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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일요일 2시 ㅣ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 4
김재호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8월
평점 :
즐거운 책이었다.
여행을 담은 책은 두 명의 여행객을 갖기 마련이다. 저자와 독자. 여행자의 시선을 따라 책을 읽어가는 독자 역시 여행자이긴 마찬가지다. 저자가 본 대상은 제한적이지만 독자의 대상이 되며 그 장소와 그 매력들은 고스란히 독자에게도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독자 역시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여행객이 된다. 그 가운데엔 어떤 공유감도 동시에 느낄 수 있이게 저자와 독자는 어떤 동질감을 느끼는 동료가 된다. 이 책은 그런 동질감에 대한 기대를 멋지게 만들어주고 있다.
멕시코 인플루엔자로 세상이 시끄러운 지금 나 이 책을 읽었다. 좀 기묘하다고 할까? 멕시코는 나에겐 남다른 장소이기도 하다. Latin American Study를 공부했던 나에게 멕시코는 공부해야 할 지역이자 문화적인 기대가 한껏 큰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겐 먼 장소이기도 하다. 중남미를 난 미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중남미와 미국은 America란 단어를 공유하지만 엄연히 다른 문화를 지닌 지역들이다. 그래서 북미와 중남미란 지역적 표현보단 문화와 인종의 의미를 함축한 Anglo와 Latin의 차이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 둘 간의 전쟁과 긴장, 그리고 학대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 차이의 심연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다. 지역적으로 가깝고 지역 헤게모니 국가란 장점 때문에 미국에서의 공부를 선택했지만 중남미는 나에겐 너무 먼 지역이다. 그래서 이 책은 무척 반가운 멕시코 엿보기였다.
카피라이터. 많은 이들에겐 도전해보거나 꿈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꽃의 직업이다. 평범 속에서 독특함을 창조하는 이 직업은 매력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다가온다. 다만 꿈이 직장이라도 자본주의 속에서의 경쟁이란 속성은 피할 수 없는 법, 그래서 작가는 잠시나마 벗어나고픈 마음으로 머나먼 곳으로의 치유를 위한 여행을 마련했다. 카피라이터는 작고 적은 글 속에 대상에 대한 가장 멋진 속성을 찾아내는 글의 마법사들이다. 여행지의 매력은 물론 글의 마법 역시 무척 기대된 것도 사실이다. 솔직과 담백한 그녀의 글 속에서도 매력적인 여행지의 그 무엇을 형상화하는 멋진 표현들을 보면 글의 매력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아마 그녀의 글은 다른 여행객의 글보다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과연이랄까? 그렇다. 그녀는 멋진 캐리어 우먼이자 힘든 여정 속에서도 여유를 부릴 줄 아는 그런 여자였다. 이미 사전에 다양한 여행지를 다녀온 그녀의 경험은 멕시코 여행의 형상화를 더욱 재미있고 심도있도록 이끌었다. 초보자가 아닌 그녀는 풍부한 경험으로 다양한 지역과 사람들의 만남을 능숙하게 처리했고 그 와중에 여행의 멋을 아기자기하면서도 듬뿍 전달해주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방문했던 지역들의 다양함이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느낌을 주는 Chalmita를 시작으로 도시의 낭만과 공허함을 함께 담고 있는 Mexico city, 그리고 기이한 문화와 장난감 같은 집들고 가득한 과나후아토, 과거를 의미하는 피라미드들, 멕시코 가족의 훈훈함을 느낄 수 있는 쿠에르나바카, 그리고 색다른 원주민 문화와 혁명의 지역인 치아파스의 산크리스토발, 그리고 묘한 인간관계로 뒤범벅된 Chapala호수와 이스타파와 시우아타네라는 바닷가 해안 등 무척 다양한 지역들을 맛깔있게 그 매력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런 여행지에서 당연히 다앙한 인간들을 만나게 된다. 원주민들은 물론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을 만나면서 생기는 해프닝과 미묘한 감정들은 이 책이 단순한 기행문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한국 여자의 시선과 인식으로 그들 혹은 그녀들을 상대하면서 그 만남에서의 기대, 낭만, 그리고 현실을 소녀처럼 혹은 Cool한 도시인처럼 표현한다. 혼잡함을 지닌 시장들과 고혹적인 맛을 지닌 다양한 미술관과 Museum의 여정과 흥겨운 Bar에서의 묘한 만남의 긴장을 느끼면서 그녀는 색다른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기도 했다.
여행은 만남과 이별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만남 속에서 어느 만큼의 거리감을 둘 수밖엔 없을것이다. 그런 속에서 자신이 찾고자 했던 설렘과 낭만도 있었지만 꼭 낭만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현실적이고 도시적인 공허함도 있었다. 어쩌면 낭만으로 여겨졌거나 그런 것들을 찾으려 만난 여행지 역시 현실이란 속성을 벗어나긴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런 여행지 속에서 저자의 성숙함과 여유스러움은 사색과 긍정을 이끌었고 그녀의 여행지에 대해 다양한 인식의 폭을 이끌어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가을 속에서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 느낌까지 들었다.
멕시코 일요일 2시는 306쪽에서 내용을 끝내고 있다. 307쪽에선 ‘안녕, 멕시코’라는 글과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근 300여 쪽을 읽는 동안 난 저자와의 공유감을 맘껏 누렸다. 무척 즐겁고 재미있게 읽은 글인만큼 좀 아쉬웠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은 책 한 권이 끝났을 뿐이란 안도감을 남겨 주었다. 이 마지막 글에서 그녀는 멕시코를 벗어나 남미의 거의 모든 국가들을 여행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아마도 난 그녀의 또 다른 여행기를 기다릴 것 같다. 멕시코 일요일 2시에서의 여행각의 기쁨과 우수가 다른 남미 국가에서 다시 재현될지 모르겠다. 솔직히 아니어도 상관 없다. 그녀는 좀 더 다른 시각과 필력을 보여주더라도 그녀의 매력적인 기행의 보고서는 여전할 것 같기 때문이다. 도시 속에서 이 책을 읽은 나에게 청량감과 낭만을 전달해 준 저자에게 감사하고 조금 더 수고했으면 하는 못된 부탁만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