 기필코 살아낸 정순왕후를 오랫동안 못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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