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나를 부른다 -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30편의 에세이 APCTP 크로스로드 1
APCTP 기획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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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교양과목으로 과학을 공부한 이후 과학과 관련된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그보다는 과학에 관련된 책을 피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어차피 내 선택과 필요에 의해 책을 읽으니까, 과학과 관련된 책을 피했다는 게 적절하다.

추리 소설이나 과학 소설도 좋아하지도 않아서 과학의 언저리조차 기웃거리지 않았다. 

이런 내가

당시 학점을 따기 위해 과학 공부를 하면서 어렵고 지루할 것 같던 과학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는 흐릿한 기억을 끄집어 냈다.

인문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만나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란 화두에 답하는 형식의 에세이라는 것은

[과학이 나를 부른다]를 선택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과학 밖에서'의 주제로 인문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쓴 글을 묶었고,

2부 '과학의 변경지대에서'는 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의 글을 소개하는데 과학과 인문학사이에서 겪는 고뇌를 볼 수있다.

3부는 '과학 안에서'는 과학의 어려움과 기쁨, 미래에 대한 과학자들의 글을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인문학자들의 글 중

김연수 작가의 "가장 과학적인 것이 가장 문학적인 것이다"라는 구절이 아직도 선명하다.

관념적인 글을 피하려면 과학적인 사고를 해야하고,

좋은 글을 쓰려면 과학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은 앞으로 내 책읽기의 방향을 알려주는 듯했다.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는 과학자의 과학책 쓰기와 아인슈타인의 과학사상, 철학사상,

우리나라의 과학 교육과 과학계의 어려움 등 한 편 한 편이 모두 유익하다.

과학을 바라보는 각계의 의견을 쉽고 논리적으로 소개하는 이 책은 청소년 이상이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교양서이다.

 

 

과학계는 과학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대중과 사회와 소통하기 원한다.

이를 위해 [크로스로드]란 사이버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이 이러한 새로운 장을 활용하여 인문학자들과 대중, 그리고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제 인문학과 과학은 '두 문화'라는 별개의 두 갈래 학문이 아닌,

상호 접근이 일어나고, 상호 접근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여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한 때는 인문 과학과 자연 과학이 실용 학문에 밀려 대학에서 찬 서리를 맞기도 했다.

 

 

우리가 자든, 먹든, 이동하든, 어느 경우든 과학기술이 동반되지 않는 적은 거의 없다.

우리 삶은 과학기술에 의해 상당 부분 규정되고 내적인 영역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내면적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인간의 모든 활동의 바탕이 됨에도 불구하고 상업주의에 밀려 과거의 영광을 잃은 것이다.

이제 인문 과학과 자연 과학 사이에 놓인 담을 헐고 동지애를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뉴턴이나 다빈치 등이 과학자이며 철학자였다는 것은 두 학문의 뿌리는 결국 하나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 두 문화의 소통은 과학의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크로스로드]에 그 희망을 걸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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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없는 사람들
하산 알리 톱타시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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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없는 사람들]을 읽기 전 터키문학에 대한 상당한 호기심과 기대심이 잇었다.
몇 해 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이 터키 출신이라는 점이 이런 기대심리를 부추겼다.

이 책의 저자인 하산알리 톱타시는 내게 생소할 수밖에 없는 터키 작가이나,

책을 읽기 전 작가 소개를 먼저 훑어보면서 이 책을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작가는 작품의 첫 문장을 무려 여덟 달이나 구상했다고 한다.

만년필로 작품을 쓰다 단어 하나가 틀리면 단어 하나를 고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쓰며,

자신을 완벽주의자라고 스스로 일컬으며,

오르한 파묵과 함께 현대 터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소개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림자 없는 사람들]은 터키의 외딴 시골마을의 이발소에서 시작된다.

이 마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진다.

제일 먼저 사라진 사람은 아내에게 "내 영혼이 오그라든다"고 말한 마을의 이발사 즌글 누리.

읍장과 파수꾼이 마을 구석구석을 뒤지며 찾았으나 찾지 못한다.

이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 귀베르진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귀베르진이 유괴되었을 거라고 단정짓고, 젠네트의 아들을 심하게 고문한다.

젠네트의 아들은 결국 모진 고문으로 인해 바보가 된다.

그런데 어이 없게 귀베르진은 임신한 채로 마을에 다시 나타난다.

실종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대도시로 떠난 읍장의 소식도 알 길 없다.

[그림자 없는 사람들]은  평범한 외딴 마을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사라짐’에 관한 이야기다.

 

 

 

본격적으로 책읽기가 시작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헝클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사라졌다는 이발사는 소설 속 마을에서 여전히 등장했다.

이게 도대체 돌아온 건지 아니면, 다른 이발사인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고,

실종 신고하러 도시에 나갔다가 사라진 읍장은 왜 그렇게 많이 마을을 돌아다니는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1인칭 '나'와 3인칭 '그'에 대한 혼란까지 겹쳤다.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어쩌면 이러한 점이 내 오기에 발동을 걸어줘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책을 덮고도 작가가 독자에게 주고자하는 메시지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놓친 것은 아니다.

다만 손에 잡힐 듯 말 듯, 어렴풋 할 뿐이다.

 

 

마을 사람들의 실종은 우리가 생각하는 실종과는 다르다.

그것은 육체적인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분명 거기 있지만 잊혀진 사람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으로,

혹은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자기 본래의 모습과 다른 사람으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기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독특한 방법을 설정한 것일지도.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내 자신에게 묻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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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 한 서번트 이야기
캐슬린 루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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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는 시각과 자폐의 복합장애를 가진 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좌뇌와 우뇌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서 심각한 운동장애를 가지고 있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세살이 되도록 걷지도 못했고,

언어장애도 있어서 세살까지 옹알이밖에 하지  못했다.

대신 촉각과 청각에는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수돗물소리, 전화벨 소리에도 자지러지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울었고,

자동차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에도 비명을 지르며 우는 아이였다.

 

 

렉스에게 양말 신기는 것,

스프를 먹이고,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는 것 등

사소하고 작은 일조차 렉스의 어머니에게는 모든 게 전쟁이었다.

 

 

렉스의 어머니 캐슬린 루이스는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꽤 알려진 프랑스 은행에서 12년간 근무하면서  주위로부터 인정 받던 커리어우먼이었다.

캐슬린은 어렸을 적부터 고집 세고 의지가 강했으며

자신의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여성이었다.

이러한 캐슬린의 성격은 훗날 렉스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데 한 몫을 한다.

 

 

과학에서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자폐증 등의 뇌기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와 대조되는 천재성을 동시에 갖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렉스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

어느 비 오는 날 우연하게 렉스의 천재성을 발견한 엄마는 렉스에게 자신의 전부를 걸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눈물과 고통이 어둡게 드리운 긴 터널을 통과하는 듯 괴롭고 막막했다.

그 과정에서 남편이 떠나는 아픔도 겪는다.

 

 

나는 렉스와 캐슬린의 전투와 같은 인생을 읽으면서

우리의 인생이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에 자주 휩싸였다.

그녀가 파리에서 승승장구하며 잘 나갔던 것은

직장을 다니지 않으면서도 렉스 곁에 있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파리에서 12년간 전문직 여성으로 근무하면서 모아놓은 돈이 있었기에

남편이 없는 상황에서도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렉스를 돌볼 수 있었다는 말이다.

또 어렸을 때의 강한 의지와 잘 부숴지지 않는 강인함은

렉스의 시각장애와 자폐라는 복합장애에도 무너지지 않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또 처절하게 외롭고 힘겨운 순간에 신은 캐슬린의 오빠를 통해 그녀를 신께로 이끌었다.

신은 어쩌면 이러한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미리 다 아시고 렉스와 캐슬린 곁에 캐슬린의 오빠를 배치해 둔 것은 아닐까?

캐슬린의 오빠나 캐슬린이 예전에 신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내 예감이 빗나간 것은 아니리라.

신은 렉스에게 시각을 빼앗아간 대신, 천재적인 음악성을 선물했다.

신은 캐슬린에게 장애아를 주신 대신 렉스를 통해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선물했다.

또한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삶의 의미를 알려주셨다.

이는 과거 프랑스 파리에서 잘 나가던 시절 느꼈던 공허함과 허전함과는 잘 대비된다.

 

 

마지막으로 부러운 게 있다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자유롭고 적절한’ 교육을 가능한 ‘최소의 제한적 환경’에서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국의 공립학교체계는 장애아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는 법률이 부러웠다.

이 부러움이 부러움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 가능한 빨리 이루어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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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사 -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여성 이야기
마저리 쇼스탁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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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을 읽으면서 !쿵족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쿵족 여인 니사는 첫 장부터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혼자서 아기를 낳는 장면, 그것도 한밤중에 담요 한 장 영양가죽 하나를 들고 집밖으로 나와서 나무 밑에

앉아서 출산하는 니사를 보며 적잖이 놀랐다.

지금은 정착해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지만,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의 !쿵족 여성 니사는

칼라하리 사막에서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는 종족의 여인으로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주도적인 여인이었다.

!쿵족 여인 니사의 일생을 다룬 이 책을 읽으면서 니사에게 서서히 빨려들어가는 나를 보았다.

 

 

니사는 나에게 일생을 걸쳐 여러가지 감정을 동시에 준 여성이다.

한 여성에게 이렇게 다양한 느낌을 동시에 받은 건 처음이다.

그건 니사의 다채로운 경험과 평범하지 않은 삶, !쿵족이라는 이방 여인이라는 점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먹을 것을 밝히고 무엇이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어린시절의 니사는 자기밖에 모르는  얄미운 먹보인가하면,

동생을 밀쳐내고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다 들켜서 엄마에게 모진 욕을 듣는 불쌍한 어린아이이다.

젖먹이 시절부터 놀이를 통해 성행위를 연습하고 초경을 하기 전 시험 결혼을 하는 성적인 자유분방함과

황하에서 혼자서 출산하는 니사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3년 터울로 자녀를 낳아 충분한 사랑을 주는 모습이 지혜롭다가도

끔찍히 자식을 사랑하다 못해 걸을 수 있는 다 큰 아이를 업고 수십 킬로를 왕복하는 모습은 미련맞아 보일 지경이다.

정 떨어진 남편의 아이를 억지로  유산시킨 일,

남편 몰래 바람피다 현장을 들킨 일,

남편이 죽은 후에는 여러 애인을 거느리며 본능을 억압하지 않는 !쿵족 여인의 자유분방함을 보며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쿵족 여인 니사가 사는 방법에서 일희일비하는 내 자신이 조금 우스워졌다.

니사가 사는 방법은 수많은 삶의 양태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옳고 그름을 논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니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책은 니사의 인생을 통해 가운데서 !쿵족의  문화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쿵족의 여인들은 남편에게 의존하거나 남편에게 종속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현명하고 강한 여성들이다.

남편에게 의존적인 우리네 여인들과 분명 다르다.

!쿵 여성들은 평균 일주일에 이틀 이상은 식량을 구하러 다니며

공동체 내에서도 여성의 지위가 높은 편이고 영향력도 상당하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아프리카의 미개한 종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렵채집과 오두막 생활로 삶을 영위하는 뒤떨어진 집단이라고,

그들의 질낮은 문화와 삶을 얕잡아 보던 내 엇나간 시각을 숨기고 싶었다. 

!쿵족은 남녀평등이 실현되고 있는 사회,

철저하게 나눔을 실천하는 사회다.

공평하게 분배하고 공정하게 나눈다.

나눔을 통해 나 보다 우리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종족이다.

 

 

[니사]의 저자인 마저리 쇼스탁은

남서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서 !쿵 사람들의 삶을 여러 면에 걸쳐 조사, 연구한 인류학자다.

우리와 다른 문화, 다른 민족의 삶을 들여바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과 맛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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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 - 군의문사 유족들은 말한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엮음 / 삼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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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때문이다.

군대는 이 땅의 많은 남자들이 피해갈 수 있다면 피해가고 싶은 곳이다.

나는 군에 관한 이야기를 귀 따갑게 들었다.

내무반 이야기, 훈련과 구타 이야기, 성추행 이야기, 전우들과 고참들 이야기 등등.

그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군대는 두렵고 무섭고 가혹한 곳, 안 가는 게 좋고, 피하는 게 좋은 곳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얼마전 읽은[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라는 책을 통해 내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부대에서 강연하고 상담을 하는 저자의 눈을 통해 군대가 그간 많이 바뀌고 변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벌써부터 군에 안 갔으면 좋겠다는 심사를 내비치는 두 아들에게 개선되고 달라진 군 생활을 설명하고

안심하고 다녀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유가족의 아픔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너무 가슴이 아파서 여러번 쉬었다 읽어야 했다.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착찹한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두려웠다.

의심스러웠다.

과연 개선되고 달라졌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었다.

몇 년 뒤 내게 닥칠 현실이라서 가슴이 조여오는 답답함을 느꼈다.

이런 곳으로 아이들을 밀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은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들과 유가족의 한맺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그들의 죽음이 뭔가 미심쩍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죽은 자들은 우리의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이다.

군에서는 집안문제, 여자문제, 부적응 등의 이유로 자살했다고 종결했던 사건들이나

군의문사위원회에서는 이들의 죽음을 구타와 가혹 행위, 성추행, 과중한 업무 등으로 밝혔다.

가슴 아픈 건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이 많다는 것이다.

남은 가족들은 절규한다.

아들의 자살 이유를 밝혀달라고, 국가는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책임을 외면하지 말라고,

10년 넘게 영안실 냉동고에 있는 아들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이들의 절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러나 2006년

군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가 한시적이나마 설립되어 이들의 편이 되고 힘이 되어 억울하게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신원했다.

군의문사란 군인(전환복무자 포함)으로서 복무하는 중 사망한 사람의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아니하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사고 또는 사건을 말한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가족의 의문사를 밝히고 군당국의 사과,

국립묘지에 안치 되는 것과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담하고 정부는 싸늘했다.

유가족들에겐 가족을 잃은 슬픔 하나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이다.

그런데 세상은 군에서 자살했다는 따가운 눈총을 얹어주어 유가족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자살할 이유가 없는 내자식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떨까를 생각하면,

그들이 야위어가고 병들어가며 허망한 세월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힘 없고 뒷 배경 없는 서민들이 나약한 외침이 그저 가엾고 안쓰럽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을 읽었으면 좋겠다.

군대에서 일어난 군인들의 억울한 죽음을 더이상 쉬쉬하며 숨기는 일이 사라지길 바란다. 

젊은이들의 죽음에 정부와 군은 더이상 책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간 젊은 주검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건 무책임한 짓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차단된 군대라는 특수공간에서 일어난 의문사를 일반인들에게 알리며,
앞으로 자식, 배우자, 형제, 친구를 군대에 보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린다.

이 책을 계기로, 책에 소개된 사건의 진상규명을 계기로 군이 투명해지기를 바라고,

우리 모두와 관련 있는 이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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