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일요일 2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 4
김재호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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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이었다.

여행을 담은 책은 두 명의 여행객을 갖기 마련이다. 저자와 독자. 여행자의 시선을 따라 책을 읽어가는 독자 역시 여행자이긴 마찬가지다. 저자가 본 대상은 제한적이지만 독자의 대상이 되며 그 장소와 그 매력들은 고스란히 독자에게도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독자 역시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여행객이 된다. 그 가운데엔 어떤 공유감도 동시에 느낄 수 있이게 저자와 독자는 어떤 동질감을 느끼는 동료가 된다. 이 책은 그런 동질감에 대한 기대를 멋지게 만들어주고 있다.
멕시코 인플루엔자로 세상이 시끄러운 지금 나 이 책을 읽었다. 좀 기묘하다고 할까? 멕시코는 나에겐 남다른 장소이기도 하다. Latin American Study를 공부했던 나에게 멕시코는 공부해야 할 지역이자 문화적인 기대가 한껏 큰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겐 먼 장소이기도 하다. 중남미를 난 미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중남미와 미국은 America란 단어를 공유하지만 엄연히 다른 문화를 지닌 지역들이다. 그래서 북미와 중남미란 지역적 표현보단 문화와 인종의 의미를 함축한 Anglo와 Latin의 차이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 둘 간의 전쟁과 긴장, 그리고 학대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 차이의 심연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다. 지역적으로 가깝고 지역 헤게모니 국가란 장점 때문에 미국에서의 공부를 선택했지만 중남미는 나에겐 너무 먼 지역이다. 그래서 이 책은 무척 반가운 멕시코 엿보기였다.
카피라이터. 많은 이들에겐 도전해보거나 꿈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꽃의 직업이다. 평범 속에서 독특함을 창조하는 이 직업은 매력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다가온다. 다만 꿈이 직장이라도 자본주의 속에서의 경쟁이란 속성은 피할 수 없는 법, 그래서 작가는 잠시나마 벗어나고픈 마음으로 머나먼 곳으로의 치유를 위한 여행을 마련했다. 카피라이터는 작고 적은 글 속에 대상에 대한 가장 멋진 속성을 찾아내는 글의 마법사들이다. 여행지의 매력은 물론 글의 마법 역시 무척 기대된 것도 사실이다. 솔직과 담백한 그녀의 글 속에서도 매력적인 여행지의 그 무엇을 형상화하는 멋진 표현들을 보면 글의 매력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아마 그녀의 글은 다른 여행객의 글보다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과연이랄까? 그렇다. 그녀는 멋진 캐리어 우먼이자 힘든 여정 속에서도 여유를 부릴 줄 아는 그런 여자였다. 이미 사전에 다양한 여행지를 다녀온 그녀의 경험은 멕시코 여행의 형상화를 더욱 재미있고 심도있도록 이끌었다. 초보자가 아닌 그녀는 풍부한 경험으로 다양한 지역과 사람들의 만남을 능숙하게 처리했고 그 와중에 여행의 멋을 아기자기하면서도 듬뿍 전달해주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방문했던 지역들의 다양함이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느낌을 주는 Chalmita를 시작으로 도시의 낭만과 공허함을 함께 담고 있는 Mexico city, 그리고 기이한 문화와 장난감 같은 집들고 가득한 과나후아토, 과거를 의미하는 피라미드들, 멕시코 가족의 훈훈함을 느낄 수 있는 쿠에르나바카, 그리고 색다른 원주민 문화와 혁명의 지역인 치아파스의 산크리스토발, 그리고 묘한 인간관계로 뒤범벅된 Chapala호수와 이스타파와 시우아타네라는 바닷가 해안 등 무척 다양한 지역들을 맛깔있게 그 매력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런 여행지에서 당연히 다앙한 인간들을 만나게 된다. 원주민들은 물론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을 만나면서 생기는 해프닝과 미묘한 감정들은 이 책이 단순한 기행문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한국 여자의 시선과 인식으로 그들 혹은 그녀들을 상대하면서 그 만남에서의 기대, 낭만, 그리고 현실을 소녀처럼 혹은 Cool한 도시인처럼 표현한다. 혼잡함을 지닌 시장들과 고혹적인 맛을 지닌 다양한 미술관과 Museum의 여정과 흥겨운 Bar에서의 묘한 만남의 긴장을 느끼면서 그녀는 색다른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기도 했다.
여행은 만남과 이별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만남 속에서 어느 만큼의 거리감을 둘 수밖엔 없을것이다. 그런 속에서 자신이 찾고자 했던 설렘과 낭만도 있었지만 꼭 낭만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현실적이고 도시적인 공허함도 있었다. 어쩌면 낭만으로 여겨졌거나 그런 것들을 찾으려 만난 여행지 역시 현실이란 속성을 벗어나긴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런 여행지 속에서 저자의 성숙함과 여유스러움은 사색과 긍정을 이끌었고 그녀의 여행지에 대해 다양한 인식의 폭을 이끌어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가을 속에서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 느낌까지 들었다.
멕시코 일요일 2시는 306쪽에서 내용을 끝내고 있다. 307쪽에선 ‘안녕, 멕시코’라는 글과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근 300여 쪽을 읽는 동안 난 저자와의 공유감을 맘껏 누렸다. 무척 즐겁고 재미있게 읽은 글인만큼 좀 아쉬웠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은 책 한 권이 끝났을 뿐이란 안도감을 남겨 주었다. 이 마지막 글에서 그녀는 멕시코를 벗어나 남미의 거의 모든 국가들을 여행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아마도 난 그녀의 또 다른 여행기를 기다릴 것 같다. 멕시코 일요일 2시에서의 여행각의 기쁨과 우수가 다른 남미 국가에서 다시 재현될지 모르겠다. 솔직히 아니어도 상관 없다. 그녀는 좀 더 다른 시각과 필력을 보여주더라도 그녀의 매력적인 기행의 보고서는 여전할 것 같기 때문이다. 도시 속에서 이 책을 읽은 나에게 청량감과 낭만을 전달해 준 저자에게 감사하고 조금 더 수고했으면 하는 못된 부탁만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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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혁신, 라스베이거스에 답이 있다
마이크 랜드. 바바라 랜드 지음, 문현아 옮김 / 살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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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인상은 Las Vegas의 발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정도로 느꼈다. 그러나, 이 책은 사막과 옅은 초원이었던 마을에서 거대하게 급성장한 도시의 역사를 통해 다른 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도시의 성장과 인간의 내면과의 관계랄까? 도시란 인간이 만든 만큼 인간의 내면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Las Vegas는 인간의 내면 중 욕망을 가장 잘 표현했고 그 욕망을 기반으로 성장한 도시다.
  이 책의 저자들은 과거보단 현재에 주안점을 두고 쓴 책이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역사가의 당연한 임무가 되어 버린 현대의 시점과 관련성을 중심으로 Las Vegas란 지역의 역사를 인과적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과법칙의 근저에 인간의 내면이 있음을 그들은 확인한다. 즉 그런 과거 탐문에서 자신의 이상과 야망을 관철하려는 인간들의 도전과 행동이 있었다.
  현재 카지노와 리조트의 대명사로 Las Vegas를 만든 것은 인간들의 다양한 야심이었다. 사막을 대도시로 만든 원동력인 이 야심은 문명의 기초였던 것처럼 Las Vegas에서도 여지 없이 통했다. 후버댐은 도시를 위한 호조건을 제공했다. 댐 만들면서 모인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흩어지기엔 너무 많아졌고 이제 어떤 형태로 도시가 발전될지는 앞으로 투여될 자본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갈릴 상황이었다. 그리고 결국 카지노로 결정 났다. 그 배경은 ‘벅시’란 새로운 엘도라도를 건설하기 위한 마피아 갱스터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어떤 희생도 마다 않는 것으로 유명한 만큼 마피아는 탐욕의 대명사이다. 이런 속성을 지닌 마피아의 등장은 Las Vegas의 색을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피아의 구체화가 ‘벅스’였다. 마피아 일원으로 이 지역의 Casino의 장래성을 발견한 ‘벅스’의 투자는 언제나 초기의 인물이 겪는 것처럼 불행으로 점철됐지만 도전만큼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투자자인 다른 갱단들 역시 유사한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카지노사업의 대세를 결정적으로 만든 이들 덕분에 Las Vegas는 향락의 꼬리표를 달기 시작한다.
  돈벌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갖게 된 Las Vegas at Nevada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라면 카지노는 물론 핵실험 장소가 되는 것에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위험한 수용은 다수의 희생 위에 성장하는 Las Vegas의 흉측스런 인간의 탐욕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카지노와 리조트 산업의 부흥으로 볼걸이를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이 기이한 모험은 핵실험을 관광산업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인간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 줬다.
  문제는 이것을 막기 위한 방침이나 도전이 또 다른 이기심으로 막아야 하는 아이러니가 있었단 사실이다. 돈이 얼마나 많은지 가늠할 수 없는 억만장자였던 하워드 휴즈의 출현은 이 도시의 코미디를 더한층 성숙시켰다.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사들였던 이 희한한 사업가는 도시 전체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사치스런 사업가였고 실제로도 그렇게 사들였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때, 미련 없이 도시를 떠났다는 점이다. Las Vegas란 도시가 어느 백만장자의 장난감이 됐다가 풀려나는 순간이었다.
  도시는 그런 과정 속에서 수많은 스타들의 등용문이 됐고 또한 엄청난 연예 비즈니스 사업을 개발시켰다. 카지노와 연예 사업의 결합은 생각 이상으로 도시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고 미국은 물론 국제적인 스타들인 ‘프랭크 시나트라’와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대중적인 스타들을 우리 주변까지 알리는데 기여를 했다. 하지만 도시의 우울한 이미지는 도시 발전의 발목을 잡았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통해 카지노란 우울한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했다. 이런 그들의 움직임 속에서 더욱 큰 규모의 리조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어린이도 함께 할 수 있는 리조트 개발에 더욱 주력한다. 즉 보다 가족적인 개발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Las Vegas는 변하고 있다. 앞으로도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문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된 가이 루이스 로샤의 당부다. Las Vegas엔 카지노와 리조트만 있는 도시가 아닌 평범한 일상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책의 후반부에선 하이킹과 같은 여유와 일상을 즐기는 평범한 미국인들과 심지어 홈리스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Las Vegas의 독특성보단 미국의 다른 도시와 같은 보편성에 주목하길 권유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의 보편성을 다루는 것만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런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특이성을 결정하는 것 역시 주목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미국의 디트로이트엔 자동차 공장만 있지 않을 것이고 시카고만 범죄로 골머리를 앓고 있진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뇌리엔 그런 상징적인 속성들이 남겨져 있다. 즉 평범한 것에 기반을 두긴 하지만 그 도시만의 독특성 역시 결정된다. 이런 독특성은 인간의 도전이든 탐욕이든 인간의 내면적 가치로 결정된단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욕심이 어떻게 구현되는가에 따라 변화되는 도시의 색은 무척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어느 시점에서 도시는 물론 공동체의 체질이 결정될 때 중요한 인물들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가능하다면 그런 선택이 이루어질 경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하고 그 선택에 최소한의 배려와 도덕률이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함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Las Vegas가 가능하면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는 저자들의 생각일 것 같다.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선 공동구성원들의 최소한의 가치를 지닌 선택이어야만 한다는 그들의 바램도 좀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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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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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적막함과 고독, 그리고 단절은 현대문학이 자주 사용하는 글감이다. 이런 주제나 내용은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방식이 오늘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하단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주제를 알고 보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거나 공유감을 느끼는 것, 바로 그것이 현대소설을 읽는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뻔한 주제를 풀어가는 작가의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런 인식을 기본으로 할 때 소설 ‘슬롯’은 매우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문학작품이다.
공유감을 끌어내기 위해 작가는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속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소로 작가는 카지노를 선택했다. 가장 자본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간의 관심을 철저히 차단하고 모른체하는 단절된 사회. 이런 점에서 카지노는 현대사회의 훌륭한 제유일 것이다.
여기에 현대인들의 삶에서의 성적인 문제 역시 작가는 다루고 있다. 적나라한 잠자리가 묘사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여성들간의 관계들을 통해 현대인들의 고독을 우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류 탄생에서부터 가장 끌리는 관계인 남녀관계는 결혼이란 결말이든 연인의 관계이든 언제나 편한 관계로 묘사되었다. 어떤 문학에는 사랑과 그 맺음이 행복의 마지막인 것처럼 형상화되기도 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혼이 50%에 육박하는 현실이고 보면 현대사회에서 남녀간의 달콤한 관계 역시 인간의 행복을 담보해주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 모습이 또한 ‘슬롯’에서도 적나라하게 보인다.
주인공 ‘나’는 다양한 여자들을 만난다. 그런데 주인공 ‘나’에겐 그녀들이 그냥 머나먼 타인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그녀들은 여자라는 속성이 무시된 채, ‘그’라고 표현되어 있다. 현재의 한국어의 변화인지 아님 짧을수록 좋다는 믿음에서인지 신문에서 사용되는 3인칭 단수가 여자이든 남자이든 그냥 ‘그’로 표현될 뿐이다. 이젠 동성도 똑 같은 사랑이라고 우겨도 할 말은 없을 듯하다. 이미 이성으로서의 안락함과 매력, 그리고 환상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작가는 그것을 느끼도록 한 기술적 수사인지 모른다. 아무튼 이젠 여자로서의 환상은 제거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은 좀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다.
여기에서 남녀관계는 무엇보다 서로간에 위로를 해줄 수 있는 그런 관계보다 사업상의 관계거나 단기적이고 이용하는 관계, 심지어는 불신의 관계로만 묘사되고 있다. 이런 그의 시각은 경쟁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관계를 또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방을 함께 쓰는 남녀의 관계가 파탄 난 상황에서 편안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 ‘나’는 너무 현대적이다. 내쫓기지 않을 만큼 직장에 다니면서 어지간한 장벽을 갖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주저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고민하는 것 같다. 용기 없는 남자? 과거 386세대의 열정은 자본주의란 풍파에 깎인 직장인일 뿐이다. 마르크스나 기타 등등을 봤지만 사회적 현실 속에서 그냥 평범하게 된 그이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그의 주변에 맴도는 여자들은 7살 난 여아에서부터 시작해서 애 딸린 엄마까지 다양하다. 그 사이에 그를 카지노로 이끈 수진이란 대학교 후배 이혼녀, 그리고 천재 고등학교 졸업생인 윤미가 그의 주변을 인공위성처럼 맴돈다. 그녀들 혹은 그들이 주인공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는 언제나 망설였다. 깊은 관계를 철저히 막는 벽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은 왠지 모를 탐익의 대상이 될 지 언정 어떤 선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현대인으로서의 ‘나’는 타인을 통한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슬롯’이란 제목에서 드러나듯 카지노의 다양한 경기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문적으로 이야기된다. 확률이란 단어에서 나오는 막연한 것의 위험한 구체화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카지노에 참가한 자들의 속성이고 보면 현대인들은 자본주의란 위험한 게임에 막연한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막연함 속에서 돈을 잃을 각오로 온 자라도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카지노란 경기에서 감히 이기려 달려든다. 결국 카지노 딜러들에게 이길 수 없지만 순응하는 이런 기이한 맥락 속에서 현대인들은 점점 작아지고 그것을 수긍하면서 사는 것이다. 이런 수긍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간관계들의 나약함과 파편화는 인간의 불행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슬롯’을 재미있게 읽었는지 지루하게 읽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떨 때는 다 읽기를 포기하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끝까지 다 읽었다. 그 이유는 주인공 ‘나’란 위치에 정말 내가 투입되어도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내 거울이었다. 카지노란 장소에서 보인 주인공 ‘나’의 소심함은 나 역시 어느 순간 내 속성이 됐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또한 내가 갖고 있는 인간관계 역시 어딘지 모를 거리감을 두고 만나고 있는 것만 같다. 언제 내 속마음을 내 주변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소설은 그냥 내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카지노에 간다고 해서 전혀 다른 행동과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럼 추측을 이끌어내고 있는 이 소설에 대해 뭔가 감추고 싶은 그 무엇이 들킨 느낌이 무척 드는 것은 아마 카지노 같은 현실에서 내가 방황해서 그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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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비욘드 논증 기본서 - 로스쿨 법학적성시험 LEET 대비, 2010
이원영.이현중 지음 / 비욘드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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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속의 색의 구성은 분홍색과 검정색의 기이한 조합이 돼서 그런지 눈의 피로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마도 수험생들에게 확실한 정보를 주려다 보니 대비되는 색을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러나 보는 입장에선 좀 부담된다. 그러나 이런 디자인적 문제를 열외로 한다면 이 책은 상당히 인상적인 내용 구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기존의 수험서와는 다른 체계를 갖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집이 아니다. 이 책은 문제들을 답보기 전에 풀어보는 예행연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책은 문제지문을 처음부터 분해하기 시작한다. 기출문제 등에서 요구하는 해당사항이나 내용을 지문에서 찾아내서 학생들로 하여금 문제와 관련지문의 연관성을 직접적으로 제시해준다.
또한 지문을 도표화함으로써 논지가 다른 두 내용들의 논거들을 따로 분리시킴으로써 수험생들이 양쪽의 논지와 관련 논지를 정확하게 분류해 낼 수 있는 능력도 아울러 향상시키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다른 일반 문제집들은 선택지들만을 따로 설명해줌으로써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단계를 훨씬 뛰어넘어 지문의 내용을 그림을 통한 체계화하는 수고까지 하면서 수험생들의 욕구를 지금까지 가장 잘 충족시키고 있다. 즉 수험생들은 답의 맞고 틀리고를 떠나 문제를 효율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자 한다. 따라서 수험생들이 시험장에서 문제를 만나게 될 경우, 이 책의 도움으로 지문에서의 논지와 논거를 도표화된 인식체계로 분류하고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또한 핵심문장이나 근거를 찾는 것 역시 이 책에서 제공되는 파악 방식을 통한다면 큰 도움을 받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책의 두께를 통한 저자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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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 Breathl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똥파리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와의 연관성을 숙명처럼 갖게 될 것 같다. 같은 독립영화에 빈민을 다뤘던 점에서 공통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만은 예외였다. 똥파리엔 환상과 기적이 제거됐기 때문이다. 슬럼독의 주인공이었던 자말과 살림이란 두 형제들의 이야기 중 환상과 기적의 대상이던 주인공 자말이 제거된 영화가 바로 똥파리란 영화다. 가난과 빈곤,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매몰된 인간성. 그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살게 되는 비참한 인간들의 군상들을 이 영화는 뛰어난 남녀 주인공들의 열연과 함께 거친 욕설과 상황설정으로 보여준다. 아마도 이 영화는 내가 본 기억 남는 명작 중 하나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거친 욕설과 폭력으로 이 영화는 시작된다. 두들겨 맞고 있는 여자를 위해 거친 남자(주인공 상훈)가 가해자인 남자를 패는 것으로. 잠시 동안 그가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두들겨 맞았던 여자의 뺨을 때리기 시작한다. 왜 맞냐고 하면서. 이런 첫 장면을 통해 주인공 캐릭터는 확실하게 규정된다. 즉 그는 폭력배였다.

주인공 상훈은 거친 남자다. 그의 현직은 용역깡패였고 그는 자기만큼 어려운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벌어들인 소득은 일과성 도박으로 날리기 일쑤였다. 그는 미래를 설계하지 않는 그냥 형편없는 인간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그의 과거와 그 과거에서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밝히는 역순행적 구조를 갖는 영화임을 암시한다.

기이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그의 주변은 그에겐 행복과 부담 두 가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얼마 전 출소한 아버지는 어릴 적 상훈의 어머니와 누이를 숨지게 한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구타한다. 또한 4살이 많은 친구 같은 그의 직장 상사 만식은 그에게 일을 맡기고 아버지에 대한 이해를 그가 갖도록 하는 좋은 형 같지만 어쨌든 그에게 용역깡패 짓을 시키는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직장상사인 그에게 형이란 호칭도 깍듯한 예우는커녕 욕만 퍼붓는다. 그리고 배다른 핏줄인 이혼녀 누이와 그나마 그가 애정을 쏟는 조카가 있다. 누이에겐 쌀쌀맞게 대해도 조카에게만 그는 정성을 다한다. 이런 관계 속에서 불현듯 찾아온 여고 3학년생인 연희는 그에겐 어쩌면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 준다.

연희에 앵글을 들이대면 그녀 역시 불행을 타고 난 여자다. 아버지는 월남전에서의 충격으로 정신적 상흔을 갖고 있었고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하던 시절, 용역깡패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영화에선 상훈이가 바로 가해자이지만 그런 인간관계가 한국드라마에선 인과성을 갖지 않게 나온다. 그리고 남동생이지만 거칠고 누나에게 욕과 구타를 서슴지 않은 현실을 도망치기만 하려는 영재가 가족 구성원으로 있다. 연희 역시 힘든 생활고에 헉헉거리는 그런 학생이다.

이런 둘의 관계는 서로간의 불행을 감싸주는 관계로 발전한다. 애인 관계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힘들 때 전화로 만나자고 이야기할 인간관계를 그들은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그들의 우정도 사회의 냉혹함 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진다. 상훈의 마음이 풀리면서 어려운 가족들을 위해 최소한이나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 하고 그런 와중에 그는 가족의 가치와 소중함, 그리고 가족 속에서의 행복을 어렴풋이나마 찾아가게 된다. 아버지의 자살시도 앞에서 그는 가족에 대한 비극을 느끼며 조카의 슬픔 속에 가족에 대한 미련을 결국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반대편인 연희의 가족은 파국으로만 간다. 동생 영재는 용역깡패로의 길을 가게 되며, 그를 통해 어려운 가정의 파국처럼 그는 자기보다 더 가난한 자들을 갈취하는 또 다른 상훈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기이한 사건 전개는 결국 시작부터 암시된 비극으로 종말을 맡게 된다. 모든 일을 관두고 새 출발을 시작하려는 상훈은 그의 마지막 업무에서 자기의 조수였던 영재의 손에 의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안타까운 그의 죽음은 한국 사회의 슬픈 단면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죽음만이 이 영화의 진정한 진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즐거운 기분을 갖고 거리를 걷다, 포장마차를 두들겨 패고 있는 동생 영재를 보게 된 연희의 알 수 없는 비극의 얼굴과 영재의 모습에서 투영된 상훈의 모습은 이 영화의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즉 가난한 자들은 서로를 학대하면서 자기들을 아픔을 상대에게 전가하면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가난한 자들의 빈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난한 자들의 비극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서로간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지만 그들의 관계는 다시 뒤바뀌기도 하는 너무 처절한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악순환을 또한 그들은 벗어나기 힘들기도 하다. 아버지의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의 또 다른 폭력으로의 전환, 그러는 과정에서 상처받은 이들의 또 다란 가해 행위. 이런 가해에 근거인 사회적 빈곤과 그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는 그들의 처지는 이 사회에 정면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우릴 놔 둘 것이냐 라고.

영화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만을 담고 있지 않다. 경쟁이든 탐욕이든 엄청난 다수의 희생자들을 잉태하는 현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직시하고 그에 대한 처방을 내놓지 않는다면 촬영지였던 중계본동이 계속 확산될 것이며 결국 우리 모두 파멸이란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 점에서 슬럼독이 환상과 기적을 통해 피해간 사회적 문제의식을 재현하며 동시에 슬럼독의 비겁함을 비판하고 있다.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빈곤엔 기적과 희망이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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