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3주

  하정우, 현 영화배우 중 최고라 한다면 좀 과찬일까? 그럴 수도 있겠고 아니라고 하는 영화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든 그는 뛰어난 영화배우다. 다들 그렇게 안다. 그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볼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중성은 물론 예술적인 평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많다.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영화에 그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것, 확실히 감독들이 좋아하는 배우인 것은 분명하고, 역시나 좋은 배우임이 입증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을 한다.
  하정우는 영화의 단역에서 자주 얼굴을 보이다 점차 주연으로 성장한, 단계를 밟고 올라간 배우다. 얼굴이 아이돌 수준이 아니어서인 것만 같다. 그래도 단역에서 조연으로 그리고 현재엔 거의 주연으로 캐스팅되고 있다. 어쩌면 한국영화의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발전은 무척 눈 여겨 볼 만한 성장이다. 특히 그의 초기작이면서 그의 존재를 각인시켰던 ‘용서받지 못한 자(2005)’는 그의 성장과 아울러 한국영화계의 큰 자취를 남긴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감독이었던 ‘윤종빈’은 주목 받았고, 하정우는 뛰어났고 그가 타고난 연기자임을 확인시킨 출세작이다. 이후 ‘추격자’로 그는 최고의 스타가 된다. 
 

 

 

  이렇게 생각되는 배우, 하정우가 출연한 영화들은 좀 오랜 기간 동안 영화계에 종사해서인지 다양한 분야에 출연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의 매력 중 가장 큰 것은 매년 그의 이력에 포함될 영화들은 분명 화제작이나 문제작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은 그의 영화이력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데 그의 작품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고, 그렇게 나누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 중 하나의 주제로 한 번 골라본다면 아주 좋은 구성이 될 것만 같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관심을 끄는 주제는 바로 사회 Loser들을 대변하는 영화에서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영화배우들도 해당되는 사항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가 주연했던 Loser의 모습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그가 ‘프라하의 연인’과 같은 로맨틱 사랑 영화에 나오기도 했고 ‘구미호 가족’에선 즐거운 공포물에도 출연했지만 아마도 난 Loser의 영화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가 출연한 Loser영화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금도 상영되고 있는 ‘황해,’이고 천만 관객을 돌파한 ‘국가대표,’ 그리고 ‘비스티 보이즈’다. 
 


황해(2010)
 

 

  한국 사회의 Loser로 변한 중국 동포들, 그들의 삶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힘들긴 마찬가지다. 황해란 영화는 그렇게 사는 어느 중국인의 불행한 운명을 다룬다. 실화를 바탕으로 가상이 덧붙여서 제작된 이 영화에서 하정우가 중국 연변의 동포로 나온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불법으로 황해를 건너는 장면, 그리고 부산에서 쫓고 쫓기는 장면, 그리고 동물 뼈를 흉기로 사용하는 장면들은, 초현실주의적으로 보일 만큼 잔인하고 또한 기괴했다.
  하정우가 분한 ‘구남’은 모든 것이 빼앗긴 조선족으로 괴로운 현실을 탈피하고자 한, 사회적 Loser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자를 죽이라는 청부를 맡게 되고, 이후 버림받는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리고 중국 연변으로부터도 버림받는 그가 갈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황폐화된 구남을 연기한 하정우는 무척 인상 깊은 연기력을 보여준다. 갈 곳 없는 자의 마지막 로망은 허무하기조차 한데, 하정우의 조선족 연기는 나홍진 감독이 왜 그를 ‘추격자’ 이후 다시 작업하고 싶었는지 이해시킬 것이다.     


국가대표 (2009) 
 

 

  하정우의 스타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영화다. 그리고 국가대표라는 허울 뒤에 있는 스키점프 선수들이란 Loser들의 희망과 절망, 그리고 도전 등을 멋지게 형상화했고, 이 영화는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으로도 엄청난 성과를 거둔다. 무엇보다 천만 관객을 넘었다면 대중성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특히 2009년도의 또 다른 천만 관객을 이끈 ‘해운대’와의 치열한 경쟁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정우가 연기한 것은 전(前) 주니어 알파인 스키 미국 국가대표였지만, 자신의 친엄마를 찾아 한국으로 와 스키점프 국가대표를 맡게 되는 입양인 Bob이다. 문제는 한국의 스키점프 상태인데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전부 다 해봐야 4명이고 이들의 선발과정은 영화 속에선 거의 코미디 수준이었다. 지금도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스키점프는 동계올림픽을 꿈꾸는 한국동계스포츠의 열망으로 인해 급조된 팀이라 다른 종목에서 실패한 선수들이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선 군대를 가면 안 되는 Loser들을 선수로 선발한다. 그나마 하정우의 Bob이 가장 elite일 뿐이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그들을 악용한 한국사회의 추악한 면이 발단이 되긴 했지만 영화 속의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유야 어떻든 최선을 다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 낸다. 그 속에서 하정우는 탁월한 연기력을 발휘했고,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 중, 나가노 올림픽에서 무시 받으며 입국한 그들 중 Bob의 눈물 어린 고뇌에 찬 연기는 자칫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던 장면을 가장 감동적으로 바꾼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대중적으로도 경합했던 ‘해운대’와는 수상에서도 많은 경쟁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하정우는 백상예술대상(2010), 30회 청룡영화상(2009), 46회 대종상영화제(2009)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 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스티 보이즈 (2007) 
 

 

   하정우의 사회 Loser 연기 중 가장 이색적이 될 것 같은 영화다. 또한 그와 함께 출연한 또 다른 연기천재인 윤계상과 뛰어난 하모니를 하정우는 만들어 주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하정우의 연기 파트너 복은 타고났다고 할 수 있는데 이후 김윤식과의 만남 역시 그런 복의 연장선인 것 같다. 종종 한국 며느리의 표본으로 상징되는 동네인 청담동, 그곳은 한국에서 가장 잘 사는 부촌이다. 하지만 그곳이라고 한국의 Loser가 살지 않는 곳은 아닌가 보다. 청담동에 있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호스트들은 비싼 여성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회적 Loser들이다. 이런 곳에서 하정우는 호스트로 열연을 하는데, 그는 이 영화에서 인생의 건설적인 현재와 미래엔 무관심한 채, 오늘의 즐거움만을 쫓는 호스트 바의 리더 재현으로 분한다. 대충 즐겁게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그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고 기존의 생활과의 결별 과정에서 인생의 쓴맛이 다가 온다. 이런 과정에서 하정우는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새로운 영역에서의 개성을 맘껏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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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23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정우 제가 좋아하는 배우인긴 한데 이렇게는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미지가 그렇게 굳어질 것 같아서. 특히 추적자는
국가대표나 그 전도연하고 나왔던 멋진하루 정도로만 나와도 좋을 것 같은데.
하긴 요즘 루저가 대세여요.ㅋ
잘 쓰셨네요.^^

novio 2011-01-23 22:49   좋아요 0 | URL
하정우는 앞으로 무한한 변신을 할 것입니다. 연기자의 숙명이겠죠?^^ 그의 여러 작품들 중 주제 하나로 해서 선별해 봤을 뿐입니다. 나중에 다른 주제로 한 번 다시 해보겠습니다^^
 
헬로우 고스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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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옆에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사랑하고 기댈 사람들이.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알아채지 못하고 있기에 세상은 거칠게만 느끼고 또한 불행만 느끼고, 그래서 떠날 생각까지 하게 된다. 미련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Loser들은 더욱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래서인지 주인공은 죽기 위해 살고 있다.
  자살, 어느덧 자연스레 듣게 되는 이 단어는 거의 매일 듣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거의 매일 누군가의 자살 소식이 들린다. 유명인의 자살이 화재거리라서 크게 회자되지만 이름 모를 어느 누군가의 자살은 거의 매일 있는 다반사의 시대다. 특히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기 쉬운 슬픈 내용이어서인지 방송매체의 발전에 기인한 이 슬픈 현실은 차라리 방송 없는 곳이 더욱 행복한 세상이란 착각까지 들도록 한다. 방송 없는 곳이 낭만적인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 그 누구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소통부재가 차라리 행복의 조건인지 모르겠다.
  사회의 Loser들이 살기엔 이 세상은 각박하고 외롭다. 자살하겠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워 보인 세상은 사실 그렇게 척박한 현실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다. 외롭다는 것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단 의미이고, 자신이 필요로 한 사람도 없단 의미이다. 그냥 사라져도 특별히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은 모두에게 삶의 진미를 느끼도록 하지 못한다. 생명은 귀하지만 Loser의 생활이 정말 그만큼 귀할까?란 질문이 자연스레 나오게 된다. [헬로우 고스트]란 영화는 바로 이런 물음 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귀신이 존재한다. 그것도 바로 그의 옆에 말이다. 한국적 사고를 통해 상상된 이 구조에서 출발한 이 영화에서, 죽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외롭고 불쌍한 남자 ‘상만(차태현)’에게 뜻하지 않게 귀신이 더부살이하겠다고 온 것이다. 즉 변태귀신, 꼴초귀신, 울보귀신, 초딩귀신. 울기만 하면서 소원을 들어달라는 유일한 홍일점 귀신이 함께 살자고 한다.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영화는 그들과 헤어지기 위한 상만의 의지와 계획으로 시작된다. 혼자여서 죽고 싶었던 상만이 그들과 헤어지기 위해 자신의 자살의 시간을 좀 더 지연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상만의 몸을 통해 들어주면서 알게 되는, 그들이 왜 상만에게 왔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된다. 그 속엔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특별한 서사가 있다. 어지간히 냉혹한 관객이 아니라면 어느 순간 촉촉히 젖는 눈시울을 느낄 만한 전개다.
  영화는 곳곳에 웃음을 장치하면서 극을 진행한다. 귀신과 헤어지기 위해 고스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는 미션에 따라 상만은 귀찮은 함께 살기를 하게 된다. 귀신이 원하는 것은 왜 이리도 상만에겐 힘들고 괴로운 것인지. 심지어 상만에겐 부적격한 것들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하지만 고스트들의 꿈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함께 사는 가치와 동료애도 느끼고, 함께 사는 온기도 동시에 누리게 된다. 그리고 고스트들이 아닌 현실의 여인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사랑은 확실히 진부해 보이는 설정이지만 어느 순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확실히 고전적인 방법이 진부하긴 해도 효과는 만점인 법인가 보다. 진부한 것을 함부로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영화의 공간엔 호스피스 병동이 있다. 그곳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들어가면 결코 살아서 나오기 힘든 것이다.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일 뿐, 인간세상에서 기적을 바란다는 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공간인 것이다. 문제는 그곳으로 들어간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 역시 무섭긴 마찬가지다. 인간들의 소통부재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과 외면 받는 고통 앞에 인간은 죽기 전에 죽은 것이다. 임종은 결국 그의 부재를 확인하는 시간일 뿐이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을 죽은 자 취급하는 세상의 세태는 많이 익숙해진 모습임에도 슬프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귀신이라도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자들에게 기댈 수 없다면 귀신이라도 나타나 가족애를 확인시키고 남과 더불어 사는 가치와 행복을 만끽하도록 해주었으며 하는 바람 말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비현실적 동화를 사용해서 현실의 풍자로 돌변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의 가치를 너무 쉽게 회복하지 못한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족애를 확인할 수 있다면 귀신이라도 괜찮다는 역설, 죽은 자들이 다시 우리 곁에 와야 하는 억지스런 이유인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그렇게라도 됐으면 말이다. 추운 날씨에 마음까지 추워져선 안 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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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 - 잘못된 과학 정보를 바로 가려내는 20가지 방법
셰리 시세일러 지음, 이충호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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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명해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현명함 속엔 타인의 조작에 속지 않을 수 있는 능력도 포함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능력을 얻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다. 누군가의 조작에 속지 않고, 세상에서 제공되는 지식과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 말처럼 쉽다면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답고 행복할 것만 같다. 이것은 그러나 희망사항일 것이다.
  과학, 진실을 밝히는 등불처럼 언제나 여겨졌다. 근대가 열리면서 모든 정보를 객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등장한 과학은 우상화된 종교에 문제제기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수많은 진리를 보여주었고, 그래서 인간의 안목을 넓히기도 했다. 그래서 과학은 위대한 것이다. 이런 과학은 자연과학은 물론 이제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의 사회과학으로까지 확대됐다. 자연과학에서의 방법론은 인간사에 응용하면서 과학적 합리성을 넓혀, 인간의 사고능력의 확대는 물론 세상의 모든 사건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파악하면서 객관적인 지식을 만들 수 있다는 신화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이란 책은 근대로부터 추앙 받는 과학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마치 암흑 같던 중세의 종교에 문제제기를 했던 과학처럼 말이다. 사건이나 사례에서의 다양한 내용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책에선 단두대에 선 것이다. 방송과 같은 다양한 매체는 물론,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책들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주관적 편향성을 밝혀내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목적과 이익이 숨어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주관화된 지식의 홍수 속에서 헤매는 수많은 일반인들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과학이란 미명 하에 숨겨진 거짓말을 찾기 위해 이 책에서 제시한 것은 무척 유익하다. 기존에 알려진 것도 있지만 전혀 예상 못한 방법들도 있기에 아마 이 책을 통해 특정 쟁점에 대해 서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로고 주장하면서도 반대되는 각종 주장들로부터 오는 혼란에 휩쓸리고 않고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혜안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뒤에 숨어있는 것은 결국 불신이고 그것을 꼭 염두에 두란 이야기다. 주장하는 이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자신의 입장에서 객관적이지 못한 주장을 하기 마련이며, 이것은 결국 인간의 한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과학의 목표는 아직도 요원한가 보다. 더욱이 과학으로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인간의 탐욕은 아직 원시시대를 넘지 못하고 있나 보다. 그래서 현명해지기 위해선 우선 믿지 말아야 하며, 하나하나 따져야 함을 주지시킨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을 세상과 연결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으면 그 뿐이다.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관찰보다 실험이 우수하다는 사실은 모두 동의하지만 사회현상을 실험할 수는 없기에 무척 가슴 아프다. 그러나 결국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 역시 자연과학자는 물론 사회과학자의 임무이기도 하다. 그리고 각종 이익단체에서 자기 본위로 이야기하는 것을 다시 색안경을 쓰고 봐야 한다는 요지 역시 가슴 아프기도 하다. 환경단체는 사회적 정의를 지켜내는 NGO로 알려져 있지만 주관적 편향성을 비켜가지 못하나 보다. 그래도 그들은 그나마 사회적 정의를 지키는 쪽이라고 믿어진다.
  보는 내내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사회과학도로서의 비애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허약한 환경이 갑작스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조심하란 이야기는 무척 좋은 고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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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나라의 작가들 - 대화적 관계로 본 문학 이야기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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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와 신선함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된 문학에 대해, 그것은 선입견이라고 하는 이 책은 무척 독특한 시선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효과일 것이다. 문학가는 당대의 현실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너무 막연하고 관념적이다. 도대체 어떻게 영향 받는가 하는 것이 사실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영향 받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제목이 ‘거울나라의 작가들’이란 것은 그 사회적 조건에 착안을 둔 것이 아니라 작가들 자신이 봤음 직한 혹은 봤던 작품들에 영향을 받아 문학을 썼던 이들의 묶음을 이르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관계’이다.
  바로 ‘관계’다. 시대를 넘든 동시대이든 큰 인상을 준 작품들에 대해 작가는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앞서의 작품에 대한 유사성을 갖게 될 수도 있고, 또한 앞서의 작품과 주제의식이 유사하던가 아니면 비판의 입장에서 쓰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시대 상의 차이가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고, 또한 독특한 작가들의 세계관이 한 판 전쟁을 치르는 것일 수 있다. 다만 이런 반응을 통해 왕성한 창작의욕이 분출하고 거침없는 필력이 작용하고, 그래서 한 번 볼만한 문학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작가는 물론 독자들에겐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에세이에선 확실한 연결고리가 있는 작품들을 연결한 경우도 있지만 시공을 초월하다 보니 지은이의 상상력으로 연결한 내용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상력도 책을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는다. 새로운 창작이 될 수 있는 이런 기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다만 주제의식이 충돌할 경우, 앞서의 작품을 비판하는 이후의 작품에 대해 앞서의 작품의 작가가 반론할 기회가 적다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 ‘허생전’과 ‘허생의 처’ 사이에 있는 간격을 더욱 확실히 보여 줄 수 있도록 연암 선생과 이남희가 함께 논쟁을 벌였으면 했지만 불가능은 언제나 고전과 현대작품 사이에 놓여있는 슬픈 바다인 것이다.
  고전은 후대의 작가들을 위한 거름이 된다. 하지만 과연 이후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세상과 방식이 언제나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고전인 ‘심청이’에 대한 최인훈과 황석영의 현대판 해석은 동화 속에 숨겨진 각박한 세상살이를 간파한 지성인의 인식 같기도 하다. 사실 심청이란 캐릭터가 나온 당대인들이 전래동화 속에 숨어 있던 낭만과 환상을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더 잘 알았을 수 있다. 지금도 낭만을 쫓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의 심리인 현실도피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엄존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엔 현실에서의 능력이 없다는 것 역시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위안을 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란 엄중한 경고인 것인지에 대한 차이일 것이다. 그래도 고전이 취한 동화가 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작부로서의 심청이가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는 있어도 불행한 인간사를 겪고,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현실의 자신을 유추할 수 있어서 괴로울 수 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본 문학이 고통을 시간을 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비록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공교롭다고 할까? 비슷한 구성과 내용, 그리고 주제의식, 이런 것들이 다른 작품에서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누가 누구의 작품을 베꼈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들의 보편적 속성의 발현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적 소유권의 문제를 떠나 인간의 문제의식은 시공간을 넘어 언제나 비슷했고, 현실의 인간 역시 과거 어느 시점의 고민을 유사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마치 ‘평행이론’처럼 말이다. 그래서 과거를 보고, 현실의 우리를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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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 The America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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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러의 영화다. 킬러의 국적은 미국. 그래서 제목이 The American이다. 하지만 미국과 관련된 것은 국적 빼곤 찾을 수 없다. 영화의 배경은 유럽이다. 쫓기는 미국인 킬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언제나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찾아가고 있는 킬러다. 청부를 받고 누군가를 죽이는 그는 역시 그를 노리는 어느 누군가에게 쫓기는 입장이기도 한 것이다. 청부를 받으면서 또한 노군가의 청부에 의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시달리는 그,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고독하다.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설정은 우아하지 못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의 성공은 결국 그를 노리는 사람들의 숫자를 불리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타인은 경계의 대상이며, 불신의 대상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죽이기에 고통 받는 것보다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는 사실에 더 두려운 킬러는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위협이 된다고 느낄 때, 주저하지 않고 그는 총구를 겨누며, 그렇게 산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위협의 희생자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협하면서도 하루하루 위협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 그것이 영화 속의 킬러의 삶의 모습이다.   

  그에게 살인을 의뢰하거나 살인과 관련된 일을 맡기는 청부인과 미국인 킬러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인 것처럼 보였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선 기본적은 신뢰가 필요하다. 일방적이지만 악어의 공격은 결코 없을 것이란 묵인이 있기에 가능한 관계이고, 그것을 통해 서로 공생하는 그런 관계다. 하지만 영화 속의 청부인과 킬러의 관계는 그런 것이 없었다. 필요에 의해 만든 관계인 이상, 그 필요는 언제든지 휴지조각처럼 바뀌게 될, 너무 허약한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믿지 못하는 불신의 관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청부인이 준 모바일 폰을 버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오직 공중전화로만 소통되는 그런 관계가 된다. 마치 나에게 청부를 하지만 동시에 나를 제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보호란 것 자체가 없는 그들의 관계는 청부하면서도 상대의 사악한 마음을 읽어내야 하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보호하지도 보호하려고도 않는다. 언젠가는 파멸된 위기일 뿐이다. 마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처럼 말이다. 깊은 불신 속에서 억지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킬러에게 인간관계는 위험하다. 어느 순간 자신이 알고 있는 상대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눌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아주 깊은 산골로 간다. 스웨덴에서도 그랬고 이탈리아에서도 그랬다.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도망이기도 하다. 그래도 또 다시 숨어살아야 하는 인간의 비애가 그의 도피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킬러는 조용하기만 한 산의 어느 오두막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또 다른 킬러들을 죽여야 했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죽이기조차 했다. 아무 망설임 없이. 비록 슬펐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애정에 마음을 쏟았을 경우의 사태를 그는 알았던 것 같다. 그는 인성의 가치를 알지만 결코 기댈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철학자처럼 말이다.  

  그에게도 낭만이 있다.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한 있지만 자신 없는 미래 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 사치였는지 모른다. 그가 은퇴하려 했지만 필요가치로 인해 판단되는 상황에서 모든 상황은 그가 원하는 낭만으로 갈 수 없도록 이끈다. 그나마 갖고 있는 행복의 끈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선 너무 사치스런 것인지 모른다. 인간이 갖고 있는 관계로 인해 갖게 되는 인생을 새롭게 바꾸려는 것이 결국 사치인 셈이다. 그는 어디로 가든 영원히 쫓겨 다닐 것이고, 그래서 그의 국적인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의 삶의 마지막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그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비극, 어쩌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지 모른다. 경쟁은 곧 우리 모두가 청부대상일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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