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4월 5주

  영화에서의 침묵, 너무 낯설다. 아니 영화는 침묵을 받아들이는데 익숙지 않다. 오감의 사용을 통해 관객의 이해를 이끄는 영화는 문학과는 다르다. 침묵을 유지하는 문자로 구성된 문학에서조차도 침묵은 전제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상상을 전제한다면 문자로 구성된 문학에서도 다양한 소리가 넘치기 때문이다.
  반갑지 않은 침묵이 과연 존재하는 영화들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존재한다. 소리를 포기하는 것은 영화엔 대단한 모험이다. 낯선 방식에 동요될 관객을 생각하면 침묵을 담고 있는 영화는 상품성의 하락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리를 통해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하고 또한 영화의 서사구조를 이해시키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상, 소리 없는 영화는 기존의 이미지 재현방식엔 역행한다. 오직 화면에서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것, 어쩌면 발전된 현대에서 구석기시대로 돌아가는 것으로 평가될지 모른다.
  하지만 침묵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예술적 깊이를 지니고 여백의 미를 전달해준다. 그리고 소리가 없는 것을 통해 더욱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전달되는 강렬한 메시지는 대화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와 비교해서, 결코 관객의 호응을 이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이런 모험적인 영화들은 무척 색다르면서도 즐겁다. 그 대표적인 것이 '모던 타임즈,' ‘달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위대한 침묵’이란 영화가 그들이다.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시대적 대세였던 토키영화에 저항한 무성영화의 마지막 시기를 대표하는 걸작이자, 현재에 이르러서도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졸작이거나 평범하다는 것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가치가 대단한 영화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은 다시 한 번 음미할 만 하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상황이지만 음악만은 경쾌하고 즐겁고 흥겹다. 그러나 장면 하나하나는 결코 웃고 넘길 수 없는 진지함과 인간의 가치가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영화는 현대인의 애환과 풍자를 거의 80년 전에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1936년의 작품이라서 2차 대전 이전의 대공황 상황을 볼 수 있는데 오늘날의 경제 위기로 힘들어하는 현대인들과 묘하게 중첩된다. 또한 아마도 100년이 넘더라도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기막힌 서정성은 뛰어난 코미디 영화이면서도 계속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또한 인간의 행복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기술의 발전이 꼭 인간의 환상적인 미래를 담보할 것도 아니라는 점을 역시 분명하게 알 것이다.
  실수투성이의 모습으로 즐거운 장면들을 보여주는 찰리 채플린은 그러나 매우 늙어 보이고 초췌해 보인다. 아마도 그의 후반기 작품이면서도 동시에 토키영화에 대항하는 무모한 도전에 힘들어 하는 그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가 자신의 애인과 즐거운 사랑을 하는 장면은 유치할 수는 있지만 무척 감동적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뢰와 믿음이 있어 보이고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아련하게 담겨 있다. 과연 그런 장면들이 오늘의 영화에서 재현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만큼 말이다. 또한 무성영화이면서도 노래하는 장면에서의 채플린은 역시나 최고의 영화배우이자 코미디언임을 과시한다.
  영화에서의 자본주의가 추진한 자동화에 의한 인간의 소외의 형상화는 현대 시점에선 매우 Old 하게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과거의 기술과 작업에서도 결코 다른 시대의 것이라고 보기엔 내용은 너무 현대적이다. 벨트 컨베이어에서 똑 같은 작업만을 하는 장면과 그런 반복 작업을 일상생활에서도 계속 이어가고 마는 주인공의 모습은 자동화에 의해 파멸되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뛰어나게 형상화했다. 여기에 데모 군중에 우연하게 참가하게 되면서 그가 맞이하게 되는 불운한 운명은 당시의 미국의 비인간적인 노사문제와 편파적인 시대적 아픔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마도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다고 자책하는 애인의 아쉬움이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채플린은 결코 인간에 대한 포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힘들어하는 애인에게 결코 포기하지 말자면서 둘이 걷는 마지막 장면은 인간의 기대를 결코 포기하지 않은 감독이자 배우이자 작가였던 찰리 채플린의 마지막 의지이자 소망이고, 인류 모두가 결코 저버리고 싶지 않은 열망일 것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불교와 관련된 것임을 달마란 소재를 통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선문답 같은 이 영화의 제목은 어떤 깊이 있는 질문과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들을 수 없는 침묵의 바다 속에서의 영화장면들은 다양한 이미지와 아름다운 화면으로 관객들에게 쉽지 않은 고민을 던져줬고, 무엇보다 禪을 영화로 형상화한 환상적이면서도 고요한 이미지는 불교의 진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회화적인 아름다운 장면과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모습들은 고요한 속에서 들리는 강한 외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과연 지금 작업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익숙지 않은 배용균 감독의 1989년의 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프로덕션인 배용균(裵鏞均)프로덕션에서 제작, 감독, 촬영, 조명, 편집 등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진행했다. 이런 그의 노력이어서인지 영화의 통일성과 감각성은 매우 두드러졌다. 또한 그의 노고는, 흥행은 부진했지만, 제42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Uncertain Regard)’ 부문에 선정된 소식을 전해줬고, 무엇보다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그랑프리인 황금표범상을 받아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중국 선불교의 창시자인 달마를 제목에 담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강한 선불교의 화두를 주요 테마로 삼은 드문 영화다. 영화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장면을 배경으로 깊고 깊은 산중에서 세속의 인간과 연을 맺지 않고 살아가는 노스님, 젊은 수도승, 그리고 어린 동자스님의 세 명으로 이루어진 어느 퇴락한 절을 터전으로 그들의 번뇌와 갈등, 그리고 그에 대한 종교적 승화를 보여준다. 거의 없는 대사를 통해 선불교에서 말하는 침묵의 가치를 들려준다. 비록 서사적 구성이 이 영화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노스님의 건강에 대한 그들의 고민, 그리고 인생에서 맞이하게 될 최후의 장면에서의 어느 순간 느껴지는 인간적 성찰과 승화는 이 영화에선 최고의 압권이다.  

위대한 침묵 


  언어, 그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단점 역시 존재하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수단이자 제한요소이기도 한 매체이다. 영화 [위대한 침묵]은 세상의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상과 격리된 알프스 산맥 깊은 곳에서, 침묵이란 방식을 채택한, 이색적인 어느 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인간의 언어가 신으로 향한 구도를 방해할 수 있다는 특이한 믿음을 갖고 그들은 알프스 산맥에 있는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Le Grande Chartreuse)에서 자신들의 독특한 수도방식을 시험한다. 즉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불필요한 언어를 극도로 자제하면서, 침묵을 통해 신의 구원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고요함과 진지함을 느낄 수 있고, 인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그들의 감동적인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침묵은 언어와 반대다.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언어를 포기한다는 것은 표현은 쉽지만 인간의 가장 발전된 기능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고통과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극도의 침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자연의 신비한 변화를 채득하고, 그 신비로움 속에서 신의 은혜를 확인한다. 생명의 탄생과 복됨은 영화에서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내용이리라. 이런 장면을 감독 필립 그로닝은 162분간 색다른 구성과 방식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심오한 깊이를 제공해준다.
  영화에선 두 가지의 상반된 세계를 느끼게 한다. 우선 변함 없는 수도사들의 생활이 그것이다. 그들은 동료와 함께 있든, 혼자만의 시간을 갖든 철저하게 침묵을 통해 수도한다. 비록 성경을 읽는 장면이나, 일년 중 몇 시간이나 일종의 휴가를 얻는 기간 동안 말을 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리긴 하지만 그들의 삶 태반은 침묵이다. 이런 항구적인 생활의 모습은 그들의 변화 없는 세계를 보여준다. 이에 반해 변화하는 것은 바로 시간에 따른 계절의 변화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란 계절의 변화는 생명의 새로운 탄생과 변화를 보여주면서 변화 없는 수도사의 생활과 대조를 이룬다. 역시나 수도사의 생활과 반대되는 세속의 장면들이 간간이 보일 때면 변화하는 속세의 모습과도 대조가 될 것이다. 이런 대조 속에서도 수도사들의 생활의 지속성은 확실히 특이한 모습이다.
  이런 그들의 생활 속에서 잠시나마 얻은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Le Grande Chartreuse)의 수도사들이 겨울철의 즐거운 휴식과 여유, 그리고 놀이는 어쩌면 침묵에 의한 수도가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수도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자 행동이기에 그에 따른 고통은 당연히 따라올 수 있으며, 그런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종교인의 숙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는 영화의 내용만큼 기이한 제작 과정이 숨어 있다. 그로닝 감독이 수도원에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부탁한지 무려 19년간 기다렸다거나 여타 영화제에서 결코 경쟁부문에 출전해선 안 된다는 규정을 달았다는 것은 매우 색다른 뒷이야기를 제공해줬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62회 베니스영화제, 30회 토론토영화제, 22회 선댄스 영화제 등에 초청됐지만 수상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겸손의 미덕을 지킨 결과다. 그래도 선댄스 영화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바바리안 필름 어워드, 저먼 필름 크리틱스 어워드, 저먼 카메라 어워드 등을 수상했다. 아마도 그냥 넘어가긴 힘든 작품성을 결국 인정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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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의 어둠/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자본주의 역사로 본 경제학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자본주의의 역사로 본 경제학 이야기 책세상 루트 17
안현효 지음 / 책세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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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를 넘어 시대적 가치를 확보한 자본주의는 근대의 시작과 함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언제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는 당분간 맹위를 떨칠 것이고 현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의식과 생활의 모든 것들을 좌우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에 살면서 우리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쉽고 편하게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자본주의는 물론 경제학을 거의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평이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어린 학생들에게도 읽힐 수 있는 좋은 장점으로서 경제학을 어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학자로서 당연한 자세이지만 이런 기본적인 마음가짐조차 갖고 있지 못한 학자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분명 주목할만한 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책의 효과적인 설명이란 장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이외에 두 가지의 매우 강하면서도 의미 있는 구성을 갖고 있다. 우선 이 책은 자본주의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매우 간편하면서도 체계적이고, 일반인도 쉽게 알 수 있는 구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학이 주류경제학만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통념을 여지없이 비판한다. 주류경제학으로 자리매김한 고전경제학은 물론, 20세기의 위기를 극복한 케인지언 경제학 이외에도 제도학파 경제학과 현재 터부시되고 있는 마르크스 경제학 역시 아직도 존재함을 분명히 밝힌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 속에서 계속 성장했으며, 또한 한 쪽에서의 설명만으로 사회의 위기를 해소할 수 없었던 속내와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경제학파의 탄생들을 통해 과도하고 맹신적으로 추종되고 있는 경제학파들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또 다른 장점은 이 책의 역사적 설명에 있다. 책은 시간에 따른 서사구성을 기반으로 자본주의의 역사를 기술한다. 역사적인 차례를 갖고 책을 기술한다는 점에서 역사성, 즉 특수성과 제한성을 무시하고 일반적이고 수학적인 이론 구축에 주력하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갖고 있다. 즉 자본주의와 그 자본주의 속에 담고 있는 가치를 시대성과 역사성을 갖고 있는 한 시대의 주류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역사성은 언제나 당시엔 통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통할 수 없다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담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역사성을 통해 주류로 자리잡은 고전경제학에 대한 맹신을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매우 쉽다. 그러나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매우 무거웠다. 많은 고심을 갖고 만들었기에 정독 한 번으론 매우 아쉬울 것이다. 그처럼 이 책은 현대의 우리들의 모든 사회적 구조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편견에 치우친 견해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래서 쉽지만 무거운 것이다. 이 책의 독서를 끝내고 다시 한 번 현재의 우리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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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의 어둠/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자본주의 역사로 본 경제학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 -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보는 6가지 문화심리코드
김헌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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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통용된, 진리라고 평가되는 이론이나 사실이 언제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어쩌면 완벽이란 의미의 이론이나 사실은 인간들이 만든 허상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대가 견고한 지금, 경영측면은 물론 상업적 측면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새롭게 연구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의 주인공인 자본가와 기업들을 위해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보다 가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소비가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생산자의 입장에선 분명 소비가 필요하고 소비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고찰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고찰을 지금까지 제시해줬던 주류경제학에서 이야기한 인간에 대한 연구가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가정 하에 놓였던 인간은 심리학 등의 다양한 학문의 도움을 받으면서 점차 주류경제학에서 이야기한 그런 인간이 아닌 좀 더 다르고 어떤 면에선 근대가 가정했던 신과 같은 인간은 아니라는 결과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실이 갖고 있는 문제는 그 사실이 언제나 모든 것에 통용되지 않고, 그로 인해 만족할만한 효과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단 점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상식들은 그 한계를 적나라하게 노출하곤 한다. 현재의 주류경제학이 그런 상황이다. 무엇보다 주류경제학에서 제안한 대책이나 방법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기 힘든 사례가 많아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은 담고 있다.
  새로운 인식에 대한 강렬한 요구가 책, [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에 넘친다. 경영적인 목표를 위해서 이 책이 마련된 듯 하지만 이 책은 독자의 폭을 특정부분에 한정하지 않고 경제는 물론 인간에 대한 본질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만족스런 지식을 경험하게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책 속에 선보이는 인간에 대한 심리적 분석과 그와 관련된 소비성향의 분석은 인간의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소비를 통해 본 인간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은 다양한 실험과 자료를 통해 차분히 보여준다. 아마도 이 책이 단순히 소비로 삶을 유지하는 경영자들을 위한 책이 아님을 이 점에서 확인한다. 인간의 소비 성향이 주류경제학에서 말한 단순한 것으로부터 출발하기 보단 감정이나 위신, 그리고 상황에 따른 소비성향의 다양한 변화들은 인간의 단단한 신뢰가 무너지는 측면을 보기도 한다.
  이런 내용에 한국에서의 과소비를 집단성에서 찾은 대목은 눈 여겨 볼만한 것이다. 집단성향이 강하기에 타인에 대한 과시소비를 하는 내용이라든지, 중대형 차의 색이 천편일률적인 측면은 간파하고 그 속에 있는 사회성을 짚은 내용들은 무척 신선하다. 이 내용은 단순한 사실이나 자료를 넘어 빈부격차가 초래하는 어두운 단면 같은 한국사회의 심각한 위기가 어디서부터 나오고 있는지를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대학의 문제 등으로 추론한 것들은 이 내용이 매우 탄탄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주류경제학의 문제점을 밝히고 행동경제학 등의 새로운 대안학문의 우수성을 밝히려 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새로이 전개되는 해결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 꾸준한 연구와 노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당위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국의 학자로서 한국 문제를 결코 간과하지 않음으로써 현장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그래서 귀하다. 새로운 진실보다 기존의 지식들을 보다 우리 생활에 적합하게 하고 현명한 지혜를 제공하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갖고 있는 장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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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의 문제 - A Matter of Siz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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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영화는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가 미국 영화인 줄로만 알았는데 독특한 언어가 나왔고 어딘지 모를 중동적인 기후가 보였던 것 같다. 중동언어와 같은 느낌, 그리고 독특한 야자수와 어딘지 모를 독특한 풍광, 이 영화는 그런 이색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이색적인 것은 뚱뚱하다는 편견에 도전하는 방법이다. 역시나 희한한 방식으로의 대응이었고 그 속에 담긴 소수자, 혹은 Loser의 반란이 보였다.
  비만, 현대란 사회에서 소외가 되는 여러 이유 중 상당한 크기를 차지한다. 단순히 옷 사이즈가 다른 사람들에 견줄 때, 매우 크다는 점만이 문제가 아니다. 성적 매력을 통해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 현대 사회에 있어 과도한 비만은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주기 보다 비호감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인간적 매력이나 다른 차원에서의 능력은 무시된 채,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게 되며, 결국 Loser가 된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어딘지 모를 신비감과 매력을 풍길 수도 있기에 개성적인 표현 등을 통해 장려되곤 한다. 그러나 수준미달인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외관을 통한 매력으로 상대의 관심을 끄는 것이 대세인 요즘, 열악한 외관은 사회적 냉대를 받게 되며, 일종의 사회적 폭력을 받기도 한다. 그 누구도 보기 싫어하고 같이 있기 싫어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사회적 폭력은 단지 보기 싫단 이유만으로도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이다. 부당하다고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인간의 감정과 심리가 인간의 합리성을 압도하면서 발생하는 자연발생적인 것이기에, 상대의 마음을 돌이키긴 힘들다. 그렇게 무시당하는 것이다.
  [사이즈의 크기], 좀 희한한 제목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수긍하게 만드는 강점들이 수두룩하다. 영화를 만든 곳이 이스라엘이란 이국적인 장소인데 줄거리 자체도 매우 독특하다. 뚱뚱하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쫓겨나고,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는 것은 확실히 평범하게 벌어지는 사회적 차별이다. 그런데 뚱뚱한 주인공들이 선택한 것은 다이어트를 통해 평범한 기준에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살찌려는 역주행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역주행을 선택한 방법도 역시 기이하고 이국적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볼 때, 이국적인 일본의 전통 스포츠인 스모를 선택한 것이다.
  스모, 더욱 몸이 클수록 강하기에 살을 더욱 찌울 필요가 있는 경기다. 평범하면 안 되는 경기인 스모를 통해 주인공들을 그것을 통해 맘껏 살찌울 수 있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것을 즐기게 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이국적인 문화를 지닌 나라의 경기인 스모를 통해 그들은 세상과의 새로운 소통을 시작한다. 비만이기에 당당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면서 그곳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즐거운 만남을 갖고, 그곳에서 그들과 소통하면서 자신들의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평범한 곳이라면 우스운 스모 복장으로 그들은 거의 반나체로 거리를 활보한다. 스모를 하기엔 스모 복장을 입는 것을 부끄러워해선 안 된다는 그들의 스승의 지도에 따라 점점 그들은 그런 모습에 익숙해지고, 동시에 많은 진통이 있었고 고통이 있었지만, 살찐 그들의 모습을 점차 긍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런 모습을 역시 그들 주변이 점점 받아들이고 긍정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그들은 더욱 살찐 모습으로 평범만을 쫓은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수준 미달이라서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기본적인 행복이 박탈된다는 것은 분명 불행이다. 세상의 편견으로 인한 권리의 침해는 그러나 어느덧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우리들 생활이다. 더구나 수준 미달과의 만남은 물론 소통조차도 거부하는 현실의 비극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아프게 했고, 그래서 영화의 멋진 반전은 고맙기조차 했다. 과연 현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든 된다. 그러나 변해야 하는 것은, 평범하기를 갈망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남들에 의해서는 물론, 스스로 파괴하기까지 하는 수준미달, 즉 Loser들이라기보다,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거부하려고만 하는 평범한 일반인들이다. 당연하고 진부한 이야기지만 언제나 지켜지지 않는 외모지상주의의 폐단은 이 영화 서사의 기본 뼈대다. 머나먼 곳으로부터 온 이 영화는 이야기를 즐거우면서도 감동적으로 풀어냈으면서도 무척 뼈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상은 이 영화의 꿈처럼 바뀔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들이 조그만 노력만으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Loser들은 영화처럼 타국의 스포츠인 스모를 배워서라도 자신들의 행복을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반인들이 자신들의 타성을 질타해야 한다는 진부한 사실을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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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5-08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어디서 보셨나요?
재밌을 것 같네요.^^

novio 2010-05-08 23:07   좋아요 0 | URL
매우 재미있습니다. 이 영화를 전 시사회로 봤습니다. 지금은 좀 인기가 적어서인지 거의 내렸고 부산 국도&가람 예술관에서 5월 15일부터 하네요. 좀 장소가....
 
집 나온 남자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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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아름다운 하늘이 보였다. 한국에도 미국에나 나올 법한 광활한 하늘이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안 순간이다. 그런 화면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낭만성, 무척 좋았다. 어쩌면 촬영기법의 발전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를 통해 조성된 낭만적인 분위기는 긴장감으로 가득한 영화의 서사와 대비를 이루었다. 긴박하고 격렬한 서사와의 기묘한 대조, 영화는 매우 신선해 보였다. 각박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영화, 본연의 기능이 산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영화의 갈등은 역시나 존재했다.
  현대인의 낭만 중 점차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바로 이해 받는 삶이다. 도시 생활로 인해 각자의 생활을 인정받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얻은 것은 물론 장점은 있다. 그러나 서로의 삶에서 접촉과 만남이 점차 소원해지는 요즘, 이해 받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으며,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으로 애용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이제 대리만족으로만 느낄 수 있는 그 감정은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개연성을 중시하는 순간부터 심지어 영화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다. 사회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서사 예술들의 한계일지 모르겠다.
  이해 받기를 원하는 아내, 그녀는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자 떠났다. 그러나 남편 역시 떠나려 했다. 라디오 방송 중 아주 크게 이혼하겠다는 선언을 한 방송인 ‘지성희(지진희)’는 그렇게 아내를 이해할 마음을 끝냈다. 그러나 그가 알게 된 현실은 아내가 자신을 먼저 찼다는 현실이었다. 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누가 먼저 했는가 하는 문제를 매우 중시한 ‘지성희’는 자신이 싫다는 아내를 찾고자 여행을 떠나게 된다. 거기에 동참한 남자는 그의 후배이자 아내의 과거 애인이었던 ‘황동민(양익준)’이었다. 이 기이한 관계를 갖고 있는 남자 둘이 여자 하나를 찾아가는 이 영화는 Road Movie가 된다. 무척 오랜만에 본다.
  이해 부족, 현대사회가 언제나 아파하는 이유다. 관계의 과다로 인해, 그리고 바쁜 사회생활로 인해, 도시인은 자신의 옆에 있는 가족이나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기조차 힘들다. 도시화로 인해 받은 피해자들이면서도, 결국 도시에 살 수밖에 없는 그들, 그렇게 도시인들은 불행하게 살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사는 줄도 모르면서, 아니 외면하면서 살고 있는 그런 사람들, 영화엔 그런 인물들이 주인공이자 조연들이다.   

  도망갔기에 잡으러 다니게 된 남편은 그의 추적 과정에서 아내에 대해 몰랐던 점들을 하나 둘씩 자각하게 된다. 과연 부부였는지조차 의심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된 남편, 그것은 도시인들의 일반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아내의 고민, 아내의 과거, 그리고 아내의 가족 등 전혀 예상 못한 내용들에 당황해 하고 그리고 미안해 한다. 그는 그녀를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었다. 믿지 못했지만 믿지 못하게 만든 그런 관계, 어느 부부에겐 그렇게 지독한 불신과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모르는 것이 죄인 것. 영화는 사건의 원인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그녀의 과거 하나하나를 알게 되면서 느끼는 자괴감과 함께 밀려드는 미안함은 영화의 후반부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도망한 아내에 대한 용서는 필연적인 결론이 된다.
  보통의 현대의 도시인들처럼 부부, 혹은 가족이란 묶음이 단순한 인간관계의 하나일 뿐 귀하지도 않게 된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말뿐인 관계 속에서 혼자만의 비밀과 사연, 그리고 인간관계로 살아가게 되는 것만 같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함께 한다고 해도, 결국 타인들끼리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현대인들, 영화 속에서 가득한 세상의 모습이었다.
  부부, 이젠 민법상으로만 친한 관계일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부부라는 관계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주인공 집안에 도둑이 들어 10억 이상의 금액이 털렸다는 이야기에도 집에 가지 않은 모습은 부부든 혹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든 그냥 알고 있는 관계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함께 산다 해도 도리어 미지의 인물로만 느껴지는 모습이 영화 속에서 보일 때, 현대인들의 살아가는 비극을 보는 것만 같아서 슬펐다. 영화는 뛰어난 연기로 빚어진 즐거운 코미디 구성을 띠면서도 그 뒤에 숨겨진 도시인들의 애환이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는 만족만을 주진 못했던 것 같다. 주제를 위해 만든 시나리오라 한 쪽의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썼다는 점에서, 예술의 일방적 시선은 통상적으로 인정한다. 예술의 자유로운 선택방법과 그 내용은 어느 사회나 다 인정하고 또 인정받는 것이 다양한 측면에서 좋다고 인정한다. 다만 영화의 앵글을 아내에 집중했다면 아내 역시 문제 많긴 마찬가지다. 남편이 안 아내의 비밀은 근본적으로 아내이기에 남편에게 이야기해야만 했던 사실들이다. 아내는 자신의 문제를 남편이 알 수 있도록 노력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영화를 보는 내내 갖게 됐다. 부부가 관계라고 본다면 사실을 숨긴 것은 거짓일 뿐이며, 결국 아내는 남편을 결혼 전부터 버린 것이다. 이미 그 관계는 불건전했고 파탄이었다. 어떤 점에선 아내의 행동은 자신의 세계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사회의 부적응자로 보일 수 있다. 즉,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아내의 입장을 미리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어쩌면 과도한 의미 해석과 과도한 인식의 단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또한 무리한 요구, 그녀의 행동 역시 영화 속의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다. 즉, 그녀 역시 누군가에게 자신의 자유를 위해 희생시킨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아 보였다. 어쩌면 이런 면은 현실과 반대인 이상향으로 묘사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중이 강하게 표현되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어느 것 하나 이해 받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그것이 극도로 인정된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욕구를 들어주면서도 동시에 상대에 대한 고통을 주는 상황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영화의 구성은 분명 비판의 소지도 있어 보인다. 어쩌면 상대의 입장이나 배려는 없어 보였고, 자신만의 시각에서 모든 면을 해석하려 했고, 그래서 수긍할 수 있는 일처리를 결코 수긍하기 힘든 묘한 구석을 몰고 갔다. 아마도 독특한 스토리를 만들려는 의도에서 그랬던 것 같다. 이런 점이 부각됐다면 영화는 더욱 강한 주제의식을 담았을 것이고 좀 더 설득력이 강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래도 영화는 신선했다. 넓은 대평원에나 있을 법한 풍광이 한국의 풍경을 배경으로도 볼 수 있었다는 점은 물론 신선한 구성과 내용은 무척 즐거운 것들이다. 엉망이고 뒤죽박죽인 영화 속에서 독특하면서도 쉽게 만나보기 힘든 캐릭터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고도 다른 타인들과 잘 조화를 이루었다. 자신들의 피치 못할 사연의 개연성은 부족했지만 그런 약점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지진희, 양익준, 이문식 등의 뛰어난 연기자들의 공일 것이다. 영화는 아마도 만점을 받기 힘든 구석들을 갖고 있지만, 이하 감독의 다른 작품은 기대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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