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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3 겨울방학 때 <이방인>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소설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당시
나의 책읽기는 스토리를 쫓거나 흥미 위주였는데 <이방인>은 이러한 나의 구미에 잘 맞는 소설이었다. <이방인>에 매료된
나는 곧바로 카뮈의 <페스트>를 읽으며 고3 마지막 방학을 보냈다. 이후 카뮈의 작품을 읽은 기억이 없다. 날마다 쏟아져나오는 신간을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아무리 재미있어도 읽은 책을 다시 펼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다 얼마 전 내 눈을 의심할만한 문구를 보게
되었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그럼 예전에 읽은
<이방인>은 누구의 <이방인>이란 말인가. 말인즉 기존의 <이방인>은 번역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새움출판사에서 발행한 <이방인>의 이정서 역자는 기존 번역서는 등장인물을 왜곡했다고 지적한다. 등장인물을 평면적으로 그렸다는
지적이다. 등장인물의 왜곡은 줄거리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심리적 변화를 놓치기 마련이다. 작품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재미도 반감되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이방인>이 꾸준히 읽히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건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거대
타이틀 때문일 게다. 개연성이 떨어지고 이상하다 싶은 대목에서도 번역의 오류를 의심한 독자는 거의 없을 듯하다. 오히려 자신의 독해력을 문제삼지
않았을까 싶다. 10대 때 읽은 나는 개연성이나 긴밀성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낼만한 수준 있는 독자가 아니었다. 그저 스토리만 따라가는 초보
독자였으니 문제가 보일 리 없었다.
새롭게 번역된 <이방인>은 기존 번역서가
안고 있는 번역의 문제를 '역자노트'를 통해 하나하나 바로잡아준다. 양로원에 있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의 사형집행을 예고하는 것으로 끝난다. 중간에 뫼르소는 여자
친구와 함께 놀러간 여행지에서 아랍 남자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겨 살해한 후 확인사살을 한다. 그래서 <이방인>을 죽음에
관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이방인>은 뫼르소가 왜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는지, 뫼르소의 친구 레몽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아랍사람은 또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추측이 어렵다. 하지만 새롭게 번역된 <이방인>은 우연으로 치부되었던 사건에서
'우연'을 제거하고, 두리뭉실한 부분은 정교하게, 외피로만 이해했던 부분은 내면까지 접근이 용이하도록 번역해 독자의 가독성을 높여준다.
기존의 번역서와 새로운 번역서가 큰 줄기에선 별로 차이가 없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심리적 상태와 변화 체크가 가능해
공감대가 형성되고, 모호한 부분이 없어져 자연스럽고 입체적인 작품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어디 하나 막히지 않고 재미있게 술술 잘 읽혀서 좋다.
명품과 짝퉁은 한 끝 차이다. 이 한 끝이 어마무시한 차이를 만든다. 번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확성이라면 이정서 역자의
<이방인>은 명품 번역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