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이별 영이별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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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20여 분 거리에 비운의 왕 단종이 묻힌 장릉이 있고 거기서 10분을 더 가면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가 있다. 청령포는 지세가 험하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깎아지른 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육지 속 섬이다. 배를 타지 않고서는 오갈 수 없는 천혜의 유배지이다. 단종은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불렀는데, 청령포엔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 부인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돌탑을 쌓아 놓은 망향탑, 단종이 오열하는 울음소리를 밤마다 들었다는 관음송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어린 임금이 그곳에서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정순왕후를 얼마나 그리워 했을까. 휘감아 도는 서강의 강물은 단종이 정순왕후를 그리며 불렀다는 ‘자규가’를 눈물로 들었을 것 같다. 강물도 단종과 정순왕후의 생이별을 함께 슬퍼했으리라. 죽어서도 함께 묻히지 못한 정순왕후의 무덤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다. 단종이 유배된 후 정순왕후는 사가로 내몰려 고기와 생선을 입에 대지 않은 채 평생 흰옷만 입고 살았다고 전한다.

<미실>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김별아 작가가 단종과 정순왕후의 안타깝고 슬픈 사랑을 쓴 장편소설 <영영이별 영이별>이 개정 출간 되었다. 정순왕후는 단종에 가려 그닥 조명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녀의 삶에 우리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간의 관심과 집중은 늘 단종을 향했다. 그래서 정순왕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힘겹고 외롭게 살았는지, 어디에 묻혔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 역시 그랬다.

왕후에 오른지 2년여 만에 단종과 이별한 정순왕후는 예순다섯 해를 홀로 살았다. 순진하고 어린 열다섯 살에 혼인해 짧게 사랑하고 길게 이별한 정순왕후는 평생 단종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참으로 질긴 인생이다. 당시 평균수명보다 두 배를 더 살았으니 단종을 그리워한 세월이 야속했을 듯하다. 그러나 그녀의 고백이 눈물짓게 한다.

"예순다섯 해는 긴 세월이었습니다. 홍장을 한 열다섯 살의 신부를 파파노인으로 만들고, 삼단 같던 머리를 백발로 만들고, 팽팽한 뺨에 주름으로 골을 파도록. 네 명의 왕이 죽고 다섯 명의 왕이 등극하고, 거듭된 사화와 살육전에 숱한 목숨이 초개처럼 버려지도록. 강산을 바꾸고, 사람들의 성정마저 바꿀 정도로. 그렇지만 예순다섯 해는 짧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잠시 잠깐 스친 듯 사랑하였던 당신 한 사람을 잊기에도, 너무 짧고 빠른 시간이었습니다."(p267-268)

작가는 정순왕후를 여리게만 그리지 않고 있다. 분노와 슬픔을 안으로 삭히며 기필코 살아내는 정신력, 따뜻하고 온화한 성품, 강한 의지의 여성으로 그리고 있다. 기필코 살아내라는 생의 명령에 복종하여 누추하고 비굴한 일상을 달게 받아들인 그녀가 진정 아름답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먹먹한 슬픔이 밀려온다. 분명 그녀가 원한 인생은 아니지만, 선택한 인생도 아니지만 그 질곡의 세월을 기필코 살아낸 정순왕후를 오랫동안 못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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