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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 인간이 유일하게 지녀야 할 삶의 정의
피에르 라비 지음, 배영란 옮김 / 예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부(富)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우선하는 행복의 척도일 것이다. 행과 불행을 가르는 기준을 재물의 많고 적음에 기반하여 적게 가진 자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많이 가진 자는 부자여서 행복하다고 느낀다. 가난은 불편하긴 하지만 불행하진 않다는 것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가난은 삶의 불편함과 불행함을 동시에 주는 불청객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좀 더 많이 가지려고, 좀 더 많이 모으려고, 좀 더 많이 벌려고 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들은 대부분 성실한 사람들이다. 성장을 지향하는 건강한 사람들이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근면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행보에 제동을 거는 사람이 있다. 풍요로움 대신 소박함의 가치를 역설하며 간소하게 살기를 제안하는 이는 바로 생태 농업의 선구자인 피에르 라비다.
라비는 잉여 생산을 지양하고 필요한 만큼만 생산할 것을 제안한다. 과도한 풍요는 대지와 자연, 그리고 인간 자신에 대한 침탈행위라는 것이다.
알제리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프랑스인 부부에게 입양되어 현대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라비는 노동과 돈에 종속된, 오로지 경제를 위해 존재하는 생물학적 부품과도 같은 인간의 모습을 보고 현대 문명을 뒤로하고 흙으로 돌아갔다. 청년시절 시골로 이주해 땅을 일구며 자급자족한 라비는 지금까지 농부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 시골로 내려간 라비는 농사짓기 좋은 땅을 한사코 마다하고 메마른 황무지를 고집해 그곳을 단촐한 오아시스로 만들었다. 그러는데 무려 15년이 걸렸다. 라비는 1961년부터 45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데, 화학적으로 해로운 것은 철저히 배제하고 파괴하지 않고 생산 할 수 없는 기업식 농업을 거부한다.
라비는 단순히 친환경농법을 주장하는 농부가 아니다. 아무리 친한경농법이라도 대량생산은 거부한다. 필요한 만큼만 생산한다. 그는 생산량이 많은 비옥한 땅보다, 비록 메마른 황무지일지라도 그 안에 깃든 적막함, 빛, 아름다움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독특한 농부다. 농부에겐 농사짓기 좋은 환경과 비옥한 땅이 최우선이나 그는 일용할 양식만 거둘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자연과 긴밀히 이어지는 삶을 택하는 괴짜농부요, 철학자다.
라비는 수도가 들어오는데 7년, 전기가 들어오는데 13년이 걸린 척박한 환경에서 양초와 호롱불, 가스 등으로 불을 밝히며 시대를 역행하는 구시대적인 삶을 선택해 맨손으로 땅을 일구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가족은 궁색할 만큼 검소해야만 했지만, 그 누구도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음을, 편리함에도 있지 않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대지를 존중하는 그의 삶에서, 소박함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길을 보았고 절제의 미를 보았다. 그러나 물질만능주의에 깊게 물든 사회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소박하게 살라는 제안이, 부유함과 풍요를 인생성공으로 인식하는 이 사회에 자발적 소박함이 행복이라는 그의 외침이 얼마나 먹힐지 미지수다. 책 곳곳에 소개되는 라비의 경험담과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주고, 라비의 철학은 많은 생각거리와 물음을 동시에 던져준다.
올해로 나는 귀농 6년차에 접어들었다. 마을 주민 전체는 대지를 경제적 기반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런데 마을 어디를 둘러봐도 라비처럼 농사 짓고 라비처럼 사는 주민은 없다. 모두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뿌린다. 이유는 단 하나, 상품성 있는 작물을 대량생산하기 위함이다. 내가 본 농사일은 저농약은 있어도 무농약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은 작물을 팔아 1년을 먹고 산다. 그런데도 빚에 허덕이는 가구가 대다수다. 자발적 소박함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소박함이라고 해야 맞겠다. 자발적으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기력이 떨어진 연로한 농부들 뿐이다.
라비의 주장과 철학에 동의하면서도 선뜻 따라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저마다의 형편과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라비의 사상과 내가 처한 농촌 현실과의 괴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 묵직한 과제를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