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갈 - 고난 끝에서 맛보는 하나님의 은혜
안종혁 지음 / 두란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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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구역장 모임 때 권사님 한 분이 "집사님, 나 책 샀어요" 하며 이 책을 보여 주었다. [길갈]이란 제목을 보고 성경에 나오는 지명인 것은 알겠는데, 누구와 연관된 지명인지 어떤 사건과 관계된 지명인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길갈]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하는 동안 읽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리곤 까맣게 잊어버렸다. 읽고 있던 책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읽어야 될 책들과 써야 될 서평이 줄지어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러다 며칠 전 어느 목사님을 통해 이 책을 소개받으면서 아차, 하고 기억이 되살아났다.

 

엊그제 권사님에게 이 책을 빌려서 단숨에 읽었다. 새벽녘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할 정도로 흡입력이 강했다. 하나님께서 저자의 삶을 빚은 여정을 소개하는 이 책은 꼭지마다 공감이 갔고 간증마다 은혜로웠다. 특히 믿음의 여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를 신앙적으로 분석하는 부분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신의 잘못된 신앙 태도나 삶을 점검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그야말로 교수님 다웠다. 제아무리 신앙의 연륜이 깊다하여도 우리는 시행착오와 실패, 그리고 인간적인 욕심과 아집을 버리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원망하고 낙심한다. 우리의 계획보다 크신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한 채 말이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저자가 다른 사람과 다른점은 어느 한 사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고 인도하셨는지를 체크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러한 자기점검을 통해 성숙한 신앙, 곧 말씀을 살아내는 능력을 키우지 않았나 싶다. 저자의 말씀과 삶의 일치는 기도와 말씀에 깊은 뿌리를 내린 자기점검에서 비롯된 영성이 아닌가 한다. 그에겐 일이 곧 예배이며 삶이 곧 예배이다. 그에게 말씀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

 

'맞어, 나도 이럴 때가 있었는데...' 

'그래! 이게 진짜 크리스천의 모습이야' 

'나도 이렇게 치열하게 일하고 열정적으로 사역하고 싶다'

꼭지마다 공감하며 읽었다. 어느 꼭지에선 갑자기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차올라 책을 잠시 덮고 기도했다. 어느 대목은 내 안의 잠자던 열정을 마구 흔들어 깨웠고, 나태하고 게으른 나의 신앙을 준엄하게 꾸짖는 듯한 대목도 있었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가난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실패와 고난을 겪으면서 살았다. 앞길이 시원하게 뚫렸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불확실한 인생을 내내 살았다. 첫돌이 지나 3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삯바느질과 날품으로 생계를 이었다. 자전거도 없고 버스비도 없어 매일 20Km(50리)를 걸어서 통학한 중학 시절과 공업고등학교 시절, 졸업 후 방직공장의 전기공으로 일하던 청년의 때는 희망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암울한 시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 유학을 갔으나 박사학위 예비시험에 네 번이나 떨어졌다.

 

말더듬이에다가 박사학위 예비시험에 줄줄이 낙방하던 그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예수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을 깊이 깨닫고 새로운 꿈을 꾼다. 끊임없이 새로운 학문에 도전해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학자로, 신시내티대학의 석좌교수로 자리매김 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환하고 밝은 미래가 보여서 신나게 달려온 게 아니다.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자신이 가는 길이, 하려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에 위배되지 않는지 체크하며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실패를 통해 배운 진리를 붙들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나아간 것이다.  

 

멤스(MEMS)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교수로 우뚝 선 저자는 이 모든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한다. 영성이 바로 지성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이다. 하나님은 모든 지식과 지혜의 원천이시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자는 기도 중에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놀라운 결과를 도출했다. 모두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치열하고도 탁월하게 수행한 것은 그의 깊은 영성에 기초하며, 새로운 학문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험정신은 영성을 지성의 근간으로 삼았기에 가능했으리라.

 

"나는 크리스천은 먼저 자신의 일로 자신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크리스천 학자는 학자로서 학문적인 업적을 통해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 학자가 학문적인 업적 이외의 것으로는 다른 학자들을 결코 설득할 수 없다. 학자가 학문의 업적과 그 영향력으로 자신의 경쟁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p255)

 

고난과 절망으로 얼룩진 청년 시절을 보낸 탓인지 그는 청년들에게 유독 관심이 많다. 자마(JAMA)와 코스타(KOSTA)와 수많은 집회를 통해 수만 명의 청년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며 영원한 청년 사역자이기를 원하는 저자야말로 청년뿐 아니라 장년들의 롤모델이 아닌가 한다. 미국에서의 성공적인 입지 때문이 아니다. 성공적인 입지를 굳히는 과정이 눈물겹게 아름답기 때문이며, 고난을 극복한 여정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역시 하나님이 빚으신 인생은 아름답다!

 

여호수아는 오랜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넌 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요단강에서 취한 열두 개의 돌로 기념비를 세웠다. 그곳이 바로 '길갈'이다. 길갈은 하나님께서 수치를 굴러가게 하셨다는 뜻으로,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본다. 

'나의 길갈은 어디쯤이며, 내가 취한 돌에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나는 무엇을 기념하는 돌을 메고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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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달려온 삶 김길 목사의 제자도 시리즈 1
김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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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고 벼르던 이 책을 주문해 놓고 잔뜩 기대하며 기다렸다. 책은 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져버리기는 커녕 기대 그 이상의 묵직한 깨달음과 감동을 주었다. 김길 목사님의 '길거리 목회'에 대해선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오던 터였다. 목회자가 어떻게 교회도 없이 목회를 하지, 성도도 없이 목회가 가능한가, 서울 한복판 명동 거리에서 교회를 개척했다는 게 무슨 말이지.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첫장부터 충격적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세상의 고난과 슬픔의 총집합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그의 삶은 참혹했다. 목수였던 아버지는 큰형과 싸우고 그가 9살 때 약을 먹고 자살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기 전부터 다른 남자와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형들에게 구타를 당한 뒤 집을 나갔다. 넷째 형은 중학교 3학년 때 가출하고, 셋째 형은 맡긴 돈을 큰형이 다 쓴 걸 알고 음독 자살하고, 둘째 형은 초등학교 3학 때 가출하고, 누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남자를 따라 나갔다. 형제들이 뿔뿔히 흩어져 지냈는데, 저자는 큰형네 얹혀 살았다. 큰형네서 기식하는 동안 큰형에게 이유없이 자주 매를 맞았다. 자다가도 맞고 허락없이 티비를 본다고 심하게 맞았다. 대학 졸업 후 선교단체 간사가 되어 한 자매와 교제할 때, 교원임용을 앞둔 딸과 연애한다는 이유로 여자 집에 불려가 또 매를 맞았다. 아픔과 상처로 점철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그에게 군 입대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하나님께서 군대에서 기다리셨던 것이다. 군종사병이 되어 매일 새벽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듣게 된다.

 

"정말로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하게 말씀해주셔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오지 않았다. 오기가 났다. 하나님, 저는 제 인생을 걸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소중하게 그리고 열심히 꿈을 가꾸었는지 아실 겁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주인되셨으니 주인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인생에 대한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적당히 말씀을 읽다가 해석되는 것 말고, 목사님 설교를 통하여 말씀하시지 마시고, 경건서적을 통하여 말씀하시지 마시고, 제 귀에 대고 직접 말씀해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의심 없이 따라갈 수 있겠습니다."(p33)

 

어느 날, 드디어 그의 마음에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길아, 장차 네가 어떤 일을 할 건지 보여주고 싶은데, 그 일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지금 말하면 네가 도망갈 것 같다. 때가 되면 보여주마."(p34)
 

 그 뒤 거칠고 울퉁붕퉁하고 모나고 상처투성이인 성품을 다듬고 죄성과 싸우는 모진 훈련이 길고 길게 이어졌다. 음란과의 치열한 싸움, 자신과 타인의 연약함과의 싸움, 재정의 훈련, 순종의 훈련, 손해보는 훈련 등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시기 위해 여러 해동안 철저하게 훈련하셨다. 그 가운데 음란과의 싸움은 목회자로서 쉽지 않은 고백이었을 텐데 너무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같은 문제로 씨름하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과 도전이 되는 대목이다.

 

예수전도단 간사로 5년 넘게 한 캠퍼스 개척 사역을 정리하고 성남 모란시장에서 안디옥선교교회를 개척했다. 성전을 옮겨야 할 정도로 교회가 크게 부흥했으나 미련없이 떠났다. 개척 7개월 만에 "너를 위해 준비한 교회가 있다. 너와 꼭 하고 싶은 교회가 있단다"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아무 대가 없이 후임자에게 교회를 물려주고 나온 것이다. 좋은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것은 그의 삶이 아니다. 성도들이 좋아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그의 사명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교회를 세우는 것도 그의 길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우는 게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의 사역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이 틀림없다.

 

그는 명동 거리에서 홀로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한다. 혼자 기도하고 예배하지만 결코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하나님 뜻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아멘"하고 말았다. 그는 행복한 도시 사역자이며 명동은 그의 사역지이다. 하나님 한 분만 인정할지라도 행복한 도시 사역자라는 고백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가 도시의 거리에서 홀로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까닭은, 명동을 필두로 아시아의 대도시들을 기도와 예배로 기경해 교회를 세우고, 청년들을 그리스도의 거룩한 전사로 만드는 Metropolitan Missionary 데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외롭게 홀로 걷는 그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와 존경을 표한다.

 

"하나님은 조국의 청년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붙잡혀 아무것도 못하는 삶이 아니라 에수님의 제자로 사명을 받아서 그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돕기 위한 도구로 나를 부르셨다. 청년들이 좋아하는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서 나를 부르신 게 아니라 청년들이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돕는 책임을 맡고 있는 것이다."(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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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 인간이 유일하게 지녀야 할 삶의 정의
피에르 라비 지음, 배영란 옮김 / 예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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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富)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우선하는 행복의 척도일 것이다. 행과 불행을 가르는 기준을 재물의 많고 적음에 기반하여 적게 가진 자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많이 가진 자는 부자여서 행복하다고 느낀다. 가난은 불편하긴 하지만 불행하진 않다는 것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가난은 삶의 불편함과 불행함을 동시에 주는 불청객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좀 더 많이 가지려고, 좀 더 많이 모으려고, 좀 더 많이 벌려고 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들은 대부분 성실한 사람들이다. 성장을 지향하는 건강한 사람들이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근면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행보에 제동을 거는 사람이 있다. 풍요로움 대신 소박함의 가치를 역설하며 간소하게 살기를 제안하는 이는 바로 생태 농업의 선구자인 피에르 라비다.
라비는 잉여 생산을 지양하고 필요한 만큼만 생산할 것을 제안한다. 과도한 풍요는 대지와 자연, 그리고 인간 자신에 대한 침탈행위라는 것이다.
 
알제리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프랑스인 부부에게 입양되어 현대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라비는 노동과 돈에 종속된, 오로지 경제를 위해 존재하는 생물학적 부품과도 같은 인간의 모습을 보고 현대 문명을 뒤로하고 흙으로 돌아갔다. 청년시절 시골로 이주해 땅을 일구며 자급자족한 라비는 지금까지 농부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 시골로 내려간 라비는 농사짓기 좋은 땅을 한사코 마다하고 메마른 황무지를 고집해 그곳을 단촐한 오아시스로 만들었다. 그러는데 무려 15년이 걸렸다. 라비는 1961년부터 45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데, 화학적으로 해로운 것은 철저히 배제하고 파괴하지 않고 생산 할 수 없는 기업식 농업을 거부한다.
라비는 단순히 친환경농법을 주장하는 농부가 아니다. 아무리 친한경농법이라도 대량생산은 거부한다. 필요한 만큼만 생산한다. 그는 생산량이 많은 비옥한 땅보다, 비록 메마른 황무지일지라도 그 안에 깃든 적막함, 빛, 아름다움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독특한 농부다. 농부에겐 농사짓기 좋은 환경과 비옥한 땅이 최우선이나 그는 일용할 양식만 거둘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자연과 긴밀히 이어지는 삶을 택하는 괴짜농부요, 철학자다.
라비는 수도가 들어오는데 7년, 전기가 들어오는데 13년이 걸린 척박한 환경에서 양초와 호롱불, 가스 등으로 불을 밝히며 시대를 역행하는 구시대적인 삶을 선택해 맨손으로 땅을 일구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가족은 궁색할 만큼 검소해야만 했지만, 그 누구도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음을, 편리함에도 있지 않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대지를 존중하는 그의 삶에서, 소박함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길을 보았고 절제의 미를 보았다. 그러나 물질만능주의에 깊게 물든 사회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소박하게 살라는 제안이, 부유함과 풍요를 인생성공으로 인식하는 이 사회에 자발적 소박함이 행복이라는 그의 외침이 얼마나 먹힐지 미지수다. 책 곳곳에 소개되는 라비의 경험담과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주고, 라비의 철학은 많은 생각거리와 물음을 동시에  던져준다.
 
올해로 나는 귀농 6년차에 접어들었다. 마을 주민 전체는 대지를 경제적 기반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런데 마을 어디를 둘러봐도 라비처럼 농사 짓고 라비처럼 사는 주민은 없다. 모두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뿌린다. 이유는 단 하나, 상품성 있는 작물을 대량생산하기 위함이다. 내가 본 농사일은 저농약은 있어도 무농약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은 작물을 팔아 1년을 먹고 산다. 그런데도 빚에 허덕이는 가구가 대다수다. 자발적 소박함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소박함이라고 해야 맞겠다. 자발적으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기력이 떨어진 연로한 농부들 뿐이다.
 
라비의 주장과 철학에 동의하면서도 선뜻 따라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저마다의 형편과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라비의 사상과 내가 처한 농촌 현실과의 괴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 묵직한 과제를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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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 -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의 사람
다니엘 김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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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설교 영상을 보고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 무척 젊은데다가 멋진 외모, 짧은 스포츠 머리, 근육질의 체격이 여느 목회자의 분위기와 사뭇 달랐고 그 다름이 신선했다. 게다가 설교 내용도 무척 전투적이었다. 일테면 내일은 평안이 아니라 환란이라고 외친다. 앞으로 올 시대는 만만치 않은데 세상은 낙관주의에 빠져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성공주의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은 마냥 행복하고 좋고 즐겁고 노후가 보장된 든든한 길만은 아니다. 희생과 환란과 아픔이 비켜가는 길도 아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은 고통과 아픔과 희생과 가난과 외로움과 때로는 죽음의 어두운 장막이 덮치는 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따라가는 주님은  오늘도 좁은 길을 선택하시고 그 길을 가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구절절 동감하며 읽었다. "아흔아홉 마리의 구원받은 양이 있는 곳은 스포트라이트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이 있는 곳은 핍박받는 곳이다."p196

 

이렇게 하면 이런 복을 받고 저렇게 행하면 저런 축복을 받으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런 어려움을 당하고 저렇게 하지 않으면 저런 시련을 겪는다는 이분법 논리에 묶이지 않아서 좋았다. 우린 복음을 얼마나 싸구려 취급하는가? 예수님과의 동행이 단지 복을 받기 위한,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어선 곤란하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다.  환경을 탓하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흘리는 눈물은 회개가 아니다. 자기연민이며 반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이렇게 나약하고 복음을 오인하는 사람들을 화들짝 정신나게 해준다.

 

내일의 환란을 극복하기 위해선 강한 군사, 즉 철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마가복음 16장을 근거로 철인에 대해 정의한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언증ㄴ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 15-18)

 

저자는 이 구절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예수님)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니 나는 복음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너희를 결단코 철인으로  만들어내리라. 물론 말씀 속에 '철인' 이라는 단어는 없다. 하지만 주님께서 약속하신 사람의 모습이 바로 철인이라는 것이다.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어떤 고난에도 무릎꿇지 않는 사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바로 철인인 것이다. 철인이란 한마디로 끄떡없는 사람이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10년 단위로 살면서 강한 하나님의 군사로 훈련받은 저자는 철인 중에 철인이다.

 

철인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갈망하여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일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찾으시고, 부르시고, 세우고 계신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지고 무장된 철인을 말이다. 타성에 젖은 내 신앙을 돌아보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나약해질대로 나약해진 믿음, 감정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요동치는 믿음을 점검하고 곧추세우록 이끈 책이다. 하루는 지나가는 게 아니라 주님 앞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라는 저자의 지적을 기억하며 철인으로 변화되는 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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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All 예수로 충분합니다
튤리안 차비진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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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에는 예수님 한 분 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선 부족한 것을 많이 느낀다. 기도할 때에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겠노라 고백하지만, 내가 주인 노릇을 할 때가 많다. 기도와 삶의 괴리는 나를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다. 딜레마가 잦아지면 무기력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신앙인이 된다. 내가 그랬다. 그래서 <JESUS ALL>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이끌리듯 읽어 내려갔다.

 

 

저자 튤리안 차비진은 2009년 극심한 고통의 시간, 곧 밥을 먹을 수 없고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리며 눈앞이 캄캄해지는 시간을 경험했다. 저자는 인생 최악의 시간에 자신의 삶에 찾아오셔서 인생 변화의 교훈과 성경적인 교훈을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 책에 담아냈다. 살 소망이 바닥이 날만큼 힘겨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바로 복음이었다. 그는 주장한다. “복음에는 어떤 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Jesus + Nothing = Everything  

 

 

우리는 예수님 이외에 많은 것을 더하려 한다. 그래야 복된 인생, 축복된 삶이라고 착각한다. 성공, 야망, 권력, 지위, 명예, 건강, 행복 그리고 사람들의 좋은 평가와 인정에 연연한다.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에 더 집착하고, 하나님보다 선물을 더 소중히 여긴다. 물질과 성과를 삶의 근원으로 삼고, 사람의 칭찬과 인정을 자존감의 주된 근원으로 삼은 결과는 정체성의 상실과 고통이라고 지적한다. 저자 역시 사람의 칭찬과 인정에 철저히 의존해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허무신 뒤에야 그것들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을 삶에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예수님 한 분 만으로 충분하고, 예수님 이외에 어떤 것도 더하지 않겠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삶으로 살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앎을 삶으로 연결하는 고리로 저자는 폴 트립의 주장을 인용하여 ‘복음의 현재성’을 제시한다. “복음은 우리를 과거로부터와 미래를 위해서만 구원하는 게 아니라 ‘현재 속에서’도 구원해준다. 복음은 현재의 두려움, 현재의 열등감, 현재의 정욕, 현재의 탐욕, 현재의 이기주의, 현재의 교만 등에서 우리를 구원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죄와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셨고 언젠가 죄의 존재로부터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 사이의 현재 속에서도 복음을 잘 경험하지 못한다.”p199  

 

 

복음은 단순히 텍스트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현재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의지로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눈에 들려고 한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곳을 볼 필요가 없다. 마음 깊은 곳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 외에 다른 것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없다. 따라서 주님이 나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을 생각하고 기억하며 그분만 바라보기를, 말과 행동과 신앙이 깊어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고(nothing) 고백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모든 역사를 행하십니다. 반면, 자신이 전부(everything)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는 아무런 역사도(nothing) 행하시지 않습니다.”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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