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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없는 사람들
하산 알리 톱타시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그림자 없는 사람들]을 읽기 전 터키문학에 대한 상당한 호기심과 기대심이 잇었다.
몇 해 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이 터키 출신이라는 점이 이런 기대심리를 부추겼다.
이 책의 저자인 하산알리 톱타시는 내게 생소할 수밖에 없는 터키 작가이나,
책을 읽기 전 작가 소개를 먼저 훑어보면서 이 책을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작가는 작품의 첫 문장을 무려 여덟 달이나 구상했다고 한다.
만년필로 작품을 쓰다 단어 하나가 틀리면 단어 하나를 고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쓰며,
자신을 완벽주의자라고 스스로 일컬으며,
오르한 파묵과 함께 현대 터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소개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림자 없는 사람들]은 터키의 외딴 시골마을의 이발소에서 시작된다.
이 마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진다.
제일 먼저 사라진 사람은 아내에게 "내 영혼이 오그라든다"고 말한 마을의 이발사 즌글 누리.
읍장과 파수꾼이 마을 구석구석을 뒤지며 찾았으나 찾지 못한다.
이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 귀베르진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귀베르진이 유괴되었을 거라고 단정짓고, 젠네트의 아들을 심하게 고문한다.
젠네트의 아들은 결국 모진 고문으로 인해 바보가 된다.
그런데 어이 없게 귀베르진은 임신한 채로 마을에 다시 나타난다.
실종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대도시로 떠난 읍장의 소식도 알 길 없다.
[그림자 없는 사람들]은 평범한 외딴 마을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사라짐’에 관한 이야기다.
본격적으로 책읽기가 시작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헝클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사라졌다는 이발사는 소설 속 마을에서 여전히 등장했다.
이게 도대체 돌아온 건지 아니면, 다른 이발사인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고,
실종 신고하러 도시에 나갔다가 사라진 읍장은 왜 그렇게 많이 마을을 돌아다니는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1인칭 '나'와 3인칭 '그'에 대한 혼란까지 겹쳤다.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어쩌면 이러한 점이 내 오기에 발동을 걸어줘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책을 덮고도 작가가 독자에게 주고자하는 메시지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놓친 것은 아니다.
다만 손에 잡힐 듯 말 듯, 어렴풋 할 뿐이다.
마을 사람들의 실종은 우리가 생각하는 실종과는 다르다.
그것은 육체적인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분명 거기 있지만 잊혀진 사람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으로,
혹은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자기 본래의 모습과 다른 사람으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기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독특한 방법을 설정한 것일지도.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내 자신에게 묻게 만드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